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art

모든 이준에게

2024.01.01김은희

2023년 태어난 새 숨 23만4천30. 그중 가장 많이 가진 이름 이준. 당신들의 세계가 20년, 30년, 40년 넓어지는 동안 미리 쥐고 있길 바라는 쪽지 하나.

새롭지 않아도 돼

새해가 밝으면 무언가 달라져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맘때 헬스장이나 성형외과는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게 도와준다며 특가를 홍보하기도 하지요. 읽고 쓰면서 새로움이란 뭘까 고민하는 일이 익숙한 저는 당신이 새롭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때 신세대였던 어른들은 더 이상 신세대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고, 영원히 새로운 것은 없지요. 당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발음한 단어도, 엄마와 아빠를 웃게 만든 당신의 행동도, 결코 새롭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발음한 단어가 당신이 처음 겪은 세계를 말해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요. 당신의 행동이 당신의 부모를 웃게 했다는 것도,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일부라는 것도요. 저는 아직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합니다. 당신의 매일이 새롭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소중한 내일을 오래 만나기를 빕니다. 당신의 내일을 떠올리면, 그리하여 당신을 떠올리면 저는 성실하게 살고 싶어집니다. 이준, 당신의 이름이 하나뿐이거나 하나도 새롭지 않더라도. 고선경, 26세, 시인·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새벽의 전화를 두려워 마세요

일이 좀 생겼습니다. 와보셔야겠어요. 별일 아닙니다. 별일 아니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대개 이런 요지이더군요, 새벽에 울리는 전화는. 한때는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려올까 두려운 적도 있었습니다. 하나 곧 깨달았습니다. 불시에 굴러오는 돌덩어리를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요. 쳐다도 보지 않으려 하여도 기세를 다해 들이닥치는 불행이란 바위는 새끼 발톱 하나라도 반드시 짓이기고는 합니다. 그러니 이준, 새벽의 전화를 두려워 마세요. 자유의지 너머의 찰나에 얽매이지 마세요.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다가온 일은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다만 어느 개벽 끝에 너무 많은 후회가 잠식하지 않도록 약간의 채비를 해두었으면 합니다. 언젠가 온 곳으로 돌아가실 누군가와 이곳에서 가까이 온기를 나눠두는 준비. 엎질러진 물을 얼른 닦아낼 수 있게 잘 말린 수건을 접어두는 준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담대함으로 아무일도 아니게 만들 준비. 당신의 평온을 흔들수 있는 대상은 오직 당신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작은 당부를 이 새벽에 건네둡니다. 김은희, 36세, <지큐> 피처 에디터

WAIT AND HOPE

이준. 혹시 기본신뢰 Basic Trust라는 말을 알고 있나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근본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해요. 그래요. ‘믿을 수 있는 대상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그저 ‘믿을 수 있는’ 능력이에요. 당신이 그 연약하고 고물거리는 몸으로 이 거대한 세상과 만나게 되었을 때, 당신을 지켜주던 따뜻한 엄마의 냄새와 빛이 잠깐씩 사라지는 암흑의 순간도 함께 생겨나게 됩니다. 이 두려운 순간이 찰나일지 영원일지를 알 수가 없기에 절망과 공포의 늪으로 빠지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따뜻한 엄마의 가슴과 품을 되찾게 되면서, 세상 어딘가에서는 당신을 위한 따뜻함과 빛이 준비되어 있을 거라는, 마치 신앙과도 같은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정신과 의사인 나는 이걸 ‘기본신뢰’라 부르지만 문학가들 중 누군가는 이것을 ‘희망 Hope’이라고 부르더군요. 하여 나는 기원합니다. 당신이 훗날 삶에 지쳐 힘든 몸을 침대에 누일 때, 어둡고 추운 시기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 두려움에 떨 때, 따뜻하게 감싸 안고 지켜봐줄 누군가가 여전히 존재함을 당신이 믿을 수 있기를. 희망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기를. 권순재, 41세,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

산에 가면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싶다가 내리막길이 나오고, 내리막길이다 싶으면 어느새 오르막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도 이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됩니다. 경사가 가파른 사람도 있고 완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기복이 자주 반복되는 사람도 있고 알아채지 못할 만큼 적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오르막과 내리막은 있습니다. 누구도 성공의 경험만을, 또는 실패의 경험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공은 자신의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여러분이 성공하기까지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의 도움과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감사한 마음과 겸손한 자세를 잃지 마세요. 교만은 여러분을 곧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게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여러분이 뜻하는 것과 달리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또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 때, 한탄하고 좌절하지 말고 이 실패의 경험에서 무엇을 얻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성찰하세요. 누구에게나 전진할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김영화, 66세, <60대 부부의 포르투갈 한 달 살기> 저자

아트워크
선종민, 임태호, 오영주, 김아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