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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과 맛을 끌어올리는 음악 페어링 위스키 추천 5

2022.08.04신기호

음악과 술, 둘 중 하나에 취할 수밖에.

DRINK
THE BALVENIE 30 Year Old Rare Marriage, GLENFIDDICH Grand Cru 23 Year Old
요동치는 마음을 고요한 바다에 띄워 보내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심정으로, 발베니 30년 레어 매리지를 연다. 좋은 위스키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지 않다. 고요에는 고요를, 요동에는 요동을 더하여 대답을 해준다. 마치 훌륭한 음악이 그런 것처럼. 실크처럼 말랑하고 꿀처럼 달콤한 맛은 몰트 마스터 데이비스 C 스튜어트의 솜씨다. 그 곁에 글렌피딕 23년 그랑 크루. 싱그러운 사과, 꽃 내음으로부터 샌들우드 백포도의 풍미, 그리고 오크 향이 인자하고 길게 이어지는 23년 그랑 크루 옆에는 에릭 사티를 낮게 재생한다.

MUSIC
BURMESTER Phase 3
레트로한 B15 스피커의 크롬 위로 노을빛이 스민다. 161리시버에서 재생된 음악은 회로로 들어가서 우퍼로 빠져나오고, 석양을 따라 기울어지다 멀리서 사라진다. 리시버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선 스피커 두 대가 저만치 앉아 연주를 시작했을 때, 그제야 위스키가 놓인 테이블로 손이 오른다. 161 리시버와 B15 스피커의 덧셈은 버메스터 특유의 섬세한 음질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니까. 저 멀리 파도가 일렁이면 위스키에 젖은 마음도 슬며시 일어나 춤을 춘다. 가격 4천9백90만원.

 

DRINK
KRUG Grande Cuvée 169, Rose & GLENMORANGIE Nectar D’or
펑. 크루그의 코르크가 해방된다는 건, 음악이 시작된다는 신호다. 2013년이라는 악보에 기록된 변화무쌍한 멜로디와 리듬은 크루그 그랑 퀴베 169 보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풍성한 풍미와 우아한 아로마는 커다란 사운드로 출력되어 마음을 쿵쿵. 크루그 하우스가 새롭게 내놓은 신곡, 크루그 로제는 핑크빛으로 설렌다. 들장미 열매, 핑크 자몽 등의 아로마가 코끝에 넘실거리고, 입 안에서 보글거리는 거품에서는 꿀, 시트러스, 말린 과일의 풍미가 피어오른다. 아웃트로를 재생하는 마음으로 글렌모렌지 넥타도르를 천천히 잔에 따른다. 레몬 껍질, 화이트 초콜릿, 바닐라 등의 요염한 피니시가 벌써 그리워진다.

MUSIC
BANG & OLUFSEN Beoplay A9
둥근 스피커 위로 음악이 잠시 또는 오래 머물다 갔다. 텅 비어버린 스피커 위로 음악은 음악의 이야기를 채우고 흘려보냈고, 동시에 시간도 채우고, 흘려보내기를 반복했다. 달지도 쓰지도 않은 흘러간 것들은 다시 목이 긴 잔으로 들어와 채워지고 비워졌다. 4백80와트. 커다란 출력은 음악을 감정으로, 감정을 시간으로 통과시키는 요술을 부린다. 멀리 떠 있는 달이 흐릿해질 때까지 음악은 또렷이 흘렀다. 가격 4백99만9천원.

 

DRINK
ROYAL SALUTE 38 Stone of Destiny & 21 Year Malt
장엄한 사운드는 천천히 다가와 전체를 장악한다. 사운드에 맞춰 로얄 살루트 38년 스톤 오브 데스티니를 한 모금 삼켰더니, 이번에는 술이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기분이다. 셰리 오크 향은 진중하고, 삼나무는 밑바닥을 알 수 없이 깊다. 스파이시한 향신료 풍미는 고운 모래처럼 몸을 낭만적으로 두드리다가 긴 여운이란 꼬리를 남기고 저만치 간다. 38년 스톤 오브 데스티니가 한스 짐머의 <Dune> 사운드 트랙 같다면, 21년 몰트는 수프얀 스티븐스에 어울린다. 부드러운 과일의 멜로디로부터 은은한 향신료의 바람이 불다가, 달콤하고 확실한 발자국을 찍는다.

MUSIC
NAIM Mu-so 2nd Gen Bentley
다도를 올려둔 차탁처럼 낮게 앉은 오디오의 소리가 모래 위로 지나가면, 구불구불한 소리 길이 남았다. 네임 Naim의 소리가 깊이 물들면, 구리로 만든 스피커 그릴도, 아유즈 나무로 만든 스피커 박스도 따라 붉게 물들었다. 붉은 배경의 시간이 태동하는 새벽인지, 저무는 오후인지 사막의 시간은 가늠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계단을 따라 내려온 소리는 술잔을 넘어 앉았다. 어쩌면 우리가 음미하길 원하는 건 술이 아닐지도 모르지. 보이지 않는 소리 분자가 떨어지는 위스키에 감겨 소용돌이친다. 가격 3백50만원.

 

DRINK
MACALLAN Sherry 18 Years Old
목에 걸린 채로 삼켜지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 스타인웨이 링돌프가 뿜어내는 사운드는 그 경계선에 대롱대롱 매달린 감정들을 낚아채 쥐고 흔든다. 그리고 맥캘란 셰리 오크 18년을 천천히 플레이. 마호가니 색에 녹아있는 매콤한 스파이스는 입 안에 잉크처럼 번지고, 마침표를 찍지 않은 지휘자의 손처럼 그 끝은 길고 그윽하다.
JOHNNIE WALKER Blue Label, ZACAPA XO
조니 워커 블루 라벨의 깊은 스모크와 스파이스, 입 안 전체를 물들이는 오크 피니시는 끝나지 않는 노래처럼 끝끝내 재생된다. 향신료와 차의 마스터 블렌더였던 존 워커는 지속시키는 힘을 쥐고 있다. 자카파 엑스오를 마실 땐 슬픔을 삼킨다는 그 흔한 관용어가 떠오른다. 잔을 천천히 돌리면 잔 끝을 타고 내려오는 마호가니의 색은 길고 느린 눈물처럼 아름답다. 달콤, 쌉싸름, 싱그러운 맛의 집합은 어쩐지 환희보다 슬픔과 닮아 있다.

MUSIC
STEINWAY LYNGDORF Model S 15
크기는 상관없다. 스타인웨이 링돌프의 S-15 스피커도, 그 스피커가 놓인 테이블도. 작은 건 문제되지 않았다. 음악도 마찬가지. 세계적인 오디오 테크니션이자 디지털 엠프의 창시자인 피터 링돌프가 다듬은 스피커라면 거기에 동반되는 무엇은 결코 엉성할 순 없는 노릇이다. 막연한 긍정주의가 아니다. 딱 위스키 병만 한 스피커에서 모레처럼 흘러나온 낮은 음은 어떤 무대보다 고운 소리를 냈고, 층을 높여 올라간 고음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천장에서 어른거렸다. 술잔을 들 때마다 파란 조명 뒤에 갇힌 그림자가 기웃거린다. 가격 미정.

피처 에디터
신기호, 전희란
포토그래퍼
김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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