Lifestyle

셰프들이 만든 외국인 취향 저격 K-한식 기내식 4

2022.07.05전희란

셰프들의 가상 기내식이 탑승을 마쳤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ㅣ김장아찌, 오신채를 넣지 않은 김치, 막걸리를 천연 발효해 만든 빵과 두부장, 연근 · 고구마 · 표고버섯 · 만가닥버섯에 찹쌀풀을 입혀 가볍게 튀겨낸 뿌리 채소 버섯 강정. 된장을 체에 걸러 채수에 맑게 끓인 된장 국수.
세 가지 디시가 놓인 타원형 접시와 육각 찬합, 해인요 at 장생호. 뿌리채소 버섯 강정과 된장 국수가 담긴 흑유 그릇, 모두 이재원 작가 at 장생호. 커틀러리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오미자청 숄러와 진맥 매실 하이볼, 대추 백련초 · 감태 · 가평 잣 · 유자 쌀강정, 깨 약과, 호두강정.
디저트가 담긴 긴 타원형 접시, 이악 크래프트. 유리컵, 윤태성 작가. 스틸 트레이, 케이멧 at 더콘란샵.

K-BEGAN by 오경순 at 두수고방
“그동안 여러 항공사의 비건 메뉴를 경험했는데 대부분이 동물 사료로 쓰일 법한 음식, 혹은 탄수화물에 치중한 음식이었어요. 아무리 기내에서 활동량이 적다고 해도, 장거리 비행에는 맛, 영양을 모두 챙긴 기내식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전 세계적으로 비건 인구가 높아지는 이때, 한국식 비건과 채식 요리를 많은 이가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두수고방의 오경순 디렉터는 말한다. 소화력이 떨어지는 기내에서 소화는 잘되면서도 잃어버린 미각(3만5천 피트 상공에서 미각의 70퍼센트를 잃는다는 독일 프라운호퍼 물류연구소의 실험 결과가 있다. 짠맛은 20~30퍼센트, 단맛은 15~20퍼센트 덜 느낀다고. 반대로 감칠맛은 더 강하게 느낀다)을 대비해 맛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공을 들였다. 흔히 ‘채식=생채소’라고 인식하지만, 사실 생채소는 소화에 취약하다. 따라서 익힌 채소 위주로 넣고, 채식 중에서도 사찰 음식 레시피를 다수 적용했다. 오신채를 쓰지 않는 사찰 음식은 협소한 공간에서 먹어도 냄새 걱정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밀은 그 자체로는 소화가 어렵지만 발효하면 소화도 잘되고 영 양도 높일 수 있으므로, 발효의 원리를 이용한 ‘막걸리빵’ 등을 넣었다. “인천-독일 노선에 실리면 좋을 것 같아요. 수도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은 온갖 비건이 모이는 비건의 선두 도시죠. 게다가 요즘 한식 붐도 뜨겁고요. 한국의 다채로운 자연을 담은 한식이 기내식 테이블에 차려지는 일.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나요?”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ㅣ각각 다르게 조리한 다시마 · 고추 · 김 부각, 닭발로 만든 닭개장 편육, 소고기 육전을 넣은 육전 전골, 전복과 새우 등이 올라간 수란채, 된장 소스를 곁들인 찐 가지와 간 소고기, 시래기볶음을 넣은 메밀 나물 전병.
2단 트레이, 비트라 at 더콘란샵. 육전 전골이 담긴 그릇, 이악 크래프트.

K-주안상 by 김봉수
“한국은 곡물의 나라죠. 쌀을 주식으로 소비하는 나라고요. 쌀로 만든 술-탁주, 청주, 소주-에 걸맞을 만한 주안상을 고안해보았어요. 기내식은 이를테면 국가 대표잖아요. 한국 음식에도 다양한 상차림이 있는데, 기내식에서 주안상을 구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국물 요리부터 다양한 식감을 한상에서 선보인다면 멋진 마리아주를 보여줄 수 있겠죠?” 김봉수 셰프는 육전 전골, 닭개장 편육, 수란채, 가지 나물과 된장 소스, 메밀 나물 전병, 3가지 부각-김부각, 다시마부각, 고추부각-을 쌀로 만든 여러 술에 마리아주할 요리로 고안했다. “기내식이 실현된다면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실린다면 좋겠어요. 프랑스야말로 다양한 문화와 경험에 기꺼이 열린 나라잖아요. 전 세계를 달구는 한국 영화와 음악을 보고 들으며 다채로운 주안상을 맞이한다면, 평생 잊히지 않는 여행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요?”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ㅣ마늘장아찌, 참나물과 시금치 볶음, 스팀 오븐에 조리한 장조림, 치킨 스톡을 넣은 꽈리고추 볶음, 마늘 콩피, 메추리알 장조림, 부카티니 파스타, 그레이터로 곱게 간 파르메산 치즈.
아이보리색 사각 찬합, 하나경 작가. 치즈가 담긴 접시, 해인요 at 장생호. 물잔, 윤태성 작가. 사각 트레이, 냅킨, 모두 더콘란샵. 커틀러리는 에디터의 것.

K-모던 도시락 by 이원석 at 매튜
“기내식은 외국에서 오는 이들이 여정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한식이잖아요. 서양의 요소와 한국의 식재료가 함께 어우러진다면 국경을 넘는 첫 식사로 좋지 않을까 했죠. 서양식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지만, 평소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양식을 좋아해요. 밑작업을 해두고 기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완성이 쉬운 요리를 떠올렸죠.” 이원석 셰프는 쪄내는 쌀밥 대신 물에 익히는 파스타 면을 선택했고, 흔히 먹는 퍽퍽한 장조림과 달리 수비드 형태로 익혀 부드러운 장조림을 완성하고, 마늘을 콩피해서 오일에 담가 마늘 향을 은은하고 풍부하게 즐길 수 있도록 고안했다. 전체적으로 수분감을 더할 수 있도록 간장, 닭 육수, 생크림을 사용했다. “북미 노선에 실려 한식에 반쯤 친숙한 이들이 맛본다면 좋을 것 같아요. 한식과 양식을 반반씩 경험한, 특히 재미 교포라면 동시대 한국의 맛을 새롭게 각인하기 좋겠죠.”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ㅣ열무김치, 꾸덕한 소스로 식감을 오래 유지하도록 한 떡꼬치, 깻잎과 양배추를 올린 대패 삼겹살 비빔 쫄면.
김치, 떡꼬치를 담은 접시, 이이호시 유미코 작가. 옻칠 잔, 본즈. 쫄면이 담긴 원형 접시, 비트라 at 더콘란샵. 초록색 트레이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K-야식 by 오준탁 at 남영탉
“기내식은 어떤 나라를 미리 경험하는 미니 코스라고 생각해요. 여행의 설렘에 조미료를 가미하는 느낌이랄까? 여정에서 돌아올 때는 고국으로 돌아가는구나, 마음 놓이게 하는 한 끼이고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식 한식보다는, 한국인들이 진정 좋아하는 요리를 기내식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대패 삼겹살과 매콤한 비빔면의 조합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있을까요? 잘 붇는 라면류보다는 쫄면으로 대체하고, 소스에는 화조유와 화자오를 가미했어요. 그리고 입 안을 헹굴 듯 상큼한 열무김치를 더했죠. 떡은 딱딱하게 굳지 않도록 꾸덕한 떡꼬치 소스를 더하고요.” 오준탁 셰프는 레시피를 보다 간소화시키고, 각각의 재료가 입 안에서 조합될 수 있게 메뉴를 구성했다. 음료를 페어링한다면 식혜나 수정과, 술을 매치한다면 위스키, 버번, 코냑 등의 독주. “미국행 노선, 홍콩행 노선에 실리면 좋겠어요. 한국식인데 어쩐지 아시아의 풍미가 느껴지니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도 자꾸 생각날 것 같거든요.”

피처 에디터
전희란
포토그래퍼
김래영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보선, 최지애 at 스튜디오 로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