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에 끝나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한 베테랑들의 다정한 안내서.
글 / 이소영, 박재용, 전은경
떠나는 순간부터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를 세 번 방문했다. 세 번 다녀온 입장에서 초심자에게 도움이 될 여행 팁을 전하고 싶다. 비행기와 호텔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베니스는 한국에서 비행기 직항이 없다. 그래서 유럽 다른 도시에 가면서 가볍게 베니스를 당일 코스로 다녀오려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문화 여행에 큰 관심이 없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하루면 사진 엽서 같은 베니스의 풍광을 실컷 보고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다.(올해부터 베니스 당일치기 여행자에게는 10달러 정도의 세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미술과 건축, 역사와 미식에 관심이 있다면 적어도 3박 5일이면 좋을 것이고, 사실 6박 8일을 투자해도 이 많은 전시를 다 볼 수는 없을 만큼 도시 전체에 전시와 행사가 가득하다.
호텔은 알다시피 미리 예약할수록 저렴하다. 부킹닷컴 같은 사이트에서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를 예약해두자.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갈까 말까 망설이는 와중에 일단 예약을 해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료 예약 취소가 가능한 날짜를 메모해두고, 심경의 변화에 따라 그 직전에 취소하면 된다. 베니스는 서울에 비해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대중적 숙소의 위치는 주로 산 마르코 광장 부근에 몰려 있다. 이것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고, 엄청난 미술 애호가라면 아예 비엔날레가 열리는 아르세날레(Arsenale)와 자르디니(Giardini di Castello) 근처에 숙소를 잡는 것도 좋다. 하지만 산 마르코 광장과 비엔날레 전시장의 거리는 멀지 않다.
베니스는 도시 전체가 울퉁불퉁한 돌 바닥이기 때문에 여행 가방은 작을수록 좋다. 바다 위의 작은 섬들이 연결된 도시이기 때문에 지상 택시는 없고, 수상 택시(보트)를 타더라도 어쨌거나 많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하루 2만 보는 기본으로 걷게 된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성수기는 4월 오프닝과 6월 아트바젤 바젤(Art Basel Basel)이 열리는 시기다. 그리고 여름휴가 때도 관람객이 많다. 이 시기를 잘 피하면 그나마 좋은 가격에 숙소를 예약할 수 있을 것. 베니스의 날씨는 항상 엄청났다. 오프닝이 열리는 4월은 두 회 다 계속 비가 오고 추웠고, 6월에 갔을 때는 너무 더웠다. 봄가을에는 트렌치코트와 히트텍 2장, 스카프, 우산을 꼭 챙기길 바란다. 장화나 방수 신발도 추천한다. 어느 미술가는 1인용 전기 담요도 가져왔다. 여름에는 모자와 선글라스, 양산과 선크림을 챙겨야 한다. 베니스는 4월에 비가 매일 와도 얼굴이 잘 타는 도시다. 피부가 예민하다면 세안의 마지막은 생수로 얼굴을 헹구는 것이 좋다. 생수가 비싸지만 어쩔 수 없다.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은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 두 곳이다. 아시아 최고의 비엔날레로 손꼽히는 우리나라 광주 비엔날레와도 비교가 안 되게 전시 규모가 방대하다. 과거에 공장이었던 곳이니, 전시장이 넓어서 길을 잃을 수도 있을 정도다. 올해 비엔날레 본 전시에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라는 주제에 맞추어 네 명의 한국 미술가가 전시가 초대되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이강승, 김윤신, 이쾌대, 장우성의 작품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어디 즈음에 있는지 굳이 힌트를 주지 않겠다.) 추가로 자르디니 한국관의 구정아 작가 작품도 놓치지 마시라.
대체로 하루는 대형 설치 작품 중심인 아르세날레를 보고, 다음 날은 국가관도 많은 자르디니를 본다. 이렇게 비엔날레만 꼬박 이틀을 본다고 해도 애호가라면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일정은 한정적이기에, 나머지 시간에는 외부 전시를 봐야 한다. 외부 전시는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1천 개의 전시가 있을 정도다. 자르디니에 입점하지 못한 국가관 전시도 도시 곳곳에 많고, 베니스 시내가 모두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멋진 전시들이 열리고 있다.
먼저 베니스 비엔날레 빨간 로고가 포스터에 붙어 있는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Eventi Collaterali)’를 보기를 권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홈페이지의 병행 전시 리스트를 참고한다. 한국 기관과 갤러리에서 기획한 <이성자>, <광주 비엔날레: 마당, 우리가 되는 곳>, <이배>, <유영국>은 병행 전시에 선정되었다.
또한 국내외 언론 기사 중심으로 ‘베니스 비엔날레’를 검색해보면 꼭 봐야 할 전시 리스트를 발견할 수 있다. 이왕이면 베니스 비엔날레 오프닝 이후 작성된 기사를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해외 온라인으로는 <아트뉴스페이퍼(The Art News Paper)>, <아트리뷰(Art Review)>, <아트시(Artsy)> 등의 매체에 꼭 봐야 할 전시들이 소개되어 있다. 베니스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무료 잡지 <Guide to the Biennale 2024>, <Artribune> 등에서도 매력적인 전시 정보를 발견할 수 있다.
언제나 멋진 전시를 선보이는 베니스 대표 미술관으로는 프라다 파운데이션(The Prada Foundation),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Peggy Guggenheim Collection), 아카데미아(Gallerie dell’Accademia) 등이 있으며, 미술 애호가라면 필수 방문 코스다. 각각 <크리스토프 뷔헬>, <피에르 위그>, <줄리 메레투>, <장 콕토>, <윌렘 드 쿠닝>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지금 가장 핫한 미술계 스타 작가들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 주관 전시도 <신성희>, <모든 섬은 산이다> 등 10개에 이르니, 이 전시만 다 봐도 하루가 넘게 걸릴 판국이다. 관심 있는 전시 리스트를 사전에 결정하고, 지나가다가 보이는 전시는 전시장이 크지 않다면 관람하는 것도 좋다.
여행 고수는 현지인이 좋아하는 맛집에 간다. 하지만 베니스는 관광 도시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식당이 관광객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회하지 않을 레스토랑으로는 중국 미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단골 중식당 ‘드래곤 오리엔탈(Dragone D’Oriente)’, 해산물 요리가 맛있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트라토리아 다 조니(Trattoria Da Jonny)’, 베니스 대표 알코올 음료 스프리츠(Spritz)와 치게티(cicchetti) 맛집 ‘칸티네 델 비노 지아 스키아비(Cantine del Vino gia Schiavi)’가 있다. 식당에서는 직원의 눈을 쳐다보고 인사를 건네면 서비스가 좋아질 것이다!(미술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침 인사는 ‘본 조르노’, 저녁 인사는 ‘보나 세라’다. 글 / 이소영(프리랜서 피처 기자)
최신 미술 대신 미감 업데이트
지독한 에고이스트가 아니라면 반드시 아는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공연이든 전시든 작품이든,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럿이서 보는 게 훨씬 더 재미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만만찮은 체력을 덧붙이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열리는 1백 개가 넘는 전시를 모두 살펴보겠다는 다소 황당할 수도 있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많은 사람에게 베니스 비엔날레는 ‘허겁지겁’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어떤 전시를 보아야 할지 우왕좌왕하다 비엔날레 메인 전시와 화제의 전시 몇 개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백 개가 넘는 전시 중 뭘 봐야 할지 고민하는 대신, 모든 전시를 다 보려 시도한다면 어떨까?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한 ‘오프투베니스’ 모임/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마치 야구팀이 전지훈련을 하듯 거대한 숙소를 1년 전에 예약해 사악할 정도로 급등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프리뷰와 오프닝 위크의 숙박비를 극복하고, 8명쯤으로 팀을 구성하고 조를 나눠 베니스 전역의 전시를 관람하면 불가능할 듯한 ‘모든 전시 다 보기’ 미션도 아주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마치 ‘도장 깨기’를 하듯 전시를 본다고 해서 쓸 만한 관점이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니다. 퉁퉁 부은 발바닥에 쿨링 패치를 붙이고서 잠잘 시간을 줄이더라도, 종일 돌아다니며 본 전시로 수다를 떨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혼자서는 도무지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 압도적인 양의 정보를 접한 뒤 조금이라도 정리하려 애쓰지 않는다면, 구체적 기억 없이 뭔가 대단한 걸 봤다는 흐릿한 인상만 남게 되니까.
그런데 곳곳에서 미술 행사가 넘쳐나는 지금, 굳이 일주일 넘게 시간을 내어 베니스까지 날아가야 할 이유는 대체 뭘까? ‘최신 미술’을 보는 대신, ‘미감 업데이트’를 위해서다. 그뿐이겠는가. 너무나 훌륭해서 베니스에 와 있는 전시와 함께 정말 별로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베니스까지 와 있는 전시를 번갈아 관람하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관점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동료들과 함께라면, 그렇게 생겨난 내 관점이 다른 이들과는 어떻게 다른지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물론 이건 혼자서 해내기엔 벅찬 일이다. 세 번째를 맞이하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더는 시도하지 않겠다 생각했던 ‘오프투베니스’에 2년 뒤 또 한 번 도전해볼까 고민이 되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글 / 박재용(독립 기획자)
당일치기 비엔날레
나의 베니스 여행은 늘 당일치기였다. 오랫동안 디자인 전문 기자로 일한 나의 메인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아니라 밀라노 디자인 위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오랜만에 기회가 왔다. 4월 16~21일까지 열린 밀라노 디자인 위크와 20일에 시작한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이 겹쳤다. 그래서인지 베니스 비엔날레 프리뷰에 참석한 다음 밀라노로 건너오는 아트 관계자가 많았다. 팬데믹 이후 주요 북유럽 가구 브랜드의 불참으로 인해 예년에 비해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규모로나 영향력으로나 가장 중요한 행사다. 또한 가구 외에 자동차, 럭셔리,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브랜드의 장외 전시가 전 세계에서 관람객을 모은다. 그렇게 하루에 2만 보씩 밀라노 시내를 돌아다니다 21일 아침 일찍 밀라노 중앙역에서 트랜이탈리아를 타고 2시간 30분 만에 베니스에 도착!
물론 당일치기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아르세날레에서는 프랑스의 아티스트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이 이미 소멸한 언어를 비롯한 60개 언어로 쓴 ‘Foreigners Everywhere’를 본 것만으로도 기뻤다. 구정아 작가의 한국관에서는 지인도 많이 만났다. 나 여기서 외국인 맞아? 다녀온 분들의 추천 전시와 맛집, 힙하다는 베니스베니스호텔까지 가야 할 곳은 많은데 고작 하루라니! 게다가 이번 베니스 여행의 진정한 목표는 아트가 아니라 베니스 출신의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의 올리베티 매장 방문이었다. 작년에는 안도 다다오의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 전시를 보러 왔다가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올리베티 매장을 그냥 지나친 게 너무 아쉬웠다. 비엔날레 기간에는 보테가 베네타 등이 이곳을 빌려 전시를 열기도 한다. 관광객으로 시끄럽고 정신없는 산 마르코 광장 한가운데서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 같은 고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다 이룬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바로 구글맵을 켜고 다음 코스의 동선을 짰다. 시간은 없고 밥도 아직 못 먹었고 다리는 아팠다. 그렇게 종종걸음을 치다가 결국, 팔라초 그리마니Palazzo Grimani에서 우연히 16~17세기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앙상블 라 미스티칸차 La Misticanza의 연주를 듣고 다 내려놓았다. 일주일 넘게 디자인과 예술에 쫓기다 여기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달까. 연주회가 끝난 다음에는 바로 밥부터 먹으러 갔다. 남은 시간에는 젤라토를 먹으면서 여유롭게 기차를 기다렸다. 코앞에 두고 못 간 카를로 스카르파의 베니스 건축대학 파사드는 내년을 또 기약해본다.
TMI 하나. 이번 출장에서는 취리히 ON 랩에서 구입한 온스니커즈를 신었는데 발이 덜 아팠고, 온의 효능감을 직접 체감한 기념으로 주식을 1주 구입했다. 글 / 전은경(디자인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