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닉 파이크 "<유포리아>가 처음 날 내쳤을 때 전 미쳐버렸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도미닉 파이크 "<유포리아>가 처음 날 내쳤을 때 전 미쳐버렸어요"

2022-08-16T16:26:10+00:00 |interview|

도미닉 파이크가 현실로 만드는 이상 세계.

셔츠, 팬츠, 모두 발렌티노 오트 쿠튀르. 부츠, 지미 추. 이어링, 제이콥 앤 코. 브레이슬릿, 링, 모두 까르띠에. 헤드셋, 컨트롤러, 모두 메타.

싱어송라이터 도미닉 파이크 Dominic Fike가 HBO <유포리아 Euphoria>에서 연기에 도전했을 때, 사실 오디션을 본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과정은 이러했다. 파이크는 <유포리아> 시즌 1과 관련해 작품 캐스팅 디렉터로부터 연락을 받은 후 몇 차례 전화 통화로 이루어진 단계를 쉽게 통과했다. 이후 제작자 샘 레빈슨 Sam Levinson이 바비 페레이라 Barbie Ferreira와의 대본 리딩에 파이크를 초대했다. 파이크는 모든 훌륭한 배우가 하듯 약간의 메소드 연기를 준비하기로 했다. <유포리아>의 배경이 약국보다 더 많은 마약성 의약품이 통용되는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환각제를 잔뜩 먹고 오디션장으로 향하는 방법이었다. “저와 바비가 대본 리딩을 시작하자마자 제 상태는 피크를 찍기 시작했죠.” 자신의 본능을 믿으면 일은 어떻게든 해결되기 마련이라는 방식은 영리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본 위 글자들은 춤을 췄다. 그러다 고개를 드니, 파이크의 환각 상태인 시선에선, 드레스를 입은 제작자가 보였다. “웃음이 터진 저는 샘을 보고 ‘지금 드레스 입고 오신 거예요?’라고 말했어요. 미친 거죠. 그러고는 방에 모인 모든 사람을 놀리기 시작했어요.” 재앙이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파이크의 에이전시는 이런 피드백을 전해주었다. “뭐 이런 미친 새끼가 있냐고 하더군요.” 파이크는 배역을 얻지 못했다.
파이크는 <유포리아>의 시즌 2에 이르러 이 지역에 등장한 새로운 녀석인 엘리엇을 연기하게 되면서야 그때의 경험을 홀가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엘리엇은 젠데이아가 연기하는 루와 헌터 샤퍼가 연기하는 줄스 사이에서 삼각관계로 발전하는 기타리스트 꿈나무다. 극중 엘리엇의 행동은 그다지 칭찬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를 좋아하지 않기란 어렵다. 상당 부분, 도미닉 파이크란 인물 자체가 좋아하지 않기 어려운 인물이라서일 것이다. 스물여섯 살인 그는 이미 사려 깊고 웃기면서 차분하고 자신감 있되 행실도 바르다. 스타일리시하며, 타투, 콧수염, 길게 자란 블리치 헤어스타일을 한 얼굴은 새로운 퇴폐미의 기준을 세우고 있다. 엘리엇이 <유포리아> 시즌 2에 처음 등장한 신은 파티에 온 루가 세탁실에서 함께 마약을 하는 장면이다. 새로운 스크린의 대형 스타가 나타났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순간이다. 나는 그가 ‘핫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어떤 성별, 어떤 성적 지향성이든 간에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수트, 셔츠,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타이, 폴스튜어트. 이어링은 도미닉 파이크의 것.

우리는 날씨가 이토록 뜨거워지기 전, 지난 따스한 봄날 오후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만났다. 파이크는 LA에 살지만 몇 주간 자신의 두 번째 앨범 작업을 위해 북부 뉴욕의 녹음 스튜디오에 붙잡혀 있던 차였다. 그는 자신의 음악으로 가장 잘나갈 때 <유포리아> 오디션을 다시 봤다. 그 또래 다른 많은 싱어송라이터같이, 파이크의 사운드 역시 쉽게 장르를 구분할 수 없다. 보통 힙합과 스포티파이 친화적인 팝에 자주 심취하는, 해변가 침실 무드 록에 가깝다. 그러나 또한 그 또래 다른 많은 싱어송라이터와는 달리, 파이크는 저스틴 비버부터 폴 매카트니에 이르기까지 거물 아티스트들과 많이 협업했다. 그의 활동 범위는 적절하다. 파이크는 사귄 지 몇 개월 정도 된 여자친구 샤퍼를 만나러 파리로 가기 전까지는 당분간 뉴욕에 있을 예정이었다.
파이크가 만드는 춤추기 좋은 노래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유명해지기 딱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광적인 인기의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유포리아>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왕좌의 게임>에 이어 HBO에서 두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냈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만난 날은 시즌 2 마지막 회가 방영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전 미국이 ‘유포리아앓이’에 시달리던 때였다. 평일인데도 미술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내 파이크가 리처드 세라 Richard Serra의 철판 조각 작품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 근처에 있던 스무 살 미만의 모든 ‘소녀’가 키득거리거나 티 나지 않는 선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파이크는 그들이 셀피를 부탁하면 부드럽고 매력적으로 응대해, 유포리아 스타일로 옷을 입은 한 10대 청소년이 거의 과호흡에 가까워지게 만들기도 했다. 파이크에게 이제 어디부터 돌아보겠냐고 물으니 파이크는 1970년대 전후의 작품을 먼저 보고 싶다 말한다. “새로 나온 게 뭐 없나 한번 보자구요.” 그가 말하며 앞장선다.
파이크의 급부상은 너무 빨랐고 예측 불허였기에 <뉴욕 타임스>, <FX>, OTT 플랫폼 훌루가 2020년에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너무 빠르고 예측 불가능했다”는 말은 그가 다른 수많은 유명인이 대중에게 보여주듯 안전하고 매끈한 페르소나를 개발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갑자기 파이크가 해파리가 어디 있는지 큰 소리로 물어본다. “여기 해양 전시 구역이 없던가요? 내가 뭐에 홀렸나? 무슨 수족관을 생각했나 봐요?” 그는 자기 자신인 채 유명해졌다. 완전한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 그대로.

탱크톱,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복서 브리프, 에르메스. 헤드셋, 메타.

파이크의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왔다. 그는 필리핀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유산을 간직한 채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에서 자랐다. 유년기에 그의 어머니는 감옥을 들락거렸어도, 그에게 릴 킴이나 노토리어스 B.I.G.의 노래를 들려주고 기타를 사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파이크가 열 살 즈음이 될 때까지 없는 존재였다가 예고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석양이 지던 날 파이크의 작은 전기 킥보드를 타고 사라지기 전까지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그는 파이크에게 기타 코드 몇 개를 가르쳐주었고, 나머지는 파이크가 유튜브를 보고 독학했다.
고등학교에서 파이크는 현지 힙합 크루들과 결속하면서 사운드클라우드에 음악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그는 공연을 잡고는, 오토바이를 훔쳐서 중고 매매 플랫폼 크레이그리스트에 팔아 이 도시 저 도시로 돌아다닐 주유비를 마련했다. “내가 먹고산 방식은 그냥 미친 짓이었어요.” 파이크가 말한다. 하지만 그때도 그는 자신에게 베팅하고 있었다. “전 늘 이랬어요. ‘이게 바로 세상이 찾던 거다. 내가 이 랩으로 너희를 날려버리겠어.’ 실제로는 전혀 그 정도 실력이 아니었지만.” 파이크의 초기 랩 경력은 2016년에 그가 경찰과 시비 붙은 자신의 동생을 진정시키려다가 결국 경찰 폭행으로 기소되면서 탈선하고 만다. 유죄를 인정한 파이크는 가택 연금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파이크는 최악의 상황을 돌파구로 바꿔버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기타를 들고 친구의 아파트로 이사해, 새로운 사운드를 찾는 일에만 몰두했다. 어느 날 샤워하고 있을 때, 살랑이는 레게 스타일의 멜로디가 들려왔다. 그는 뛰쳐나와 그 자리에 엎드려서 곡을 썼다. 엄청나게 중독성 있는 곡으로 추후 그의 첫 히트곡이 된 ‘3 Nights’의 초안이었다. “그 노래를 만든 날을 기억해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가 지금 부숴버렸어. Yo, I Just Made A Smash’라고 말했어요. 정확히 그 단어를 썼어요.”
유일한 문제는, 2018년 초에 그 노래가 실제로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다른 노래를 다 부숴버리고, 파이크가 메이저 레이블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을 때, 파이크는 집행유예 위반으로 감옥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그건 레이블들의 흥미를 더 증폭시켰고, 파이크는 감옥의 몇 인치 크기의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여러 음반사 경영진들과 만났다. 콜롬비아 레코드가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했다. 파이크가 구금에서 풀려났을 때 그는 자기 이름이 쓰인 계약서와 함께 계약금 4백만 달러를 받았다.

재킷, 팬츠, 모두 루이 비통. 스니커즈, 나이키. 삭스,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이어링, 제이콥 앤 코. 헤드셋, 컨트롤러, 모두 메타. 의자, 톰 삭스 퍼니처. 모자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파이크는 갑자기 차세대 스타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에 합당한 앨범을 녹음해야 했다. 동시에 32일 동안 월드 투어를 다니며 공연하고, 스포트라이트에 적응하고, 가족과 친구들을 돌봐야만 했다.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 사이에 말하기 껄끄러운 주제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의 가족 이야기도, 감옥에 간 일도, 마약에 대해서도. 파이크에겐 가식적인 긍정이라고는 없었다.(그는 감옥을 안식년처럼 묘사했다. “저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1년 동안 휴식하던 시간이었어요.”) 그러나 파이크는 데뷔 기간에 모든 걸 동시에 해내며, 특히 2020년에 <What Could Possibly Go Wrong>을 준비하면서 꽤 어두운 시간을 보냈음을 인정한다. “너무 많은 일을 겪었고, 당시에 다양한 약물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있었어요. 약에 취한 채로, 미친 가족들에 둘러싸여, 나란 놈이 그 많은 압박 속에서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죠.”
파이크는 허기가 지기 시작했고, 우린 뮤지엄 카페에 가기로 했다. 우리가 10대 소녀 무리를 피하기 위해 갤러리에 숨어 있는 동안, 그는 으스스한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면서 “이거 좋네요”라고 말한다. 파이크는 앨범 작업에만 집중하려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북부 뉴욕에서 녹음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지금은 LA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거기 있기엔 문제가 너무 많아요. 전 LA에서 빌어먹을 사람을 너무 많이 알고 있고, 맨날 사건 사고가 생기고, 모든 스튜디오가 알려져서 어떤 날은 어디에 있든 온갖 사람이 계속 왔다 갔다 해요. 이곳에선 여우나 토끼 정도만 만나는데 말이에요.”
첫 번째 앨범과 실패한 <유포리아> 시즌 1 오디션은 모두 파이크에게 잠깐 쉬라는 동기 부여가 됐다. 그는 로켓처럼 치솟는 그의 커리어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포리아>가 처음 날 내쳤을 때 전 미쳐버렸어요. 전 ‘내가 이 작품에 딱 맞는 사람인데! 내 인생이 그냥 여기 나오는 저 빌어먹을 애들하고 똑같다고!(해석: 저는 술을 많이 마시고 마약을 많이 합니다)’라고 생각했어요. 전 그때 정말 흥분했어요.” 파이크는 캐스팅에서 떨어지며 타블로이드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은 비껴갔지만, 그의 쾌락주의가 훨씬 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전 인간관계를 망쳤고, 재정 문제도 있었어요. 예를 들면 요트나 쓰레기를 사는 데 돈을 탕진했죠. 제 매니저가 전화해서는 이러더라고요. ‘이 망할 놈아, 도대체 넌 뭐가 문제야?’”

블레이저, 한 코펜하겐. 팬츠, 브라이언 히메네스. 부츠, 지방시. 발라클라바, 크리샤바나. 헤드셋, 컨트롤러, 모두 메타.

2020년 봄 안티구아에 있는 에릭 클랩튼이 설립한 재활 센터에서 상반기를 보낸 파이크는 “항상 마약을 하고 있던 상태”를 벗어났다.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그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유포리아>의 캐스팅 디렉터가 다시 연락을 해왔고, 마침내 엘리엣 역으로의 캐스팅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의 두 번째 LP 앨범 작업은 첫 번째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그는 음악을 만드는 데 더 노련한 접근을 할 수 있게 됐다. “지난번에 저는 내가 뭘 할 줄 아는지 한번 보라고 하고서는 막상 일을 시작하면 휘청거렸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파이크에 따르면 새로운 녹음 작업은 좀 더 랩이 들어가고, 록&팝 믹스가 좀 더 “둥글둥글한 버전”이다.
파이크가 출연한 <유포리아> 에피소드들이 방영될 때까지, 그는 계속 연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제작자 샘 레빈슨도 그가 속박되는 느낌을 갖지 않기를 바랐다. 파이크는 설명한다. “샘은 내게 항상 그만둘 수 있는 옵션을 주었어요. 그는 ‘이봐, 언제든지 뮤지션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말해. 내가 널 죽여줄 테니’ 이렇게 말하곤 했죠.” 우리가 뮤지엄 카페에 앉아 있을 때, 대략 6천 번째 사람이 와서 <유포리아>에서의 파이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했을 때쯤, 그는 그가 왜 다음 시즌 출연 계약서에 사인했는지 설명했다. “제가 곧 하게 될 진짜 ‘미친’ 작업이 하나 있어요. 잠재적으로 꽤 오랫동안 전념해야 하는 일이죠.” 구체적인 언급은 거절하며 그가 예고한다.

카디건, 스웨터, 진, 벨트, 월렛 체인, 모두 발렌시아가. 네크리스로 활용한 브레이슬릿, 다이아몬드 브레이슬릿, 모두 티파니. 브레이슬릿, 마틴 알리.

파이크와 샤퍼는 LA 촬영장에서 만났다. 둘은 시작부터 쉽게 서로에게 끌렸다. 촬영장에서 처음 며칠간은 샤퍼의 눈물 신이었다. 파이크는 샤퍼의 실행력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가 캐릭터에 몰입할 때 촬영장은 고요해졌다. “전 샤퍼를 안아주고 싶었어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네, 준비됐어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러곤 촬영이 시작됐어요.” 이후 파이크는 샤퍼에게 지시에 따라 우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프로세스는 이론적으로는 간단하다. “당신이 가진 모든 끔찍한 경험을 모은 다음, 눈앞에 갖다 놓고 그냥 지켜보면 됩니다.” 지금이야 파이퍼도 수긍하지만, 당시 샤퍼가 알려줬을 때는 “거지같은 일이네. 맨날 그렇게 해? 최악이야”라고 반응했다. 파이크는 자신이 사랑에 빠진 여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우는 법을 배운 경험은 아주 이상했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감정적인 전이는 심오했다. “그 순간에 관계는 급진전되는 것 같아요. 왜냐면 당신은 상대방 앞에서 순식간에 나약해지거든요. 보통은 오래 걸리잖아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고, 몇 달 동안 만나보고. 그런데 우리는 서로의 매력을 개발한 거예요. 속도를 확 빠르게 만든 거죠. 우리는 서로를 굉장히 빨리 알아갈 수 있었어요.”
파이크의 일부는 그의 새로운 현실에 가려져 있다. “파리에 있는 친구들이 고향 네이플스에 있는 친구들보다는 좋은 애들이에요. 놀랍기도 하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가슴 아프기도 해요.” 하지만 그의 또 다른 조각은 모든 성가심과 불편을 무시하는 데 익숙해지며 셀러브리티로서의 삶을 배우려 하고 있다. 자신이 너무 많이 노출되는 것에 대해 걱정해본 적 있을까? 파이크가 고른 것처럼 나도 BLT 샌드위치를 주문하며 물었다. “아뇨. 전 미친 쪽을 택할 거예요. 전 이 구역의 린제이 로한이 될 거고요, 파파라치를 열 받게 할 거예요.” 정말? “농담 같은 거 안 해요. 슬슬 유명해지는 게 짜증나요. 유명해지면 그냥 죽여주게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어떤 시절의 상징적인 사진 속에 제가 들어 있길 바랐어요. 멋있잖아요. 어떤 엑스터시보다도 강력하죠. 그거 아세요? 전 모든 걸 다 원해요.” 파이크는 이렇게 유명세를 추구하는 게 자신을 다시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알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라는 것도. “폴 매카트니조차 과속 방지턱을 겪었어요. 제 말은, 그런 일조차 게임의 일부라는 거죠.”

셔츠, 팬츠, 모두 구찌. 시계, 태그호이어. 헤드셋, 컨트롤러, 모두 메타.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그러나 최근 파이크는 자신에게 또 다른 미래도 적립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친구와 함께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주인공이 “무조건 계속 이기는” 영화다. “그냥 인생이 계속 계속 점점 더 좋아지는 거예요.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들자마자 일이 확 풀리는 거죠.” 속편은(“왜냐면 당연히 속편도 만들 거니까”) 이름을 <스틸 위닝>이라고 붙일 예정이다. “여전히 계속 이길 거니까요.” 스토리가 약간 틀어져서 몇 개의 신이 추가될 경우, 만약 그것이 확실한 실패 키워드, 가령 법원 명령을 어기고 마약을 해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오디션에서 약에 취해 떨어지는 장면을 거쳐 엄청난 승리 키워드를 찾아 탈출하는 장면을 포함한다면, 그것은 파이크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파이크가 웃는다. “솔직히 그런 부류죠. 지금 다 깨부수는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