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가 사랑을 말하면.
GQ 지큐 편집부에서 가장 어린 직원에게 선미에게 궁금한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언제까지 그렇게 사람을 홀리실 거예요?”
SM 세상에. 근데 ‘홀린다’라는 말이 제가 정말 좋아하는 표현이기는 해요.
GQ 왜요?
SM ‘나 저 사람 좋아할 거야’라는 의지가 아니고 찰나에 뭔가가 탁 들어오는 감정이잖아요. 저는 솔로 여자 가수고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3~4분으로 대중에게 기억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홀린다는 개념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GQ 선미와 사랑 얘기 좀 해볼까요. 사랑을 사랑이 아닌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SM 헌신···? 헌신···. 헌신! 사랑을 하는 나는 그런 모습인 것 같아요. 집에서 맏이고 남동생이 둘이라 헌신이라는 게 너무 어릴 때부터 배어 있는 것 같아요, 몸에.
GQ 헌신하게 하는 사람 말고 헌신해주는 사람 만나세요···!
SM 그러니까요. 다들 “선미야 나는 네가 기댈 수 있고 너한테 헌신해주는 그런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 해요. 근데 저한테 사랑은 진짜 헌신의 감정이 커요. 박진영 PD님이 늘 하는 말이 “너는 모성애를 조심해야 된다”고.(웃음)
GQ 선미가 생각하는 사랑은요? 사랑은 동사, 명사, 형용사 중 어디에 가깝나요?
SM 아무래도 내 사랑은 동사인가 봐요. ‘헌신하다’라는 동사가 결국 감정이나 행동으로 나를 희생하는 거잖아요. 저도 사랑하면 계속 뭔가 해줘야 해요. 이벤트 같은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하나라고 느낄 수 있게끔 늘 뭔가를 상기시켜주려 하죠. 근데 같은 마음, 그것만큼 힘이 드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웃음)
GQ 우리는 왜 사랑할까요?
SM ‘우리는 왜 사랑할까’라는 말은 ‘우리는 왜 미워할까’라는 말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사랑을 하는 이유는 그냥 행복하려고.
GQ 자신과의 사랑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SM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가끔은 제가 마음에 안 들어요. 옛날엔 스스로를 질타했다면,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마음이 동글동글해졌어요.
GQ 이번엔 ‘사랑에 빠진 싱그러운 소녀’로 우리를 홀리러 왔다고요. 그동안의 관능적인 콘셉트와 상반된 무드라 물음표가 생겼어요.
SM 이번 노래를 만드는 데 참 몽글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떡하면 뜨거운 사랑을 맑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오히려 맑은 모습이 선미라는 사람에겐 새로운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무대에서 화려한 화장을 많이 하는데 이번 MV에서는 수수한 얼굴로 순수한 이야기를 이어 나가요. 노래의 맑은 분위기를 비주얼적 요소로 해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GQ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한 요리 같네요. ‘Balloon in Love’는 어떤 사랑 이야기예요? 그 독한 ‘가시나’에서조차 선미는 늘 사랑을 노래해왔잖아요.
SM 어떤 곡을 만들어야 대중성에서 호불호가 덜 갈릴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노래인데, 사랑 얘기는 싫어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Stranger’가 좀 어둡고 어려웠으니 이번엔 딱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벅차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노래는 온전하고 순수한, 슬프게 해석될 여지가 없는 그런 사랑 노래예요. 제가 풍선이고 사랑하는 상대가 바람인데, 바람이 풍선을 부풀게도 하고 하늘 높이 떠오르게도 하고 터뜨려버리기도 해요.
GQ 왜 하필 풍선을 떠올렸을까요?
SM 풍선은 바람이 있어야 움직이거나 커지고 작아지잖아요. 결국 사랑은 바람과 풍선의 상호작용 같은 것일 테죠. 바람 역시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바람이 존재한다, 세게 부는구나 하는 걸 풍선이 보여주는 포인트가 재밌었어요. 가만히 있어도 예쁘긴 하지만, 풍선은 모름지기 바람에 흩날려야 좀 예쁘잖아요.
GQ 사랑의 롤러코스터이기도 하네요.
SM 사랑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이 많잖아요. 바람이 어디로 얼마큼 세게 불지 예상할 수 없는 것처럼. 기자님은 롤러코스터 같은 사랑이 좋으세요?
GQ 선미 씨는요?
SM 사랑을 한다면 저는 이렇게 쭉~ 평온하게 가고 싶을 것 같아요. 뭐랄까 성격이 좀 무던하다 보니 어릴 때 해본 거 말고는 사실 연애 경험이 정말 많이 없어요. 롤러코스터 같은 사랑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GQ 선미의 사랑 세계관 안에서, 나중에 그 풍선은 어떻게 돼요? 풍선이 터지면 ‘가시나’나 ‘You can’t sit with us’로 흑화하는 건가?
SM 그럴 수도 있죠. 제 가사가 이런 식이거든요. 넌 가끔 날 터지게 만들어, 근데 나를 기분 좋게 저 하늘 위로 올려줄 수 있는 것도 너야, 그러니까 나한테 계속 불어줘. 어떻게 보면 이 노래 안에서의 선미는 되게 순종적인 사랑관을 가진 여자인 것
같아요. ‘꼬리’가 사랑에서 주도권이 센 여자, ‘열이 올라요’는 마음을 100퍼센트 표현하지 않는 새침한 그런 여자였다면 말이죠.
GQ 선미의 노래는 그 자체로, 여성 아티스트로서 선미의 진화 연대기이기도 하잖아요. 수동적인 여성에서 자유로운 여성으로 새로고침되어 왔으니까요. 이번엔 역순행 같기도 한데, 어떤 여성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고민도 해요?
SM 이런 시대에 이런 여성을 노래하겠다는 방향은 전혀 없어요. 노래에 따라 날카로운 도끼를 품은 여자도 됐다가, 새침한 여자가 됐다가, 지금은 되게 순수한 여자가 됐다가. 제게는 노래를 만들고 발표하는 게 연기를 하는 느낌이거든요. 작품을 하면서 계속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이에요.
GQ 오늘 처음 몇 시간 뵌 게 다지만, 딱 맞는 콘셉트를 가지고 오신 걸지도···?
SM 딱 맞아요. 무대 위의 선미는 좀 빨갛고, 이 노래의 선미가 제일 본캐인 것 같아요. 저는요, ‘꼬리’나 ‘가시나’처럼 “뭔데? 꺼져” 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무대에서 ‘꼬리’를 공연할 때 제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데, 나랑 너무나도 반대인 캐릭터에 희열 느끼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GQ 사랑하는 선미는 ‘Balloon in Love’처럼 말랑한 무드예요?
SM 제 본캐는 되게 투명한 여자예요.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도, 밀당도 못 해서 그냥 나 너 좋아 하죠. 달라진 거라면 어릴 때는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상처받아도 크게 타격 없이 그런가 보다 하는 성격으로 바뀐 것 같아요.
GQ 고탄력 풍선이네요.
SM 맞아요! 그러니까 진짜 웬만하면 터지지 않는 풍선인 것 같아요.
GQ 신곡이 브릿 록 장르인 것도 새로웠어요.
SM 늘 ‘밴드 붐은, 록 붐은 다시 온다’라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Talk Talk, The animals, Guns N’ Roses, 10cc까지. 1970~1980년대 밴드를 좋아해요.
GQ 이렇게 밴드 뮤직을 좋아하는 줄 몰랐네요.
SM 예전에 그룹 활동할 때 밴드 콘셉트도 했는데, 그때 정말 많은 록을 접하며 가까워졌거든요. 실리카겔도 ‘한대’ 신인상 받기 전부터 좋아했어요. 진짜 실리카겔 지금 짱이고 록 붐이 오고 있잖아요. 오히려 제겐 록이 익숙한 장르예요.
GQ 듣고 보니 오히려 진짜 선미를 꺼내는 느낌 같네요.
SM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엄청 컸어요. 실제의 저는 제 노래 ‘풋사랑’이나 ‘블랙펄’, ‘6분의1’처럼 감성적인 곡을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대중에게 선미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하는 가수로 인식되어 있죠. 그런 기대에 맞추다 보니, 감성적인 곡은 늘 수록곡으로만 썼는데 이번에는 본연의 내가 느끼는 감성을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어서 진짜로 너무 좋아요.
GQ 최근 박진영 씨와 대학 축제에서 ‘When We Disco’를 트로트로 편곡한 걸 봤는데, 선미의 음색을 두고 “트렌디한 뽕짝”에 치인다는 팬들도 있어요.
SM 제가 정의하는 뽕기는 한국의 구슬픔 같거든요. 뭔지 아시죠? 제 목소리가 탁해서 신나는 노래를 불러도 슬퍼요. ‘Tell Me’ 때도 신나게 불러야 하는데 목소리가 슬퍼서 혼났거든요.(웃음) 어릴 때는 탁한 중저음이 콤플렉스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내 노래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GQ 맨체스터 시티 FC 팬이잖아요. 어떤 시즌을 보내고 계십니까.
SM 이번 시즌 키워드는 필 포든. 저는 17번 케빈 더 브라위너의 팬이지만 작년부터 필 포든 선수를 보면서 케빈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필 포든, 너에 대한 기대가 크다’ 했는데 그런 기대를 여실히 충족시켜줬어요. 딱 EPL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 걸 보고 ‘너 잘될 줄 알았어’ 싶었죠. 다른 키워드는 로드리의 헌신인데. 말했죠, 헌신은 사랑이라고.
GQ 아티스트라는 직업적 특성을 살려 스포츠 팬으로서 이루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SM 없어요. 축구는 유일한 집순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덕질이거든요. 일이 되고 싶지 않고 순수하게 좋아하는 덕질의 영역 안에 두고 싶어요.
GQ 밤마다 기도한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어떤 기도할 거예요?
SM 늘 하는 기도는 ‘오늘도 무탈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예요. 거기에 제 마음이 너무 들뜨지 않게 조금만 낮춰달라고 더할 것 같아요. 지금 컴백 시즌이라서 들떠 있는데, 기대에 도달하지 못하면 실망감이 크니 기대하지 않으려는 편이라서요. 기자님은요?
GQ 내일도 무해하게 해주세요?
SM 앗! 저 요즘 그 말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무해한 게 짱인 것 같아요. 저는 진짜 무해한 사람이고 싶어요. 무해무탈 최고, 제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