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각자의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그걸 누구나 다 알진 못 한다.
“Each man kills the things he loves”
오스카 와일드의 시 ‘레딩 감옥의 노래’ 첫 구절이자, 독일의 문제적 음악가 피어 라벤이 파격이라면 한 수 위인 영화 <쿼렐리> 사운드트랙에 실었던 노래 제목. 마른 얼굴이 아는 얼굴의 귀를 물어뜯는 센슈얼한 앨범 커버(앤디 워홀이 작업했다)에 비해 멜로디는 의외로 서정적이어서 더 기억에 남았고, 안토니 바카렐로가 이 문장을 말하고 싶었다면 쇼는 비극적인 우아함으로 가득 차거나, 어떤 기억을 끄집어내서 베일 듯한 슬픔을 줄 거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이 노래는 쇼 중간중간 잉크 방울처럼 묻어 나왔고, 컬렉션 풀 영상 인트로에 단정한 서체로 등장했다. 생 로랑은 왜 베를린에 왔을까. 일정이 이어져서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넘어갔는데, 도시의 인상은 영 달랐다. 파리가 꽃이라면 베를린은 나무 같았다. 훨씬 건조하고 단호하고 고요하지만 히스토리를 알아서였을까, 조용한 슬픔이 있었다. 얇은 수트를 입기 딱 좋은 베를린의 선선한 초여름 저녁, 생 로랑 2024 서머 남성복 쇼를 봤다. 쇼장은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디자인한 노이에 내셔널 갤러리. 귀퉁이가 딱 맞는 네모난 형태, 수평과 수직이 유리와 강철로 굳게 맞선 조형적 구조. 이 모던한 예술 신전은 석양에 흠뻑 젖어 때론 주홍색으로 빛났다.
유리벽이 흡수한 석양 때문에 눈을 감으면 무수한 반짝이들이 별처럼 떠다닐 무렵, 대리석 기둥 사이로 면도날 같은 수트를 입은 모델들이 또각또각 걸어 나왔다. 지난 몇 계절 동안 안토니 바카렐로는 날씬하고 경계가 모호하며 고고하지만 섹시한 바이브가 있는 룩을 만들었고, 매번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언제나 예뻤다. 이번에는 좀 더 섬세하고 나긋한 디테일이 더해졌다. 맥시멀 보타이, 깊은 네크라인, 홀터넥 슬리브리스, 시어한 톱 같은. 스타일이 좋은 여자가 남자 옷을 입었을 때의 쿨한 실루엣이 자주 발견되었고, 어떤 건 당장 입고 싶었다. 옷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냉소적으로 말한 걸 다소곳하게 철회하고 어젯밤의 감초 마카롱을 후회하면서, 라펠이 큰 우아한 재킷과 플루트 팬츠를 입고 야한 저녁을 보내고 싶었다. 슈즈는 물론 에나멜 첼시 부츠, 검정으로. 매혹적인 벨벳 수트와 레오퍼드 셔츠, 가느다란 골드 브레이슬릿의 기막힌 앙상블을 보면서 이제 생 로랑은 젠더리스나 앤드로지너스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혹독하게 몸을 가꾸고 가혹하게 청결한 생활을 하는, 완벽한 우아함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옷. 그게 그냥 생 로랑. 이처럼 아름답고 잔인한 룩은 여기 이 도시, 지금 이 시간에 있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