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급 고화질로 국내 유일 영화 아카이브 한국영상자료원은 1974년부터 한국영화 필름을 수집, 영구 보존하고 있다. 영화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 디지털화가 시급한 유일본 필름 등을 면밀히 검토해서 복원한다.
개봉 1967년
감독 신동헌
원작 구성 신동우
애니메이터 정욱, 박희종, 배영랑 등
<호피와 차돌바위> HOPl AND CHADOL BAWl
총천연색 장편 만화영화! 그 시대 포스터에 적힌 기개 넘치는 자기 자랑이 사랑스럽다. 그 자랑이 웬만큼 틀림없다는 사실에 더 그러하다. 1967년에 만든 <호피와 차돌바위>에는 사또 나리의 꽃분홍색 한복 소맷자락이 휘날리고, 햇볕에서는 풋내 나는 완두콩색이던 호피의 조끼가 나무 그늘에 가려질 때면 푹 절여진 올리브색으로 변한다. 묘사 그대로 총천연색, 산뜻하다. 신동헌 감독이 이 작품의 본편 격이자 한국영화사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홍길동>(1967)을 직전에 작업하며 겪은 경험-당시 영화 필름인 셀룰로이드 필름이 없어 미군 부대에서 나온 유통기한 지난 필름을 사다 양잿물에 불려 사용하고, 애니메이션 물감이 없어 일반 포스터컬러를 활용하던-이 축적되어, <홍길동>도 놀랍지만, <호피와 차돌바위> 역시 유려하다는 평을 받는다. 입술 움직임과 대사가 정확히 맞는 비주얼 싱크로나이제이션의 면모도 시대를 넘어 완성도 높은 점으로 꼽히는데, 이 기술의 비결로 신동헌 감독은 머나먼 성운으로 향하던 시선을 공유했다. “천문학에서 보면, 먼 곳의 성운 같은 흐릿한 것은 노출을 오래하면 찍을 수 있거든. 그걸 응용해서 그림자 만들 때 노출을 달리해서 더블 촬영해서 만들었지. 말소리와 입 모양 맞추는 것도 프리 레코딩이라 해서 소리를 먼저 녹음하고 그것을 분석해서 1초 동안에 24프레임으로 계산해서 맞추는 거지. 내가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안 했지만, 헤르만 헤세, 뒤마 같은 문학책 많이 읽고, 음악 좋아하고 천문학 좋아하고 이런 게 다 도움이 되었지. 예술 하는 사람은 이래야 해.”(2008년 5월 4일 한국영상자료원 ‘한국 애니메이션의 개척자, 신동헌’ 인터뷰 중.)
개봉 1962년
감독 박종호
출연 김승호, 조미령, 김진규, 김지미, 최무룡
<골목안 풍경> WHAT HAPPENS lN ALLEY
더욱이 당대 한국영화는 검열을 피할 수 없었고, 때때로 정부 정책을 전하는 역할마저 해야 했기에 영화 <골목안 풍경> 이야기는 대를 잇는 자식은 있어야 한다는 유의 시대 분위기를 겸하면서도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식의 세태를 분명히 한다. 이제는 역사 박물관 사료로서나 볼 법한 이 문구는 실제로 1960년대 국내에 성행하던 캠페인 표어로, 6.25전쟁 직후 출생아 수가 폭증하는 베이비 붐 현상이 극에 달했던 당시에 국가가 시행한 산아 제한 정책의 흔적이다. 그 시절 사회상을 담아, 9남매를 키우는 주인공 고주사(김승호)는 늘 “돈 없다”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럼에도 자식들의 학교 준비물을 위해 숨겨둔 비상금을 내어주고, 집에 돌아오는 아버지를 에워싼 아이들로 북적이는 골목길 풍경 역시 그때의 서정이기도 하다. <골목안 풍경>을 4K 디지털 스캔하고 색을 재현해 디지털화한 한국영상자료원은 작품의 특이점 중 하나로 영상 초반에 나오는 남대문 풍경을 꼽았는데, 광장에 파라솔을 펴서 마련한 노천카페와 지게와 전차가 오가는 도로, 한복과 선글라스가 뒤섞인 거리, 영화가 개봉한 1962년 6월 28일 목요일 직전까지의 서울 정경을 관찰할 수 있는 재미가 퍽 깊다. 무엇보다 알맞은 크기의 안경알과 손등을 약간 덮는 소매 길이의 트렌치코트, 구두를 신는 데 쓴 둘째손가락 두 마디 길이 정도의 자그마한 구둣주걱을 오른쪽 주머니에 무심히 넣은 재킷, 흑백에서도 단정한 스트라이프 넥타이와 슬쩍 눌러 쓴 중절모 차림으로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고주사의 말쑥함이 우아하다. 돈 없다, 돈 없다를 연발하면서도 뒷배가 찔러 넣는 뇌물 따위에 끄떡하지 않는 청량함도.
개봉 1964년
감독 이만희
출연 김진규, 문정숙, 방성자, 정애란
<마의 계단> THE DEVlL’S STAlRWAY
“김기영의 <하녀>(1960), 히치콕의 <사이코>(1960), 봉준호의 <기생충>(2019)과 더불어 ‘계단’이라는 건축 구조를 영화에서 시각 장치적이고 장르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의 계단>입니다. 거장 이만희 감독의 스타일이 돋보이고 서스펜스와 공포감을 잘 활용한 한국 미스터리 장르 영화의 걸작이에요. 한국영상자료원이 선정한 ‘한국영화 100선’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복원팀의 홍하늘 연구원이 건넨 설명에, 1964년에 만든 <마 의 계단>을 2023년에 봐도 놀라운 이유가 압축되어 있다. 영화 배경인 병원의 간호사들 표현에 따르면 “꾀쟁이”인 목수가 원내 계단 난간을 한쪽에서 고치고 있는 장면을 복선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계단을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진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인물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인물 사이의 기울어진 권력 관계, 동시에 언제든 위아래가 전복될 수 있다는 여지, 물리적으로 가파른 각도가 전하는 심리적 불안감…, 계단이라는 장치에 긴밀하게 서려 있는 극적 요소는 언제 마주해도 긴장감을 전한다. 그러나 여기에 이만희 감독의 “스타일”이 덧입혀져 전형적 장치는 보다 각별해진다. 그 스타일이란 예를 들면 허문영 영화 평론가가 <마의 계단> 블루레이 책자에 기록해둔 이런 것. 우아하면서도 어두운 톤의 심도, 강렬한 느낌의 양각 인물 숏들, 애용되는 사선과 수직선, … 속도감 있는 예민한 편집…, 이 만희가 설명에 기대는 대신 개별 숏들의 묘사 능력을 극대화하면서 그려낸 것은 주인공들의 실존적 고독과 불안…, 그의 주인공들은 항상 시작부터 벗어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내던져져 있으며, 그들은 그곳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대개 실패한다.
개봉 1958년
감독 신상옥
출연 최은희, 김학, 조해원
<지옥화> THE FLOWER IN HELL
연애하는 남자가 함께 살자 해도 유유자적 얽매이기 싫어하던 여성 캐릭터가 파격적이었을까? 그 남자의 동생을 유혹하는 모습이 놀라웠을까? 배경인 전후 미군 기지촌의 현실적인 순간을 담기 위해 실제 미군기지 파티 현장에 잠입해 촬영한 장면이 비현실적이었을까? 종국에는 비극을 맞이하는 결말이 예상 외였을까? 이 모든 낯선 시도가 모여 1950년대 한국영화의 걸작이라 불리는 <지옥화>가 빚어졌다. 스토리적인 면모도 생경한 파동을 일으키지만, 영화 중후반부 펼쳐지는 열차 탈취 신은 “이걸 1958년에 촬영했다고?” 같은 촌스러운 탄성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놀라운 걸 어떡해. <지옥화> 개봉 후인 1962년 6월 10일, 이를 촬영한 강범구 촬영 감독과 인터뷰한 <동아일보>에 그 장면의 탄생 비화가 남아 있다. “달리는 열차 위에 밧줄로 몸을 묶고 겁없이 카메라를 돌리다가 죽을 뻔했다는 경험담을 수줍은 말투로 토로한다.” 모험적인 구도에 즐겨 달려드는 다이내믹한 체질이 풍긴다며, 피에트로 제르미 감독을 좋아한다는 당시 34세의 촬영감독 강범구에 대해 기자는 “기성 감독이 무성격한 타성에 빠지는 만성적 풍토병에 무엇인가 청신한 저항을 품고” 있고, “미스터리나 스릴러 종류의 영화를 통해 현대악을 해부하고 싶다고 야심을 내보이기도 한다” 적었다. 한 가지 짚을 것은 <지옥화>의 신상옥 감독은 직접 카메라를 잡는 연출가였기에 촬영감독에 이름을 올린 강범구 감독은 사실상 조수 역할을 했다는 후문도 있다. 하나 달리는 열차 위에서 밧줄로 몸을 묶고 촬영했던 순간, 기성 작품과는 선 그은 제작진의 열기, CG와는 다른 날것 그대로의 찰나는 <지옥화>에 선명히 남아 있다.
개봉 1988년
감독 송경식
출연 이혜영, 방희, 곽정희
<사방지> SA BANGJl
<사방지>는 사방지(이혜영)라는 이름의 양성 兩性인간이 주인공이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서 기인한다. 즉, 실화 기반 작품이다. <세조실록> 28권, 세조 8년인 1462년 4월 27일 기록에는 이러한 내용이 남아 있다. “이제 서부 西部의 정문 呈文에 의거하면, 여경방 餘慶坊에 사는 고 故 학생 學生 김구석 金龜石의 처 妻 이씨 李氏의 가인 家人 사방지 舍方知가 여복 女服을 하며 종적 이 괴이하다고 하였으므로 본부 本部에서 잡아다가 이를 보았더니, 과연 여복 女服을 하였는데, 음경 陰莖과 음낭 陰囊은 곧 남자였습니다.” <사방지>는 역사가 기록해둔 실화를 토대로 하여, 여성이면서 남성인 인물 사방지를 중심으로 “그들에겐 남자가 필요 없었다!”는 선언적인 포스터 문구로 요약될 만한 스토리를 선보인다. 무녀의 계략에 휘말린다는 각색이 더해지긴 했으나 양반집 마님들, 과부와 경계 없이 정을 나눈 사방지의 행적이 주요한 에피소드다. 이 작품이 지닌 영화사적 의의에 대한 물음에 답한 한국영상자료원 홍하늘 연구원의 말마따나 역사적 성 스캔들을 영화화한 점, 욕망 가득한 세태를 표현한 동시에 결과적으로는 멜로라는 장르로 귀결되는 점이 1980년대 에로 영화 홍수 속에서도 파격적이었으며 특이하다 할 만하다. 덧붙여 포스터에 새겨진 또 하나의 선포이자 당시 제작진이 추구한 지향점 “에로티시즘의 한계 돌파”라는 부분에 밑줄 긋고 싶다. ‘한계’는 시대에 따라 그 모양새가 달라져 왔다. 1988년에 돌파하고 싶었던 벽은 무엇이었는지 미지이지만, 이분법적 성의 선을 무너뜨린 지점은 다분히 앞서서 한계를 지운 시도로 읽힌다. 가만, 이미 1462년에 뒤흔들린 장벽인가?
♠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 Korean Classic Film’를 통해 바로 감상할 수 있고, 시대를 구분 짓는 버퍼링이 걸리지 않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