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에서 주섬주섬 모아왔다. 남녀 다섯 명이 말하는 분위기를 깨는 말말말.
“음, 거기가 되게 까맣네.”
그래서 뭐? 거기가 까만 사람은 경험이 많다고 말하려고 그러지? 자기야, 생각을 좀 해봐. 그게 대체 말이 되는 소리야? 성기가 발바닥도 아니고 섹스 좀 한다고 피부가 거칠어질 리가 없잖아. 내가 얼마나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섹스하는지 여태 봐 놓고 그런 얘기를 해? 애초에 남녀 성기는 부드럽고 촉촉한 공간이라 아무리 문질러도 피부가 착색되거나 변형될 일은 없어. 그리고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피부가 까무잡잡했어. 못 믿겠으면 우리 엄마한테 물어봐. (고민준, 38세, 회계사)
“우리 속궁합이 잘 맞는 편인 것 같아.”
맞는 편이라니? 상상하게 하지 말아 줘. 칭찬을 걷어내면 보이는 너의 빅데이터에 나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 ‘잘 맞는 편’이라는 건 비교 그룹이 있다는 건데, 누구랑 나를 비교하는 거야? 최소 3인 이상과 잠자리를 가진 다음 그 자료를 기반으로 내 성적을 매긴 거야? 안 맞는 것보단 잘 맞아서 다행이지만 특별히 고맙진 않네. 충고하건대 그런 데이터는 공유하는 게 아니야. 혼자만 간직해 줬으면 해. (송재근, 28세, 프리랜스 작가)
“피드백 주면 반영할게.”
아니, 무슨 회사에 입사한 인턴이세요? 그럼 뭐, 어떻게 PPT로 만들어서 브리핑할까? 나도 알아. 잠자리 피드백은 연인 사이 관계 발전에 중요하다는 거. 그런 건 “오늘 어땠어?”, “어디 만져줄 때 좋았어?” 정도로 물어보면 되지, 뭘 저렇게 딱딱하게 말해? 그럼 나도 이렇게 답하면 돼?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세 곳 정도 보여. 매번 같은 실수하지 말고 노트에라도 좀 적어.” 내가 상사도 아니고. 분위기에 맞춰서 말투 좀 수정해 봐. (윤수정, 32세, 의류업 종사)
“좀 조여봐.”
이 말을 뱉은 순간, 너는 잠깐의 쾌락을 위해 영원한 사랑을 잃은 거야. 사랑을 나누다가 내가 정신이 확 들더라. 한 덩어리의 기계 마냥 닦고 기름 치고 조여지는 내 모습이 상상되면서 분위기도 와장창 깨졌고. 내가 널 기분 좋게 해주지 못했나, 내 것이 잘 조여지지 않나 싶어 의기소침해지더라고. 나 자신감을 잃어서 앞으로 너랑은 섹스 못 하겠어. 아니 안 하려고. (조보윤, 29, 웹 개발자)
“근데 쟤네 대본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래. TV에서 연애 리얼리티를 보다가 키스하는 장면이 나왔어. 같이 보다가 내가 못 참고 너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어. 너도 내 것을 만지며 호응했잖아. 분명 시작은 둘이서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자기는 TV에 가 있고 나 혼자 섹스를 하고 있네. 중요한 일 치르는 동안만이라도 나한테만 집중 좀 해줘. 우리 사랑에 집중한 나만 바보 되는 기분이야. TV 속 사람들이 대본이 있든 말든 뭐가 중요해? 우리 잠자리에 대본이 있었다면 너한테 절대 그런 대사는 주지 않을거야. (김보인, 42세,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