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과 리움에서 만났다. 그들은 끊임 없는 질문을 쏟아냈다.
“저희 집 대문은 항상 열려있었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 집에 찾아왔거든요. 어린 시절에 그런 걸 봐 와서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GQ 드디어 한국에 오셨네요. 기다렸던 팬들을 만나기에도 24시간이 모자라시죠.
LD 관객들을 제대로 가까이 만나서 대화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정이지만,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전주 그리고 서울에서 관객들을 마주할 때마다 정말 젊은 층이 대부분이어서 놀라고 있습니다. 왜냐면 유럽에서 프리미어 시사회를 하거나 지브이 Guest Visit를 하면 연령대가 굉장히 높거든요.
GQ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었죠. 이번에 <토리와 로키타 Tori et Lokita> 전회차 티켓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PD 역시 티켓 예매가 치열해서 현장에 젊은 층이 대부분이었군요!
GQ 그래서 제가 실패한 걸까요? 흐흐. 처음 오셨을 때 한국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LD 확실히 공항에서부터 에너지가 달랐어요. 사람들 간 터치도 다르고, 거리도 훨씬 가깝고요. 자유롭고 편안해 보여요. 형식을 벗어난 자유로움이 한국인에게서 느껴져요.
GQ 전주에서 맛있는 한국 음식도 드셨나요?
LD 저희 둘 다 무엇이든 많이 먹지는 못해요. 일정이 제일 힘든 날이 하루 있었는데, 그날 밤에 스케줄을 다 끝내고, 밤늦게 근처 한식 레스토랑에 가게 됐어요. 식당이 원래 문을 닫는 시간이었죠. 그런데 감사하게도 저희를 위해 특별히 문을 열어주셔서 굉장히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맥주도 마시고 식사도 했는데 아직도 그 느낌과 기억이 좋게 남았어요. 그걸 뭐라고 하죠? (통역사에게 묻는다.) 부침개? 전. 맛있었어요. 오, 물론 비빔밥도요.
GQ 전주, 서울 모두 영화 홍보 일정뿐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특별히 촬영 장소 요청을 리움으로 했어요. 저를 만나러 들어오시는 길에도 두 분이 작품을 보시느라 입구부터 한참 걸리셨잖아요. 하하. 인터뷰를 못 할까 봐 걱정했어요. 이동 내내, 보는 내내 질문이 끊이질 않더라고요.
LD 저희가 질문이 좀 많죠?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하얀 백자의 색깔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한국어로 뭐였죠. 달항아리. 그게 인간적이면서도 심플하고⋯,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흙으로 빚은 것인데도, 구름처럼 떠 있는 느낌이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어떻게 구름같이 둥둥 뜨는 느낌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인상적으로 봤어요.
GQ 전시명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인데요. 조선 시대 ‘군자’들이 추구했던 정신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다채로운 백자를 모아놓았어요. 어려움, 고난 속에서도 인간이 잊지 말아야 할 미덕, 진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감독님들의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피에르 다르덴) 감독님은요? 기억에 남는 백자 하나만 꼽는다면요.
PD 그냥 “미투”라고 하고 싶네요. 이 넓은 곳을 짧게 보고 어떤 게 내 마음에 든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아쉽거든요. 제 리듬으로는 솔직히 조금 빠르지만, 전체적으로 백자의 느낌들이 참 가벼워요. 오해할 수 있겠네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가벼움이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둥근 백자(달항아리). 극도로 치닫는 아름다운 가벼움을 어떻게 이렇게 심플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어요. 작년에 제가 살고 있는 동네 리에주 Liege에 한국 국립극단이 공연을 하러 와서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본 무용수의 몸짓이 생각났어요. 죽으면 저런 백자로 만든 관 안에 묻히고 싶네요. 물론 그전에 한국에 다시 또 오면 좋겠어요.
GQ 물론이죠. 우리에게는 늘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으니 감독님들의 신작 <토리와 로키타> 이야기를 해볼까요? 인터뷰하기 전에 두 번이나 봤어요.
LD 왜 세 번 안 본 거죠? 하하.
GQ 감독님들의 영화에서는 항상 음악이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몇 안 되는 트랙이 쓰였는데, 시칠리아 민요의 인상이 매우 강렬했어요. 가사가 매우 희한해서 복선의 장치인가 싶었죠.
LD 그것 때문에 의도적으로 선택한 건 아니에요. ‘알라 피에라 델레스트 Alla Fiera Dell’Est’라는 곡인데, 시칠리아 이민자들이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부르는 민요이자 어린이들이 언어를 습득할 때 배우는 동요예요. 보통 타국으로 이민 온 부모는 2세대에게 최대한 시칠리아어를 가르치지 않으려고 해요. 적응을 위해서 이민 온 나라의 언어를 첫 번째로, 그다음 영어를 가르치려고 하거든요.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되지 않죠. 2세대들이 현지 언어를 습득하고 열 살쯤 되면 그래도 자신의 뿌리와 모국어를 궁금해하니까요. 토리와 로키타 역시 이 노래로 연결되어 있었던 겁니다.
GQ 그래서 노래가 가지는 의미가 특별하군요.
LD 네. 가사에 반복이 많죠? 아버지가 시장에서 동전 두 개를 주고 사온 쥐가 고양이한테 먹히고, 그 고양이가 개한테 먹히고, 개는 사람한테 죽임을 당하고. 결국은 먹히고 먹혀서 다 죽죠. 사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죠.
GQ <토리와 로키타>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남매가 이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토리로만 받아들이기 쉬워요. 처음에는, 일부러 배경 지식 하나 없이 봤거든요. 토리가 로키타의 상처를 자기 옷으로 닦아주는 장면을 보며 문득 이질감이 들었어요. 남매가 너무 애틋하고 친한 광경에 묘한 괴리감을 느낀 거죠. ‘뭐지? 이 감정을 안고 영화를 봐야 하는 건가?’
PD 그렇죠. 토리와 로키타 같은 경우 그들이 맺고 있는 우애가 생존과 직결되어 있거든요. 물론 도시의 남매 중 사이가 좋은 경우도 있지만, 도시 가정은 대부분 안정된 공간이에요. 형제자매끼리는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싸움과 질투도 있고, 절친도 따로 있고요. 토리와 로키타는 피보다는 마음으로 연결된 남매입니다. (영화에서 그려지지는 않지만) 유럽으로 오는 난민선에서, 그리고 유럽에 도착한 이후 벨기에에서, 그들이 직면하게 된 적대적 생활 환경 속에서, 두 사람은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결되어 있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살아야 돼. 안전한 환경이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우애로 다져져 있어야 돼’라며 본능적으로 끈끈함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그래서 형(피에르 다르덴)과 같이 얘기를 한 게 있어요. 우정이야말로 이들의 진정한 안식처라고요. 갈 곳을 잃은 두 사람에게요.
GQ 뒷부분으로 갈수록 흥미로운 지점이 그거였어요. 첫인상으로는 로키타가 토리를 전적으로 보호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뒤로 갈수록 제 판단이 붕괴됐거든요.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네요. 하하.
PD 맞습니다. 완전 맞아요. 나중에 결국은 서로가 지켜주게 되는 거죠. 서로의 엄마가 되어주고요.
GQ 토리 이야기를 더 해볼게요. 다르덴 영화에는 소년들이 꾸준히 등장해요. 토리를 보니 자연스레 <자전거 탄 소년 Le gamin au vélo>의 ‘시릴’이 떠올랐어요. 비슷하고 또 다른 부분도 많은데요. 무언가를 지켜내야 하기에 불안하고, 그 감정은 소년에게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죠. 자전거를 타는 민첩성도 비슷하고요. 두 분이 보시는 소년들은 어떤가요?
PD 우선 말한 대로 둘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토리도 보호자 없이 유럽에 왔고, 시릴도 아빠가 버렸기 때문에 고아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인지 토리와 시릴 모두 나이에 비해 처세술에 능하고 에너지가 넘쳐요. 똑똑하고, 문제에 부딪혀 나가면서 해결책을 찾는다는 점에서요. 시릴은 결국 사만다라는 존재를 만나지만, 완전히 평등한 관계는 아니에요. 좀 더 시릴이 (토리에 비해서) 의존적이 랄까요. 토리와 로키타는 보다 평등한 우정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두 소년 모두 삶의 생생한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난관이 있어도 헤쳐 나간다는 면에서는 비슷한 것 같네요. 음, 그리고 토리는 자전거를 한 번밖에 안 탑니다. 사람들이 <자전거 탄 소년>을 떠올릴까 봐 일부러 많이 안 태웠죠. 흐흐.
GQ 자전거 탄 신이 한 번뿐이었나요? 지켜보는 내내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체감상 두어 번은 탄 것 같은데요. 지금도 심장이 두근거려요.
PD 오, 우리 둘도 촬영하면서 내내 놀랐어요.
GQ 뤽 다르덴 감독님이 1996년에 쓰신 책 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일수록 더 뒤로 빠져야 한다.최소한의 정보를 주고, 오히려 더 걷어내야 한다는.
LD 맞아요. 형님과 저는 어떤 걸, 어떻게 찍을지 항상 대화해요. 지금도 그렇고요. 주로 제가 일기장에 기록을 하죠. 특히 그때 그런 약속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PD 저희가 영화 <로제타 Rosetta>를 찍었을 때네요. 저희의 일과 직업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었죠. “보여주는 것만큼 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론 자체는 저희가 처음 이야기한 게 아니에요. 영화를 찍는 모든 사람의 고민입니다. 무언가 숨겨져 있으면, 서스펜스 Suspense가 있고, 드러내면 다음 장면이 무엇인지 기대하게 만들잖아요. 저희는 인물의 ‘얼굴’에 대해 고민이 많았죠. 가령 배우를 등에서 찍을까, 아니면 얼굴 안 보여주고 비스듬히 찍을까? 관객들이 배우의 눈을 바로 마주치지 않도록 해요. 배우의 눈을 보지 못하면 자연스레 ‘쟤는 무슨 생각하고 있을까?’, ‘쟤가 지금 무서울까?’ 같이 상상하게 되죠. 관객의 ‘기다림 모멘트’를 고려하는 거죠.
GQ 배우의 눈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배우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거군요.
PD 맞아요. 관객 입장에서 배우의 시선을 같이 따라가면서, ‘배우가 무서워한다’거나 ‘상대방을 알고 있다’ 같은 감정 따위를 읽도록 내버려두지 않고요. 기다리면서 ‘대체 뭐 하는 걸까?’ 생각하게 한 다음, 얼굴을 보여주는 방식. 그렇게 배우의 등에서부터 찍었을 때, 관객들은 자기만의 가설이 생겨요.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상황일 것이다’. 그러다 얼굴을 보여주면 ‘내 생각이 맞았네!’ 할 수도, ‘내 생각과 완전히 다르잖아’ 하고 놀랄 수도 있어요.
GQ ‘기다림 모멘트’는 기다림의 미학 같은 거네요. 토리가 로키타를 찾아가는 여정 내내 저도 따라서 긴장했어요.
LD 토리가 로키타를 찾아가는 장면은 저희 둘이 제일 고민했던 신이기도 해요. 로키타가 바로 안 나오잖아요. 장애물이 굉장히 많아요. 만나러 가는 과정이 너무 길어지면 갑자기 긴장감이 무너져요. 어디까지 관객들의 감정을 끌고 갈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며 편집한 장면입니다.
GQ 완전히 끌려갔어요.
PD 오프 카메라 Off camera에 이 공을 돌려야겠네요. 오프 카메라의 효과가 굉장히 커요. 소리는 들리는데 주변을 보지 못하니까요. 위험에 대해 자기만의 시나리오를 만들게 되죠. 편집할 때 길이를 제일 많이 바꿨던 게 그 부분이에요. 줄였다가 늘렸다가, 리듬을 찾기 위해서 수십 번을 바꾼 장면입니다. LD 마지막 결과물에서 정확히 38초 줄어들었어요. 그 리듬을 찾기가 참 어려웠어요. 그런데 형이 또 갑자기 너무 줄여서, 제가 안 된다며 다시 늘리자 해서는…
PD 그만! 이 이야기 그만하자고.
GQ 하하. 두 분은 토리, 로키타처럼 늘 함께 다니는 형제였나요? 문득 두 분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지네요. 한 가지 일을 오래 함께한다는 게 대단해요.
LD 평범한 어린 시절이었어요. 오랜만에 이야기하려니 새삼스럽지만 저희는 사 남매예요. 형과 둘째 누나, 저, 여동생이 있어요. 지금이야 세 살 차이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어렸을 때는 형이 잘 안 놀아줬어요. 왜 그랬지?(옆을 보며 묻는다.) 열다섯 살 때부터는 같이 축구도 해주더라고요. 제가 수능 보고 난 이후에 형님과 같은 연출가에게 연출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둘이 영화를 시작했죠.
GQ 처음에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살고 계시던 벨기에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고요. 두 분 모두 영화감독이 되고 난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여전히 이민자, 난민, 다양한 사회 계층의 모습을 담아내며 작업해올 수 있었던 배경은 뭘까요?
PD 전체 설명은 아니더라도, 하나의 이유는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 모두 청소년기를 산업화된 도시에서 보냈어요. 동네에는 돈을 굉장히 많이 버신 분들도 있었고, 발전된 문명도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노동자가 많았죠. 그분들 간의 끈끈한 연대감 같은 게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저희에게 알게 모르게 스며든 것 같아요.
LD 저희 집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어요. 아직도 생각나는 건, 부모님이 맺고 있는 친구, 인간관계가 무척이나 다양했어요. 돈 많은 사람뿐만 아니라 노동자, 상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집에 매일 찾아왔거든요. 어린 시절에 항상 그런 걸 봐 와서 저희 형제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GQ 두 분이 함께여야 하는 이유는요?
PD 저희가 원하는 작은 규모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항상 최소한 2명이 필요했거든요. 만약 저희가 하고 싶었던 게 그림이나 음악처럼 혼자 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둘이 같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