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건축가 7인이 응답한 운동의 풍경

2025.05.12.임채원

형태는 움직임을 따른다.

레 뱅 데 독장 누벨

© Atelier Jean Nouvel © Courtesy of Les Bains des Docks

장 누벨에게 빛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건축 재료다. 누벨은 빛을 겹치고 교차시켜 공간 안에 복합적인 빛의 층위를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 지은 이 현대적 수영장은 내부 전체를 매트한 흰색 벽으로 감쌌다. 그래서 벽은 빛과 물이 빚는 리듬을 담아내는 살아 있는 캔버스로 기능한다. 천창은 크기와 깊이를 다양하게 냈는데, 그로 인해 빛이 직사로 떨어지지 않고 확산되듯 은은하게 안으로 번진다. 물에 반사된 빛은 흰 벽을 따라 번쩍이거나 흘러내리면서 이 공간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감각의 풍경으로 변모시킨다. 빛이 닿지 않는 면과 극적인 명암 대비도 그가 빛을 재료로 삼는 이유 중 하나다. 빛의 레이어가 만들어내는 이러한 시각적 유동은 기능적인 스포츠 시설을 감성적 경험으로 확장시키면서 마치 물속을 유영하듯 몽롱하고 또 힘차게 이곳을 느끼게 한다. 수영하는 인체의 유연한 움직임, 반복되는 리듬감을 공간적으로 번역한 것만 같다. 스포츠의 동적 에너지와 훈련이라는 정적 사유를 동시에 끌어들이려는 의도였을까? 장 누벨은 레 뱅 데 독을 통해 수영이라는 스포츠가 예술적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친절히 안내한다. 📍France, Le Havre

SESC 폼페이아리나 보 바르디

© Lina Bo Bardi

이탈리아에서 브라질로 이주해 자신만의 건축 언어를 완성한 리나 보 바르디는 삶의 움직임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관계에 집중했다. 대표작 SESC 폼페이아는 기존 공장을 개조해 스포츠와 커뮤니티가 어우러지는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프로젝트다. 콘크리트 구조를 유지하되, 이질적 컬러와 물성을 더했다. 거대한 타워 안 농구, 배구, 풋살 등의 체육관을 수직으로 배치해 도심 속 제한된 부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했고, 카페테리아, 도서관, 전시 공간, 테라스의 기능은 자유로운 교류의 장을 만들었다. 리나는 스포츠를 규율이 아닌 놀이적 해방으로 바라보았다. 모양과 크기가 불규칙한 창은 운동하는 사람의 동선과 시선을 고려해 리듬감 있게 짰다. 방사형으로 뻗은 보행 다리는 스포츠를 통한 연결과 교류의 상징으로서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플랫폼을 완성했다.📍Brazil, São Paulo

알토알바리알바 알토

알바 알토의 물에 대한 철학은 빛과 만나는 표면으로서의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그의 고향 유바스큘라의 대학 캠퍼스 안에 위치한 알토알바리는 시민에게도 열린 종합 수영 센터로, 공공성과 사적인 휴식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알토는 물의 흐름과 반사를 통해 건축 내부에 자연광이 오래 머무르며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채광 설계를 했다. 높은 위치에 세로형 창을 일렬로 배치하고 계단식 벤치에 경사를 크게 주어 북유럽의 은은한 햇빛을 실내 깊숙이까지 끌어들인다. 핀란드산 목재 패널을 사용한 천장은 소음을 흡수하면서도 공간에 따뜻한 감각을 더했고 타일과 유리 같은 차가운 재료 사이에 온기 있는 요소들을 배치해 조화와 균형을 꾀했다. 곡선적 흐름을 따르는 동선과 외관의 적벽돌 마감은, 알바 알토의 유기적 모더니즘이 스포츠 공간에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잘 보여준다. 📍Finland, Jyväskylä

모나코 요트 클럽노먼 포스터

© Foster + Partners

“이 건물이 실제 배였다면, 이름은 ‘프리 스피릿’이었을 겁니다.” 노먼 포스터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트다쥐르의 푸른 바다를 배경 삼아, 요트 스포츠의 자유로운 정신과 기술적 미학을 이 클럽하우스에 담아냈다. 포스터는 어릴 적부터 기차와 비행기에 매료되었다. 이동과 속도에 대한 애정을 가졌던 그는 성인이 된 후 실제로 모터요트와 세일요트, 함대를 설계하며 선박 디자인에도 깊이 관여했다. 이러한 경험이 모나코 요트 클럽을 통해 응축되어 드러난다. 넓은 유리창과 수평 라인, 계단식 테라스는 바다의 빛과 공기를 실내로 끌어들이며, 건축이 풍경과 리듬을 나누는 장치가 된다. 항구를 따라 배열된 갑판 형태의 층들은 마치 돛을 단 선박처럼 보이며, 길이만 204미터에 달하는 외형은 거대한 여객선을 연상시킨다. 이 요트 클럽은 단순한 스포츠 시설을 넘어 복합적 기능과 공공성을 갖춘 ‘미니어처 도시’이자 기술과 자연, 이동성과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퓨처리스틱한 마리나로 완성되었다. 📍Monaco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루이스 바라간

카사 바라간 곳곳에 말 조각상을 둘 정도로 말을 사랑했던 루이스 바라간은 승마 클럽에서 알게 된 인연으로 저택과 승마 공간이 결합된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을 설계한다. 강렬한 평면 벽체, 빛과 그림자의 대비, 물이 있는 정원. 멕시코 미감에 현대적 감각이 세련되게 조화를 이루는 바라간 건축의 상징들이 이 작품에 총망라되어 있다. 시적 은유와 여백이 가득한 이 공간에 말이 들어서면, 추상은 구상으로 전환된다. 승마장은 단순한 운동 공간을 넘어 훈련, 산책, 목욕, 휴식까지 수행하는 다층적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말 전용 수영장 겸 분수, 트랙, 원형 마장, 초지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건축의 흐름은 말의 리듬과 동선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바라간은 승마라는 스포츠가 건축적 아름다움으로 체험되기를 바랐다. “평온을 집 안의 영구적 손님으로 초대하는 일”을 건축가의 숙명으로 여겼던 그에게 인간과 자연, 건축과 동물이 조용히 교감하는 이 공간은, 그가 평생 추구했던 시(訓)와 신비로움이 깃든 곳이다. 📍Mexico, Atizapán de Zaragoza

마라비야스 체육관알레한드로 데 라 소타

© Fundación Alejandro de la Sota

스페인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알레한드로 데 라 소타는 구조와 형태의 논리 속에서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타입이다. 빛이 만든 감성적인 장면보다는 그림자와 긴장감이 살아 있는 조형적 구조를 선호하고 절제된 디테일과 진실한 재료로 침묵의 건축을 추구했다. 마드리드의 가파른 경사지 위에 지은 체육관에서도 이러한 철학을 반영했다. 고저 차가 무려 6미터에 이르는 대지 위에 철골 트러스를 활용해 체육관을 공중에 띄우듯 설계하고, 그 아래로 빛이 자연스럽게 흘러들게 했다. 기둥과 보를 노출시킨 구조체 사이에는 나무 마감재를 적절히 섞어 차가운 구조에 따뜻한 물성을 입혔다. 체육관 상층부에는 자연사 박물관과 실험실 같은 교육 공간이 배치되어, 몸이 움직이는 공간 위로 정신이 머무는 공간이 포개진다. 뛰고, 움직이고, 호흡하는 아래와 관찰하고, 읽고, 실험하는 위. 이 수직적 구성은 단순한 공간 효율을 넘어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한 건축적 은유로 읽힌다. 📍Spain, Madrid

레자크 스키 리조트샬로트 페리앙

© Courtesy of Les Arcs

“하늘과 초원, 인간 사이의 완벽한 조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샬로트 페리앙은 레자크 프로젝트와 함께 이 문장을 남겼다. 설원의 오프 피스트 스키를 즐기는 열정적인 스포츠 걸이었던 그녀는 커리어 후반기, 자신의 건축 철학을 이곳 알프스에 심는다. 1969년, 레자크에서 두 번째로 완공된 라 카스카드 La Cascade는 산비탈을 따라 폭포처럼 흐르듯 지형에 안기는 형태를 가졌다. 비정형적 구조지만 각 방에는 동일한 크기의 테라스를 배치해 모든 유닛의 사람들이 탁 트인 하늘과 산을 누릴 수 있게 했다. 눈이 오면 평평한 지붕에 눈이 쌓여 설산의 일부가 되는 마법도 자연 속에 스며드는 건축을 추구한 페리앙의 손길이다. 레자크의 구조와 디테일은 매우 직선적이고 간결하지만, 그 안에 담긴 미학은 사용자와 풍경, 일상과 스포츠를 잇는 유기적인 사고로 끊임없이 흐른다. 건축을 통해 인간과 자연은 긴밀히 대화하고, 레저가 우리 삶 속에 아름답게 녹아들길 페리앙은 바랐다. 📍France, Alps Savo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