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의 경작부터 샴페인 생산의 전 과정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생산자를 RM(Recoltant Manipulant)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95% 이상 자기가 기른 포도만 써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 덕에 RM 샴페인에는 생산자의 개성과 방향성이 부족함 없이 담겨 있다. RM 샴페인계의 신성 3을 소개한다.
조르쥬레미
레캬트테루아 N°19
다들 “아직 가격이 오르지 않은 RM계의 라이징 스타 중에 조르쥬 레미의 샴페인이 특히 좋더라”고 하길래 엔트리 라벨로 사 마셔봤다. 충격을 받았다. ‘이게 엔트리라고? 이 가격에서 당연히 느껴져야 마땅한 빈구석이 느껴지지 않는데?’ 3개의 그랑 크뤼와 1개의 프리미에 크뤼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했다. 숙성 중간에 이뤄지는 당 첨가 과정인 도사주하지 않고 만들었다. 달지 않은 샴페인 대부분도 이 과정을 거치기에 드문 일이다.
2019년에 수확한 포도 94%를 사용해 N°19라는 이름이 붙었고, 아마도 더 이상 이 샴페인을 만나기 어려울 거다. 대신 곧 N°20을 만날 수는 있겠지. N°19의 생산량이 워낙 적었다 보니(6,084병) 구하기 쉽지 않았다. 칼럼을 쓰는 지금도 이 샴페인을 소개해서 더욱 더 구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바보짓을 하는 게 맞나 싶지만, 내 칼럼을 읽어주는 분들께 드릴 수 있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소개하는 바다.
🥂 스시와 함께 먹었는데, 스시를 위해 태어난 샴페인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참치 적신과 샴페인을 곁들였을 때 철분의 비릿함이 증폭되는 걸 싫어하는데, 이 샴페인은 그런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금태나 전갱이처럼 기름이 많은 생선과는 더 잘 어울린다.
샴페인 아그라파 에 피스
테루아 블랑 드 블랑 그랑 크뤼 엑스트라 브뤼 NV
아그라파는 100% 샤르도네로 만든 블랑 드 블랑과 샤르도네 비율 최저 90% 블렌딩 샴페인만 생산한다. 네고시앙에게서 포도를 전혀 사 오지 않는 RM(직접 기른 포도를 95% 이상 사용하면 RM이기에 5% 미만은 네고시앙에게 구입이 가능하다)이다. 그랑 크뤼만을 소유하고 있으며, 샴페인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뫼니에 세 가지 품종 이외에 고대 품종으로 분류되는 아르반, 쁘띠 메슬리에, 피노 블랑도재배하고 있다. 인증은 받지 않았지만 비료까지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추구하고 있지다. 토착 효모를 사용하고, 필터링하지 않는다.
아그라파가 소유한 여러 밭에서 수확한 샤르도네만을 블렌딩해서 만드는 이 샴페인은 엑스트라 브뤼로 5g 이하의 도사주를 거치며, 2개 빈티지를 섞어 NV로 출시한다.
🥂 와인 업계에서 높은 권위를 지닌 평론지 <Wine Enthusiast>에 따르면 테이스팅 노트는 ‘엔트리 급 임에도 미네랄리티가 강하며, 라임과 키위 등의 껍질이 지닌 맛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아삭한 사과와 배, 바닐라 캐릭터 등을 느낄 수 있고, 깊이와 복잡함도 지녔다’고.
수에넨
C+C 블랑 드 블랑 엑스트라 브뤼
세계적인 샴페인 평론가 피터 리엠이 ‘40대 이하의 주목할 만한 샴페인 생산자’로 오헬리엉 수에넨을 꼽았다. 이 라벨은 그랑 크루인 크라망(Cramant)과 슈이(Chouilly)에서 자란 샤르도네를 블렌딩했으며, 연간 200병 가량만 생산한다. 수에넨은 2019년 유기농 인증을 받아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과 병행하고 있다. 아그라파 에 피스의 파스칼 아그라파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달걀 모양의 콘크리트 통에서 와인을 1차 발효하고 있다.
🥂 서양배, 사과, 시트러스의 캐릭터와 강렬한 미네날리티를 경험할 수 있다. 스시와 회를 포함한 해산물 전반과 아시아 요리에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