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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Syd) "사랑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켜요"

2022.09.21전희란

정의할 수 없어 차라리 노래가 된 시드의 사랑과 나날들.

GQ 어제 서울 하늘에 커다란 무지개 뜬 거 봤어요?
SD 봤죠. 그것도 두 개나.
GQ 아주 오랜만에 뜬 무지개였어요. 시드를 반기는 초대장처럼 느껴졌다니까요.
SD 내가 가져온 거예요. 음하하하.


GQ 서울에 온 건 5년 만이죠? 기분이 어때요?
SD 지난번에 왔을 땐 몹시 추운 겨울이었어요. 이번에는 반대죠. 공연 장소만 빼곤 완전히 새로운 여행이나 다름없어요. 이번엔 여자친구, 아빠와 함께 와서 더 흥분돼요.(나란히 앉은 여자친구가 씨익 웃는다.)
GQ 서울에 오면 볼 전시를 찾아두었다고요?
SD 그랬죠. 그런데 계획이 바뀌었어요. 어젯밤에 ‘썸 크레이지 빌딩’을 발견했거든요. 서울에는 현대적인 건축물이 많아요. 그리고 곳곳에 전통적인 건물이 공존하는데, 둘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흥미로워요.


GQ 저는 시드의 최근 앨범 <Broken Hearts Club>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풍덩 빠져 있었어요. 어쩌면 그토록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가 마치 한 몸처럼 존재할 수 있을까요? 시드의 노래의 시작은 뭐죠?
SD 주로 멜로디부터 시작해요. 노랫말이 될 낱말이나 문장은 평소에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두고요. 창작의 충동이 일면, 머릿속에 유영하는 멋진 음에 메모해둔 아이디어, 멜로디, 악기를 어떻게 어우러지게 할지 고민하죠.
GQ 시작은 멜로디라도 그것이 노래가 되는 과정은 순서 없는 화학 작용이군요. 최근에 한 메모가 궁금한데요?
SD 흐음 어디 보자···.(스마트폰을 꺼내어 살핀다.) 마지막으로 쓴 건 ‘holding hands in Japan.’ 일본에서 우리가 손을 잡고 있었거든요.
GQ 로맨틱!
SD (미소) 또 보자···. 치리오스(시리얼)와 코로나, 아침 정오, 그리고 미모사.
GQ 정말로 키워드군요.
SD 맞아요. 주로 라임을 위한 문장들요. 수백만 원짜리 청바지와 화이트 티셔츠 라는 키워드도 있네요. 어쩌면 다음 앨범에서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GQ 식상하지만 당신 같은 지니어스를 만나면 늘 궁금하단 말이죠. 영감의 원천.
SD 억지로 생각하려 하지 않아요. 어떤 아이디어가 불쑥 떠오르면 ‘아 이거 좀 귀엽네?’ 하면서 쓰죠.(씨익) 곡을 만들면서 중요한 건,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때로는 곡을 완성하기 위해 공백을 채워야 할 때가 있어요. 수정이 필요하면 다시 돌아와서 하면 되죠. 이번 앨범의 ‘fast car’라는 곡은 원래 코러스가 완전히 달랐어요. 그런 채로 몇 달을 두었는데, 어느 날 코러스가 조금 더 개성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트로이와 함께 새로운 코러스를 썼어요. 만약 이전의 코러스가 없었다면 그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모르죠. 아예 앨범에 수록되지 못했을지도.
GQ 곡을 만들 때 늘 숙성 과정이 필요한가요?
SD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을 만들고 싶거든요. 그래서 시간의 테스트를 견뎌야 해요. 기다리면서, 어떤 느낌인지 가만히 바라보는 과정이 필요해요.
GQ 사랑의 시작부터 이별까지 담긴 <Broken Hearts Club>에서 느낀 건, 결국 이별까지가 사랑이라는 거였어요. 끝난 사랑은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살아 존재한다는 믿음과 함께. 시드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
SD 감정, 강렬한 감정. 음··· 그런데 모르겠어요.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따뜻하고, 안정감을 줘요. 무섭기도 하고요. 하지만 가치가 있어요. 그럴 만한 가치가 항상 있었죠. 사랑이 끝나고,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을 때도 돌이켜보면 늘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가 그곳에 존재했어요.


GQ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 토니 모리슨이 그런 이야기를 했더군요. “사랑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가벼운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신성하기만 하고 항상 어렵다. 사랑이 쉽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바보다. 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장님이다.” 동의해요?
SD Yes or No.
GQ 왜요?
SD 사실 동의하지 않는 것에 가까워요. 토니 모리슨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그의 글에는 생각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있거든요.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도록 하고, 결국엔 정말로 나의 생각을 찾게 해주죠.
GQ 사랑은 시드를 어떻게 변화시켜요?
SD 댓츠 굿 퀘스천. 올바른 사랑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켜요.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Pour into yourself until your cup runneth over and serve others from your saucer.(내 컵이 넘칠 때까지 부어 그것이 흘러넘치면 받침 접시에 넘친 물로 남에게 베풀라.)”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상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죠. 비행기에서 남을 돕기 전에 자신이 먼저 산소 마스크를 쓰라고 하는 것처럼,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GQ 사랑은 우리를 가장 취약하게 만들기도 하죠. “최고의 예술은 가장 취약한 곳에서 나온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이 아프고,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SD 인간은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과 연관 지어볼 수 있는 예술에 끌린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우리가 할 일은 창작이죠.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신성이 있어요. 우리가 누구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오롯이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과도,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을 거예요.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세상의 많은 사람은 예술을 통해 동질감을 느껴요. “맞아, 나도 그랬는데” 하면서. 이런 공감은 대개 취약함, 아픔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아요. 취약함을 세상에 내보이는 데는 무엇보다 큰 힘이 필요해요. 그래서 아티스트는 굉장한 영향력을 지니고, 무엇보다 강하죠.


GQ 취약함을 드러내어 외친다는 게 시드에겐 어떤 의미죠?
SD 초등학교 때 누군가를 짝사랑한 적이 있는데, 그 마음을 크게 외친 즉시 어떤 해방감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으니까. 나와 내 자신 사이에 비밀이 없어진 거예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할 때, 감정이 해방되는 무언가가 있어요. 세상을 향해 소리쳐 이야기하면 비로소 흩어지는 어떤 것. 아픔과 취약함에 대해서도 똑같이 느껴요.
GQ 소리쳐 말하기까지의 힘은 어디서 와요?
SD 아픔 그 자체요. 테라피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에너지를 내려놓는 법을 배웠어요. 전에 이별을 경험했을 때는 근력 운동을 했죠. 화로 가득 차 있었는데 당시에는 음악에 화를 담는 방법을 몰랐거든요.(웃음) 테라피스트와 전화기를 붙들고 계속 울었어요. 정말 끝을 볼 때까지요. 우리는 울음을 참는 경향이 있는데, 건강하지 않은 방법이에요. 울고 싶을 때는 내보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올 수 있죠. 누구도 그걸 원하진 않잖아요? 저도 생방송에서 무너져 울고 싶지는 않거든요.


GQ 화가 솟구칠 때도, 울음이 터질 때도 샴페인은 맛있죠? 스스로 ‘샴페인 캠페인’ 같은 사람으로 표현했잖아요. 마침 스파클링 와인 사업도 하고 있고요.
SD 샴페인을 사랑해요. 대통령 유세할 때 ‘캠페인’이란 말을 쓰잖아요. 그 맥락에서 샴페인 캠페인이란 말을 썼어요. 샴페인은 아무 이유 없어도 축하하는 분위기를 만들잖아요. 하면 할수록 좋죠. 병을 열 때마다 후우~ 기분이 좋아요.
GQ 시드의 스파클링 와인 맛을 표현해줄래요? 한국에서 맛볼 수는 없으니까.
SD 로제 스파클링 와인이고, 달지 않아요. 저는 단 와인을 마시면 금세 배가 아프거든요. 알코올 함유량이 낮아서 혼자 한 병을 다 마셔도 많이 취하지는 않을 거예요. 가장 좋아하는 딸기 향이 조금 나고.(입맛을 다신다.)
GQ 발렌티노의 수석 디자이너와 함께 파리 패션위크에서 일하기도 하고, 루이 비통 캠페인 영상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이 시드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쳐요?
SD Edge.(뿌듯한 미소.) 최근에는 제 개인의 이야기가 리스너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심이 많아요. 팬들이 어떤 것을 가치 있게 믿고,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사는지도. 저는 말하죠. 난 로제를 좋아해, 너는 어때? 표현하면서 서로에 대해 배워가요. 패션위크 사진 포스팅에 달린 코멘트를 보면서도 그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요. 그들과 저를 잇는 연결 고리와 커뮤니티가 필요해요.


GQ 인간 시드와 뮤지션 시드는 동일 인물인가요?
SD 같아요. 캐릭터를 나눌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아직 시도해보지 않았어요.
GQ 곧 뮤지션 시드의 시간이 시작돼요. 이제 1시간 20분 남짓 남았네요.
SD 이제 곧 샴페인을 마셔야죠.

피처 에디터
전희란
포토그래퍼
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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