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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마주한 비상하는 시간에 관하여

2025.05.03.김성지

TIME TO FLY.

매년 4월, 스위스 제네바는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도시로 변모한다. 바로 시계 업계의 최대 축제인 워치스 앤 원더스가 문을 열기 때문. 워치 브랜드가 새로운 기술력과 디자인을 뽐내는 자리로, 올해는 무려 60개의 브랜드가 모여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워치메이커마다 한껏 단장한 아이코닉한 부스로 게스트를 맞으며 컬러풀한 워치, 신소재 등을 뽐냈다. 새로운 시계들의 향연을 보며 각각의 메종이 전하는 시간의 흐름을 찬찬히 살펴봤다.

DYNAMIC SPORTS WATCH

촌각을 다투는 스포츠는 시계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워치메이커는 항상 스포츠 워치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며, 신제품을 선보인다. 올해는 유독 다양한 제품들이 등장했는데, 먼저 F1 공식 스폰서로 돌아온 태그호이어의 레이싱카처럼 강렬한 컬러가 돋보이는 포뮬러 1 컬렉션이 눈길을 끈다. IWC도 영화 <F1>의 공식 후원사로 출연진들이 착용하는 시계를 대거 만들었고. 160주년을 맞은 제니스의 스포츠 워치들도 빛났다.

STONE & STONE DIAL

워치메이커들은 각기 다른 질감과 컬러를 지닌 스톤을 활용해 시계를 만들기도 한다. 튀르쿠아즈부터 말라카이트, 운석, 카넬리안, 타이거 아이, 흑요석, 오닉스까지. 대표 브랜드로는 피아제가 있다. 워치 제작자이자 보석상이었던 창립자 조르주 피아제는 일찍이 광물을 활용한 시계를 만들었고, 스톤 다이얼 시계는 피아제의 유산 속에 존재해왔다. 이를테면 올해 공개한 앤디 워홀 시계가 대표 제품. 1970년대 앤디 워홀이 소장한 여섯 점의 시계에서 영감 받은 제품으로 타이거 아이부터 튀르쿠아즈, 오팔 등 다양한 광물과 컬러로 구성된다. 롤렉스도 오랜만에 신제품 라인업에 스톤 다이얼을 올렸다. 레드 재스퍼, 헤마타이트, 타이거 아이 세 가지 광물을 조합한 것이 그것. 반짝이는 주황빛 다이얼이 골드 소재 케이스와 어우러진다. 이 외에도 다채로운 컬러의 H. 모저 앤 씨의 팝 컬렉션, 라피스 라줄리 스톤과 블루 마더 오브 펄을 조합한 제니스가 신비로운 다이얼의 세계로 안내했다.

BLUE PALETTE WAVE

시계 다이얼에도 컬러 트렌드가 존재한다. 2023 워치스 앤 원더스에선 살몬 컬러가 팔레트를 채웠고, 작년에는 그 기세를 이어받아 다채로운 파스텔 컬러가 다이얼을 물들였다. 2025년에는 어떤 컬러 팔레트가 다이얼에서 반짝였을까? 워치메이커들은 하늘과 바다,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 눈이 시리게 쨍한 블루부터 하늘을 재현한 스카이 블루, 빙하를 옮긴 아이스 블루, 그리고 레이싱카의 강렬함에서 영감 받은 코발트 블루까지. 다양한 농담의 블루 컬러가 제네바 팔렉스포에 칠해졌다. 몽블랑은 다이얼에 프랑스 최대 빙하 메르 드 글라스의 얼음에서 영감 받은 독특한 질감을 표현했고, 튜더는 짙은 바다의 깊이를 다이얼에 구현했다. 롤렉스는 스카이 블루를 랜드-드웰러에 떨어뜨렸고, 샤넬 워치는 25년 만에 J12 워치에 매트한 블루 세라믹을 추가하며 아홉가지 변주를 주었다. 제니스와 위블로, 피아제와 태그호이어도 진하거나 옅은 블루 워치를 내세우며 블루 트렌드에 동참했다.

CLASSIC RENEWAL

제네바에는 익숙하지만 그래도 자주 보고 싶은 오랜 친구 같은 시계들도 있었다. 매년 메종의 전설적인 유산들을 한정판으로 새롭게 공개하는 까르띠에 프리베 컬렉션. 올해의 주인공은 미니멀한 디자인의 탱크 아 기쉐였다. 초침과 분침은 없애고 시와 분만을 간결하게 표현하며 초창기 모델의 디자인을 계승했다. 롤렉스는 1970년대 유행했던 워치의 스타일을 반영해 7개의 링크로 구성된 세티모 브레이슬릿을 적용한 옐로 골드 1908 모델을 출시했다. 피아제도 1970년대로 돌아갔는데, 1979년 탄생한 이래 메종의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폴로 79에 은색 옷을 입혀 부활시켰다. 마찬가지로 예거 르쿨트르도 1970년대에 유행한 밀라네즈 링크를 리베르소 워치에 접목시켜 빈티지한 매력을 드러냈고, 샤넬 워치는 J12에 파스텔 컬러를 넣어 변주를 더했다. 파텍 필립은 여성을 위한 트웬티~포 컬렉션에 퍼페추얼 캘린더를 더하고 남성도 착용하기 좋도록 직경 사이즈를 36밀리미터로 늘렸다.

FUN & JOYFUL DIAL

때때로 워치메이커들은 시계를 단순히 시간만 확인하는 물체로 보지 않고 상상력을 담은 하나의 오브제로 뽐내기도 한다. 두 얼굴을 가진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는 페르시아 서사시 <왕서>에 경의를 표하는 네 가지 에나멜 타임피스를 공개했다. 아틀리에의 장인들은 미니어처 에나멜 페인팅, 그랑 푀 에나멜, 기요셰 등 전통 공예술로 페르시아에서 성행하던 폴로 경기를 그렸다. 에르메스는 이따금 다이얼에 유쾌한 유머를 넣는데, 이번에는 장난기 넘치는 말을 담았다. 9시 방향의 버튼을 누르면 말이 혀를 내미는 귀여운 동작을 볼 수 있다. 반클리프 아펠은 두 연인을 통해 사랑의 떨림을 경쾌한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12시가 되면 손을 마주 잡은 연인은 서로에게 키스를 할 듯 다가갔다가 서로 점차 멀어진다. 이 장면은 온-디맨드 버튼을 누르면 재현 가능하다. 샤넬 워치는 그랑 푀 에나멜 기법으로 보이프렌드 ‘코코 아트’ 워치로 예술성을 뽐냈다.

JEWELRY WATCH

워치메이커이자 주얼리도 함께 제작하는 브랜드들은 시계와 주얼리를 하나의 아트피스로 만들었다. 까르띠에는 상징적인 동물 팬더를 활용한 팬더 주얼리 워치에 다리를 더하고 에메랄드 눈과 오닉스 코, 브릴리언트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화려함을 강조했다. 손목에서 뛰어노는 팬더 주얼리 워치에 다이아몬드를 뒤덮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피아제는 펜던트에 다채로운 컬러의 주얼리를 더한 네크리스 워치를 공개했고, 샤넬 여사가 사랑한 동물 사자의 얼굴에 다이아몬드로 세팅한 링을 선보인 샤넬 워치의 아이디어는 행사장을 방문한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다이아몬드가 별의 파편처럼 부서지는 불가리의 관능적인 세르펜티 에테르나, 쇼파드의 해피 스포츠, 다이아몬드 포인트를 넣은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 에르메스의 브로치 시계 등 화려한 주얼리와 시계를 넘나드는 워치메이커의 활약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URBAN SAFARI DESIGN

밀리터리 워치나 툴 워치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 다양한 작전을 수행하도록 크로노그래프를 탑재하고, 내구성 좋은 소재를 사용하고, 큼직한 크라운을 선택하며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특히 카키와 브라운 컬러는 밀리터리 시계에서 자주 쓰이며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 시계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컬러가 됐다. 이번 2025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도 차분한 브라운과 카키 컬러가 심심찮게 발견됐다. 롤렉스는 대표 워치 오이스터 퍼페추얼 36밀리미터에 웜 샌디 베이지라고 명명한 모래를 닮은 컬러를 담았다. 랑에 운트 죄네도 골드 컬러와 조화를 이루는 브라운 다이얼을 택했다. 역사적인 항공 시계 디자인을 계승한 파텍 필립의 칼라트라바 파일럿 트래블 타임은 10년 만에 다시 화이트 골드 케이스를 채택했고, 스포티한 카키 그린 패브릭 스트랩을 매치해 파일럿 워치의 강렬한 인상을 풍겼다. 오리스와 쇼파드는 각각 짙은 그린과 네이비 컬러 다이얼에 브라운 스트랩을 더해 모던한 디자인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