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숙이 이끌리듯 쏟아내는 마음의 풍경, 풍경의 깊이.
GQ 언어라는 게 참 신비해요. 산을 ‘SAN’이라 쓰니까 이토록 새롭다니.
JS 그렇죠? 지난번 독일에서 한 전시 제목은 ‘GANG’이었어요.
GQ 그러니까, 궁금했어요. 왜 마운틴이 아니고 ‘SAN’일까?
JS 몸은 줄곧 독일에 있었지만 마음 속에 잠재된 산과 강은 늘 한국산, 한국강이었어요. 어릴 때 충청도에서 자랐는데, 집 앞에 야트막한 산이 있었어요. 높이는 600미터 정도였는데 4월까지 산봉우리에 눈이 남아 있었죠. 눈꽃처럼. 그래서 이름도 설화산이에요. 예쁘죠? 계절을 담뿍 느끼게 하는 산이었어요.
GQ 지금 작가님 뒤로 보이는 부산의 산세가 참 예뻐요.
JS 그래서 이곳에 와서 더 생각했어요. 전시 제목을 ‘SAN’이라고 하면 좋겠다. 마침 제가 독일에서 “산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져 있거든요. 그들이 저를 칭할 때 이렇게 (검지로 갈매기처럼 날개를 편 듯한 M자를 그린다.) 말해요.
GQ ‘SAN’에서 제가 느낀 생경함과 익숙함은 작품을 볼 때도 느껴져요. 굉장히 이국적이면서 한편으로 동양화, 산수화 같죠.
JS 어릴 때 아버지가 화랑을 하셨어요. 병풍, 족장, 동양화···. 곁에는 늘 고미술이 있었죠. 매일 보고 자란 것들이 마음 속 어딘가, 기억 속에 잠재해 있었나 봐요.
GQ 그림에 바람이 통하는 것 같은 건 그래서일까요?
JS 아마도요. 여백의 미가 있고, 바람이 통하는 작업을 하고 싶거든요. 숨 쉬듯이.
GQ 작업할 때 따로 스케치를 하지 않는다고요.
JS 스케치를 하면 관건은, 어떻게 하면 ‘캔버스에 비슷하게 옮길까’예요. 종이는 잘못 되면 버릴 수도 있고 다시 시작하기 쉬우니까 일단 저지르기 쉽죠. 그런데 저는 맞든 틀리든, 캔버스에서 더듬어가자는 쪽이에요. 모르는 길을 가면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 알 수 없는 여정이 즐거워요.
GQ 유화 작업인데, 가는 길이 틀렸다고 생각되면 어쩌죠?
JS 지워요. 유화라서 흔적이 남는데, 그 흔적마저도 제 작업에 속해요. 제가 해온 과정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축적되는 거죠. 레이어를 일부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우고 덧대는 과정들이 히스토리로서 레이어가 생기는 거예요.
GQ 모르는 여정을 떠날 때의 마음가짐은 어떤가요?
JS 거기엔 어떤 규제도 없어요. 색의 규제도, 이다음에 가는 길도요. 자유롭죠.
GQ 자유!
JS (미소)
GQ 이번 전시에서 대형 벽화를 그리셨죠. 작업 당시의 영상을 보았는데 마치 작가의 몸이 그 자체로 붓이 된 것 같았어요.
JS 화면이 커지고 붓이 커지면 제 몸을 붓에 싣은듯이 작업을 하게 돼요. 작업하는 순간만큼은 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셈이죠.
GQ 벽화에 매료된 이유가 있나요?
JS 일단 그림을 크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줘요. 그리는 곳은 늘 낯선 공간이고,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죠. 마음 상태가 좀 달라요. 아주 흥분되죠.
GQ 그 흥분이란 감정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요.
JS 저는 작업할 때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생각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아요. 계획없이 그리기 때문에 감정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어떤 행위가 한번 이루어졌을 때 한 발짝 떨어져 그 다음에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금 느껴야해요. 가만히 앉아서 작업을 보면서 기다릴 때, 작업이 제게 말을 걸죠. 저는 이것을 작업과 저의 대화, ‘토크 백’이라고 표현해요.
GQ 어쩐지. 붓을 들고 벽으로 향할 때마다 선명해지는 안광을 느꼈어요.
JS 가만히 기다리다가 어떤 ‘Feel’이 오면 붓을 들고 벽으로 가요. ‘이것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캔버스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막상 가서는 계획과는 다른 제스처를 해요. 가슴은 쿵쾅쿵쾅 뛰고, 저는 어느새 딴짓을 하고 있죠. 거기서 일순 제 마음이 변하는 거예요. ‘여기다 이것을 해야 돼.’라고요. 뭐랄까···. 이 순간은 말로 표현이 안 돼요. 그런데 무엇보다 이 순간이 중요하죠. 정말이지 계획되지 않은 순간적인 충동에서 나오는 제스처이기 때문에 그 선은 너무 너무 살아있어요. 이 작업에 어딘가 악센트가 필요하다. 그 생각 끝에 나온 제스처로 거대한 캔버스가, 그 안의 삶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선은 그 작업에는 결코 없어서는 안 돼요. 저는 이 경험을 꽤 자주 해요.
GQ 운명의 이끌림같이 들리네요.
JS 그런 셈이죠. 작업을 끝내고 다시 보면 ‘이거 내가 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같은 작업을 또 하라고 하면 결코 다시 할 수 없어요. 제가 스케치를 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그 선을 똑같이 캔버스에 옮길 수 없으니까요.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그건 절대 같은 선이 아니에요.
GQ 오롯한 기다림 속의 충동적인, 어떤 문턱을 넘는 ‘사건’처럼 느껴지네요.
JS 맞아요. 이 작업에만 몰두했던 5년이란 시간이 없었다면, 그 사건은 없겠죠.
GQ 그 5년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거죠?
JS 내 것을 찾기 위해 홀로 고민하고 투쟁하는 시간이었죠. 그전까지는 클래식을 잘 듣지 못했는데, 당시 작업하면서 말러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어요. 그 음악이 마치 제가 작곡한듯 거짓말처럼 귀가 열리더라고요. 그런데 더 신기한 건, 귀가 열리니까 눈도 같이 뜨였다는 거예요. 그전에 마음속에만 간직하던 생각들을 저지르게 되더군요. 작업 세계가 그때부터 완전히 변하기 시작했죠.
GQ 비로소 내 것을 찾은 순간이었군요.
JS 그것이 2012년이었어요. 그때부터 5년 동안 300점 정도 작업했는데, 심사숙고해서 60점만 남겼어요. 나머지는 칼로 잘라서 모두 버렸고요.
GQ 토크 백, 그러니까 작업과의 대화는 늘 순탄한가요?
JS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안 돼요. 어떤 작업은 쉽게 잘 끝나고, 어떤 작업은 너무 애를 먹이면서 괴롭게 하죠. 그런 작업은 우선 쟁여놓아요. 그렇게 몇 달 동안 거리를 두기도 하죠. 마치 숙성을 하는 것처럼. 그러다가 다시 꺼내어 보면, 완전히 다른 눈으로 그 작업을 바라보게 돼요. 그렇게 계속 진행해서 마침내 마침표를 찍을 때도 있는데, 그러면 레이어가 훨씬 많아져서 독특하고 좋은 작업이 돼요. 반대로 빨리 잘 끝난 작업은 산뜻함, 신선함이 있고요.
GQ 작업 하나하나가 삶처럼 느껴져요.
JS 맞아요. 각자 다른 인생을 갖듯이, 작업 하나하나가 다른 삶을 갖도록 하려고 해요.제가 죽고 세상에 없을 때 작품이 미술관에 걸려서 저를 모르는 분들이 관람했을 때, 저라는 사람을 느끼게끔. 그래서 만족스럽지 않은 작업은 내보내지 않아요. 그것이 작가로서 제가 지닌 의무라고 생각하고요.
GQ 작품으로부터 여러 감정이 뒤범벅되어 전해져 온 까닭이 그것일까요? 컬러에서는 기쁨이, 텍스처에서는 슬픔이 느껴졌어요.
JS 기쁨과 슬픔은 굉장히 다른 감정이잖아요. 그런데 둘은 굉장히 다르면서 굉장히 가까이 있어요. 애달픔이죠. 작업이 마음에 들게 끝나면 기쁘면서 북받쳐요. 작업할 때는 제가 그 속에 들어가는 느낌이거든요. 저와 제 작업은 떨어지지않고 일체가 돼요. 마음의 풍경을 그리다보니 조용하고 차분한 감정을 표현할 때는 연하고 얇은 선이 나오고, 감정이 격하면 휘두르면서 작업을 해요. 그러면 극과 극이 만나게 되죠. 조용한 부분과 시끄러운 부분이 만나 충돌하면서 자기들끼리 분위기를 만들어요. 아이러니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거죠. 깊이감이 생기다 보면 어느 순간 느낌이 오는데 그때 딱 붓을 놓아요.
GQ 작품이 이야기해주나요? ‘이제 다 되었다’고.
JS 네. 과정도 중요하지만 언제 작업을 끝내느냐가 아주 중요해요. 이 작업이 끝났을까 끝나지 않았을까, 갸우뚱거리는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시간을 두고 오래 지켜봐요.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보고, 오랫동안 지켜보면 정답을 건네줘요. 되도록 작품에서 많은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GQ 문을 살짝 열어두는 것처럼?
JS 누군가 제 작품에 들어간다면 산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거죠.
GQ 이야기할수록 더 궁금해져요. 작가님은 어떤 사람이에요?
JS 좋은 사람?(미소) 조용하고 섬세하지만, 반면에 욱하고 급한 성격도 있어요. 그런 면들이 충돌되어 작업으로 나오는 게 아닐까 해요. 유럽에서는 저를 남자 작가로 짐작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런 체구로 저런 그림을 그린다고? 하며.
GQ 그러니까 저 거대한 벽화가 전시와 함께 사라진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JS 아쉽죠.그러나 벽화는 사라지지만 과정은 제 몸에 새겨지니까요.
GQ 마치 “산은 내 안에 있다”라는 말처럼,
JS 제 안에 남아있죠, 영원히.
윤종숙 작가의 개인전 <SAN>은 10월 23일까지 부산 조현화랑에서 만나볼 수 있다.
- 피처 에디터
- 전희란
- 포토그래퍼
- 허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