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5년간 전 세계를 누빈 N잡러의 여행 이야기

2023.06.23신기호

세 명의 여행가의 지구 한 바퀴

김병준 @lipkorea

N잡러 사진작가이자 여행자이기도 한 김병준이다. 5년간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와 지금은 제주도에 살고 있다. ‘난산리 다방’이라는 브런치 카페와 ‘1259 스튜디오’라는 독채 민박의 주인이자, ‘이기는 마케팅’이라는 마케팅 회사도 운영 중이다. 그러니까 뭐, N잡러다.
1백70만원 2016년이었다. 1백70만원짜리 중고 무쏘를 사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향했다. 예산에 맞추다 보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는데, 저렴하고 튼튼한 차 중에서 이 무쏘만 한 게 없었다. 여행 기간 2년 중 80퍼센트는 무쏘에서 자고 생활했으니, 이런 남는 거래가 또 어디 있겠는가.
5백만원 출발 경비는 5백만원 정도. 5백만원으로 유라시아를 횡단한다? 말도 안 되는 돈이었다. 여행 직전에 오토바이 사고가 크게 나면서 모아둔 경비를 전부 날린 탓이었다. 고민 끝에 그래도 가보기로 결정. 떠나기 전까진 패션 포토그래퍼로 일을 해왔으니, 여행 중간중간 일을 받아 화보 촬영을 하며 돈을 벌면 된다는 계획이었다. 마음 한편으론 출발 전, 돈 떨어지면 들어오자, 싶었는데 다행히 운이 좋아서 완주는 했다.

1만6천 킬로미터 2016년 10월부터 2018년 9월까지, 2년간 여행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호카곶까지, 총 21개국을 통과하며 1만6천 킬로미터를 달렸다. 무쏘는 무사했다.
아이슬란드 유라시아를 횡단하며 가장 좋았던 나라를 꼽자면 아이슬란드다. 아이슬란드는 또 다른 지구였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저녁마다 오로라를 마주할 수 있었고, 어디서 발하는지 모르는 빛의 향연은 그 자체로 웅장한 풍경이 됐다.
Sign 무쏘를 타고 여행하며 만난 여행자들에게 사인을 받았다. 여행자들은 무쏘 보닛과 문, 트렁크 곳곳에 방명록처럼 짧은 문구를 적어주었는데, 내용은 대체로 ‘안전 여행’이었다. 그중 “This too shall pass”,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뜻을 가진 문구를 가장 좋아한다. 여행 중 무쏘에 문제가 생겨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는데, 그때 도와준 친구가 적어준 문구다. 수백 번도 더 들었을 정도로 너무 잘 알려진 명언이지만, 위기 앞에 서니 다른 어떤 말보다 이 문구가 커다란 위로가 됐다. 지금도 때때로 당시의 기억을 꺼내 보곤 한다.
여행의 이유 당시 패션 포토그래퍼로 일하며 밤낮 없는 생활에 지쳤다. 촬영이 몰리는 기간엔 새벽 6시에 시작해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카메라를 들어야 했다. 이유라면 도피. 여행을 워낙 좋아했기에 언젠가는 여행을 떠나지 않겠는가 싶었는데, 생각 해보면 그 시기만 좀 당겨졌을 뿐이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경험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여행은 경험을 축약해 가져갈 수 있는 좋은 장치라는 생각이다.
다음 아내와 제주도로 내려올 때, 10년 뒤에는 다른 여행을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우리의 계획은 마을버스 크기의 차를 한 대 사서 전국 일주를 떠나는 거다. 일주가 끝나면 캐나다 북부, 옐로나이프로 넘어가 남미 끝까지 달리며 세계 곳곳의 여행자들을 만날 거다. SNS로 우리의 위치를 공유하며, 게스트도 맞이할 예정이다.

김현욱 @ukrideabike

이곳저곳 주인장 자전거와 아웃도어 관련한 소품을 만드는 브랜드, ‘히치 Hitch’의 대표다. 자전거 여행자들을 위한 웜샤워 Warm Shower 공간 ‘볼트하우스 Bolthouse’도 운영하고 있고. 성동구 둘레길에 ‘HBC Coffee’라는 카페도 열었다.
전국 여행 시작은 우리나라를 빙 도는 전국 여행이었다. 기간은 20일 정도. 자전거 여행에 대해서는 아는 게 일도 없어 그야말로 ‘0’의 상태에서 출발했다. 자전거도 MTB였고, 자전거용 가방이나 페니어도 몰라 백팩을 등에 메고 무작정 패달만 굴렸다. 찜질방 7천원, 밥 세 끼에 1만2천원. 하루에 이렇게 2만원씩 썼으니까, 당시 경비는 총 40만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젊었다.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 시작은 책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를 읽고서. 그 후로 지금까지 10개국 정도를 자전거를 타고 여행했다.
패킹 수화물 비용은 항공사마다, 또 공항 직원마다 다르다. 금액은 많으면 10만원 정도, 잘 찾아보면 내지 않기도 한다. 자전거 패킹은 직접 하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인천공항 지하에 가면 해주는 곳이 있다. 가격은 2만5천원 정도.

9천 킬로미터 가장 긴 여행은 미국에서 출발해 캐나다까지, 약 9천 킬로미터를 달렸을 때다. 기간은 미국에서 3주, 캐나다에서 3개월 정도 지냈다. 비자가 3개월이니까 꽉꽉 채워서 여행한 셈이다. 자전거는 2007년, 여행을 시작하면서 미국에서 샀
는데 그걸 작년 여름까지 탔다.
밀림 올해 떠난 태국 여행이 가장 힘들었다. 여행할 땐 주로 구글 지도를 이용하는데, 숲으로 안내 하길래 별 생각 없이 따라 들어갔다. 지름길이었다. 문제는 폐쇄된 지름길. 거기서 2시간 정도 갇혔다. 지형이 험하니 같이 간 여자친구의 자전거 바퀴는 모두 펑크가 났고, 우거진 수풀은 몸 여기 저기에 상처를 냈다. 체력도, 물도 다 떨어져 갈 때쯤 현지인이 나타나 도움을 줬다. 그는 우리에게 물과 과일을 챙겨주고 소독도 해줬다.
사람 남는 건 역시 사람이다. 자전거 여행자들은 ‘웜샤워’라고 부르는 커뮤니티를 이용한다. 쉽게 설명해 ‘무료 숙박’ 같은 건데, 자전거 여행자에 한해서 조건만 맞으면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 웜샤워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캐나다를 여행하며 길을 잘못 들었을 땐, 한 남자가 처음 본 나를 자신의 집에서 재워준 적도 있다. 호의는 인연으로 이어졌고, 2년 뒤 그 남성 이 한국에 왔을 때 나는 5일 정도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그렇게 연결 되는 인연이 꽤 많다. 그래서 가끔 여행의 이유를 물으면 “사람 만나러 간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여행을 돌아봐도 전부 그랬다.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조서형 @veenu.82

고생을 사서 하는 편집자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잡지 편집자다. 주로 기후 위기나 아웃도어 관련한 칼럼을 쓰고, 매거진 <1.5°C >를 만들고 있다. 오토바이, 자전거처럼 두 바퀴 달린 걸 타고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기왕이면 고생을 사서 하는 여 행을 더 좋아한다.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시작은 박민우 작가의 책 <1만 시간 동안의 남미>였다. 여행의 경험이라곤 수학여행이나 가족 여행, 교환 학생이 전부였는데, 이 책을 읽으니 이런 여행도 있구나, 싶었다. 더 자세히는 ‘고생스럽고 희한한 여행’. 성인이 되면 꼭 도전해 보자 마음먹었고, 스무 살 봄 서울에서 포항까지 스쿠터를 타고 떠나면서 어릴 적 그 꿈을 실행에 옮겼다.
베트남 베트남 하노이에서 1년을 산 기념으로, 호찌민에서 하노이를 잇는 해안도로를 오토바이로 여행하기로 했다. 예상 거리는 약 2천2백 킬로미터. 호찌민에서 1백25시시짜리 혼다 RS125를 3백 달러에 구입하면서부터 여행은 시작됐다. 기간은 10일. 경비는 1백40달러 정도 들었다.
사고 첫 번째 사고는 무이네 Mui Ne 근처 사막에서. 기름이 떨어져 오토바이를 끌고 15킬로미터를 걸어야 했다. 두 번째 사고는 그렇게 도착한 달랏 Da Lat 근처에서 일어났다. 접촉 사고를 당하면서 인중까지 꿰맸다. 베트남 친구의 도움으로 오토 바이를 무상으로 수리 받았다. 얼굴에는 커다란 밴드를 붙이고, 다리에는 깁스를 한 채 오토바이에 다시 올랐다. 다친 채로 도착한 달랏은 아름다웠다. 지대가 높아 풍광을 내려다보기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호수도 예뻤다.

주유소 사고로 인중을 꿰맨 탓에 얼굴이 크게 부었다. 거기에 밴드도 붙이고 다리에는 깁스까지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나를 불편해하는 시선이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그때부턴 바나나와 우유를 사 먹으며 최대한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그 시기, 바이크에 주유를 마치고 앉아 일기를 쓰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그림을 그려주겠다며 일기장을 달라고 했다. 그러 곤 얼마 뒤 돌아온 일기장엔 행복한 표정을 짓는 내 얼굴이 들어 있었다. 얼굴에 난 상처는 아주 작았다.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여행 같지 않은 여행을 하던 시기, 그 그림이 전환점이 됐다. ‘그래, 꽃 길은 원래 비포장도로야.’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여행의 이유 여행은 막 성인이 된 내게 도피인 동시에 해방의 세계였다. 너무 모르는 게 많아 뭐라도 좀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도통 아는 게 없으니, 뭘 좀 알아볼 요량으로 여행을 골랐다. 남들이 사는 모습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의 이유라면 뭐, 알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