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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없는 무인도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2022.07.27신기호

대한민국의 영해를 빙 둘러앉은 무인도를 휘청이며 찾아갔다.

절명서ㅣ제주특별자치시 추자면에 솟은 절명서. 섬의 생김새가 떨어지면 죽을 만큼 험해 붙은 이름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해는 대국 같았다. 비행기 머리가 중국 영해로 기울수록 서해의 촘촘하던 섬들은 죽은 백돌을 들어낸 흑집처럼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떠 있었는데, 조금 전 내가 내려다본 작은 섬 앞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여서, 저 홀로 떠 있던 그 섬이 우리나라의 끝 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섬이라기보다 바위, 바위라기보다 암초처럼 보이는 끝 섬은 적막해 보였다.

1.5미이터암ㅣ남동쪽 영해의 시작점 1.5미이터암이다. 뒤로 송정해수욕장이 보일 정도로 내륙과 가깝다.

저 홀로 떠 있던 섬이 왜인지 잊히지 않았다. 사방이 열려 있어 섬의 소리는 메아리가 될 수 없고, 어느 한쪽을 바라보고 소리쳐도 떠난 소리는 사방으로 퍼져 떠나온 곳을 가늠할 수 없으니, 이 작은 섬들의 이야기는 들어줄 사람이 없어 보였다. 출장에서 돌아온 뒤, 끝 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며칠 전, 하늘 위에서 본 게 정확히 어떤 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영해 최끝단에서 부표처럼 떠 있는 섬들에 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쉽게 건져 올릴 수 있었다. 전남대학교에 재직 중인 오강호 이학박사는 이 과정에서 알게 된 학자다. 그는 2007년부터 대한민국의 무인도서를 연구해오고 있는 ‘전남대학교 무인도서 연구센터’의 센터장이기도 한데, 올해로 16년째 국책사업으로 무인도서의 연구와 탐사를 도맡아 진행해오고 있다.

송도ㅣ전라남도 해남군의 무인도서, 송도. 거북이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바위 위론 사철나무가 남학생의 머리카락처럼 송송자라 있다.

“2007년에 무인도서법이 발효됐습니다. 주변국들이 영토 관할권을 서로 주장하니 우리나라도 대응해야 했죠. 무인도서법은 우리나라 영해를 지키기 위한 해양 영토의 보존적인 개념이 강합니다. 우리 연구팀은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무인도서들의 체계적인 관리와 조사, 관찰을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오강호 박사팀의 연구 내용은 환경부와 해양수산부가 함께 조서한다. 환경부는 무인도서의 지형과 지질,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과 조류, 양서류, 파충류 등과 같은 자연 생태환경 전반을 다루고, 해양수산부는 앞서 언급한 자연 생태환경 조사를 포함해 인문 사회적 조사를 함께 진행한다. 여기서 인문 사회적 조사는 섬의 명칭 유래나 섬의 시설물 관리, 영해와 영토의 관점에서 섬의 위치와 면적을 계산하는 등의 작업을 말한다.

간여암ㅣ‘가물가물 보인다’하여 붙은 이름 간여암. 여수시 남면에 위치한 영해 기점이다.

문득 우리나라 내륙을 빙 두르고 떠 있는 섬의 개수가 궁금해졌다. 포털에서 ‘우리 나라 섬 개수’를 검색어로 입력하면 ‘3천3백33’이라는 숫자 뒤에 ‘+알파’가 따라붙는다. 이게 뭔가 싶지만 어찌됐든 정확한 정보는 아닌 셈이다. 이에 대해 묻자 오강호 박사는 전화번호를 외듯 쉽게 답한다. “우리나라의 무인도서는 총 2천9백18개입니다. 유인도서는 4백64개고요. 그러니까 총 3천3백82개가 우리나라의 정확한 도서(섬) 수입니다. 개수가 저마다 차이를 보이는 건 섬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서 그래요. 섬을 구분하기란 실제로도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만조 때는 2개의 섬인데, 간조 때 보면 하나로 보이는 섬을 두고 고민하는 것과 같죠. 하나로 봐야 하나, 둘로 봐야 하나 하는 식이죠. 그래서 지역마다, 기관마다 섬을 세는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관광이나 홍보 목적으로도 섬을 구분하거나 개수를 나누기도 하고요.”

소령도, 대령도ㅣ서쪽으로는 대령도, 동쪽으로는 소령도가 나란히 떠 있다. 식생이 자라기 어려운 바위섬이지만 바닷속 어장은 풍부한 보고다.

무인도서법에 의거한 무인도서를 구분하는 정확한 기준은 세 가지다. 만조 때 4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을 것, 자연적으로 생성된 지형일 것, 사람이 거주하지 않을 것.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첫 번째 조건이다. 해수면의 상승이나 자연 침식과 같은 이유로 앞으로 섬의 개수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범섬ㅣ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는 범섬. 호랑이 형상을 닮아 호도, 범도로도 불린다. 섬 오른쪽으로 해식 쌍굴이 뚫려 있다.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면, 보존의 문제로 연결된다. 어떻게 보존할 수 있는가와 같은 방법적 문제다. 방법은 다시 가치로 구분된다. “신해양시대에 무인도서의 가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배타적 경제수역을 구분하는 영토로서, 풍부한 어장의 영토로서, 그리고 환경적·생태학적 보고로서 그 가치가 나뉩니다. 경중은 없습니다. 모두 나란한 가치입니다.” 끝 섬, 그러니까 우리나라 영해의 최동단, 남단, 서단에 위치한 끝 섬들의 정확한 명칭은 ‘영해 기점’이다. 우리나라의 영해 기점은 총 23개. 이 가운데 사람이 사는 유인도서가 7개, 살지 않는 무인도서가 13개, 내륙에 위치한 내륙 기점이 3개다. 이곳 영해 기점에는 대한 민국 영토임을 알리는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과거에는 동판제와 주석제 같은 작은 표식을 설치해두었지만, 현재는 여기에 첨성대형과 원통형으로 우뚝 솟은 영구 시설물을 설치해두었다.

구들도ㅣ경남 남해에 있는 구들도는 9개의 낮은 봉우리를 뜻한다. 주상절리가 으뜸이다.

영구 시설물에는 해양 관측과 기상 관측 장비가 함께 들어 있어, 표석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채집하는 관측 기지로서의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 오강호 박사는 우뚝 솟은 영구 시설물의 가치에 대해 자칫 놓칠 수 있는 남은 설명을 이었다. “작은 섬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섬을 기점으로 200해리를 한 바퀴 빙 돌리면 무려 43만 제곱킬러미터가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잡힙니다. 한반도 면적이 22만 제곱킬로미터니, 얼마나 커다란 EZZ를 확보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요?” 바다 위로는 철책을 세울 수 없다. 바다의 해점은 내륙의 이정표와는 달라서 일반인들은 알기 어려운 데이터값이다. 막을 수 없고, 알릴 수 없는 망망대해에 영해 기점임을 알리는 영구 시설물이 우뚝 솟아 있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던 끝 섬을 다시 떠올렸을 때, 끝 섬은 더 이상 적막하지 않고 홀로 빛났다.

사수도ㅣ우리나라 영해 기점 중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다. 천연기념물과 철새 등 생태계적 가치가 높아 절대 보전 무인도서로 지정돼 있다. 섬 앞에 첨성대형 영구 조형물이 우뚝 솟아 우리나라 영해임을 알리고 있다.

어장의 영토로서는 어떨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중국 어선의 불법 어업 문제였다. 문제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영해는 격렬비열도다. 격렬비열도는 충남 태안에서 서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영해 기점이다. 그런데 최근 ‘격렬비열도항을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하는 항만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그동안 군사적,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수심이 깊고 지역이 험해서 개발이 어려웠고, 그런 이유로 불법 어업을 단속하다가도 기상이 악화되면 해경은 안흥항 등 인근 항구로 피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격렬비열도항이 개발된다면, 접안시설과 호안시설을 확충할 수 있게 되니, 중국 어선의 불법 어업 문제에 더 신속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격렬비열도가 국가관리연안항이 되면, 드디어 우리나라 어선들이 어업 활동을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중국 어선이 출몰하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 거고요. 서해의 해양 주권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겠죠.”

세존도ㅣ경남 남해에 떠 있는 세존도. 세존은 석가모니의 다른 이름이다. 커다란 바위문이 절경을 이룬다.

모든 영해 기점, 그중에서도 무인도서 영해 기점은 전부 생태계의 보고라고 오강호 박사는 말한다. “격렬비열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참 신기한 게 동격렬비도와 서격렬비도는 괭이갈매기의 산란지이자 서식지입니다. 그런데 북격렬비도는 새가 없어요. 차이는 북격렬비도에 등대지기가 있거든요. 사람이 많이 사는 것도 아니고 한두 명, 아주 소수인데, 새들은 그곳에 알을 낳지 않습니다. 참 영리하죠. 같은 이유로 무인도서와 유인도서의 생태계는 차이가 상당합니다. 규모를 떠나서 무인도서 인근 생태계는 모두 천혜의 보고라고 보시면 됩니다.”

서격렬비도ㅣ서해의 독도. 지리적 가치도 뛰어나지만, 대표적인 괭이갈매기의 서식지로 보존 가치가 높다.

실제로 그랬다. 제주 사수도는 섬 새의 본 서식지로써, 신안 고서는 지형, 지질적으로 상당한 보존 가치로써, 여수 하백도는 섬 자체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써,나름의 생태계적 가치가 생생했다. “영해 기점을 영토의 가치로만, 면적으로만 나누기엔 우리가 들여다보고, 연구하고, 보존해야 할 내용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생태학적 가치가 대표적이겠죠. 하지만 이 모든 영해 기점을 꽁꽁 묶어만 둘것이냐,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1차 무인도서 실태조사 때는 자연적 가치에 기반한 보존 개념이 강했지만, 2차 조사에서는 보존할 것은 반드시 보존하되, 동시에 섬을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도 적극 조사, 검토 중에 있습니다. 국토에는 사람이 살아야죠. 물론 무인도서에 억지로 사람이 거주할 필요는 없지만, 과거에 사람이 살았던 지역은 다시 살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보존과 이용의 균형을 위해서요.”

한국의 서해ㅣ우리나라 섬 지형의 특수성이라면 갯벌이 함께 형성된 형태다. 섬을 살펴보면 갯벌 형성에 유리한 지형이 많은데, 비슷한 예로는 필리핀이 그렇다. 차이라면 우리나라는 더 작은 섬들이 총총히 모여 있다.

동해의 달만갑을 시작으로 호미곶, 1.5미이터암, 생도를 끼고 남해로 내려오며 홍도와 하백도, 사수도와 가거도를 돌아 다시 서해로 치고 올라가는 목전의 소국흘도와 고서, 직도, 서격렬비도를 이어 소령도에 이르기까지, 총 23개의 영해 기점을 둘러보는 일은 가깝게 느껴지는 동시에 아득히 먼 일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영해 기점을 연구하고 탐색하는 50여 명의 무인도서 연구팀은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바다 위에 떠서 기상과 파도와 계절과 싸우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오고 있다. 이들의 일은 연구자의 사명으로 해석되고 정리되지만, 가장 바깥에서 국가 사수의 초석을 다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여름 해가 지나고 가을볕이 오글거릴 때 이들은 다시 배를 타고 나갈 것이다.

피처 에디터
신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