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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버니 "드레스는 남성용도 여성용도 아닌 그냥 드레스에요"

2022.08.20임채원

가장 최신의 슈퍼히어로, 배드 버니.

셔츠, 팬츠, 보테가 베네타. 톱, 이세이 미야케. 선글라스, 로에베. 네크리스, 엘리우. 이어링, 노즈링은 모두 배드 버니의 것.

마트에서 상품 포장 일을 하다 그만둔 지 6년 만에 베니토 안토니오 마르티네즈 오카시오 Benito Antonio Martínez Ocasio는 생존 아티스트 중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뮤지션(스포티파이 기준), 프로레슬링 챔피언, 진부함을 타파한 새로운 종류의 섹스 심벌, 차세대 마블 주역을 꿰찼다. 사람들은 그를 배드 버니 Bad Bunny라고도 부른다.
오랫동안 미뤄졌던 그의 세 번째 솔로 앨범 발매를 기념하며 25개 도시 투어를 마치고 막 돌아온 배드 버니를 노스 마이애미 해변가 그의 별장에서 만났다. 수영장과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배드 버니의 임시 거주지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사진가, 프로듀서 등 그의 만능 해결사 같은 친구들로 늘 북적인다. 오픈 키친에서 셰프가 요리하는 동안 돼지고기와 양파의 풍미가 방을 가득 채우고, 누군가 별장의 모두를 위해 아름다운 식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스타인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배드 버니의 2018년 데뷔 앨범에 등장했고 올여름 그의 스타디움 투어에 합류한 디플로 Diplo가 수화기 너머로 말한다. “어떤 영어권 스타보다 크고 어떤 라틴어권 스타보다 더 거대합니다. 그는 지금 가장 대형 가수이면서 가장 진보적이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팝 스타예요.” 배드 버니가 자주 협업하는 제이 발빈 J Balvin도 이 말에 동의한다. “그는 창의적인 천재예요. 우리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진짜를 보게 해주죠. 라틴계 사람으로서 우리가 보는 새로운 세상을요.”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배드 버니(이하 베니토)는 이곳에서 여자친구인 주얼리 디자이너 가브리엘라 벌링게리 Gabriela Berlingeri, 3개월 된 비글 강아지 산사 Sansa와 함께 지내고 있다. 브레이비스트 스튜디오 Bravest Studios의 로열 블루 컬러 반바지에 인조 다이아몬드 장식이 가슴에 달린 검은색 발렌시아가 티셔츠를 입고, 스트링이 늘어진 갈색 버킷 햇을 쓰고 네온 그린 컬러 슬리퍼를 신은 베니토가 인테리어용으로 쌓아둔 커피 테이블 북을 옮긴다. 적당한 길이로 다듬은 손톱에는 발레리나 핑크 컬러가 칠해져 있다. 지금 베니토를 이루는 대담한 색상의 의상들은 이국적이고 상쾌하며 여름의 에너지를 제대로 전하고 있지만, 스타일에 접근하는 자신의 방식은 계속 변하고 있다고 베니토는 말한다. “스타일은 제 마음에 따라 달라져요. 모든 사람이 자기가 누구이고 어떤 기분인지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예를 들어 무엇이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거죠? 전 옷에 성별을 둘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드레스는 그냥 드레스예요. 그건 남성용도, 여성용도 아닌 그냥 드레스죠.”

셔츠, 쇼츠, 모두 에트로. 슈즈, 닥터 마틴. 선글라스, 구찌. 시계, 밴가트. 이어링, 노즈링, 링은 모두 배드 버니의 것.

지금은 지난 5월에 열린 멧 갈라에서 ‘배드 버니’가 무엇을 입었는지 우리는 알지만, 인터뷰를 나눈 때는 멧 갈라가 열리기 전이었다. 나는 베니토에게 멧 갈라에서 어떤 옷을 입을 거냐고 물었다. “제길, 아직 모르겠어요. 올해 테마를 발표한 포스팅만 봤어요.” 베니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잔토니 올리바레스 Janthony Olivares가 “주제가 ‘아메리칸’ 아니었어?” 되묻고는 이어 드레스 코드가 “금빛 화려함, 화이트 타이”일 것이라고 말하자, 베니토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무언가를 입을 것”이라 답한다. “왜냐하면 라틴 아메리카도 아메리카니까요.”(2022 멧 갈라 당시 베니토는 우아하게 올림머리를 하고 퍼프 소매의 클래식한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었다.)
‘아메리카’가 미합중국 이상의 무엇이라는 개념은 베니토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이야깃거리다. 사실상 이는 글로벌 스타덤에 대한 베니토의 접근 방식 전체를 지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의 친구이자 레지던트 Resident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래퍼 레네 페레스 조글라 René Pérez Joglar가 최근 발표한 노래 ‘This Is Not America’를 떠올리게 한다. 레지던트는 베니토의 정치적 의식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줬다. 그들은 2019년 1월 당시 푸에르토리코 주지사였던 리카르도 로셀로를 만나 지역의 폭력 범죄에 대해 논의하고 이어진 시위에도 가담해, 결국 그의 사임까지 도출해냈다. 레지던트는 차일디시 감비노의 노래 ‘This Is America’에서 영감을 얻어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미국의 제국주의와 폭력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 노래를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사랑해왔어요.” 베니토는 말한다. “소름이 돋았죠. 우린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레지던트가 그 노래를 틀었어요. 미친 자식, 눈이 팍 뜨이더군요. 머리가 쭈뼛 서고요. 좀 취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노래는 정말 좋았어요.”
5월 6일에 발표한 베니토의 최신 곡 ‘Un Verano Sin Ti(A Summer Without You)’는 덜 정치적이지만 그의 감성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라틴계로 남아 있다. 앨범의 상당 부분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어느 집에서 녹음했다. “저는 사람들과 특정 장소에 가서 머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일해요. 어떤 집을 빌려서 거기에서 녹음하기도 해요.” 베니토는 가능하면 녹음실을 피한다. “차에 타는 순간부터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거든요.” 반면 집에서는 모든 게 잘 이뤄진다. “일어나서, 뭘 좀 먹고, 바로 일을 시작하는 거죠.”
2022년 1월 베니토는 자신의 모든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삭제하고 벌링게리와 함께 야자수 아래에서 저녁 식사 중인 모습을 릴스에 올리며 곧 이루어질 월드 핫티스트 투어 World’s Hottest Tour를 발표했다. 티켓은 몇 분 만에 매진됐고 시스템은 다운됐다. “미쳤었죠.” 그리고 우리가 만난 4월 중순인 오늘, 월드 핫티스트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 끝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고, 그는 아직 그 여운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보통 새벽 1~2시에 자고 오전 10시쯤 일어나는데, 요즘은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어요. 저만 그런지 모두 다 그런지 몰라도, 더 높이 올라갈수록 느끼는 압박감이 커요.”

셔츠, 팬츠, 모두 도쿄 제임스. 샌들, 에르메스. 선글라스, 구찌. 시계, 까르띠에. 다이아몬드 체인 네크리스, 제이콥 앤 코. 이어링, 노즈링, 다이아몬드 하트 네크리스, 진주 네크리스, 브레이슬릿, 박서 브리프는 모두 배드 버니의 것.

베니토는 확실히 더 높이 올라가고 있다. 4월 말, 베니토는 스파이더맨의 경쟁 상대이자 슈퍼 파워 레슬러, 독립 실사 영화 역사상 최초로 마블에 등장하는 라틴 캐릭터인 ‘엘 무에르토 El Muerto’ 역으로 출연이 예정되어 있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높이 올라갈수록 압박을 덜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그건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성공할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겠죠. 하지만 저는 반대예요. 관객을 더 많이 확보할수록, 내가 더 올라갈수록,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져요.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하느라 잠을 못 자고요. 며칠 내내요.”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저마다 왜인지 추측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가 투어를 앞두고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와 과도하게 자극됐을 것이다, 그의 공연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니까 더욱 그러할 것이다, 베니토만큼 현기증 나는 수직 상승에는 특정한 양의 피로감이 따를 것이다···. “그 기분엔 결코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절대 평범해지지 않죠. 사람들이 그렇게 흥분하고 당신을 받아들인다는 걸 보면 항상 감정이 끓어올라요. 당신을 변화 시키죠.”
그럼에도 베니토는 변하지 않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베니토는 내가 만났을 때와 똑같아요.” 매니저 노아 아사드 Noah Assad가 처음 만났을 때의 베니토를 떠올린다. “그때나 지금이나 베니는 여러 모로 내향형 인간이에요. 많은 사람은 반대로 생각하지만요. 하지만 베니는 매우 수줍음이 많습니다. 겸손하고요. 사랑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죠.” 그 말에 베니토는 한결같은 사람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고 짚는다. “어떤 것들은 변해요. 왜냐하면 이전에는 가져본 적 없는 큰돈과 성공을 얻고 나면 변하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하지만 내 내면, 나라는 사람은 온전하죠.” 보리쿠아(Boricua, 푸에르토리코인)라는 그의 자부심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스페인어로 노래하는 그의 헌신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스페인어 구사자인 아티스트가 미국 주류 시장에 진입하려면 영어로 노래해야 했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샤키라, 리키 마틴처럼. 그 생각은 부분적으로 베니토 같은 사람들에 의해 무너졌다. “(한 시대의) 막이 내려간 것 같은 거예요. 모든 사람이 같은 리그, 같은 코트에 있다고요. 전 처음부터 계속 그렇게 이야기해왔어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온전한 언어-도전적인 푸에르토리코인으로서, 진지하지 않게 젠더 중립적이며, 정치적으로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저는 ‘오, 이게 내가 하려는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미션을 펼친 적은 없어요.” 글로벌 팝 시장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말했다. “자연스럽게 일어났죠. 예를 들어 저는 ‘이 노래는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거야’라는 식으로 노래를 만든 적이 없어요. ‘전 세계를 위한 노래입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으로 곡을 쓰지도 않고요. ‘외국인 청중을 사로잡기 위한 노래입니다’? 절대로 안 하죠. 오히려 전 푸에르토리코 사람들만 들을 것 같은 노래를 만듭니다. 나는 여전히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온 세상이 들을 거라는 건 잊어버려요.”
레게토네로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베니토는 장르의 우위에 선 것을 축하하고 싶다. “라틴계 청중들은 항상 자신의 아티스트를 과소평가해요. 때때로 라틴계들은 미국인과 녹음을 하고 싶어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미국인이기 때문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죠? 다른 이유 없이 그냥 그들이 미국인이기 때문이라서라고요. 그런데 관점이 바뀌었어요. 그 변화를 볼 수 있죠. 사람들은 알게 됐어요. 갑자기 알게 된 거예요. 와우, 배드 버니가 70일 동안 스포티파이에서 제일 많이 스트리밍된 아티스트야? 미국인이 아닌데? 라틴계인데? 바로 저 말이죠.”
때마침 셰프가 스시 접시를 내오며 흐름은 잠시 멈추었다. 모두가 생선과 베니토의 말을 조용히 곱씹는다. 조금 후 베니토가 말을 이었다. “한번은요, 그게 <빌보드>였나 <롤링 스톤>이었나, 하여간 뭐였는지 알 바 아니지만 거기서 역사상 최고의 가수 리스트를 발표했어요. 당연히, 망할, ‘미합중국’의 역사상으로 한정했죠. 그 때문에 그 리스트에서는 후안 가브리엘 Juan Gabriel, 빈센테 페르난데스 Vicente Fernández, 티토 로드리게스 Tito Rodríguez는 보이지 않았어요.” 수줍음이 많은 내향성 인간은 사라졌다. 대신 열변을 토하는 남자가 앉아 있다. “라틴 아메리카 뮤직에도 전설적인 아티스트가 있는데 말이에요. ‘전설적인’이라는 표현을 아무 데나 쓰지 마세요. 그게 순수한 진실입니다. 왜 레전드라고 할까? 그들이 미국인이라서? 영어로 노래하니까?”

셔츠, 팬츠,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네크리스,스와로브스키. 이어링,노즈링은 모두 배드 버니의 것.

유명해질수록 베니토는 그의 언어, 그의 조국, 그의 문화, 그의 가족 그리고 그의 친구들에게 더 많이 감사하게 되었다. “많은 아티스트가 유명해지면 갑자기 자기 주위 사람들의 범주를 바꾸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사람들을 거르기 시작하죠.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요. ‘자, 저는 이제 이런저런 사람들하고 친한 친구입니다. 저는 이제 이런 친구들하고 더 많이 어울려요. 왜냐면 쟤는 돈이 많으니까요.’ 저는 원래 알던 사람들을 계속 제 주위에 둡니다. 저만의 원을 똑같이 유지하죠. 자주 못 보더라도 가족들과 계속 연락하고 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올리바레스가 베니토의 말을 이어 받는다. “베니토는 제가 아는 한 가장 가족 중심적인 사람이에요. 베니토는 무엇보다 서둘러 자신의 둘째 형을 투어에 데려왔고, 막내가 학교를 마치면 그를 데리러 갔어요. 그렇게 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게 그에게 가족이라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방법이죠.”
그의 삶이 지속적으로 전시되는 지금, 베니토에게 사생활은 매우 중요하다. 베니토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적인 관계의 디테일을 알려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람들은 제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들은 내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몰라요. 만약 우리가 이미 결혼했다 해도 사람들은 모르는 거죠.” 그가 웃는다. “그냥 하는 소리예요. 결혼 안 했어요.”
푸에르토리코의 베가 바하 Vega Baja의 알미란테 수르 Almirante Sur 바리오(Barrio, 동네를 말하는 스페인 단어)에서 트럭 운전사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 장남으로 태어나 자란 베니토는 수줍음은 있지만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웃기는 아이였다. “나는 광대가 되는 걸 좋아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쑥스러웠죠. 항상 부모님을 사랑했고요. 그림 그리기도 좋아했어요. 상상력을 가지고 노는 걸 아주 좋아했어요. 결코 운동에 소질이 있진 않았고요.” 어린 시절 베니토는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고, 중학교 때는 학예회에서 랩을 했으며, 부모님이 켜둔 음악을 들으며 컸다. “엄청나게 많은 살사를 들었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는 발라드, 메렝게 Merengue, 그리고 톱40 라디오를 많이 들으셨죠.” 어린 베니토는 레게톤을 몰래 듣곤 했다. “들어도 된다고 부모님이 허락한 첫 번째 아티스트는 테고 칼데론 Tego Calderón이에요. 제가 진짜 제대로 푹 빠진 첫 번째 뮤지션이죠.” 우리는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세비체와 돼지고기를 먹으며 레드 와인을 마시고 있었고, 베니토는 전설적인 푸에르토리코 힙합 MC이자 레게토네로인 칼데론과 처음 만났을 때의 경험을 떠올렸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항상 해요. 게으름 피우고 일어나기 싫어하면 부모님은 앞으로 테고 칼테론의 음악을 못 듣게 할 거라고 위협하곤 했어요. 그러면 제가 엄청나게 빨리 일어나서 옷을 입고 준비하는 거죠. “너 이제 테고 음악 못 들을 줄 알아!”, “알았다고요, 엄마, 준비 다 했다고요!””
베니토는 아레시보 Arecibo에 있는 푸에르토리코 대학에서 영상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첫 학기에 그는 전공 과목 중 단 하나를 제외하곤 모두 낙제했다. “수학은 통과했어요.” 당시 그는 노래를 좀 쓰긴 했지만 녹음하지는 않았다. “전 항상 리듬과 트랙과 비트를 만들곤 했어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건 분명했는데 뭔가 제대로 하고 싶었죠. ‘나는 진지하게 일해. 여기 그냥 미친 짓이나 좀 하러 온 거 아니라고.’ 그래서 저는 플로 수준, 리듬 수준, 가사 수준이 최대한 준비가 된 느낌이 들 때까지 곡을 올리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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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즈음, 학교를 그만두기 전 베니토는 슈퍼마켓 체인에서 식료품을 포장하는 일을 했다. 그때부터 친구였고 지금은 그의 공식 DJ인 오르마니 페레스 Ormani Pérez가 그에게 몇몇 트랙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라고 종용한 게 바로 그때다. “지금도 남아 있을 텐데, 페이스북에 어떤 페이지가 있었고 제 친구들이 제게 거기에 음악을 올리라고 했어요. 전 결코 충분히 자신 있지 않았어요. ‘됐어, 안 할 거야. 난 뮤지션이 되고 싶고 완성될 때까지 아무것도 올리지 않을 거야’라고요. 그런데 음악을 하는 젊은 층의 신으로 사운드클라우드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흠, 그래. 그 정도는 해보지 뭐’ 이렇게 된 거예요.”
사람들이, 이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노래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베니토는 “50만 명이었다가, 1백만 명이 되더라고요”라고 말한다. “노래를 내고서 새로고침 버튼을 누를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플레이했는지 확인하는 그 기분은 꽤 흥분돼요.” 2016년 베니토는 리마스 엔터테인먼트 Rimas Entertainment의 설립자인 노아 아사드의 관심을 끌었다. 2014년 호세 주니어 카라바노 José Junior Carabaño와 공동 설립한 이 회사는, 뮤직비디오를 배포하고 마케팅하는 소규모 유튜브 네트워크로 시작해 빠르게 라틴계의 가장 큰 음반사 중 하나가 됐다. 베니토는 레이블과 사인할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에도 여전히 소매점에 이력서를 돌리고 학업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항상 음악을 만들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경력을 시작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몰랐던 것이다. 베니토는 뭐든지 준비하려고 했다. 미쳐버리지 않도록.
아사드의 접근은 전략적인 컬래버레이션을 활용하는 독자적인 방식이었다. 앨범에 포커스하는 대신 아주 빠르게 계속 싱글을 발표했다. 메이저 레이블들이 주목했을 때 배드 버니의 유튜브 조회수는 이미 수억 회에 달했다. 2016년 ‘Soy Peor’, 카디비와 제이 발빈과 협업한 ‘I Like It’ 그리고 드레이크와 함께한 ‘Mia’까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도 베니토는 계속 기록을 깼다. 그는 세 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한 장의 컬래버레이션 앨범, 그리고 컴필레이션 앨범을 냈고, 이들로 2개의 그래미 어워드, 4개의 라틴 그래미 어워드, 8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 2개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등을 수상했다.
2020년 말, 노래 전체가 스페인어로 된 베니토의 <El Último Tour del Mundo> 앨범이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오른 최초의 기록이 됐다. 베니토는 2년 연속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아티스트로 기록됐고, 올해 초 그의 투어는 50만 장이 넘는 티켓을 판매해 거의 1억 1천7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넷플릭스 시리즈 <나르코스: 멕시코>에서 역할을 맡았고, 이어 브래드 피트와 함께 영화 <불릿 트레인 Bullet Train>을 촬영했다. “브래드 피트는 정말 대단한 배우였어요. 가끔 촬영 중에 스태프들이 ‘컷!’ 하고 소리치면, 속으로 생각했죠.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지금 여기 브래드 피트하고 같이 있다고?’”
그가 구입한 람보르기니 우라노스는 또 다른 얘기다. “베니토는 자동차를 많이 소유하고, 커스터마이징하고, 가장 최신의 가장 빠른 차들을 모으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에요.” 올리바레스가 증언한다. 그렇다. 그는 2백만 달러를 호가하고 6백 마력을 자랑하는 SUV를 (부가티와 함께) 가지고 있다. “베니토가 자신을 위해서 구입한 일종의 트로피였어요. 그 차는 2012년에 프로토타입이 나왔는데, 그는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그 자동차와는 사랑에 빠졌고, 고등학생이던 그때는 그 차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때였어요. 그런데 7~8년 후 그 차를 살 정도가 된 거예요. 람보르기니를 소유하기 위해 그 차를 산 게 아니고, 어린 시절의 드림카였기 때문에 그 차를 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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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에서 4월 사이, 만약 팬데믹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투어를 하고 있었어야 할 시기에, 베니토는 흥미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WWE 경기에 게스트로 등장한다거나 24/7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거나, 도전을 필요로 하는 독특한 타이틀이라면 언제든 했다. 그래미에서 돌아온 지 몇 주 되지 않았을 때 레슬매니아 37에서 같은 푸에르토리코인인 다미안 프리에스트 Damian Priest와 팀 매치도 펼쳤다. 링 위에서의 경험은 앞으로 맡을 역할 엘 무에르토를 준비하는 데 좋은 경험이 됐다. “레슬링을 보며 자랐어요. 엘 무에르토라는 역할은 완벽했죠. 마블 팬으로서 제가 이 가족의 일원이 됐다는 게 꿈만 같아요.”
올리바레스는 베니토가 링에 뛰어들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았다. “항상 그의 꿈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베니토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놀랐다. “그는 다른 모든 일을 중단했어요. 항상 만들고 있던 음악도 그만두었죠. 이 일에 1백 퍼센트 전념하기 위해 모든 걸 완전히 중지시켜버리더군요.” 베니토는 하루에 두 번 테크닉과 신체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가 유명해지고 투어를 시작한 이래 제가 본 가장 큰 변화였죠.”
한 번 더, 논란은 예상된다. 베니토는 2020년 2월에 있었던 푸에르토리코 트랜스 여성 살해 사건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치마와 셔츠를 입고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에 출연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적 관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그 약속은 그의 음악으로까지 확장됐다. 베니토의 노래 ‘Yo Perreo Sola(I Dance Alone)’가 여성을 향한 성적 괴롭힘이나 성폭력에 반대하는 외침이라는 면에서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베니토가 말한다. “라틴계 문화는 매우 남성적이에요. 그래서 내가 해온 모든 일을 좀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번 라틴 뮤직인 레게톤은 남자다워야 하고, 나빠야 해요. 그래서 저라는 인물은 충격적이었을 거예요.”
그가 말하길, 때로 사람들은 레게톤 아티스트라면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왜죠? 이런 식으로 입으면 이런 노래는 못 부르기라도 하나요? 아니면 이런 식으로 입으면, 이런 노래는 듣지도 못하는 거예요?” 그러나 베니토는 어떤 지표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설교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전 여전히 클럽에 가거나 친구들과 어울려요. 제 얘기는 자연스러운 겁니다. 누가 그 말을 듣고 ‘망할, 그게 맞긴 하잖아’라고 하며 조금이라도 생각이 바뀐다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어도, 뭔가를 얻게 되는 거죠. 갑자기 ‘제길, 그래, 사실이 그렇지. 내가 이 사람에게 좀 불공평하게 굴긴 했어’라고 말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제가 나가서 연기를 하는 건 아니거든요. 알잖아요? 캐릭터를 만든다거나, 뭐 더 예술가처럼 군다거나, 제가 말하는 방식을 바꾼다거나 그런 건 안 해요. 저만의 방식이 있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에 당당하고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전 아주 만족합니다.”
디플로도 한 말이다. “나는 그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냥 평범한 녀석이에요. 멍청한 말도 많이 하죠. 그는 옷을 입을 줄 알고, 별난 짓도 하고요. 그런데 그건 필요한 방식이에요. 누구나 그 정도 용기는 필요해요. 그는 자기만의 리그에 있는 것 같아요. 트랩과 그런지 록이 공존하는 거친 매시업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자기가 자라면서 좋아했던 것에 대해 이 대범한 음악을 하는 데 공을 들이는 사람이에요. 그것도 자기 혼자서 말이죠. 그는 기회를 잘 잡았고 승리한 거예요.”

셔츠, GCDS. 쇼츠, J.W. 앤더슨. 다이아몬드 체인 네크리스, 제이콥 앤 코. 이어링, 노즈링, 플라워 네크리스, 시계, 브레이슬릿, 링은 모두 배드 버니의 것.

늦은 점심 아니면 이른 저녁이라 해야겠다. 어떤 쪽이든 태양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고, 수영장과 부두엔 황금빛 색조가 드리워졌다. 베니토의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인 베토 로사도 Beto Rosado가 청음 세션을 위해 장비를 세팅했고, 베니토가 새 앨범에서 몇 곡을 들어보겠냐고 물었다. 스피커 바로 앞 스툴로 옮겨가 앉은 베니토가 첫 번째 곡을 틀었다. 트로피컬 업비트의 레게 트랙으로 휴가지에서 맥주를 마시는 내용이다. 그는 손에 레드 와인 한 잔을 들고 일어서서 머리로 리듬을 타더니 벌링게리와 산사를 가로질러 소파에 앉는다. 음악 소리는 컸고 강아지는 화가 났다. 꼬리를 흔들다가 점프를 하고는 머리 위에 흔들어준 토끼 인형을 잡으려 한다. 분위기가 고조된다. 베니토는 앨범을 위해 이렇게 많은 곡을 녹음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어떤 곡이 최종 트랙 리스트에 포함될지는 아직 모른다.
다음 곡은 콜롬비아 밴드 봄바 에스테레오 Bomba Estéreo가 피처링한 곡으로 일렉트로 트로피컬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파티 같은 느낌이다. 베니토는 음악을 켜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모두 흥이 나서는 몸을 흔들며 따라 불렀다. “이 노래는 맥주를 부르네!” 벌링게리가 말한다. 세 번째 트랙은 벌링게리가 보컬로 피처링에 참여한 맘보 비트의 곡이다. 베니토는 비스듬한 각도로 스텝을 밟으며 맘보 같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다빌라와 피노도 그 뒤로 줄을 서서는 미니 콩가 라인으로 합류했다.
“이 스텝을 뭐라고 부르죠?” 베니토가 물었다. 그는 버캣 햇을 쓴 채 여전히 웃고 있었는데, 편안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Esta Es Mi Playa(이곳은 나의 해변)” 노래가 시작됐다.
“Este Es Mi Sol, Esta Es Mi Tierra(이것은 나의 태양, 이곳은 나의 땅)” 음악이 끊이지않고 계속 흘러 나왔다.
“Esta Soy Yo(이 사람은 나야)”
“바차타 Bachata인가?” 베니토가 그들의 춤에 대해 묻는다. 뭐라 부르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추는지는 알고 있다. 제2의 본성, 이미 갖고 있는 역사다.
“캐러비안이야.” 다빌라가 말한다. “크루즈십이야.” 피노가 던진다. “일렉트릭 슬라이드야!” 다빌라가 받는다. 베니토는 실없는 사람같이 꼬인 스텝으로 셔플 댄스를 추며 외친다. “이건 미국식이야!” 모두 웃으며 계속 춤을 추었다.

Writer
CARINA CHOCANO
Photographer
ROE ETHRIDGE
Stylist
MOBOLAJI DAWODU
Hair & Make-up
Gianluca with Creative Management
Tailoring
S. Mullin
Set Design
Tom Criswell for MHS Artists
Production
Select Services Produ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