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엘링 홀란드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마음속으로 자각하고 있느냐는 점이에요"

2023.03.31GQ

엘링 홀란드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젊은 스트라이커이자 근 10년 내 프리미어 리그에 영입된 선수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만약 모든 게 계획대로만 된다면, 맨체스터 시티를 마침내 챔피언스 리그로 이끌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것이다.그러나 엘링 홀란드는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이 모든 것에 개의치 않으려고.

재킷, 펜디. 점퍼, 에임 레온 도르. 팬츠, 브루넬로 쿠치넬리. 네크리스, 올 블루스.

홀란드 현상을 해부하기 위해 이미 수많은 시간의 논평들, 긴 문장의 칼럼들이 세상에 나왔다. 왜 그가 다른 선수들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토록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하는 말을 듣노라면 낡은 설화 속에나 존재하는 인물 같다. 설화 속 이무기 아니면 깊은 바닷속 괴수처럼. 사람들은 그를 “맹수”(아르센 벵거), “자연의 위력”(위르겐 클롭), “괴물”(폴 디코프)이라 부른다. 펩 과르디올라는 그의 기록을 “무섭다”고 표현하고, 티에리 앙리는 “정상이 아니”라고 했으며, 상대편 골키퍼(FC 코펜하겐의 카밀 그라바라)는 그를 “인간이 아니”라고 묘사했다. 그 직유법들은 검증된 내용일 뿐 아니라 끝도 없이 계속되어, 얀 오게 피오르토프트는 “그는 만화에서 튀어나온 슈퍼히어로 같다”, 트로이 디니는 “최고의 마이크 타이슨”, 오언 하그리브스는 “인간 레킹 볼 Wrecking Ball”이라고도 했다. 공정해야 할 신문들조차 평정심을 잃었다. 스페인 <마르카>가 그를 “사이보그”로 묘사하고, <뉴욕 타임스>는 “시스템의 결함”으로, 그리고 <가디언>이 가장 기이하게도 “굶주린 노르웨이의 축구 예티(Yeti, 설인)”라고 표현한 예처럼. 지금은 21세기이니만큼 그들은 동영상도 공유한다. 당시 엘링 홀란드 Erling Braut Haaland가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온두라스를 상대로 무려 9골을 기록, 낙담한 채 사이드라인에서 울고 있던 상대편 선수들에게 굴욕을 안겼던 때. 또는 그의 챔피언스 리그 데뷔 무대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을 때. 아니면 그가 파리 생제르맹과의 미드위크 경기에서 60미터 스프린트 세계 기록을 거의 깰 뻔했던 때. 홀란드는 열여덟 살 때 노르웨이 최고의 선수가 됐고, 스무 살 때 독일에서 베스트 플레이어로 선정됐다. 스물한 살 때는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가 그를 세계 최고의 선수 11인에 선정했다.

셔츠, 네크리스, 모두 돌체&가바나. 톱, MSGM. 팬츠, 간트. 슈즈, 듀크앤덱스터. 양말, 팔케.

아직 젊은 나이인 홀란드의 잠재력은 말 그대로 예측 불가능하다. 게임 ‘풋볼 매니저Football Manager’의 개발자가 그가 게임을 다 망쳐버리지 않도록 통계를 조정해야 할 정도로 그는 뛰어나다. 곧 그는 화제의 중심에 섰다. 소셜 미디어에서 그의 폭발적인 인기는 너무 압도적이어서 스웨덴의 그림 같은 풍경을 가진 도시 할란드 Halland 관광위원회가 스펠링이 비슷한 홀란드 때문에 할란드가 구글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고 불평할 정도다. 그들은 성명서를 내고 이렇게 말했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우리의 소중한 지역이 구전 설화나 고대 경전에서나 알려진 잊힌 도시 아틀란티스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2022년 홀란드가 마침내 프리미어 리그에 도착했을 때, 그는 ‘팩맨’ 게임에서 팩맨이 괴물을 먹어 치우듯이 계속 득점 기록을 집어삼키고 있다. 첫 13경기에서 3연속 홈 해트트릭을 포함해 18골,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20경기에서 25골. 일상적인 골, 화려한 골, 눈부신 기술과 자비 없는 힘의 골. 그러는 사이 그의 숭배자들, 그의 상대팀, 동료들 그리고 매니저들은 엘링 홀란드란 인물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개인적으로, 영국의 스트라이커였던 피터 크라우치의 간결한 표현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이렇게 어린 선수에게서 이 정도의 실력을 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아직 스물두 살에 불과한 엘링 홀란드는 이제 이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 그는 즐기고 있고 상황을 리드하고 있다. 스트라이커는 두려워지기를 원한다. 홀란드는 축구가 경기장에서뿐만 아니라 정신으로 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10월 31일이면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해피 할란드윈 Happy Haalandween!”이라는 농담과 함께 라자냐를 먹는 터미네이터, 전기톱을 휘두르는 미치광이로 꾸미고 정교하게 포토샵한 사진을 만들어 올리곤 했다. 홀란드가 말한다. “재밌잖아요? 제가 밀고 있는 유행어예요.”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런 것에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홀란드는 경기 리포트를 열렬히 확인하거나 경기 후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을 찾아서 보지 않는다. 댓글도 전혀 읽지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한 걸 읽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 죽치고 있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누군가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고 쓰는 것을 통제할 수는 없죠. 그러니까 제가 관여할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러고는 순간적으로는 쓸모 없어 보이는 게 나중엔 모든 것의 핵심일지도 모른다고, 그러한 의심을 하게 될 수 있다는 말도 추가한다. 그리고 이 말도. “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셔츠, 팬츠, 슬라이드, 모두 보테가 베네타. 양말, 팔케. 벨트로 활용한 신발 끈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전 상당 부분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 같아요. 집중하고, 준비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축구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실제로 만나본 그는 거의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했다. 키는 195센티미터지만 부담스러운 느낌은 아니다. 근육질이지만 이상해 보일 정도는 아니다. 프리미어 리그 시즌 중 예상치 않은 겨울 공백기인 12월의 쌀쌀한 수요일, 우리는 맨체스터 시티 훈련장에서 만났다. 노르웨이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홀란드는 드문 휴식을 취하고 있다. “축구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햇빛을 쬐고 있어요.”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체육관에 있던 유일한 선수였다. 맨시티의 푸마 트레이닝복과 슬리퍼 차림으로 편안하게 입고 머리를 뒤로 묶었다. 우리는 이야기할 자리를 정하지도 않고 가까운 회의실에 일단 자리를 잡았다. 중역이나 앉을 법한 압제적인 자리에 앉은 홀란드는 위험해 보일 정도로 지루한, 먹잇감 없는 포식자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홀란드는 맨체스터에 빠르게 적응했다. 6월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맨체스터로 5천1백만 파운드(약 7백80억원)에 이적할 땐 일종의 귀향처럼 느껴졌다. 홀란드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알피 Alfie는 2000년부터 2003년 조기 은퇴할 때까지 맨체스터 시티에서 직접 뛰었다. 홀란드는 그 당시 너무 어렸기 때문에 많은 걸 기억하진 못한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그가 세 살 때 노르웨이로 돌아갔다. 하지만 홀란드는 여전히 클럽과 연결성을 느낀다. “부모님은 이 나라가 어떤지 잘 알고 계셨어요. 좋은 점이었죠. 그리고 아버지가 뛰었던 클럽에서 뛴다는 것 자체도 특별하고요.”(맨체스터 시티가 그의 연봉을 감당할 수 있는 세계의 몇 안 되는 클럽 중 하나였다는 행복한 우연의 일치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는 성공적인 경기를 치르면서 즉각적이고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이적에 재빨리 적응했다.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비교적 조용히 첫 경기를 치렀고,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에서 2골을 넣더니 그 이후로는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이 기사를 쓰는 현재, 그는 19경기에 출전해 24골을 넣었다. 평균적으로는 60분마다 한 골을 넣었고, 프리미어 리그 20개 팀 중 11개 팀 전체에서 넣은 골보다 홀란드 혼자 넣은 골이 더 많다.(업데이트: 이제 20경기에 출전해 26골을 넣었다. 이 기사를 쓰는 사이 2골을 추가했다.) 이 수치들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숫자가 아니라 그가 경기를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10월 브라이튼과의 경기에서 브라이튼의 수비수 아담 웹스터가 홀란드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을 때, 홀란드는 골을 향해 질주하며 결국 선제골을 터뜨렸다. 또 9월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는 두 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주앙 칸셀루를 지나, 갑자기 발레리노가 그랑 바트망을 하듯 다리를 차올려 머리가 아닌 왼발 바깥쪽을 이용해 슛을 날렸다. 해설자는 이 터무니없을 정도의 운동신경과 정확한 감각의 위업 앞에 그저 “때론 당신의 눈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홀란드 현상을 해부하기 위해 이미 수많은 시간의 논평들, 긴 문장의 칼럼들이 세상에 나왔다. 왜 그가 다른 선수들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토록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의 운동신경? 당연히 맞다. 그의 타고난 마무리 본능? 그것도 맞다. 홀란드를 분석하려는 시도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게으른 전문가들이 자꾸 빠르고, 강하고, 마치 골이 이미 들어갈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볼을 다루며 달리는 그의 기술을 그냥 “만능”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엘리트 스트라이커들 사이에서도 그는 보기 드물게 정확한 슈터로, 골키퍼가 뻗은 손가락이 닿지 않을 공간을 항상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 필요할 땐 거의 제로 백스윙으로 골을 터뜨릴 수 있으며, 골키퍼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하이라이트 영상이 재생될 정도로 쐐기를 박듯이 어마어마하게 빠른 슛을 날린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주목할 만한 점은 그를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사라지는 능력이다. 경기 내내 그는 상대 센터백의 어깨너머로 사각지대에 숨어서 참을성 있게 기회를 엿보다가 유령처럼 갑자기 다시 나타난다. 수비수보다 반 발만 앞서 있다 골문 쪽을 보면 이미 볼이 그물에 출렁거리고 있는 거다. 물론 최고의 스트라이커들은 모두 이렇게 한다. 하지만 홀란드는 이 기술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경기에서 수준급 실력의 수비수가 그들이 집중 마크하던 노르웨이 거인이 바로 자기 몸 옆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것처럼, 그를 보고 진심으로 충격에 빠지는 장면을 보는 건 중독적이다. 홀란드는 이것에 대해 설명하려 노력한다. “저는 상대 선수들보다 앞서 있기 위해 좀 더 똑똑하고 날카로워지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제 머릿속을 좀 더 긴장시키는 겁니다. 제가 그렇게 하면 단 1초라도 먼저 도착할 수 있고, 그러면 저는 골을 넣을 수 있게 되고 상대는 나를 막을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들이 내가 여기쯤 있겠지 생각할 때 저는 저기에 가 있는 거예요.” 그는 왼쪽으로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가는 척하는 제스처를 흉내 내 보인다. “그리고 전 득점을 하죠. 이런 유의 것들이 제가 거의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에요.” 홀란드는 다른 스트라이커들을 강박적일 만큼 지켜보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모방하고, 무엇이 그들을 독특하게 만드는지 연구하며 자랐다. “즐라탄부터 반 페르시, 아구에로, 메시까지요. 또 네그레도, 에딘 제코, 발로텔리….” 그러나 그는 특히 게임의 멘털 측면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인다. 톱 플레이어들의 스포츠 무대에서 골을 넣는다는 건 신체적 능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정신적 경쟁, 자신감 있게 게임을 운영하는 능력, 미적분, 상대보다 한 수 앞서 내다보는 것들과 동의어다. 홀란드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마음속으로 자각하고 있느냐는 점이에요.”


엘링 홀란드는 스트라이커로 시작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처음엔 윙에서 뛰었다. 홀란드가 회상한다. “전 정말 빨랐어요.” 동시에 그의 골 재능 역시 그 당시 이미 분명했다. 유소년 수준에서 그의 첫 터치가 골로 이어졌으니까.홀란드 가족은 영국을 떠나 노르웨이로 돌아온 후, 노르웨이 서부 해안의 작은 마을 브뤼네 Bryne으로 이사했다. 겨울이 계속 이어지는 노르웨이에서, 특히 바깥 날씨가 춥고 습할 때 홀란드 또래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 팀인 브뤼네 FK에는 인조 잔디가 깔린 실내 경기장이 있었고, 홀란드와 그의 친구들은 그곳에서 몇 시간 동안 2 대 2 또는 3 대 3 픽업 게임을 하면서 주말을 보냈다. 홀란드는 “밖에 눈이 내리면 실내에서 훈련했다”라고 했다. “내 인생과 경력에서 정말 중요한 지점이었어요.” 홀란드는 늘 천부적인 운동선수였다. 그의 아버지가 전직 프로 축구선수일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인 그리 마리타 브라우트 Gry Marita Braut도 전 7종 경기 챔피언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 그는 지금의 괴물 같은 육체적 존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빼빼 말랐었어요.” 당시 브뤼네 FK의 코치였던 알프 잉그베 베른트센은 유스 리그까지 그를 훈련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란드는 타고난 재능과 비정상적일 만큼 헌신적인 태도로 곧 자신보다 한 살 이상 많은 아이들과 플레이했다. 베른트센이 홀란드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홀란드는 강하고 빠른 두 명의 센터백과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움직임이 영리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를 얻지 못하니까요.” 베른트센이 직접 촬영한 동영상 중 많은 클립을 여전히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데, 홀란드는 수비진 사이로 숨어 크로스에 도달하거나 가까운 거리에서 골키퍼를 지나쳐 슛을 날린다. 지금 그가 플레이하고 있는 방식과 마찬가지로.홀란드가 말한다. “저는 여전히 고향에서 열세 살 때 했던 것과 똑같은 걸 하려고 노력합니다. 여전히 그때와 똑같은 달리기를 하고요. 열세 살 때 동영상을 찾아보면 지금의 저와 똑같을 거예요.” 많은 프로 운동선수 부모와 달리 홀란드의 아버지 알피는 홀란드의 급성장하는 축구 커리어에 많은 압력을 가하는 대신 거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알피는 홀란드의 형(아스토르 Astor)을 훈련시키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가 내 아들이었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저도 아스토르도 그 상황을 잘 소화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엘링은 형보다 다섯 살 어렸는데 게임을 하고 싶어 했고 열정이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뒤에 빠져 있었죠. 특히 조직적인 훈련과 경기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전 한마디도 보태지 않았죠.” 홀란드의 전 코치인 베른트센은 축구선수를 네 개의 기둥 위에 세운 건물로 묘사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 하나는 기술, 하나는 전술, 하나는 체력, 마지막 하나는 정신력입니다. 만약 좋은 선수라면 열네 살이나 열다섯 살쯤에 이 네 가지 중 두 가지를 갖추고 있어요. 네 가지 중 세 가지가 있다면 매우 유망한 정도죠. 우리는 엘링이 기술, 전술, 정신력 면에서 매우 훌륭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가 열서너 살 즈음에 갖추지 못한 유일한 부분은 피지컬이었어요.” 그러나 홀란드의 형과 그의 부모를 보며, 브뤼네 FK의 코치는 그가 결국 성장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가 넘어지면 난 계속 이렇게 말했어요. ‘그냥 좀 더 기다리면 돼. 4년, 5년 후면 넌 그들보다 훨씬 커지고 강해질 거야. 괜찮아’라고요. 지금 그는 네 개의 기둥을 다 갖췄죠.” 홀란드는 열여섯 살 즈음에 급격하게 성장했다. “솔직히 매일의 제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이 먹는 것이었어요. 왜냐면 굉장히 빨리 자라고 있었거든요. 몸의 여러 부분에서 성장통을 극심하게 겪었습니다.” 그는 경기장에서도 계속 성장했다. 열다섯 살에 브뤼네 FK에서 프로로 데뷔했고, 이듬해에 노르웨이 1부 리그인 몰데와 계약했다. 우연이라 할 수는 없지만, 당시 몰데의 감독은 노르웨이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트라이커였던 올레 군나르 솔샤르였다.(알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늘 말했죠. ‘만약 네가 그에게 배울 수 없다면…’”)몰데에서 솔샤르는 홀란드가 최고의 포식자다운 습관을 기르도록 도와주었고, 마무리 및 움직임의 미묘한 세부 사항에 중점을 두고 가르쳤다. “그가 내게 가장 먼저 한 말은 ‘너는 헤딩하는 법을 모른다. 그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였어요.” 홀란드가 솔샤르의 말을 떠올린다. 연습 기간 동안 솔샤르와 보조 코치는 홀란드가 헤딩으로 골을 넣을 수 있도록 크로스로 공을 보내주는 연습을 계속했다. “내가 몰데에 있던 전 기간, 2년 내내 우리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건 정말 좋은 방법이었죠. 왜냐면 나는 볼을 (머리로) 맞추지 못했는데, 지금은 머리로 골을 넣고 있으니까요. 그분들에게 감사해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느린 시작 이후 홀란드는 몰데에서의 두 번째 시즌 만에 30경기에서 16골을 기록했다. 곧 유럽 전역의 모든 클럽에서 그를 향한 접근이 시작됐다. 전직 프로 선수를 아버지로 둔 그 당시까지의 장점은, 홀란드와 알피가 잠재적인 이적에 대해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3년, 4년, 5년 후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알피가 짚는다. “알다시피 ‘몰데에서 태클을 못 한다면 유럽 리그에서도 태클을 못 하겠죠.” 독일의 바이어 레버쿠젠과 호펜하임에서 벨기에의 브뤼헤와 겐트, 심지어 그의 아버지가 뛰었던 클럽 중 하나인 영국의 리즈 유나이티드에 이르기까지, 구단들이 홀란드에게 관심ERLING BRAUT HAALAND 전 상당 부분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 같아요. 집중하고, 준비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축구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홀란드는 다음 목적지를 똑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약간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벤치에 앉아 있는 것보다 젊은 선수의 경력을 더 빨리 정체시키는 방식은 없다. “저는 몰데에서 뛰는 동안 심리학자와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경험을얻는 유일한 방법은 게임 안에 들어가서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홀란드가 말한다. “나는 조금이라도 일찍 경험을 쌓고 싶었고 그러려면 게임을 해야 했죠. 언제까지나 벤치에 앉아 있는 곳으로 갈 수는 없었어요.” 2019년 1월, 홀란드는 챔피언스 리그에 막 진출한 레드불 잘츠부르크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오스트리아 팀 중에서는 우세할 뿐 아니라 유소년 선수들 사이에서 유명하고, 마침 스트라이커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홀란드는 미나미노 타쿠미와 황희찬 같은 유동적인 공격진에서 단 23경기 만에 25골을 터뜨리며 실력을 폭발시켰다. 하지만 그해 가을, KRC 헹크를 상대로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을 치르기 전까진 상황을 제대로 바꿔버린 경기라고 할 수 없다. 이 경기에서 홀란드는 전반 시작 2분에 득점하고, 34분에 다시 득점하고, 45분에 다시 득점했다. 전반전 해트트릭. 클럽 축구의 가장 큰 무대라 불리는 곳에서 치른 가장 멋진 데뷔전이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장면은 마치 어떤 선언과도 같았다. 홀란드는 챔피언스 리그에 일종의 집착이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노르웨이 국가를 알람으로 썼고, 과거에 올린 어떤 동영상에서는 그냥 운전을 하면서 국가를 BGM으로 듣고 있었다.(당신은 어쩌면 이게 왜 ‘탈감각 훈련’의 성공적인 예라는 건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신경의 근원이 되는 것을 차분함 또는 나아가 더 강해지도록 하는 근원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홀란드는 그때를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날이었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가족은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있었고, 경기가 끝난 후 일상적인 약물 검사를 받고 나온 홀란드는 선수 라운지에서 가족들과 재회했다. 알피가 설명한다. “밤 11시 반쯤이었습니다. 우리는 ‘좋아, 집에 가서 좋은 맥주와 좋은 와인을 마시자’고 했어요.” 홀란드는 가족들을 태우고 직접 운전해서 집으로 갔다. 하지만 거기 남아 축하하는 대신 홀란드는 새벽 1시에 다시 차를 몰고 트레이닝 센터로 돌아가 회복 루틴에 집중했다. 알피가 말한다. “그때 우리는 그가 진지하다는 걸 깨달았어요.”홀란드 역시 그 게임을 터닝 포인트로 보았다. “경기가 끝난 후 생각했죠. ‘좋아, 그럼 다음은 뭐지? 여기서 멈출 수 없어. 이제야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어. 난 실력을 보여줄 거야’라고요. 3일 정도 후에 다른 게임이 있을 것 같았어요. 저에겐 굉장히 중요했죠. 제가 단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그 정도로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거든요.” 홀란드는 모든 걸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새벽 3시쯤, 아드레날린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는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게임이 끝난 후부터 스마트폰의 알림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에 일어난 일들은 약간 폭발적이었어요.” 그가 말한다. 그의 데뷔 소식은 축구계 전체에 일파만파 퍼졌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치솟았다. “그때가 ‘오, 와우, 미쳤어. 이건 완전 넥스트 레벨인데’라는 걸 안 시기예요. 뭐에 취한 것 같았어요.” 홀란드는 알림을 꺼버렸다.


헹크 경기가 돌파구라 한다면, 그건 홀란드가 득점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라기보다(그보다 앞서 이미 많은 골을 넣기도 했으므로) 그가 그것을 보여준 무대 자체 때문이었다. 그의 순수한 볼 결정력 말이다. 챔피언스 리그 데뷔를 앞둔 또 다른 10대들에겐 기회가 많이 줄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많이 그랬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문가를 놀라게 하고 수비진을 공포에 떨게 하는 홀란드의 특징은 바로 그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뒤엎어버릴 수가 없다는 것. 2019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홀란드는 후반 교체 투입돼 23분 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프리미어 리그 데뷔 전적: 2골. 최종적으로 홀란드는 일곱 번의 각 리그 새로운 클럽 데뷔전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했다. 베른트센은 말한다. “그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그는 누구를 상대로 플레이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죠.” 자신감이란 참 이상한 것이다. 운동선수들이-최고의 스트라이커라면 말할 것도 없이-다른 어떤 것보다 더 갖춰야 할 특징이다. 많은 경우 자신감은 핵융합이다. 자급자족이라고나 할까, 목표가 목표를 낳고 더 큰 목표가 또 더 큰 목표를 불러온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자신감의) 상실이 한 시즌 전체, 시간이 지나면 결국 경력 전체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프리미어 리그의 역사만 보아도 회복에 실패하고, 방황하고, 절뚝거리게 된 몸값 비싸고 존경받던 스트라이커들로 가득하다. 의심이 점점 강해지는 데는 많은 정황이 필요하지 않다: 단절, 부상으로 인한 부진, 개인 생활의 문제. 그러나 홀란드는? 그는 의혹이 사라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로니 오설리번이나 스테판 커리처럼 홀란드는 광적인 노출에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더 번창하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그가 종종 사이보그로 의심을 사는 것이다. 그는 불안정하지 않아 보인다. “압박 상태에 있는 걸 좋아해요. 도전을 좋아하죠.” 홀란드가 태평하게 말한다. 그 상태에 도달하는 방법은 그리 쉽지 않게 들린다. “전 상당 부분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 같아요. 집중하고, 준비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축구선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온 것은 아니다. 홀란드는 대부분의 사람보다 게임의 정신적 측면에 더 집중했다. 이젠 그의 시그니처가 된 골 세리머니가 몇 년 전부터 주목받았는데, 마치 명상을 하는 듯이 연꽃 자세로 미끄러져 눈을 감는 것이다. 많은 모방자(이제 FIFA에서도 이 자세를 할 수 있다)의 흐름 속에서 그의 명상 연습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전 정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긴장을 풀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스트레스는 누구에게나 좋지 않잖아요. 스트레스 받는 것을 싫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명상의 개념은 이런 종류의 생각 자체를 놓아버리려고 노력하는 건데요, 개인차가 있겠지만 저에게는 정말 잘 맞았어요.”홀란드는 명상과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자기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명상을 시작하게 됐다.(알피에 따르면, 그는 심지어 축구 외적인 면에서도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다.) 그는 저녁이면 종종 블루라이트를 차단하는 안경을 쓴다. 같은 이유로 그는 밤에는 와이파이를 끈다. 홀란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저는 정말 수면에 집중합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면일 거예요. 잠을 그저 많이 잔다는 의미가 아니라 숙면을 취하는 거죠. 직접 만나면 홀란드는 일종의 요가적인 평온함을 발산한다. 일상이 수련인, 아니 이미 수련의 경지에 다다른 요기 같다. 실제로 그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초월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거의 승려처럼 훈련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외출을 많이 하지 않는다. FIFA 온라인 게임도 하지 않는다. 영화도 많이 보지 않는다. “‘그럼 주로 뭘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데요, 저는 정말로 별로 많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를 하고 여기로 와요. 그런 다음 물리치료를 받습니다. 그럼 하루가 거의 끝난 거예요. 집에 가서 긴장을 풀고, 다음 훈련을 준비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잠을 자요.” 일부 선수들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자주 하곤 하는 시각화 훈련, 이미지 트레이닝도 그는 하지 않는다. “경기 전에 경기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저는 어제 일어난 일이나 내일 일어날 일을 생각하는 대신 지금 여기, 오늘을 살려고 노력하죠.” 요가 명상과 마음 챙김의 핵심 원칙 중 하나는 부담을 덜어내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풀어주고, 화나거나 속상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을 놓아버리고 지금을 감사하는 것이다. 금욕주의자가 소유욕을 버리는 방식처럼 자기 의심을 떨쳐버리는 그의 능력은 홀란드의 큰 장점 중 하나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고 몸값이 높은 운동선수 중 한 명이자, 수백만 명의 팬과 그의 국가 전체의 희망을 떠안은 선수인데, 그는 그저 그런 사실들을 접어버린다. 마치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처럼. “때때로 나는 정말…, 아, 이 말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모르겠네요.” 당신만의 세계? 그가 웃는다. 그리고 동의한다. “이 세계엔 없어요.”


노르웨이에 ‘인생은 매일 빛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어요. 어떤 날은 다른 날보다 더 나쁩니다. 인생은 그런 거죠. 제가 이거 하나는 정말 잘하는 거 같아요. 어떤 일들을 그냥 떠나보내는 것.
맨체스터 시티가 지난여름 엄청난 연봉(타블로이드에 실린 숫자를 믿어보면, 주당 86만5천 파운드)에 홀란드를 영입한 것은, 일부 이런 계산에서다. 맨체스터 시티는 지난 5년 동안 영국 축구에서는 지배적인 팀이었지만, 아직 유럽 축구에서 가장 탐나는 상을 가져가는 데는 실패했다. 2016년 펩 과르디 올라가 감독으로 클럽에 합류한 이후, 맨체스터 시티는 매년 녹아웃(토너먼트) 단계에서 불명예스럽게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이상한 전술적 선택, 자신감 부족, 때로는 그냥 불운의 팀으로 명성을 얻었다. 정신 면에서 무언가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홀란드와 계약하는 것은 많은 면에서 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초고연봉으로 조직된 각 선수들로 이루어진 거의 완벽에 가까운 팀에 누락되어 있었던 임상 수준에서의 끝내기-이었다. 나는 홀란드에게 이 결정적인 시점에 맨체스터 시티가 정신적으로 뭔가 부족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가끔 작년에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로드리고가 득점하는 장면-아센시오가 헤딩으로 놓친 공이 로드리고의 다리를 맞고 골문으로 들어가던 순간-에 실제로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말한다. “마드리드가 예전에 우승한 적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그런 게 정신적으로 준비된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전 잘 모르겠네요. 맞을 수도 있겠죠.” 그런 게, 일반적으로, 그를 당황시키지는 못한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트로피를 가져가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제 목표는, 바라건대 챔피언스 리그 우승입니다.”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긴 했으나, 아스날의 마르틴 외데가르드, 나폴리의 레오 외스티고르, 브렌트포드의 크리스토퍼 아예르와 같은 차세대 인재를 보유하고 있는 그의 고향 노르웨이에서도 비슷한 기대가 있다. “노르웨이는 작디작은 나라예요. 인구 5백50만, 그보다도 적을걸요. 하여간 큰 나라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여러분은 다시 한번 월드컵에서 작은 나라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것들을 보시게 될 거예요. 우리가 (2026년에) 예선을 통과하길 바라요. 그게 그들과 함께하는 현재의 가장 큰 목표예요. 언젠가는 노르웨이에서 녹아웃 게임을 할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기자회견을 할 당시 홀란드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21골을 기록해, 득점 기록 2위인 잉글랜드 주장 해리 케인보다 8골이 더 많았다. 전례 없는 기량 급강하나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음으로써, 그는 아직 득점 순위를 매길 기회가 계속 열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골든 부트 레이스를 꿰찼다. 그가 이대로 간다면 그의 이름은 올 연말이면 축구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자 개인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거론되는 이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그가 언젠가 발롱도르를 받는 것에도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다들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 거예요. 저와 제 팀이 정말로 잘 플레이하고 있다면 전 잘될 것이고, 트로피를 획득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런다면 아마 목록에 오르겠죠. 케빈 더 브라위너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는 3위였지만, 저는 그가 상을 받을 만했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이런 종류의 생각은 할 수가 없는 거죠.” 홀란드를 지켜보면서 가끔 어리둥절해지는 부분은 그가 얼마나 젊은지를 돌이켜볼 때다. 현실적으로 그는 지금 수준으로 10년 이상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벤제마를 보세요. 벤제마는 지금 서른다섯 살인데, 제 생각에는 심지어 (지금이) 더 잘하는 것 같아요.” 홀란드가 말한다. “그래서 저도 12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어느 아르헨티나 선수의 경력이 마지막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세계 축구에서 가장 뛰어난 공격수인 홀란드와 킬리안 음바페가 다음 10년 동안 발롱도르 또는 클럽 축구의 가장 큰 무대를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둘 다 각자의 나이에서 이미 메시와 호날두를 능가했다. 그렇다면 여기가 아마도 스포츠계에서 가장 큰 경쟁을 보기 위해 누워야 할 명당일 테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할 것이다. 홀란드가 모든 프리미어 리그의 득점 기록을 갱신하는 것을 방해할 유일한 위험 요소는 이미 홀란드가 어느 정도는 경험한 부상이다. 그의 아버지 알피는 일련의 무릎 부상으로 인해 서른 살에 은퇴해야 했다. 나는 그가 그걸 걱정하는지 물었다. 모든 형태의 취약성에 대해. “걱정이나 하고 돌아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서요. 다칠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요. 부상은 우리 일의 거의 일부나 다름없어요. 아마 제 인생에서 다시 부상을 입게 되겠죠.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축구 경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요. 위험한 스포츠잖아요.” 그는 그가 거의 모든 일을 대할 때와 같은 종류의 침착함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애매한 미소, 크고 맑은 눈, 1990년대 샴푸 광고에서 나온 것처럼 빛나는 머릿결. 이것이 바로 홀란드의 힘, 살아 움직이는 사이보그다. “노르웨이에 ‘인생은 매일 빛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어요. 어떤 날은 다른 날보다 더 나쁩니다. 인생은 그런 거죠.” 홀란드가 말한다. “제가 이거 하나는 정말 잘하는 거 같아요. 어떤 일들을 그냥 떠나보내는 것, 그리고 어쩔….” 홀란드가 망설였다. 그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부적합한 단어를 쓴 적이 있어 이제는 말을 조심하고 있다. “긴장을 푸는 거예요. 인생을 즐기자. 왜냐하면 인생은 짧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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