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호텔 앞에 펼쳐진 뷰

2023.04.15김은희

방 안에만 있겠어요.

destinationㅣLA Conrad Los Angeles
nationㅣUSA
architectㅣFrank Gehry
언젠가 건축만 짚어 여행한다면 프랭크 게리를 지나칠 수 없겠지. 꿈에서 건져 올리는 걸까, 허공에 휘저은 듯한 손짓을 현실로 만드는 건축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댄싱 하우스, 비트라 뮤지엄, 루이 비통 재단… 스페인에, 체코에, 스위스에, 프랑스 등등에 게방 안에만 있겠어요. 리가 그려 넣은 선을 향해 매번 같다고 말한다면, 그는 어제의 눈동자 색을 잊은 사람이다. 게리는 건축 한 다발이 들어설 그곳의 공기를 실처럼 뽑아 뜨개질한다. 게리가 기워내는 유선과 곡선과 직선은 저마다의 옷깃대로 나부끼는데, 이곳 콘래드 LA에서는 그 선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게리가 설계해 2003년에 준공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과2022년에 세운 빌딩 더 그랜드 The Grand가 조우한다. LA 시티 프로젝트로 완성된 더 그랜드는 선셋 대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헤드램프 빛처럼 이리저리 뻗어 있고, 그 안에 자리한 호텔 콘래드 LA에서 보이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차 밖으로 흐르는 음표처럼 대지를 휘감는다. 그 음표의 이마가 보이는 호텔 10층 테라스에 앉아 햇살 따라 변하는 굴곡들로 시간을 가늠해본다. 이것이 게리의 지휘로구나. 방 밖으로 나선다면 호텔 코앞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 들어서보기를. 전현직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니 총감독들과 함께 음향적 내실도 세심히 다진 홀의 개관 공연곡 중 하나, 말러 교향곡 제2번 ‘부활 Resurrection’을 행진곡 삼아서.

destinationㅣGleneagles Townhouse
nationㅣScotland
architectㅣ3DReid
1851년, 어느 스코틀랜드 백작은 이곳에 앉아 1백만 파운드쯤을 저금했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절벽 위 창이 큰 집을 사기 위해 잠시 빌리러 왔을지도. 은행원과 고객이 촉감 좋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우아하게 줄다리기를 했을 이 자리에, 이제는 실력 좋은 바텐더와 놀라운 재미를 찾는 여행객이 앉아 탐미한다. 더 스펜스 The Spence, 유서 깊은 스코틀랜드 은행 본사에서 호텔로 거듭난 글렌이글스 타운하우스의 다이닝 바 풍경이다. 스코틀랜드 최초의 돔 형태 천장 아래 대형 중앙 계단이 흐르며, 묵직한 기둥이 공간을 떠받치는 네오클래식의 전당. 1795년에 제임스 크레이그가 디자인한 이 고고한 건축물은 영국 건축의 새로운 세대 3D레이드를 만나 2022년에도 빛난다. 단단한 타일 바닥, 계단,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벽난로, 오크 도어, 텔링 데스크였던 은행 창구의 바 형태 등 시간이 지날수록 멋스런 클래식이 여전하며, 비밀스런 금고는 짐과 테라피 시설 등 웰니스 장소가 되는 식의 섬세한 변화에 이곳만의 숨결이 이어지고 있다. 요란한 광고 대신 우아한 공간으로 신뢰를 전했다던 그 옛날 은행의 비기 역시도. 방 밖으로 나선다면 호텔 앞 세인트 앤드루 광장을 둘러보거나, “광장 위 Above The Square” 호텔의 루프톱 바 램프라이터 Lamplighters에서 고전과 현대가 뒤섞인 광장을 한눈에 품어보길. 호텔 옥상을 장식하고 있는 코린트식 기둥이자 1700년대부터 이 건축을 지켜온 6개-각각 농업, 제조업, 상업, 과학, 건축, 탐색을 의미하는-조각상의 곧은 등도 함께.

destinationㅣAnantara Plaza Nice
nationㅣFrance
architectㅣJean-Paul Gomis

1848년의 니스는 어떤 풍경이었을까. 이곳 아난타라 플라자 니스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자신 앞 거리를 걷던 리넨 수트 차림의 중년, 분홍색 스윔 팬츠가 깜찍했던 수영장의 소년에 대해 읊어줄 수도 있을 텐데. 2022년에 새로이 오픈한 아난타라 플라자 니스는 1848년에 문을 연 도시 최초의 고급 호텔, 호텔 드 프랑스 Hotel De France의 본거지다. 장폴 고미스가 자신의 철학 “파사드의 질적 복원은 그간 파사드에 입힌 다양한 부가물을 지우는 것”을 구심점으로 니스 전통 호텔을 깨끗이 닦아냈다. 기품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을 이어가되 덜어내는 미니멀리즘을 통해 부드럽게 풀 먹인 옷깃처럼 청명해졌다. 호텔 앞에 펼쳐진 바다는 1백여 년이 흘러도 변함없어, 하염없이 바라봐도 지겹지 않도록 발코니와 루프톱 테라스를 단장했다. 인테리어는 1983년 영국 역사상 처음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한 셰프 피에르 코프만, 아마 셰프의 별 반 개쯤은 레스토랑을 30년 앞서간 듯 지금 봐도 세련된 인테리어로 채운 이 디자이너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데이비드 콜린의 스튜디오가 담당했다. 방 밖으로 나선다면 호텔 바로 앞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영국인의 산책로’. 니스로 휴양 온 영국인들이 자금을 투자해 이름 붙은 이 길을 걷거나, 혹은 앉아만 있어도 360도 파노라마 뷰가 펼쳐지는 호텔의 루프톱 레스토랑 씬 바이 올리비에르 SEEN by Olivier에서 지중해의 신선한 굴, 성게, 블랙 트러플로 만든 니스 스타일 요리를 맛봐도 좋겠다.

destinationㅣHoshino Resort KAI Yufuin
nationㅣJapan
architectㅣKuma Kengo
이곳에서는 온종일 짚을 꼬아봐야겠다. 연필깎이 대신 작은 칼로 삐뚤빼뚤 연필을 깎듯. 내질러가는 지름길 대신 빙 둘러 걷듯. 오가는 파도를 열세 번쯤 세다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듯. 정수리 열기를 식히는 무심한 시간을 호시노 리조트 카이 유후인에서는 유유히 즐길 수 있다. 카이 유후인이 자리한 일본 오이타현은 오이타라는 지명이 ‘큰 논’이라는 의미일 만큼 논이 많고, 그 논이 계단식인 점이 돋보이는 지역이다. 산간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듯 논이 차곡차곡 쌓여 있고, 찰랑이는 물 위로 석양과 안개와 금빛 이삭이 오간다. 자연과의 조화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건축가 쿠마 켄고가 이 땅의 기운과 민낯을 그대로 담아낸 것은 어쩌면 필연일 터. 밀짚으로 만든 바구니에 반딧불이를 길러 한밤의 등불로 삼았던 오이타 전통을 따라 반딧불이 바구니를 닮은 전등이 호텔을 은은히 밝히고, 지역 전통 짚이자 독특한 감촉에 부드러운 향기가 풍기는 ‘시치토이’를 직접 꼬아 자신만의 작은 기념품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호텔 액티비티로 준비돼 있다. 손을 모아 짚을 꼬는 일을 기도하는 모습이라고도 한다는데, 이곳에서 짚을 더듬으며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 빌자니 투박한 소원이나 별수 없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만 바랄 수밖에. 방 밖으로 나선다면 유후인에 왔는데 온천을 즐기지 않을 수가. 후지산을 닮아 오이타의 후지산이라고도 불리는 유후다케를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노천탕에서 뜨겁고도 시원하게.

피처 에디터
김은희
이미지
아난타라 플라자 니스, 콘래드 로스앤젤레스, 글렌이글스 타운하우스, 호시노 리조트 KAI 유후인, 로즈우드 상파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