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그래픽 아티스트 베르디가 서울을 좋아하는 이유

2023.05.02한재필

그래픽 디자이너 베르디와 스트릿 북 <All Gone>을 만드는 마이클을 서울에서 만났다.

GQ 오늘이 두 분이 함께하는 몇 번째 사인회인가요?
MK 1월에 파리에서 처음 시작했어요. 그다음은 홍콩이었고 한국 다음으로는 도쿄와 오사카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로스앤젤레스로 갑니다.
GQ 바로 전 홍콩에서 사인회는 어땠어요?
VD 팬데믹 이후, 처음 홍콩에 갔어요. 홍콩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많은 에너지를 얻어 왔어요.
GQ 다양한 도시를 다니며 일 하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VD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자주 못 갔어요. 그래서 이렇게 잠깐이지만 해외 나가는 것도 기분이 좋아요.
MK 저는 다양한 세계를 방문하면서, 각 나라의 차이를 이해하게 돼요. 이탈리아의 작은 섬과 미국의 큰 도시가 어떻게 다른 지 같은 것들이요. 모두가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어요. 모두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언어를 쓰지만 좋아하는 문화의 모습은 비슷해요. 그래서 다양한 나라를 방문하는 건 정보를 수집하는 것 같아요. 또 어디는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지만 다른 곳은 줄 서는 것을 안 좋아하기도 해요. 몇몇 도시에서는 책을 사지 못 해도 그냥 저를 만나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어요. 냅킨이나 몸의 어딘가, 어디든 상관없이 제 사인을 받으러 오기도 해요. 저는 이런 만남이 너무 행복해요. 핸드폰으로 보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거든요. 여행은 사람과 연결되고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에요.
GQ 여행이 새로운 창조의 과정 중 하나인 걸까요?
MK 맞아요. 영감을 받아요. 저는 홍콩, 서울, 도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머리와 에너지가 굉장히 환기된 기분이에요. 사회에 더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책을 만들 때, 제가 유럽 중심적이고 파리지앵의 의견, 파리지앵이 원하는 것에 갇혀 있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다시 세계를 여행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열린 마음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해요. 사무실에서만 머무른다면, 새로운 것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지 못했을 것 같아요. 다시 돌아오는 원 같은 관계예요. 책을 만들고, 홍보하고, 또 여행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서 다음 책을 쓰죠. 여행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GQ 새로운 도시를 갈 때는 어떤 부분에서 가장 설레요?
VD SNS상에서 많은 분들이 저를 좋아하지만 제가 직접 느끼지는 못 해요. 하지만 해외에 나가 팬들을 만나면 애정을 느낄 수 있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제가 하는 작업이 틀리지 않고 잘 전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서 또 힘을 얻어서 또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해요.
GQ 많은 나라를 다니면서 팝업과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아요?
VD 당연히 힘들죠. 이동 중에 디자인도 하고 다음 계획도 생각하고 이메일도 확인해요. 힘들지만 일이 계속 많았던 게 아니어서 지금처럼 힘든 게 너무 좋고 더 재밌는 일을 하고 싶다고 날마다 생각해요.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뻐요.
GQ SNS를 보면 항상 웃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힘들어도 항상 웃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이 있어요?
VD 항상 의식한 것은 아니에요. 다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좋은 에너지를 얻었고 저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발산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그래픽과 디자인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의식해요. 그러다보니 자동으로 밝은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일본 디자이너들은 꽤 쿨 한 이미지에 차가운 사람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 같은 밝은 사람도 그래픽이나 패션 쪽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디자이너이기 전에 저는 저 자신이잖아요, 그래서 이게 제 색이라고 생각해요.
GQ 많은 분이 베르디를 스트릿 브랜드로 인식하기도 해요.
VD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이니까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없어요. 명확한 웹사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소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브랜드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도 기쁘고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서 서포트해 주는 것도 기뻐요.
GQ 본인 스스로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VD 더 젊었을 때는 ‘아티스트는 아티스트고 브랜드는 브랜드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티스트 베르디도 저이고 브랜드 베르디도 저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만들어 낸 결과물들이 다 반영되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저 자신을 어떤 카테고리에 가두고 싶지 않아요. 일단 저를 소개할 때는 그래픽 아티스트라고 소개하지만 그거에 대해 굳이 고민하지는 않아요.
GQ 작업 방식은 어때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계산하고 만드나요? 아니면 우연한 영감의 결과물일까요?
VD ‘새로운 걸 만들어야지’하고 만들기 보다는 친구와 놀거나 가족과 여행을 갔을 때 그냥 우연히 생각나는 것, ‘이런 것 좀 하고 싶다.’하고 떠오르는 것이 많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생각 하기보다는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GQ 작업에는 보통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고 해요? 그리고 그 메시지가 어떤 분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나요?
MK 담고 싶은 메시지는 ‘감사합니다’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문화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All Gone>을 첫 번째 에디션부터 가장 최근 에디션까지 한 번도 안 빠지고 구매해서 소장하는 분들이 있어요. 우리를 응원해 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이 문화에 관심을 갖게 해준 사람이 저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담고 싶은 메시지는 ‘감사합니다’예요. 또 베르디에게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요. <All Gone>을 17년 동안 만들면서 커버 아티스트가 제작 과정에 이렇게 깊이 참여한 건 이번에 처음이에요. 커버 디자인부터 모든 제작 과정에서 저를 도와줬고 사인회도 여러 번 함께 다녀주었어요. 그래서 이 책의 인기를 더욱 올려준 베르디에게 큰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VD 스트릿이라는 컬쳐가 돈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즐길 수 있거든요. 그런 컬쳐 안에 있으면서 저는 성장해 나갔고 여러 사람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할 때보다 지금 여러 가지를 많이 할 수 있게 된 거잖아요.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힘들었을 때가 있었는데, 이런 비슷한 걸 겪고 있는 사람이나 겪었던 사람에게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GQ 두 분 모두 스트릿 신의 다양한 분들과 많은 함께 작업을 하고 있죠?
MK 맞아요. 지금까지 많은 분들과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친분이 생겼어요. 함께 일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있는데 그때 가장 좋은 결과를 낳았던 것 같아요. ‘어 이거 할까? 좋은데?’ 이런 대화를 통해 작업이 나오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그런 작업이 서로에게 가장 만족스러웠고요. 누군가 돈이나 비즈니스 측면을 보고 다가오면 오히려 작업도 잘 안되요.
VD 저는 일단 팬이었던 사람과 일할 수 있다는 게 기쁜 것 같아요. 좋은 영향을 많이 얻기도 하고 모르는 걸 많이 배우기도 해요. 그렇게 얘기를 하다 보면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해요. 근데 저는 이제 후지와라 히로시라든지 니고라든지 언더커버 조니와 같은 세대들의 다음을 더 이어 갈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많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GQ 많은 분과 작업을 하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VD 아무래도 좋은 관계의 사람과 작업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물을 낳는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엄청 유명한 사람과 협업을 해도 만난 적 없고 얘기를 나눠 본 적 없는 사람과는 좋은 결과물이 안 나와요. 역시나 직접 만나서 대화도 나눠보고 ‘나는 이런 기분으로 하고 있고, 나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만들고 있어’ 같은 부분이 엄청 신경 쓰인다는 걸 매번 느끼고 있어요. 자기 자신의 감정이 일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GQ 두 분의 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VD 진짜 자연스럽게 된 거예요. 3년 전 부터 제가 <All Gone> 팬이었는데 <All Gone> 표지에 제 그림이 나온다는게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팬분들과 함께 만날 수 있게 되는 것도 좋아요.
MK 서로에 대해 알고 서로 작업물에 대한 존경도 있어서 함께 협업하면 좋겠다고 생각 했어요. 3년 전에 베르디의 네트워킹을 담당해주는 친구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 자연스럽게 ‘같이 해볼까?’라는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시작은 파리 걸스 돈 크라이(Girls Don’t Cry) 팝업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였어요.
GQ 커버를 베르디의 두 캐릭터 ‘Vick’이랑 ‘Visty’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VD <All Gone>이 항상 표지를 두 종류로 제작하기 때문에 저를 대표하는 두 캐릭터 ‘Vick’이랑 ‘Visty’를 커버로 정하고 싶었어요.
MK LA 컨퍼런스를 통해서 베르디와 만났고 커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미리 생각해 둔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Vick’과 ‘Visty’였어요. 다양한 옵션들이 있었는데, ‘Vick’은 검은색과 하얀색의 시크한 시그니처로 다른 하나는 특별한 걸 하자 해서 ‘Visty’는 다양한 컬러를 써서 만들었습니다.
GQ ‘Vick’과 ‘Visty’의 탄생 배경도 궁금한데, 이름도 Verdy와 맞춰서 첫 글자를 ‘V’로 맞춘 거예요?
VD 저는 어렸을 때부터 캐릭터를 엄청 좋아했어요. 미키 마우스라던지 마리오라던지. 그리고 저도 그런 캐릭터를 갖고 싶어 했어요. 베르디의 V를 따서 먼저 Vick을 만들었고 Vick을 만든 후에 코로나가 터지고 색칠 같은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Vick은 흰색과 검정색으로만 만든 거니까 그래서 만든 게 VIsty예요. 이름도 Verdy의 V를 따서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예요.
GQ 앞으로 계획 그리고 스트릿 컬처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뭘까요?
VD 특별히 만들어 놓은 계획은 없어요. 지금은 어떤 디자인을 해도 눈에 띄니까. 제가 유명하니까 좋은 게 아니고 인기가 많아서 좋은 게 아니고 하입해서 좋은 게 아니라 진짜 제 작품을 하나의 아트로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서 좀 더 창의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MK 스트릿 문화 자체가 엄청 니치 했다가 지금은 완벽하게 메인스트림이 된 건데 이대로 영원히 남을 것 같아요. 저는 파리지앵인데, 어렸을 때 학교에 운동화는 절대 신고 갈 수 없었어요. 얼마 전까지도 파리 클럽은 운동화 신으면 들어가지 못했고요. 어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완전 차려 입었어야 했어요. 남자가 무슨 장난감을 사냐 이런 인식도 엄청 강했는데 이런 코드는 다 무너진 지 오래고 이제는 모두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어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이런 문화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해요. 영원히 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GQ 곧 한국 팬들을 만날 예정인데, 한국 팬들에게 짧게 인사 전해주세요.
MK 일찍부터 줄 서서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All Gone>을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그리고 이렇게 활기찬 도시를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큰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VD 저도 저의 아내도 한국의 문화를 좋아해요.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올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앞으로 한국에서 더 많은 활동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할게요.

 

    에디터
    한재필
    사진
    튠(T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