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뮤익의 존재를, 그의 의식을, 감정을 짐작해볼 수있는 시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렸다. 론 뮤익의 작품들 앞에서 말로 형언키 어려운 어떤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건 그의 세계로 들어가 그의 중심을 탐험하는 자유롭고 신비로운 순간일 것이다.
변화하는 영혼의 표정들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다.” -론 뮤익

압도하는 존재감, 실제에 가까운 정교함, 팽팽한 긴장감, 그리하여 결국 깊이 빠져드는 몰입감은 론 뮤익의 작품들 앞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복합적인 감정들일 것이다. 정신의 영역에서 위대한 조각들을 창조해온 론 뮤익은 그의 말대로 표상을 매개로 인간이 느끼는 삶의 깊이들을 꾸준히 표현해왔다. 어쩌면 그의 작품이 낯설지 않고, 앞에서 오래 머물게 만들며, 그것이 작품이기는 하나 영혼의 표정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론 뮤익이 일상 속에서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이를테면 외로움과 취약함, 불안감과 같은 불편한 존재들마저 기꺼이 마주하며 기록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그리고 당연하게도) 그의 작품은 단순한 표상의 재현이 아니다. 론 뮤익의 초기 작품 중 하나로 1998년 처음 소개된 ‘유령’(1998/2014)의 작품 속 소녀는 오늘까지도 여전히 살아서 깨어 있다. 그 소녀는 같은 조각이었으나 그때마다 달라 보이고, 저 안의 감정 역시 인간의 표정처럼 그때마다 바뀌었다. 이는 그가 표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으로 하여금 관객이 대상을 사유하며 감정을 창조하고, 결국 관객 스스로를 거울처럼 마주 보게 만드는, 작가의 투명한 의도일 것이다. 때로는 엉키고 설킨 실타래처럼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작가의 우주 앞에서, 관객으로서의 내 생각과 감정이 통과하지 못했던 비참한 경험을 떠올려보면, 론 뮤익의 전시는 친근하고 친절하며 익숙하기까지 해서 온전히 반가울 수밖에 없다.
<론 뮤익>展 : 아시아 최대 규모의 회고전

그런 론 뮤익의 전시를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7월 13일까지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이 공동 주최한다. 이번 전시가 귀한 건 론 뮤익의 작품 세계 전반을 두루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하여 지난 30여 년 동안 발표한 그의 대표작들과 스튜디오 사진 연작, 그리고 다큐멘터리 필름 두 편을 포함한 총 24점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아시아 최대 규모의 회고전으로 소개될 만큼 상징적이다.

<론 뮤익>展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5, 6전시실에서 열린다. 5전시실에서는 앞서 언급한 1998년 작품 ‘유령’(1998/2014)과 다정한 모습의 10대 연인을 표현한 ‘젊은 연인’(2013), 그리고 작가의 자화상을 거대하게 연출한 ‘마스크 Ⅱ’(2002), 벌거벗은 채로 책상 끝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과 그런 남자를 책상 위에서 꼿꼿하게 바라보는 닭의 구도가 인상적인 ‘치킨 / 맨’(2019), 론 뮤익 특유의 과장된 표현법이 돋보이는, 가로 길이만 6미터가 넘는 압도적인 대형 작품 ‘침대에서’(2005) 등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작품들 중 ‘매스’(2016–2017)는 이번 전시에 힘을 더한다. ‘매스’(2016–2017)는 눈처럼 흰 두개골 1백 개를 쌓아 올린 형태로, 흥미로운 건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마다 쌓아 올리는 두개골의 배치와 구성을 달리한다는 것인데, 이번 전시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있던 곳의 역사적인 의미와 건축 특징을 고려해 특별하게 설치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입구에는 1백50년 된 비슬나무 세 그루가 있다. 한자리에서 아득한 시간을 뿌리내리고 있는 고목을 그대로 살린 채 2013년 완공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2만7천2백64제곱미터의 부지에 연면적 5만2천1백25제곱미터의 규모로 건축했다. 터는 역사적으로 명암의 시간을 지나오며 주인을 바꿔 앉혀왔는데, 조선 시대에는 사간원과 규장각이,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과 일본군 수도육군병원이, 해방 이후에는 국군기무사령부가 지금의 자리에 있었다. 작품 ‘매스’(2016–2017)를 통한 론 뮤익의 메시지는 현시대를 향한다. 자세히는 전쟁과 전염병, 기후 위기와 자연 재해 등 ‘재난’이 일상이 된 지금을 살아가는 인류에게 전하는 이야기다. 그럼 그가 이해하고 해석한 이곳,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시대의 명암을 탑처럼 쌓아 올린 1백 개의 두개골은 말이 없다. 애초에 없었을 정답, 빈칸으로 남겨둔 작가의 의도가 곧 그의 바람이라면 그건 관객들이 ‘매스’(2016–2017) 앞에서 느낀 여러 갈래의 감정들을 투명하게 마주하는 것일 테다. 6전시실에서는 론 뮤익의 창작 과정을 만나볼 수 있다. 예술 세계를 향한 작가의 아름다운 투쟁, 창작에 대한 고민, 욕망, 비로소 창작물의 완성으로 자유로워지는 예술가로서의 환희, 결국 인간 론 뮤익의 삶과 내면까지, 관람객은 사진 연작과 다큐멘터리 두 편을 통해 그의 시간을 짐작하고 헤아려볼 수 있다.
<론 뮤익>展
전시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 6전시실
전시 기간 | 4월 11일 금요일부터 7월 13일 일요일까지
참여 작가 | 론 뮤익 Ron Mueck
전시 작품 | 조각, 사진, 영상 등 총 24점
공동 주최 | 국립현대미술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존재와 삶, 죽음에 대해 근원적인 의미를 되돌아보는 ‘인생극장’, ‘인생질문’, ‘인생서점’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 깊게 탐구해볼 수 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다양한 현대 예술 분야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립 문화 기관이다.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을 비롯해 건축과 디자인, 패션, 철학, 과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을 독창적인 전시와 라이브 퍼포먼스, 아티스트 토크 등을 통해 알려왔다. 또 재단은 지난 40여 년간 동시대 예술계에서 주요 작가들을 발굴하고, 나아가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서로 협력하는 플랫폼 역할도 해왔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세계 주요 미술 기관과 함께 현대 미술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색다른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도 지속적인 인연을 맺어온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2007년,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 미술가 이불 Lee Bul을 초청해 파리에서 12개의 크리스털과 알루미늄 조각으로 이루어진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또 지난 2017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과 <하이라이트 Highlights> 전시를 공동으로 개최, 재단 소장품 중 국제적인 작가 25명의 작품 1백여 점을 공개하기도 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2024년에 설립 4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2025년 말, 파리의 유서 깊은 장소인 팔레 루아얄 광장 Place du Palais-Royal에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 Jean Nouvel의 아이디어를 더해 새 보금자리가 탄생할 예정이다. 재단은 이곳에서 새로운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열며, 파리라는 도시와 이곳 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을 희망하며, 동시에 전 세계 현대 미술의 중요한 주체로서 다시 존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