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습하고 끈적여도, 비가 쏟아지거나 끔찍하게 더운 날에도 다리를 절대 드러내지 않는 고집스러운 남자가 있다. 왜 어떤 남자들은 끝끝내 반바지를 거부할까? 대체 왜 그러는지 직접 들어봤다.

몇 주 전, 옷장 깊숙한 곳에서 여름 옷들을 꺼냈다. 린넨 셔츠, 캠프 칼라 셔츠, 나를 해고한 회사 로고가 박힌 형편없는 러닝 싱글렛까지 별 생각 없이 정리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아이템 앞에서 손이 멈췄다. 파타고니아 배기스.
그 반바지를 처음 샀을 땐, 유행하던 5인치 기장 덕에 평생 입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길이는 ‘용기 있다’에서 ‘괜찮다’를 거쳐 ‘평범하다’로 바뀌었고, 난 어느 순간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반바지가 무릎 밑으로 내려오거나, 드라마 ‘화이트 로투스’ 속 패트릭 슈워제네거처럼 아슬아슬하게 중요 부위만 가릴 정도로 짧아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문제는, ‘남자는 반바지를 입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슬며시 자리 잡았다는 거다.

그 반바지를 처음 샀을 땐, 유행하던 5인치 기장 덕에 평생 입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길이는 ‘용기 있다’에서 ‘괜찮다’를 거쳐 ‘평범하다’로 바뀌었고, 난 어느 순간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반바지가 무릎 밑으로 내려오거나, 드라마 ‘화이트 로투스’ 속 패트릭 슈워제네거처럼 아슬아슬하게 중요 부위만 가릴 정도로 짧아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문제는, ‘남자는 반바지를 입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슬며시 자리 잡았다는 거다.
그 시작은 팟캐스트 ‘Throwing Fits’의 한 에피소드였다. 프랑스 수트 브랜드 허즈번즈(Husbands)의 창립자 니콜라 가바르가 게스트로 나왔다. 진행자가 “반바지 입으세요?”라고 묻자, 그는 수년간 내면을 갈고닦은 사람만이 뱉을 수 있는 단호한 대답을 내놨다. “아니요.” 며칠 뒤, 지인이 추천해준 팟캐스트 ‘Middlebrow’를 듣다가 또 한 번 같은 말을 들었다. 공동 진행자이자 브루클린 기반 코미디언인 브라이언 박은 “반바지는 스포츠나 물놀이할 때만 입는 옷”이라고 잘라 말했다.
처음엔 그냥 웃고 넘겼다. 어쨌든 반바지는 바지보다 땀 관리에 훨씬 유리하다. 물론, 린넨 팬츠처럼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바지라면 반바지만큼 쾌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덜 입는 것’이 정답 아닌가?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오래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이건 단지 내 스마트폰 속 사람들의 의견이 아니었다. 현실의 친구들 중에도 반바지를 거부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정치 컨설턴트 마이클 화이트사이즈는 “햇빛이 쨍할 때만 반바지를 입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밤에는? “배 위에 있거나, 물에 들어갈 때 정도? 그것도 사실 좀 애매하다.” 비디오 프로듀서 제레미 플러드는 반바지를 백팩에 비유했다. “어딘가 미성숙한 느낌이 있어요. 이제 중년으로 접어드는 제 나이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더 이상한 건, 인스타그램에서 의견을 구했더니 소프라노스의 짧은 클립을 언급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머리 빠진 남자가 힘겹게 의자에서 일어나 다른 대머리에게 말한다. “돈(don, 마피아 보스)은 반바지를 입지 않아.” 난 이 드라마를 본 적은 없다. 박은 적어도 TV 영향은 아니었다. 그가 반바지를 거부하게 된 계기는 2011년 AnOther 매거진에 실린 톰 포드 인터뷰였다. “남자는 도심에서 반바지를 입어선 안 됩니다. 플립플롭과 반바지는 도시에서 절대 어울리지 않아요. 반바지는 테니스 코트나 해변에서만 입어야 합니다.”
“그걸 읽은 건 패션과 스타일에 눈을 뜨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박은 회상했다. 그에겐 그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경쟁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던 그는 반바지를 기능적인 아이템으로만 받아들였고, 스타일링이나 자기표현의 도구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생각을 바꿔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지금껏 반바지가 포함된 어떤 룩을 보고 ‘바지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와 공동 진행자 댄 로즌은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서도 반바지는 금기라고 말한다. 관객 앞에 서는 순간, 당신의 옷은 존재감을 만들어주는 수단이 된다. “반바지는 권위를 깨뜨릴 수 있어요.” 다른 이들은 단순히 ‘내 체형에 안 어울린다’고 말한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로드 틸은 본인의 키(193cm) 탓에 반바지를 입으면 이상하게 부각된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의 허벅지 중간에 오는 반바지가, 그에겐 엉덩이 위까지 올라간다. “제 몸은 말랐지만 너무 길쭉해서 좀 어색해요.”
틸은 통통했던 유년 시절부터 반바지를 싫어했다. 그때는 바지보다 반바지가 더 쉽게 맞았기 때문에, 사계절 내내 반바지만 입고 다녔다. “영하의 날씨에 위에는 후디, 아래는 카고 반바지를 입고 버스 기다리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 유행하는 반바지가 당시 아메리칸 이글에서 샀던 것들과 비슷하게 생긴 것도 걸림돌이다. “다른 사람들은 멋지게 소화하더라고요. 부럽긴 해요.”
박도 결국 한 사람만은 예외로 인정했다. “디플로는 반바지를 아주 잘 입죠. 하지만 DJ라는 직업 덕분이에요. 유년기에 머물러 있는 상태가 직업 요건이랄까요.” 물론, 이들이 특별히 격식을 차려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아니다. 틸의 스타일은 “릴랙스드 스트리트웨어”이고, 박은 팟캐스트를 늘 티셔츠에 오버셔츠를 입고 녹음한다. 제레미는 똑같은 검정 치노 바지 세 벌을 돌려 입는다. 마이클은 지난 주 토요일 밤 생일 파티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허즈번즈 트렁크쇼 참석차 뉴욕에 다녀온 뒤 파리에 돌아온 가바르와 연락이 닿았을 땐, 그가 반바지에 독설을 퍼부을 줄 알았다. 실제로 그는 정장을 매일 입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팬데믹 봉쇄 기간 중 유일하게 청바지를 입고 외출했을 때, 누군가 그를 거리에서 찍어 올릴 정도였다. “해변에서도 전 하이웨이스트 바지를 입어요.” 가바르는 20대 로스쿨 시절 이후 반바지를 입은 적이 없다. 학교를 떠난 뒤 테일러링과 90년대 패션에 빠졌고, 그런 옷이 그의 ‘갑옷’이 되었다. “예전엔 운동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일 시작하고 나서 살이 빠졌고, 다리가 얇아졌어요. 그걸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반바지를 입는 것까지는 반대하지 않는다. 단, 체형의 비율과 실루엣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닉 우스터나 애런 러바인처럼 반바지를 잘 입는 스타일리스트들은 전체 룩의 균형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생각을 조금 바꾼 계기는 지난 3월 뉴욕에서 보낸 하루였다. “너무 아름다운 날이었어요. 23도쯤 됐는데, 도시 전체가 달라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반바지를 입고 있었죠. 파리에선 절대 못 보는 풍경인데… 정말 멋졌어요.” 그는 반바지를 의도적이고 세련되게 소화한 사람들을 충분히 본 뒤, ‘비치나 테니스 코트 밖에선 절대 안 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전까진 반바지는 도시에서 입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도시에서도 가능하단 걸 깨달았어요.” 단, 하나의 예외는 있다. 화사한 색에 칼주름이 잡힌 슬림한 반바지. 이건 가바르의 말에 따르면 “절대 멋질 수 없다.” 다행히도, 내 파타고니아 배기스는 부풀어 있고 구겨져 있다. 이 녀석은 내 서랍 안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