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 랭킹 130위 말레이시아와 23위 한국의 축구 경기가 흥미로웠던 이유. 긴 머리 휘날리며 당장이라도 경기장에 뛰어 들어갈 기세의 말레이시아 대표팀 김판곤 감독 때문. 판곤매직, 판곤술사, 김판곤의 일곱 가지 비하인드 이야기.
김판곤
1969년 경상남도 진주 출생. 1992년 울산 현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1997년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다. 그해 시즌 종료 후 은퇴하고 중경고등학교 코치로 부임한다. 지도자의 길을 걷는가 했더니 2000년 홍콩 1부 리그 더블 플라워로 이적한다. 그곳에서 3년간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다가 2004년 홍콩 레인저스를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홍콩 히딩크
홍콩에서 김판곤 감독은 우리나라 히딩크 감독 못지않은 찬사를 받았다. 먼저 2002년 당시 리그 최약팀인 홍콩 레인저스의 플레잉 감독으로 뛰며 시즌 1위를 기록했다. 2008년부터 홍콩 사우스 차이나 감독으로 부임하여 리그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홍콩 역사상 처음으로 동아시아 선수권 대회 결승 리그에 참가하고 홍콩 U23 대표팀 감독을 맡아 첫 국제 대회 금메달을 이끌어냈다. 그 외에도 김판곤 감독은 홍콩 축구의 향후 커리큘럼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연령별로 맞는 훈련과 대회를 설계해 기술적인 선수 배출을 위한 전략을 짰다. 뛰어난 경기와 팀 운영으로 홍콩의 히딩크라 불렸다.
GOOD AT ENGLISH
25일 말레이시아 전을 앞둔 프리뷰 쇼, 아나운서가 상대 팀 감독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이에 한준희 해설위원은 “음. 영어를 굉장히 잘합니다. 인터뷰를 다 영어로 해요”라고 답했다. 김판곤은 홍콩에서 생활하며 영어를 익혔다. 한국과의 경기가 있기 전 기자회견에서 “계속 감독직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우린 아직 한 골도 못 얻었잖아요” 라는 기자의 질문에도 유창한 영어로 답했다. “왜 당신은 우리가 이길 거란 생각은 안 하나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May be who knows? Why you don’t expect we can’t win tomorrow. Everything can happen)”
판버지
김판곤의 선수 사랑은 꾸준하고 유명하다. 홍콩에서 감독으로 일하던 시절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는 잘 가르쳐야 되겠지만 선수를 사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마음을 내놓고 마음을 통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만 그 선수는 코치의 지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말레이시아 전을 마치고 비난을 거둔 기자들에게는 이런 답변을 줬다. “우리는 함께 뭉쳐 있습니다.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선수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얘기해 왔습니다. 선수들의 의욕을 극대화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당신들은 그런 것도 모르면서 나를 공격하고 내가 해내지 못할 것이라며 나를 쫓아내려 했습니다. 어제는 나를 비난하더니 오늘은 칭찬하네요.”
벤버지 만든 판버지
김판곤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을 16강으로 이끈 벤투 감독을 데려온 사람이다. 당시 축구협회 전력강화 위원장을 맡고 있던 그는 한 시간이 넘도록 기자들을 상대로 벤투를 선임한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당시 명확한 철학과 깔끔한 발표 매너가 화제가 되었다. 벤투의 진정성과 실력에 대한 확신이 들었으며, 한국 축구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사례와 숫자를 꼽아가며 이야기하는데, 학생과 회사원 모두에게 좋은 발표의 예시로 소개하고 싶다. 아직도 한국 스포츠 판에서 보기 드문 투명하고 체계적인 절차였다고 호평을 받고 있다.
장발
경기장에서 김판곤 감독의 휘날리는 긴 머리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잠시도 벤치에 앉아 있지 않고 머리를 휘날리며 돌아다녔다. 김판곤 감독의 장발 역사는 홍콩에서 시작한다. 첫 부임 시절 이미지 구축을 위해 헤어스타일을 바꾸려 시도했고, 미용실에 들러 베토벤 사진을 들이민 것. 진짜 베토벤 머리처럼 만들어 준 현지 미용실 덕에 말레이시아로 넘어간 현재까지 장발을 유지하고 있다.
허성태 닮은 꼴
말레이시아 네티즌 사이에서는 김판곤 감독에게 고맙다는 글을 쓰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배우 허성태 사진을 올리는 게 유행이다. 허성태가 봐도 둘은 닮은 모양. 둘을 비교해 올린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로드한 적 있다. 이외에도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 속 장이수(배우 박지환)와 닮았다. 헤어 스타일부터 표정, 옷차림까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