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ing

이별이 임박한 커플의 단골 멘트

2023.01.02조서형

상대의 입에서 이런 대사가 자주 나온다면, 이별은 시간문제다.

😐“내 얘기? 없는데.”

연애 초반에는 하루 종일 사랑이 담긴 메신저를 주고받는다. 연애 중반이 되면 그 횟수가 줄어든다. 메시지 내용도 매번 비슷해진다. “밥 먹었어?”, “뭐해?” 그리고 그 답변이 “응. 된장찌개”, “운동 중”처럼 대화보다 보고의 형식에 가까워지면 우리는 권태기가 왔음을 느낀다. 이다음에는 짧은 대화조차 이어 나가고 싶지 않은 단계가 온다. 이별을 앞둔 단계다. 아직은 연인이지만 둘은 서로에게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형식적인 질문조차 할 수 없다. 짜내어 질문을 던졌다. “네 얘기 좀 해봐. 오늘 별일 없었어?” 그렇지만 대화를 계속하기는 어렵다. “내 얘기? 별일 없었는데.” 상대 역시 별로 할 얘기가 없다고 할 테니까.

😐“내일은 친구 고양이 보러 가기로 했는데.”

친구네 고양이에게 우선순위를 빼앗긴 게 문제가 아니다. 누구네 고양이라도 앞세워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게 포인트다. 앞으로도 만날 약속이 잡힐 것 같으면 작은 핑계라도 찾아 데이트를 무산시킬 것이다. 유의어로 “그러면 그냥 다음에 보자.”가 있다. 어떤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그렇다면 만남을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다. 이별에 가까워져 온 상대는 더 이상 당신과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시간을 나누는 것도 싫어지면 연애의 마지막이 왔다고 알아차려야 한다.

😐“괜찮으니까 편한 대로 해.”

이런 말이 나온다면 “도대체 넌 왜 그래?”의 단계마저 지났다는 것. 권태기 때 당신의 밥 먹는 모습이나 숨 쉬는 소리까지 싫어했다면 그건 애증이다. 거슬리는 게 많다는 건 당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였다. 당신이 뭘 하든 모두 괜찮아지는 이 단계에 오면 정말 마지막을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는 각자 편한 대로 지낼 일만 남았다.

😐“요새 피곤해서 그래.”

현대사회는 바쁘고 그 구성원은 피곤하다. 다만 상대의 이 말은 현대사회의 피곤과 다르다. 같이 거리를 걸어도, 밥을 먹어도, 카페에 앉아 대화해도 시큰둥하다. 적극적이고 에너지 넘치던 연애 초기와는 달리 기운이 없다. 상대의 어두운 표정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면 없다는 답이 나온다. 무슨 일이 있다는 답은 긴 대화를 해야 하므로. “아무 일도 없는데 표정이 왜 그래?”라 되물으면 어떨까? “원래 이래” 또는 “좀 피곤해서” 정도에서 그치고 만다. 어떻게든 대화를 더 해보고 싶다고 해도 이 단계에선 무리다.

😐“그랬나?”

내가 한 얘기를 기억 못 한다. 악의는 없다. 싫거나 미운 게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니까. 비유하자면 못 본 척하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둘 사이의 대화 내용을 잊었을 때 “아, 맞다!” 나 “까먹었어.” 수준은 차라리 양호하다. 적어도 자기가 기억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니까. “음, 그랬었나?”라는 말에는 ‘네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은 잊었어. 그런데 어쩌라고.’의 무책임함이 담겼다.

😐“…”

아무 대사도 없다. 전화도 없고 메시지도 없다. 만나도 할 말이 없다. 이건 오랜 연인 사이 친숙함과 다르다.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말줄임표만 겉도는 분위기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쪽이다. 이별이 임박한 사이에 괜히 꺼낸 대화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고,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대화 주제가 생각나지 않는 어색하고 불편한 사이다.

에디터
글 / 조서형(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