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맥그리거와의 만남은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다 | 지큐 코리아 (GQ Korea)

이완 맥그리거와의 만남은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다

2022-09-15T14:28:01+00:00 |interview|

첫 에미상을 수상하고 은하계에서 가장 거대한 SF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돌아오다. 마침내, 이완 맥그리거.

탱크톱, 드리스 반 노튼. 선글라스, 톰 포드.

원래 계획은 둘이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오후를 보내는 것이었고, 그의 PR 담당자들이 간신히 시간을 마련해주었는데 갑자기 맥그리거가 연락 두절이 되어버렸다. 2주간 무소식이던 그는 <지미 키멜 라이브!> 쇼에 출연하기 위해 모습을 다시 드러냈고, 녹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우리는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하는 내내 맥그리거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끊임없이 기침을 해댔는데, 알고 보니 온 집안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했다. 줌 미팅 화면 너머로 그간의 부재에 대해 사과하는 그는 “빌어먹을 악몽 같은 상황이에요”라고 말했다. 확진 판정 직전에는 극심한 장염에 시달렸고, 그 바로 전에는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고. 그 와중에 결혼식도 치렀다. 다만 결혼식을 두고 그가 말 없이 잠적했다고 하긴 어려운 건, PR 담당자들조차 모르고 있었을 정도로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했기 때문이다.
맥그리거의 일정이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인다면 아마도 그가 어떤 중대한 (그러나 그에게 처음 찾아온 것은 아닌)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탓일 것이다. 지난 9월 그는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홀스턴>으로 인생 첫 에미상을 수상했다. 이전에 <파고>로 에미상 후보에 지명된 적은 있지만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들어 맥그리거는 <더 버스데이 케이크> 같은 소규모 영화와 <할리퀸: 버즈 오브 프레이> 같은 대형 상업 영화를 넘나들며 매력을 선보이는가 하면, 2020년에는 <롱 웨이 업>을 공개했다. <롱 웨이 업>은 그가 친구인 찰리 부어맨과 함께한 세 번째 모터사이클 여정을 담은 여행 시리즈로, 이번 시리즈에서 둘은 할리 데이비슨의 전동 바이크를 몰고 아르헨티나 남쪽 끝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달렸다. 또한 올해 쉰한 살이 된 그의 가정에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다. 배우인 그의 아내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가 지난해 6월 득남했다고 한다. “확진되고 나니 그저 누워서 쉬고만 싶지만 아기 때문에라도 계속 일을 해야죠”라고 그는 나지막히 말하며 웃는다. “지독해요 정말” 그런가 하면 <오비완 케노비>를 통해 맥그리거는 그가 지금껏 맡은 가장 잘 알려진 배역을 다시 한번 연기함과 동시에 스타워즈 유니버스의 광적인 팬덤과도 다시금 접점을 형성했다.

셔츠, 보데.

맥그리거와 조지 루카스 감독이 프리퀄 시리즈(1999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 2002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그리고 2005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를 만든 지도 벌써 17년이나 지났다. 만약 전작들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기억이 악평, 그보다 더 형편없는 대사, 그리고 자자 빙크스가 끝없이 내뱉은 농담들 뿐이라면 나로서는 “안녕하신가?”(이는 오비완의 극중 대사로 추후 인터넷 밈이 되어 널리 퍼진 “Hello there”다)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라인에서 프리퀄 시리즈에 대한 재평가가 (최소한 스타워즈 팬들 사이에서) 이뤄진 결과,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고전의 위치에 올랐으며 팬아트를 탄생시키는가 하면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고 무수한 밈을 생산해냈다. 많은 팬, 특히 젊은 팬들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그리고 2019년 작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같은 최근 속편들보다 맥그리거의 프리퀄 작품을 더 높게 친다. 최근작들은 감독 교체와 일관성 부족 등의 문제로 잡음이 많았던 탓이다. 이처럼 팬들의 반응이 호의적으로 180도 변하면서 맥그리거의 생각 또한 바뀌었다고 한다. “프리퀄 시리즈에 대한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어요. 영화에 대한 반응은 주로 평단이 주도하기 마련이고, 당시 다들 굉장히 부정적이었거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당시 우리는 제가 어렸을 때 스타워즈 시리즈와 맺었던 관계를 지금의 젊은 세대와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었더라고요.”
“그때는 몰랐어요”라고 그는 덧붙인다. “하지만 이제는 알죠.”
맥그리거는 여섯 살일 때 형과 함께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봤다. 삼촌인 데니스 로슨이 반란군 파일럿 웨지 안틸레스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삼촌이 영화에 등장한 게 믿기지 않았어요. 게다가 <스타워즈>였으니까요. 아직 어린 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거예요.” 스코틀랜드 퍼스에서 태어난 맥그리거의 양친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는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연기 공부를 하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갔고, 그로부터 4년 뒤 채널 4 방송국에서 방영한 <립스틱 온 유어 칼라>의 주연 자리를 따냈다. 그리고 1996년에 <트레인스포팅>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극 중 렌튼으로 출연한 그의 연기를 두고 일부(<뉴욕 타임스>)는 “건조함의 완성”이라 평했고, 또 일부(<더 가디언>)는 맥그리거를 “교활함만 남은 현대판 알피”로 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할리우드 입장에서는 새로운 스타를 발견해낸 것이다.
맥그리거가 출연한 전 작품을 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는 한 달간 그의 모든 작품을 보려고 시도했으며, 어쩌면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블루 쥬스>를 시청하기도 했겠으나, 한 달이라는 시간으로는 부족했다. 그가 지금껏 등장한 영화와 TV 시리즈 에피소드는 거의 1백 편에 달한다. 내가 처음 맥그리거의 연기를 본 것은 대학 시절 학교 인근 극장에서 상영한 <쉘로우 그레이브>였다. <트레인스포팅>은 1996년 런던 여행 중에 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 없이 스코틀랜드인이었지만, 그 후로 모국인 스코틀랜드와는 연관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수많은 역할을 맡았다. 그 덕인지 화면 속 맥그리거는 렌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어렴풋이나마 무국적적으로 비춰지게 되었고, 심지어 어느 정도는 뿌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맥그리거는 2016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셔츠, 돌체앤가바나. 카디건, 보데. 스커트, 루이 비통.

이처럼 다작을 한 배우라면 전성기와 암흑기가 함께 있기 마련이다. 그는 주로 주연을 맡았고 이따금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때로는 그의 연기만큼이나 영화 자체도 명작이었다. <트레인스포팅>과 <물랑 루즈>를 비롯해 <비기너스>나 <광야의 40일> 같은 보석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에게 자주 주어진 배역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소년 같은 유쾌함과 명랑하면서도 진실된 모습일 텐데, 그가 애정의 대상(<아이 러브 유 필립 모리스>)일 때나 재수 없는 놈(<다운 위드 러브>)일 때나 그러한 특징은 일관되게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맥그리거는 나무랄 데 없는 빌런(<제인 갓 어 건>, <나쁜 녀석들>) 연기도 가능한데, <버즈 오브 프레이>나 <헤이와이어>와 같이 제목에 총 gun이 들어가지 않는 영화들에서도 그의 빌런 연기는 돋보였다. 물론 <조>처럼 영화가 실패작이거나 <밀리언 웨이즈>처럼 그냥 괴상할 수도 있고, 또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때처럼 출중한 연기자들 사이에 파묻혀 깊은 인상을 남기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맥그리거의 경력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자체로 연기력을 어떻게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에서 훌륭한 수준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제가 만약 어떤 배역을 꼭 맡아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를 느끼지 못한 상황에서 연기를 했다면, 그건 절대로 저의 가장 뛰어난 연기는 아니었을 거예요”라고 맥그리거는 얘기한다. “덜 열심히 했다거나 충분히 힘을 쏟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저 절실함에는 어떤 마법 같은 힘이 있기 때문이죠. 대본을 읽고 나서 ‘이건 꼭 내가 해야 돼’라는 느낌이 들 때만 가능한 뭔가가 있어요.”
내년 출간을 앞둔 영화 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의 저서 <액팅 내추럴리(Acting Naturally)>에서 저자는 연기자로서 맥그리거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로 목소리를 언급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맥그리거는 그의 목소리 덕에 수많은 작품에서 스스로를 재창조했고, 그럼으로써 개인은 목소리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목소리에 속박된다는 영국식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맥그리거는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연기를 했다면 굉장히 잘했을 거예요”라고 톰슨은 말한다. “그는 일종의 용감한 솔직함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요. 그의 연기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낙관주의가 엿보여요.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방식으로 연기를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죠.”
“어떤 배역이든 연기 자체가 어려웠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라고 맥그리거는 말한다. “오랫동안 해왔고, 그래서 저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저는 연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약간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어요. 인생의 다른 많은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하지만 말이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며 뒷목을 움켜쥔다. “그건 그렇고, 만약 메리에게 물어본다면 그녀는 제가 <홀스턴> 촬영을 시작하기 2주 전에 불안과 긴장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고 얘기해줄 거예요. 배역을 접근할 때 느끼는 어려움이라는 게 있거든요. 마치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어야 할 것만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동시에 불안감에 시달리는 한편 절대적인 확신에 차 있기도 한 거예요. 문제는 촬영 직전이 되면 제가 원래 확신을 갖고 사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는 거죠.”
맥그리거는 뭐든 뒤집어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떤 말을 한 뒤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는 식이다. 소파에 앉아 자리를 고쳐 않고 수염을 쓰다듬는 모습에서도 자기 확신이 느껴지는데, 그런 그를 보고 있자면 나 또한 안심이 되는 듯하다. 이를 호감도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주연급 배우로 올라서는 데 필요한 카리스마와 비슷한 성질이다. 그가 출연한 작품들을 몰아서 본 한 달 동안, 나는 맥그리거의 배역이 꽤 자주 죽음의 문턱을 밟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령작가> 끝부분에서 그는 차에 치인 것으로 보이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헤이와이어>에서는 물에 빠져 죽도록 내버려진다. <카산드라 드림>에서 그의 캐릭터는 극 중 친형제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설정이지만, 죽는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관객이 보는 앞에서 살해하기에는 맥그리거가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일까?
배우로서 맥그리거의 다음 단계는 어떻게 전개될지 톰슨의 의견을 물었다. <홀스턴>과 <오비완 케노비> 이후 그의 행보가 이전과 같을지 아니면 다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두 영화 모두에서 맥그리거의 연기는 시간의 흐름 따위에 굴복하지 않는, 지독한 상황을 마주하고서도 흔들림 없는 어떤 결연함을 내보였고, 그가 연기한 배역은 극 중 나이와 상관없이 생기가 넘쳐났다. “생기가 넘치는 건 맥그리거의 중요한 일면이죠. 그는 굉장히 영리하고 유능한 사람이에요. 그는 그와 같이 어울린다면 꽤 즐겁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죠”라고 설명하는 톰슨은, 그러나 “맥그리거가 예순 살이 되었을 때는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라며 약간의 우려도 내비친다.

재킷, 팬츠 모두 벨루티. 부츠, 랑방.

맥그리거는 “작품을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어차피 시간도 없을 텐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고 생각하고 만 적도 몇번 있어요”라고 고개를 저으며 얘기하더니, “그건 좀 이상하긴 했죠”라고 덧붙인다.
화면 너머로 손을 흔들며 인터뷰를 마쳤다. 다음 인터뷰는 맥그리거가 유럽으로 프레스 투어를 다녀온 뒤 이어서 하기로 했다. 랩톱을 닫으면서 생각했다. 이런 일정 속에서 맥그리거처럼 컨디션을 항상 유지하기는 꽤 힘들겠다고.
<오비완 케노비> 초반부, 오비완은 끝없는 중년의 위기로부터 도망 다니는 상태로 나온다. 다만 극 중 그의 나이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데보라 초우 감독은 “정확한 나이를 설정하지는 않았지만, 현실의 이완 맥그리거와 얼추 비슷한 나이일 거예요”라고 웃으며 설명한다. 케노비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죽었고, 그가 인생을 마친 소명은 완전히 무너져내린 것만 같다. “그는 갈 곳을 잃은 채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하죠”라고 맥그리거는 자신의 배역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크나큰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아나킨을 (다크 사이드로부터)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게 그의 상태인 거예요.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오비완 케노비>는 원래 영화로 제작할 계획이었다. 스타워즈 시리즈 최근작 다섯 편(보이지 않는 위험, 깨어난 포스, 로그 원, 라스트 제다이,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모두 전 세계 개봉 실적 10억 달러를 넘겼지만, 2018년 개봉한 스핀오프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3억 9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친 탓이다. 실망하기에는 꽤 높은 실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스타워즈 영화로는 최초로 적자를 기록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루카스필름과 디즈니의 결정권자들은 이후 제작하는 스타워즈 작품들의 규모를 줄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실사 드라마 <만달로리안>과 <북 오브 보바 펫>,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비전스>가 그 결과물이며, <안도르>와 <아소카>도 공개할 예정이다.
“저는 미니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해요” 초우 감독은 말한다. <오비완 케노비> 이전에 초우 감독은 <만달로리안>의 에피소드 두 편을 감독한 바 있다. “<로건>이나 <조커>에서 한 것처럼 대규모 프랜차이즈의 캐릭터 한 명에게 집중해 깊이 있게 스토리를 풀어내기에 딱 좋은 포맷이거든요. 오비완은 너무나도 유명하고 모두가 오비완이라는 캐릭터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더 깊이 들어가볼 여지가 상당히 많았어요.”
프리퀄 작품들과 달리 <오비완 케노비>에서 맥그리거는 제작에도 참여했다. 즉, 그가 작품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에 더욱 깊이 개입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촬영에는 ILM(Industrial Light & Magic;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사가 <만달로리안>을 위해 개발한 신형 촬영 장비인 스테이지크래프트 시스템이 사용되었다. 그린 스크린이나 블루 스크린 대신 촬영 세트를 고해상도 비디오 월로 둘러싸는 스테이지크래프트는 연기자가 주변 환경에 반응할 수 있도록 배경 이미지를 스크린에 띄우는 기술이다. 맥그리거를 비롯해 프리퀄 시리즈의 다른 출연자들은 모두 프리퀄 촬영 당시 스크린 사용으로 인한 고충을 공개적으로 토로한 바 있다. 그때만 해도 이러한 기법이 최신 기술에 속했지만, 연기자가 배경에서 철저하게 분리된 상태로 연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고, 따라서 몰입을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지 루카스 감독과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뒤로 갈수록 연기할 때 제 주변에 아무것도 없게 되었어요”라고 맥그리거는 회상한다. “몇 주, 몇 달씩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하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사를 날리곤 했죠.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반면 <오비완 케노비>의 촬영 환경은 훨씬 생생했다. “실제로 작품의 배경이 되는 환경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 같았어요. 우주선 내부 설정이라면 옆으로 별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식이었는데, 진짜처럼 느껴졌어요. 아주 오래 전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을 때와 비슷하다고 느꼈죠. 1920년대나 1930년대에는 촬영 세트를 전부 제작해두고 배우가 그 안에서 연기하도록 했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달라진 점이라면 이번에는 최신 기술이 적용되었다는 것이겠죠. 엄청났어요.”
맥그리거와 함께 주연급으로 출연하는 쿠마일 난지아니는 “CG랑은 다른 방식이에요. 실제 외계 생명체를 마주하는 것과 똑같아요”라고 설명한다. “원격으로 조종 가능한 마스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외계인들 사이에서 연기를 할 수 있는데, 그게 엄청나요. 주변이 진짜 스타워즈 영화처럼 보이죠.”
맥그리거는 자신이 프리퀄 시리즈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벨벳 골드마인> 촬영 도중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벨벳 골드마인>은 토드 헤인즈 감독의 1998년 작품으로 1970년대 영국의 글램록 세계를 다룬 영화다. “두 작품을 비교해서 본다면, 당시 저에게는 굉장한 변화였다고 할 수 있겠죠.” 디즈니에서 디스코풍으로 차려입은 오비완 케노피 액션 피겨라도 내놔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에게 제안하자, 그는 “그렇죠. 가죽 나팔바지 하나만 입혀야 해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저한테 오비완과 헤이든(크리스텐슨)이 등장하는 동성애 팬아트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체 어떻게 그게 저한테 전달되는지 모르겠지만 볼 때마다 놀라워요. 봉투를 열면서 사인을 부탁하는 건가 생각하다가 그런 게 튀어나오면 ‘이게 뭐야!’라고 반응하게 되죠.”
맥그리거는 스타워즈 시리즈로의 복귀를 두고 10년 넘게 고민했다. “수년 전 일인데, 인터뷰 말미에 모두 저에게 ‘포르노는 찍을 거예요?’라고 묻던 때가 있었어요”라고 맥그리거가 입을 뗐다. 그러더니 입을 떡 벌린 나를 보고 웃으며 “어빈 웰시가 쓴 <트레인스포팅> 후속작 제목이 <포르노>였거든요”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다들 저한테 그렇게 물어봤던 건데, 그다음 질문이 항상 ‘오비완 케노비도 한 번 더 할 건가요?’였어요. 당시 저는 소셜 미디어 활동을 했는데, 어딜 가든 오비완 케노비로 또다시 출연할 거냐는 질문과 반복해서 맞닥뜨렸어요.”
“이완과 오비완에 대해 얘기하자면, 한마디로 둘이 동일인인 것처럼 자연스러워요”라고 초우 감독은 밝힌다. 초우 감독은 이번 시리즈를 알렉 기네스가 연기한 젠 마스터 느낌의 오리지널 오비완에서 벗어나 감정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맥그리거 버전의 오비완으로 전환하는 기회로 삼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완은 이번 시리즈에 프로듀서로도 참여했기 때문에 단순한 출연자 이상이었어요. 그는 그동안 오비완이라는 캐릭터와 함께 숨을 쉬어왔고, 프리퀄 시리즈에서 오비완 역을 맡아봤을 뿐 아니라 지금껏 오비완이라는 공적인 페르소나를 유지할 것을 요구받아 왔죠.”
그런 삶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해도, 맥그리거 본인은 별다른 압박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그는 <오비완 케노비>에 대단히 만족하며 언제든 또 할 수 있다는 기세다. “정말로 다음 작품을 하나 더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앞으로도 이따금 계속해서 오비완을 연기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아요.” 프리퀄 시리즈에서 공동 주연을 맡은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이번 시리즈에서 다스 베이더로 돌아왔는데, 과거와 달리 완성된 복장을 두르고 등장한다. 프리퀄 시리즈에서는 아직 헬멧을 쓰기 전이었던 탓이다. 맥그리거는 완전체 다스 베이더와 함께 진행한 첫 촬영을 두고 “가슴이 철렁할 정도의 공포로 순식간에 다시 여섯 살이나 나이가 더 들어버린 것 같았어요. 이런 느낌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데, 정말이지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라고 털어놓는다.

코트, 웨일스 보너. 카디건, 베르사체. 셔츠, 빈티지 제품.

첫 인터뷰 이후 한 주 정도 지나고 나서 우리는 바이크셰드 LA에서 다시 만났다. 로스앤젤레스의 아츠 디스트릭트에 자리 잡은 바이크셰드 LA는 런던 쇼어디치에 위치한 동명의 모터사이클 클럽의 분점으로, 맥그리거와 그의 친구 부어맨은 이곳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내부 공간에는 바와 레스토랑, 타투 숍에 더해 바버 숍까지 들어서 있고 인디언, 트라이엄프, 모토구찌 등 빈티지 모터사이클이 사방에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흰 티셔츠와 청바지를 걸치고 부츠를 신은 맥그리거는 가와사키 콩쿠르 14를 타고 나타났다. 프레스 투어에서 막 돌아온 참이라고 한다. 가까이에서 마주하니 이마에 주름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피곤해 보이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구석의 조용한 부스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으로 주문한 폭립과 치킨윙을 나눠 먹으며 그는 “저는 제가 지금까지 한 작품들을 엮거나 관통하는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물론 기사 작성을 위해서는 그런 걸 당연히 찾으려 하시겠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요.”
맥그리거의 얘기에 따르면, 그가 만약 중년이 되어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해도, 즉 새로운 작품을 하거나 새롭게 성공하거나 새로운 사람과 결혼을 하고 또 새 자식을 얻는다 해도 그 모든 건 어떤 대단한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변덕스러울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그는 느낌에 따라 연기를 하기 때문에 어쩌면 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때도 있다. 나는 그가 작품을 위해서라면 쉬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서면서도, 촬영이 없을 때는 절친과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카메라를 대동하고 수개월씩 종적을 감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자 그는 목적지와 상관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가 지니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갔다. 첫 인터뷰 때 맥그리거는 그가 부어맨과 함께 기획한 모터사이클 여행 프로그램을 방송사에 처음 제안했을 때 겪은 난항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대서사시 같은 모험을 기대했는데 그들이 가진 건 그저 모터사이클을 몰고 달릴 뿐인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방송사 측에서 우리의 기획에 추가하겠답시고 던진 아이디어들은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어요. 그들이 보기에 TV 프로그램이 되려면 색다른 뭔가가 있어야 했던 거죠. 그렇지만 우리는 끝까지 여행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었어요.”
일정 내내 기록의 대상이 되는 여행은 과연 평범한 여행과 다른 면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끝없이 촬영되는 상황이라면 여행의 순간들에 대한 몰입도도 달라지지 않을까? “모든 것이 녹화된다는 사실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기는 해요.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뭔가 잘못된 상황에서,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카메라가 없었으면 좋겠다 싶은 때도 있어요. 하지만 바로 그런 데서 좋은 장면을 건지곤 하죠.”
지난 첫 번째 인터뷰 도중 우리는 유명인으로 사는 것과 누군가의 팬으로 사는 것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맥그리거의 경우 그 둘이 겹치는 경우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처럼 성공한 유명인에게도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팬심이 깃드는 순간이 있을까? 맥그리거는 자신이 밴드 오아시스의 광팬이었다고 한다. “1990년대에 우리 집에 놀러 온 적 있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본다면, 모든 대화가 결국 <데어 앤 덴>으로 귀결되었다고 얘기해줄 거예요. 밴드가 무대 위에 올라오는데 노엘이 유니언잭 기타를 들고 등장한 그 영상 말이에요. 저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까지 계속 그 얘기만 해댔고, 손님들은 따분해 죽을 것 같다는 모습이었죠. 당시 저는 20대였지만 열네 살짜리 팬처럼 굴었어요. 조금 부끄럽기도 해요.”

스웨터, 로에베. 팬츠, 까날리. 베스트, 빈티지 제품. 헬멧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나는 1990년대에 이완 맥그리거가 대니 보일과 함께 찍은 영화들, <쉘로우 그레이브>와 <트레인스포팅>, 그리고 과소평가된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의 팬이었다고 밝혔다. 그 시기의 시대 정신을 규정한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하나가 된 것은 어땠는지,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순간을 맞이할 때는 또 어땠는지 그의 소감을 물어보았다.
“대니 보일 감독의 여러 작품에 출연한 건 제게 굉장한 일이었어요”라고 맥그리거는 나지막이 얘기한다. 그는 자신과 대니 보일 감독의 관계가 미국 배우 마틴 도노반과 할 하틀리 감독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도노반과 하틀리 감독은 여섯 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저는 대니에게 제가 그런 배우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 정체성이라 생각했죠. 그리고 그게 참 좋았어요. 왜냐하면 당시 저는 대니 보일 감독이 영국 영화를 바꿔나가고 있고, 제가 그러한 변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2000년에 개봉한 <비치>의 주연으로 대니 보일 감독은 맥그리거가 아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발탁했고, 그 일로 둘은 몇 년간 얘기도 안 했다. 맥그리거는 당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술과 파티에 지나칠 정도로 몰두했다. 거리와 클럽에는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성공의 꿈을 이뤘을 때의 장점이자 단점이리라. “드디어 성공했다는 데서 오는 어떤 흥분이 있어요. 그걸 감추기란 쉽지 않죠. 제가 그 당시 그런 흥분을 잘 감췄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의 저는 그때와 굉장히 다르다는 것은 확실해요.”
맥그리거는 그때 그 시기를 후회하지는 않아도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점은 기쁘게 여기는 것 같다.(그와 보일 감독은 2017년 <T2: 트레인스포팅 2> 촬영에 앞서 관계를 회복했다.) “스스로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느껴져요. 명성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가 바뀌었죠.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였기에 바뀐 것도 있겠고, 무엇이 저한테 맞고 안 맞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변화한 부분도 있어요. 젊었을 때 제 생활 방식에는 방탕한 일면이 있었어요. 하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살 수는 없었던 거죠.” 그는 대화를 할 때 어깨를 앞으로 구부린 채 상대의 눈을 강렬하게 응시하며 경청한다. 주변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타인의 이목을 끌 행동도 하지 않는다. <홀스턴>이나 <파고> 또는 <오비완 케노비> 등 그가 최근 선택하는 배역들로부터 다른 단조로운 배역, 즉 할리우드 배우들이 자칫 꾐에 넘어가기 쉬운 진부한 액션 영화 캐릭터를 연기할 때보다 더 큰 만족감을 얻는지 물어보았다. “더 어렵긴 하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저는 여전히 다음에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것이 뭔지 찾고 있어요. 액션 영화의 대본을 읽으면 주인공이라 해도 딱히 할 게 없어 보이죠. 하지만 사실 저는 제대로 된 액션 영화를 해보고 싶긴 해요. 영화를 위해 훈련을 받고 격투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얘기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제가 출연할 만한 박진감 넘치는 액션 영화를 찾고 있어요.”

스웨터, 프라다. 팬츠, 보스.

맥그리거는 최근 새로 태어난 아들 윈스테드 외에도 그의 전처 이브 마브라키스 사이에 네 명의 딸을 뒀다. 그는 자신의 연기를 관통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캐릭터들이 모두 아버지라는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내니맥피2: 유모와 마법소동>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로 등장했고, 직접 감독까지 한 <아메리칸 패스토럴>에서는 근심 가득한 아버지를 연기했다. “제 딸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말 그대로 아버지 영화죠”라고 설명한다. 그중 하나인 잠얀은 그가 입양한 딸이다. 맥그리거는 부어맨과 함께 <롱 웨이 라운드> 촬영 도중 거리에서 살아가는 몽골 아이들을 위한 보호소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잠얀을 처음 만났다. 그는 2004년부터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활동해왔으며, 부어맨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유니세프에서 운영하는 보호소를 종종 방문한다고 한다.
“다들 정신건강과 마음을 챙기는 것에 대해 얘기하잖아요. 요즘은 친구들의 안부를 물을 때 그냥 ‘어떻게 지내?’라고 물어보지 않아요. ‘정말로 어떻게 지내?’라고 물어보죠. 그런데 이완은 예전부터 항상 그래왔어요.” 부어맨은 말한다.
맥그리거로부터 최근 장녀인 클라라와 함께 <유 싱 라우드, 아이 싱 라우더>라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클라라가 구상해서 각본가의 도움을 받아 대본을 완성시킨 영화인데, 작년 가을 뉴멕시코에서 촬영을 마쳤고 현재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 있으며 아직 영화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한 적은 없다고 한다. 맥그리거가 클라라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몇 년 전 뉴욕에서 큰딸을 만나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다. “우리에 대한 영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더군요. 처음에는 약간 불안했어요.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영화는 아버지가 차로 딸을 중독 재활 센터까지 데려다주는 동안에 관한 내용이다. “<홀스턴> 촬영 도중 대본을 받았어요. 자리에 앉아 다 읽고 나서는 완전히 감동을 받았죠. 우리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였어요. 사실과 다르거나 각색한 부분도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한동안 소원하게 지낸 시기를 잘 반영하고 있었어요.”
큰딸을 정말로 데려다준 건지···.
“재활 센터로요? 아뇨. 그건 허구예요. 하지만 실제로 몇 년간 그녀는 우리로부터 멀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영화의 줄거리는 아버지가 주려는 도움을 그녀 자신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녀 사이의 관계로 어느 정도 회복되죠”라고 말하는 맥그리거의 표정은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기쁨이 엿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스토리와 유머가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몰라요. 저에 대한 인정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저는 자랑스러운 동시에 제 큰딸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죠. 제가 생각한 것보다 저를 더 잘 알고 있구나 싶었어요.”
배우로서 현재의 위치에 대한 인정 비슷한 것일까?
“그렇죠. 하지만 동시에 힘든 시기를 겪는 자식을 돕는 부모로서 제 처지에 대한 인정이기도 해요. 끔찍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까 봐 두려움에 떨게 되죠. 부모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어요.”
맥그리거와 클라라의 영화는 소규모로 제작진을 꾸려 촬영했다. 그는 제작 과정이 간소해서 대단히 마음에 들었으며 상대역을 맡은 배우와의 호흡도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저와 클라라는 각각 극 중 아버지와 딸을 연기했어요. 영화 자체가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배우로서 클라라는 나무랄 데가 없었어요. 제 큰딸과 함께 연기를 한다는 사실이 저에게 가장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어요.”
연기자로서 둘 사이에 닮은 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있는 것 같아요. 클라라는 그냥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보여주더라고요. 촬영할 때 신들에 대해 미리 얘기한 적도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제가 원래 그렇거든요. 사전 회의 같은 거에는 관심이 많지 않은 편이에요.”
그러더니 맥그리거는 갑자기 약한 모습을 내보인다. “부모의 이혼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인생을 위협하는 시한폭탄 같은 거예요. 그리고 우리 가족은 아직도 그때 생긴 상처를 치유해나가고 있죠.”

탱크톱, 드리스 반 노튼. 팬츠, 보스. 구두, 벨루티.

그로서는 하기 쉬운 얘기들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원래부터 이런 얘기를 잘 하지도 않는다. 카메라 앞에서 보낸 시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는 굳이 주목받으려 하지 않으며 사생활을 잘 지키는 편이라 할 수 있다. 맥그리거와 함께 작품을 찍는 것에 대해 난지아니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카메라가 멈추면 그는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곧바로 돌아가요. 인상에 깊게 남은 순간이 하나 있어요. 이완이 굉장히 감정적인 장면을 찍을 때였는데, 촬영 중간중간 계속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놀더라고요. 제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요?’라고 물어봤는데도 그는 ‘아니 전혀’라더군요. 어떤 배우들은 집중할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데, 이완은 오히려 다른 배우들이 촬영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나는 흡사 우르릉대는 모터사이클에 올라탄 것과 같을 스타 영화배우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떠할지 궁금증을 안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수십 개의 배역이 떠오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그리고 다음 단계를 구상할 때는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다. 맥그리거가 아티스트로 지낸 지도 30년이 넘었다. 그는 자신이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맡을 수 있는 배역의 범위에 제약이 있다는 것도 안다.
락다운 기간을 거치며 그는 관점이 바뀌었다고 한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한 곳에서 7~8개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현재에 충실하고 싶어요. 집을 떠나 루마니아에서 4개월을 보낸다거나 하는 건 이제 싫어요.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한다면 모르겠지만, 가급적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해요”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제 자신이 집시 같다고 생각했어요. 언제 어느 때나 아버지라는 역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집을 떠나서 보낸 시간이 많았거든요.”
맥그리거는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스코틀랜드에 살며 가족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그리울 때도 있다고 하지만, 지금 그의 삶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다. 우리는 모터사이클 클럽을 나와 남부 캘리포니아의 봄기운 사이를 걸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날씨도 너무 덥지 않았다.
클럽 문을 나서며 그에게 앞으로 어떤 유형의 연기자가 될 건지, 혹시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중년에 들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평가 따위에 덜 신경 쓰는 한편, 새로운 욕망이나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했다. 맥그리거는 “글쎄요”라며 운을 떼더니, “꽤 기대가 되긴 해요”라는 말과 함께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어떤 유명 인사가 제게 해준 얘기가 있어요. 예전에 테리 길리엄 감독을 만난 적이 있는데….” 당시 길리엄 감독은 20년 넘게 준비해온 영화가 있었다. 바로 2018년에 개봉한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인데, 길리엄 감독은 맥그리거를 주연으로 캐스팅하기 위해 대본까지 보낸 상황이었다. “그가 저한테 ‘대체 지금까지 뭐 하고 자빠져 있었던 거지? 연기에 공을 너무 안 들이는 거 아냐? <트레인스포팅>에서 보여준 당신은 어디로 간 거야?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꽤 무례한 말이었죠. 누군가 저를 도발하는 경우가 드물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그 말들이 어째선지 제 뇌리에 남았어요.” 비판을 수용한 것일까? 최근 맥그리거의 연기는 어쩌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로 자유로워졌다.
“<파고>나 <홀스턴>은 훨씬 큰 캐릭터잖아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굉장히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클라라와 찍은 영화도 정말 좋았다는 거예요”라고 맥그리거는 얘기한다. “제 자신을 완전히 보여줄 수 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