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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탄부터 금돼지식당까지 이 곳의 고기가 특별한 이유 6

2022.12.10전희란

불씨는 당겨졌고, K-BBQ는 지금 제일 맛있게 구워질 참이다.

K-BBQ WAVE, 난로회
기묘한 밤이었다. 서촌의 한 비좁은 골목 안 건물 꼭대기에서는 별안간 DJ 버전의 뉴진스 ‘attention’이 흐르고, 서울에서 이름난 푸디들과 GFFG, 어메이징 브루어리, 제주 맥주 등 MZ를 쥐락펴락하는 요식 브랜드의 주요 인물들을 비롯해 본앤브레드, 금돼지식당, 몽탄, 벽제갈비, 청기와타운 등 장안의 화제의 고깃집 사장들이 다 모였다. ‘난로회’라는 다소 수상한 이름의 모임이 2022년 4월 창궐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JY’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최정윤 셰프다. “이 시대의 맛과 멋을 즐기는 지성과 흥취를 두루 겸비한 풍류인들의 모임이에요. <동국세시기>를 보면 난로회는 음력 10월 숯불에 지핀 화로에 번철을 놓고 양념한 쇠고기와 여러 재료를 담아 구우면서 둘러앉아 먹던 풍속이었죠. ‘야연’ 등 여러 풍속화에도 그 풍경이 남아있어요. 실학자들은 고고하게 연구만 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고기 앞에 둘러앉아 인생 얘기도 하고,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그러다 좋은 아이디어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죠. 김옥균의 갑신정변도 난로회에서 나왔다고 해요.”

그러니까 18세기 조선시대 최고의 지성인, 트렌드를 만드는 실학자들의 모임 ‘난로회’가 21세기 식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한복, 드레스, 수트 차림의 사람들이 맥락 없이 뒤섞여 있다. 이날의 드레스 코드는 ‘자신이 가진 옷 중 가장 우아하고 멋있는 옷’이었다. 우아와 멋을 바라보는 방식이 이토록 다양하다고?
난로회의 처음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한국 구이(K-BBQ) 문화 세계화, 우리 술 세계화, 농부(생산자 돕기) 돕기. 연구원 셰프인 최정윤 특유의 치밀함과 활활 타오르는 추진력은 저마다의 목표를 둔 난로회 회차를 꾸준히 진행했고, 각 주제에 맞는 업계의 실력자가 속속 따라붙었다. “불씨를 던졌을 뿐인데 불씨를 키워준 건 함께 해준 분들이죠.”

코리안 바비큐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기치를 내건 제1회 난로회는 벽제갈비의 뿌리인 원석식당에서 열렸고, 봄날 함양 파 농장의 풍류를 담은 제2회 난로회에서는 함양 파 구이부터 해산물 파에야와 커리, 전립투골, 판톤 토마테가 한자리에 놓이는 진풍경이 피어났다. 이후에는 조선의 제철 식재료 만담, 고기 인문학 저자와의 만남, 한우구이의 역사 강의와 전립투골 메뉴 개발, 소믈리에가 호스트한 내추럴 와인과 한국 술, 토종닭 연구 등 듣기만 해도 군침 돋는 주제들로 만남이 이어졌다. 각 주제에 맞게 모인 여러 분야의 인물들은 농부와 파인다이닝 셰프까지 경계 없이 어우러졌다. 그러다 이 아까운 콘텐츠를 기록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별안간 그래픽 디자인과 폰트가 탄생했고, 누군가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사이 벽제갈비에서는 난로회의 주제였던 전립투골을 이용한 메뉴를 코스에 넣었고, 한국술 모임을 기반으로 주은, 술담화, 쓱닷컴이 손발 맞춰 협업한 제품도 출시됐다. 큰 규모로 열린 제11회 난로회에는 한식진흥원과 농림축산식품부의 담당자들이 ‘뭐 하는 곳인지 한번 구경 왔다’가 곧장 한식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농림부 간담회’로 이어졌다.


“내년에는 난로 랩(과학자와 셰프로 구성된 한식의 조리과학적 연구), 난로 아카데미(한식 전문가 강의 프로그램), 난로 살롱(한식 주제 토론 모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에요.” 화제의 인물들이 모이니 불쑥 난로회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많지만, 주제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인물들을 사전에 모집하는 시스템이라 아무나 쉽게 드나들긴 어렵다. 까닭에 ‘끼리끼리’ 어울리는 모임이라는 오해도 있다. “단언컨대 인맥 자랑을 위한 모임은 아니에요.” 셰프는 강조했다. 그러니까 도대체 무엇이 남기에 이 일에 이토록 진심이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가스트로노미 신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옮겨 간 건 그들이 함께 연대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세계적인 셰프들의 생각은 단지 식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더 나아가 사회에 어떻게 기여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고 눈을 반짝였다.

“셰프로서 제 바람은, 한식이 사랑받고 오래 살아남는 거예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한국&중국 지역 부의장 및 한국 총괄로 해외 미식 신에 두꺼운 네트워크를 쌓아온 그는 한식이 불 타오를 수 있는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말한다. “뉴욕 베이스의 저널리스트가 얼마 전에 그러더군요. 뉴욕은 지금 거대한 코리아타운 같다고요. BTS, <오징어 게임>, 봉준호만이 아니에요. ‘K’가 붙은 모든 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단 말이죠.” 최근 뉴욕에서 박정현 셰프의 아토믹스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33위로 이름을 올렸다. 이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한식당이 50 위 안에 든 건 최초다. 이 불씨를 키워줄 무언가로 최정윤 셰프는 K-BBQ에 밑줄을 긋는다.

“파이돈의 인터내셔널 쿠킹 시리즈 한국 편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식의 고유성에 대해 고민해왔어요. 그리고 K-BBQ를 다시 보게 됐죠. 일식이 고급부터 캐주얼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다이닝 신으로 안착한 비결은 스시였어요. 일식에 스시가 있다면 한식에는 K-BBQ가 있죠. 한국인의 가장 비싼 외식은 소고기잖아요. 마침 뉴욕의 꽃 COTE 같은 곳들이 세련된 코리안 바비큐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고, 소를 부위별로 우리만큼 세분화해 먹는 나라는 드물어요.” 그의 눈은 시종 잉걸불처럼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도 난로회로부터 파생된 수십 개의 카카오톡 창에서는 유의미한 토론과 이야기가 오간다. 고기 장인의 호칭을 무엇으로 하면 좋겠느냐는 하나의 주제에도 수십 개의 아이디어가 따라붙는다. 셰프님, 그러니까 난로회가 도대체 뭐 하는 모임입니까? 한마디로 무엇이냐고요. “모르겠어요. 한식을 바탕으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장이라 해야 할까요? 어쩌면 반드시 한식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 무한한 가능성이 난로회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불씨는 던져졌고, K-BBQ는 지금 가장 맛있게 구워질 참이다.

지금 주목할 K-BBQ 주역들
김태현 벽제갈비 부회장
승승장구하는 고깃집의 후예로 태어나는 기분은 어떨까? 매일 비싼, 최고급 고기만 먹겠지? 어쩌면 좀 게을러지지 않을까? 안일한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벽제갈비의 창업주 아들이자 현 김태현 부회장을 만난 뒤 내 안일한 선입견은 박살 났다. “F&B 신이 그 어느 때보다 변화무쌍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이 많았죠. 벽제갈비는 전통을 잘 지키고자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단이지만, 자칫하면 늙을 수도 있잖아요. 나이 든 사람이 슈프림 티셔츠를 입는다고 젊어지는 건 아니죠.” 한때 카레이서로도 활약했던 그는 “벽제갈비는 왜 이렇게 비싸?”라는 대중의 편견에 맞서기 위해 몇 번의 드리프트를 시도했다. “그리고 두 번의 고배를 마셨죠.” 그리고 올해, 마침내 궁극의 하이엔드 ‘벽제갈비 더 청담’을 열고 코리안 바비큐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저희 회사에는 장기 근속자가 유독 많아요. 20년 넘는 근속자는 수두룩하고, 30년 넘은 분도 몇 분 계시죠.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된 덕분이에요. 젊은 실력자와 오래 근무한 장인이 연대하며 공생하는 분위기죠.” 수십 년간 소를 도축해 소의 뼛속까지 깊이 이해하고 있는 고기 장인들은 그 자체로 무형문화재다. 벽제갈비 더 청담의 오마카세를 주문하면 30년 넘게 근무한 육가공 장인이 눈앞에서 갈비 해체 쇼를 펼친다. 소를 해체하며 부위별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 시간이 어찌나 강렬한지 한 편의 연극처럼 느껴진다. 꽃뼈생갈비 하나에도 무척 다양한 이야기와 맛이 숨어 있고, 다이아몬드 칼집에 수십, 수백 번의 칼질이 들어간다는 사실에는 셰프들도 기함한다. 얼마 전 벽제갈비의 시작점인 원석식당에서는 ‘그릴 마스터’를 겨루는 콘테스트가 열렸다. 한식 벽제의 여러 브랜드에서 난다 긴다하는 고기의 고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대회로, 난로회에서 영감을 받은 김태현 부회장이 추진한 행사다. ‘그릴 마스터’라는 배지를 달면 고수 대접을 받고 로열티가 생긴다. 고기 잘 굽는 사람은 더 진작 ‘귀인’ 대접을 받았어야 했다.

정상원 본앤브레드 대표
훗날 코리안 바비큐가 역사 과목의 한 파트가 된다면, 반드시 시험에 출제될 만한 인물. ‘한우 오마카세(현재는 오마카세 대신 ‘맡김차림’이라는 표현을 쓴다)’의 창시자이자, 소고깃집도 명품처럼 멋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이 정상원이다. 지금은 한우 오마카세가 흔한 장르가 되었음에도 본앤브레드는 최근 ‘테이스트 오브 서울 100’에서 그릴 파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가죽을 이해 하는 장인이 좋은 백을 만들 수 있듯, 본앤브레드가 명품이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한우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애정이 있었다. 1천 곳 넘는 거래처를 보유한 한우 유통 회사 ‘한우고향’의 후계자인 그는 어릴 때부터 그 귀한 한우를 늘 곁에 두고 자랐다. “그래서 외식할 땐 스시를 선호합니다.(웃음)” 한때 블로거로 활동하며 여러 푸디들과 어울리던 그가 프라이빗 소셜 다이닝으로 한우를 구워주기 시작한 것이 본앤브레드의 시작이다. 이곳에서 탄생한, 한우 각 부위를 영특하게 이용한 요리들은 어느새 장르의 클래식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정육은 존중받지 못하는 분야였어요. <셰프의 테이블>에 나온 이탈리아 도축업자 다리오 체리키를 알게된 뒤 생각이 깨였죠. “올해 그는 자신의 영감이 된 다리오 체리키를 초청해 컬래버레이션해 갈라 디너를 열었다. 그 둘의 만남은 마치 파바로티와 도밍고의 만남처럼 웅장하게 느껴졌다. “정육업자만이 지닌 어떤 아우라가 있어요. 길에서 슬쩍 눈빛만 스쳐도 알아보죠.” 코리안 바비큐에 힘이 실리는 데는 전문성을 키우고 연륜을 쌓은 장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본앤브레드가 한우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했지만, 전통적인 것, 클래식한 것도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해요. 저라고 값비싼 고기만 먹지는 않아요. 집 근처 신미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는 걸 좋아하죠.” 최근 그는 ‘비프 솔루션’이라는 이름의 부티크 가공장을 만들었다. 해썹 HACCP 시스템을 도입 한국 내 첫 정육 가공장이다. “비프 솔루션이 고기 사관학교의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재미있는 부위를 지식 없이도 사용해보고 싶은 셰프들, 고깃집을 새로 창업하는 분들에게 아이디어도 제공하고 부위를 추천해줄 수 있을 겁니다.

조준모 몽탄, 두툼, 초원, 뚝도농원 대표
힙과 안락은 공존할 수 있을까? 그것도 고깃집에서? 그 둘의 생명력있는 화합을 말하자면 몽탄 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힙한듯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푸근함과 진정한 맛이 숨어 있는 곳. 몽탄을 흉내 내는 곳은 많아졌지만, 몽탄만이 여전히 ‘몽탄’하는 이유. 조준모 대표의 ‘인생 고기’ 이야기를 들은 후 그 비결을 가만히 짐작해 보았다. “강렬하게 남은 ‘인생 고기’의 기억은 두 번 있어요. 첫 번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 매장으로 불판 닦으러 간 어느 날. 그날따라 어머니는 손수 삼겹살을 구워주셨어요. 80퍼센트만 익힌 상태였죠. 바짝 익혀 먹는 게 일반적인 시대여서 ‘더 익혀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는데 어머니는 일단 먹어보라며 밥 위에 얹어주셨어요. 와, 이게뭐야. 여태 먹어보지 못한 식감과 풍미의 환상적 맛이었어요. 충격이었죠.

두 번째는 독립을 준비하던 2014년. 숙성이란 장르가 아직 수면 위로 오르기 전이었는데, 여러 커뮤니티와 고깃집 사장들 모임에 나가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여러 달 동안 숙성을 공부하고 테스트를 거듭했죠. 그러다 될 것 같다 싶은 어느날, 가족들을 불러 모아 고기를 구웠어요. 제가 구웠지만 정말 맛있었어요. 그 결과물의 토대가 두툼이 되었죠.” 두툼은 빼어난 기획과 만난 몽탄으로, 몽탄의 성공은 초원으로, 그리고 뚝도농원으로.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맛본 짚불 향 폴폴 나는 우대갈비가 ‘한 번이면 됐다’가 아니라 자꾸 다시 먹고 싶은 건 각자의 추억 속에 담긴 ‘인생 고기’의 기억과 맞닿아서라고 하면 비약일까. 몽탄은 현재 미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죽기 전 먹고 싶은 세 점의 고기요? 북미의 몽탄, 유럽의 몽탄, 동남아시아의 몽탄으로 답하고 싶어요. 몽탄의 세계화가 꿈이거든요. 언젠가는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홍희용 은화계, 계고기집 대표
지금 서울에서 닭구이의 타짜를 거론한다면, 바로 이 사람. 계고기집, 은화계, 그리고 샐러드 레스토랑 카키를 운영하는 홍희용은 닭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닭 장사하는 사람이 하루종일 닭을 팔고도 닭이 목에 넘어가느냐고 사람들이 종종 물어요. 그런데 정말 없어서 못 먹을 정도라니까요.” 닭구이로 곱게 접어 보낸 편지는 닭고기 러버들에게 가닿았다. 젠틀 몬스터 쇼룸 같은 외관을 한 은화계(특히 신당 본점은 라운지 클럽처럼 보인다), 친근한 동네 골목 안 푸근한 분위기의 계고기집은 사이좋게 성업 중이다. “은화계와 계고기집의 콘셉트는 제 취향을 많이 담고 있어요. 그날의 기분이나 날씨, 상대에 따라 어떤 날은 연기 자욱한 드럼통 고깃집에서 소주 한잔하고 싶은 날도 있고, 어떤 날은 깔끔하고 힙한 고깃집에서 진토닉 한잔 마시고 싶기도 하죠. 거기에 선도 좋은 닭구이까지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요.”

마치 같은 가사로 발라드와 트로트가 탄생한 것처럼 둘의 대비를 보는 일은 즐겁다. 대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은화계를 여행하는 여행자를 위한 친절한 가이드’를 안내해 달라고. 다음은 실패없는 사장 추천 코스다. “초벌구이는 다소 시간이 걸리므로 닭 부속 구이를 먼저 맛보면 좋아요. 부드러운 연골구이, 사각사각 근위구이를 맛본 뒤 염통으로 넘어갑니다. 대파의 흰 부분을 태운 향을 입은 염통은 미디엄 레어로 익혀 소주와 함께 털어 넣으세요. 그 다음은 소금구이와 양념구이의 시간이죠. 소금구이 첫 점은 소금만 살짝 찍어서, 양념구이는 갈릭마요소스를 콕 찍어 입 속으로 골인하면 독보적인 은화계의 세계죠. 뜨끈한 국물이 당긴다면 파를 잔뜩 넣어 끓인 파계장, 상큼한 마무리가 당길 땐 초계비빔국수로 마무리하세요.”

양지삼 청기와타운 대표
“힙은 언젠가 사라지게 돼있어요.” 저, 죄송하지만 서울에서 가장 힙하다고 이름난 ‘청기와타운’의 대표님이 대관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래가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어요. 한국인의 대표 외식 메뉴인 ‘갈비’를 내세운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청기와타운의 경쟁자? 아웃백이죠.” 스마트폰으로 손가락을 대충 놀려 파악한 청기와타운과 실제로 문을 열고 들어서서 식사를 하고 난 뒤의 청기와타운은 간극이 크다. 힙스터의 성지인 줄 알았던 청기와타운에는 회식하는 아저씨들부터 어린아이를 둔 4인 가족, 잘 차려입은 젠지 세대, 노년의 부부 등 여러 조합의 손님들이 경계 없이 섞여 즐겁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갈비를 씹는다. “다시 오고 싶은 고깃집이 되었으면 했어요. 재방문 고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죠. 다시 오게 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해요. 어린아이에게 먹일 미역국이 필요하다고 해서 미역국을 메뉴에 올렸고, 대기를 불편해 하는 고객을 위해서 예약 시스템을 두었어요. 와인도 굉장히 최저가로 판매하고, 와인 코키지도 프리예요. 손님은 오셔서 갈비만 맛있게 드시면 돼요.”

청기와타운은 그 유명한 기획자 바비정이 기획하고 그가 필요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브랜딩으로 쌓아 올렸지만, 그곳에 바람을 들이고 생명을 불어넣은 건 양지삼이다(한때 그는 모 치킨 체인의 전국 매출 2위를 달성한 적이 있다). 현재 운영하는 다른 식당들도 여전히 성업 중이지만,‘수식어 없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처럼 청기와타운은 양지삼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저는 잘 만들어진 걸 잘 파는 사람이에요.” 성공한 사업가 양지삼은 결코 자신이 쌓은 노하우를 꽁꽁 숨겨두는 사람이 아니다. 함께 연대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다. 까닭에 자신의 SNS와 창업 설명회, 카카오톡 등으로 기꺼이 창업 상담을 해준다. “컴플레인을 거는 손님이 단골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같이 SNS에 적은 신박한 조언들은 오로지 그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잘 파는 사람은 어쩌면 고객의 마음을 조금은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아닐까. 다음 세대의 패밀리 레스토랑은 아웃백이나 TGIF가 아니라 이곳이 될 지도 모르겠다, 청기와타운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정동우 고도식 대표
양인환대, 몽탄, 청기와타운, 아트몬스터 강남, 그리고 고도식. 기획자 ‘바비정’의 포트폴리오에는 정동우라는 사람이 새겨져 있다. 마치 박진영의 노래가 ‘JYP’라는 시그너처 사운드로 시작하듯이. 현재의 코리안 바비큐 신에서 정동우가 이뤄낸 성과는 눈부시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고기를 향한 그의 마음은 꽤나 진심이다. 그 진심으로 ‘바비정이 하면 콘셉추얼하기만 할 것 같다’는 편견을 깨고 직접 운영하는 고깃집 고도식까지 보기 좋게 성공시켰다. 하늘 아래 새로운 기획이 없다는 사실이 허무하지는 않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우문에 현답으로 맞선다. “하늘 아래 새로운 기획은 없다는 사실에는 공감하지만, 그 점이 허무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본 뒤 어떻게 변용할지 고민하죠. K-BBQ를 예로 들면 콘셉트는 유통망에 따라, 국가 정책 혹은 다른 환경에 따라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 많아요. 익숙한 형식에 한 포인트를 입혀 새로운 문화로 만드는 것 또한 저같은 기획자들이 해야 할 일이죠.”

그는 오는 12월에 돼지고기 브랜드 ‘산청숯불가든’을 열고, 내년에는 소고기 브랜드를 새롭게 론칭할 예정이다. 바비정의 고깃집이 훗날 <야연>의 한 장면처럼 풍속화로 남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이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식구가 뭐냐’고 물어요. 그리고 이렇게 답하죠. ‘식구란 건 말이여, 같이 밥 먹는 입구녕이여’라고. 전 누구나 좋아할 만한 대중적인 코드를 좋아하고, 살면서 쌓인 기억 속 이야기를 꺼내 기획하는 사람이에요. 앞으로도 제가 운영하는 식당의 풍경은 함께 마음을 나눈 우리 팀과 둘러앉아 밥을 나누어 먹는 일상 속 모습이었으면 해요.”

박수경, 박세영 금돼지식당 대표, 사장
5년 째 미쉐린 가이드 서울의 빕구르망에 오른 금돼지식당의 박수경 대표, 박세영 사장은 탁월한 스토리텔러다. “오픈 준비를 끝내고 친한 지인들을 불러 반응을 물었어요. 강남에서 온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맛은 있는데 왜 여기까지 와야 해? 우리 동네에도 맛있는 고깃집 있는데’ 라고. 충격이었어요. 매장 인테리어를 다 끝내놓고 3개월 동안 ‘왜 금돼지식당’이어야만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했죠. 우리만의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것을 우리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손님들에게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전달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좋은 소금이 아니라 바닷물을 졸여 만든 말돈 소금, 그냥 맛있는 돼지가 아니라 요크셔, 버크셔, 듀록을 교배한 YBD 품종,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재단한 삼겹, 숙성에서 나오는 감칠맛 등의 다정한 이야기는 맛에 맛을 더했다. 골몰하는 연구원 기질의 박세영 사장과 시원하게 일을 벌리는 박수경 대표가 ‘돼지고기’로 대동단결해 이룬 합이다.

뉴진스, <스맨파>, 골프에 빠져 있는 박수경 대표는 라운딩 후 그늘집의 유혹도 뿌리치고 주린 배를 부여잡고 금돼지식당으로 온다. 고기를 먹기 위해서. “매일 먹어도 맛있거든요.” 금돼지식당이 7년 차가 되는 동안 요식업계에 실력자는 우후 죽순 늘었다. 금돼지식당의 컨셉을 흉내낸 식당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이름난 푸디부터 셀럽들까지, 틈도 없는 금돼지식당에 입성하기 위해 기다림이란 벌을 달게 받는다. “저희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항상 재밌고 즐겁게, 손님이 기분 좋게 식사하고 돌아가면 그걸로 만족하죠.” 줄이 길게 늘어선다 해도 금돼지식당의 서비스는 조금도 달라지는 법이 없다. 3개월 동안 매장에서 실전을 경험한 뒤 흐름을 읽고 변덕있는 불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만이 고기와 집게를 들고 ‘집도’할 수 있고, 고기가 익는 동안 상 위에 놓인 원육, 반찬, 갈치속젓, 소금에 관한 이야기가 연탄 불 위에서 즐겁게 춤춘다.

노포 전문가 JY가 꼽은 서울의 바비큐 노포들
을지로 전주집ㅣ냉삼 + 파무침
을지로 대지식당ㅣ미나리삼겹살 + 무생채, 김치
을지로 우래옥ㅣ불고기 + 평양냉면, 무생채, 겉절이
서울대 황소곱창ㅣ양곱창 + 콩나물국
종로 양미옥ㅣ양곱창 + 진한멸치된장찌개
신사동 삼원가든ㅣ소갈비 + 파전, 홍신애김치
방이동 벽제갈비ㅣ소갈비 + 평양냉면
명동 서서갈비ㅣ양념소갈비
청량리 감초식당ㅣ돼지갈비 + 오이소박이, 도토리묵, 부추김치(계절 김치)
광장시장 남매등심ㅣ동그랑땡(고추장주물럭) + 된장국 + 파김치
성북동 쌍다리불백ㅣ돼지불고기백반 + 재첩국 + 쌈 최적화 반찬들
종로 남도식당ㅣ고추장 삼겹살 + 서비스 선지해장국 + 쌈 + 제철나물
신당동 우성갈비ㅣ돼지갈비 + 껍데기 + 부추무침
명동 삼호정ㅣ쇠고기주물럭 + 나박물김치 + 제철나물
압구정 연탄공장ㅣ돼지갈비 + 김치수제비+ 도시락
신당동 중앙갈비ㅣ돼지갈비 + 기본 된장찌개 + 라면 + 마른안주
마포 원조마포껍데기집ㅣ소금구이, 돼지갈비 + 닭똥집 + 생선구이
구로 우방정육식당ㅣ빙수육회, 냉동목삼겹
을지로 용강식당ㅣLA갈비 + 밑반찬
종로 미갈매기살ㅣ갈매기살 + 콩나물김칫국
용산 삼각정ㅣ돼지연탄구이 + 양배추 마약간장소스
용산 삼각지/삼성동 봉산집ㅣ차돌박이 + 차돌막창된장찌개
비너스 본사 건너편 갈비살ㅣ총각김치 + 알배추
광화문 흥남부두ㅣ파김치,총각김치+굴국밥

피처 에디터
전희란
일러스트레이터
유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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