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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위의 선수가 아닌 패션 디자이너로 데뷔한 로저 페더러의 유니클로 컬렉션

로에베의 수장 조나단 앤더슨과 로저 페더러가 유니클로 컬렉션을 만들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

수요일 아침, 뉴욕 맨하탄, 5번가에 우뚝 서 있는 유니클로 플래그십 매장에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밖에는 테니스를 사랑하는 팬들이 페더러를 만나기 위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입 모아 말하는 게 있다면 로저 페더러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는 것. 이제 로저 페더러는 테니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테니스 선수에서 가장 사랑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될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패션 디자이너’ 로저 페더러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지큐와의 인터뷰에 화답했다.

로저 페더러가 유니클로 매장에 방문한 이유는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과 협업한 유니클로의 페더러 컬렉션 공개를 위한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9월 11일 국내 출시될 이번 협업은 지난 몇 년간 공개했던 페더러의 유니클로 컬렉션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다. ‘테니스 선수가 직접 디자인한 컬렉션’이라고 해서 의아해할 수 있다. 그간 페더러의 화려한 협업 디자인 이력을 살펴본다면 이번 컬렉션에 대한 믿음이 절로 생길 것이다. 2018년 유니클로와 전속계약을 맺은 유니클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퍼 르메르(Christoph Lemaire)와 코트를 함께 제작했고 2020년에는 스위스 러닝 브랜드 온(On)과 함께 디자인한 스니커즈를 출시했다. 그리고 올해 선글라스 브랜드 올리버 피플스(OLIVER PEOPLES)와 함께 선글라스를 공동 디자인하며 그의 화려한 우승 이력들에 패션 포트폴리오를 추가하는 중이다. 패션에 대한 페더러의 열정은 그가 걸어온 패션계에서의 행보에서 드러난다. 마치 라이징 스타가 런웨이 프론트 로를 차지하고 패션 브랜드들과의 계약을 맺기 시작하는 단계처럼 느껴졌다.

“그간 정말 너무 바빴어요” 코트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낸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그을린 피부로 막 도착한 페더러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이번 컬렉션의 그레이 색 후리스 풀집 재킷과 파란색 투톤의 DRY-EX 폴로셔츠 그리고 나일론 조거 팬츠를 입고 나타나 이번 컬렉션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앤더슨은 90년대 트랙팬츠 유행을 다시 이끌어내고 싶어 했어요. 그는 예전의 그 감성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시도가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그 결과를 보여줬을 때 저는 주저하지 않고 ‘YES’라고 대답했어요. 10대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거든요. 나이가 들면 다시 젊어지고 싶어서 그런가, 확실히 제 스타일이 좀 더 캐주얼해지긴 했어요.”

테니스의 살아 있는 전설인 페더러는 로에베의 지휘봉을 잡고 창의성을 거침없이 뿜어내는 조나단 앤더슨과 함께한 유니클로 프로젝트를 즐겼다고 답했다. “로에베가 순탄한 항해를 즐기고 있는 걸 제 눈으로 지켜봤고 앤더슨이 이뤄낸 업적들을 보는 것은 제게 큰 기쁨이었어요. 그가 얼마나 프로페셔널하고, 얼마나 행동력 있게 움직이고, 그의 팀이 얼마나 훌륭한지, 특히 그가 모두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대하는지 모든 것을 지켜봤죠. 그러다 막히는 구간이 생긴다면 주저 없이 방향을 틀었어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나서죠. 그는 항상 최고의 해결책을 보여주고 보란 듯이 실현시켰어요.”

이번 유니클로 프로젝트의 디자인 프로세스가 여느 셀럽과 브랜드의 협업보다는 더 광범위하게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그와 앤더슨이 이번 프로젝트의 첫 삽을 떴을 즈음, 페더러는 은퇴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시기였다.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던 시기라 그가 누비던 코트와 일상생활 모든 상황에서 입을 수 있는 의상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앤더슨이 이야기한 90년대 바이브, 바로 빈티지 테니스 스타일이 컬렉션의 중심을 맡게 됐다. 페더러는 지금까지 스포츠 패션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들을 나열해 나가며 이 프로젝트의 포인트를 짚었다. “많은 사람이 흔히 아는 브랜드 라코스테가 르네 라코스테라는 훌륭한 테니스 선수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스탠 스미스가 단순히 스니커즈 이름인 줄로만 아는 것처럼 말이에요.”

페더러와 앤더슨, 이 둘은 첫 미팅 이후 그들의 교집합을 만들어 내기 위해 실제로 6번 정도 만나 의견을 나누고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줌 미팅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번 컬렉션의 컬러뿐만 아니라 아주 소소한, 지퍼의 위치와 같은 디테일의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매우 행복했어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은 디테일들이 결국 완벽한 차이를 만들어 내더라고요.” 페더러는 이번 컬렉션을 ‘진정한 파트너쉽’이라고 이야기했다. “앤더슨의 감각은 아주 완벽하고 섬세해요. 그런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항상 저의 의견을 구하고 제 아이디어에 대해 고민했죠.”

페더러는 이번 컬렉션 중 그레이와 네이비 색상의 프리미엄 램스울 크루넥 스웨터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언급했다. “특히 컬러 블로킹 디테일이 만족스러웠어요. 앤더슨이 그 누구보다 컬러를 잘 사용할 줄 아는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고 믿음직스러웠죠.” 그는 본인의 코트 라이프에서 필요했던 아이템들을 적극적으로 제안했고 그에 힘입어 실제 경기장이 아닌 연습 코트에서도 입을 수 있는 프레피 골지 디테일의 스웨트 풀 집 파카가 컬렉션에 추가됐다. “예전에는 코트에서 입을 수 있는 후드티가 그리 많지 않았어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가 걸치는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듯이 쉽고 편안함을 안겨주는 웨어러블한 아이템이 좋은 시도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페더러는 이제 가장 핫한 브랜드를 이끄는 조나단 앤더슨과 함께 컬렉션을 만들고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의 러브콜을 받아 스니커즈, 선글라스 그리고 캡슐 컬렉션을 완성한 디자이너다. 가장 멋지고 세련되게 수트를 입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저 페더러이기에 다음 스텝은 테일러링이 되지 않을까 싶어 물었다. “아직은 아니에요. 계속해서 앤더슨과 작업하고 싶은걸요. 그러길 바라고 있고요. 우리가 디자인한 컬렉션은 일부에 불과해요. 아직 공개되지 않은 멋진 옷들이 너무나 많은 걸요. 그와 함께한 저의 컬렉션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더 성장해 나가길 바라고 있어요. 앤더슨과 함께하는 두 번째 컬렉션도 기대해 주세요. 다음 라인업을 위한 준비는 이미 마쳤어요. 우린 나아갈 준비가 됐어요.”

이미지
유니클로
출처
www.gq.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