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상징, 유니폼은 어떻게 변해왔는가.
1980s 프리메라
신념을 유니폼에 꿰매던 시기. 아르헨티나 리그는 1980년대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국민들이 이념을 지지하고 열정을 불태우는 해방구와 같은 존재였다. 서로 다른 계급을 상징하며 희대의 라이벌이 된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의 더비, ‘슈퍼 클라시코’의 열기도 극에 달했는데, 각 팀의 직관적인 디자인은 팬들의 정체성이자 팀의 역사성을 상징했다. 클래식한 스트라이프, 단순한 색 조합, 작은 로고와 간결한 실루엣은 이 시기의 특징. 나뭇잎 모양의 트레포일 아디다스 로고, 브이넥 디테일, 짧은 반바지, 묵직한 소재의 빈티지함이 당시 스타일을 설명한다. 마라도나는 굵은 옐로 스트라이프가 가로지르는 블루 베이스 저지를 입고 1981년, 보카 주니어스를 프리메라 디비시온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0s 리그앙
프렌치 클래식의 우아함이 셔츠에 녹아든 리그앙의 1980년대. 단정하고 실루엣 중심의 유니폼이 주를 이뤘다. 칼라 셔츠, 절제된 배색, 얇은 라인 디테일이 주요 포인트였다. 클럽들은 세련된 전술처럼 쌓아 올린 멋을 추구했고, 아름답고 효율적인 축구 철학이 유니폼에도 반영되었다. 순백 바탕에 하늘색 어깨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1989/90 시즌 마르세유 유니폼은 비례감과 디테일이 뛰어났다. 루스 핏과 드롭 숄더의 조합은 정돈된 외형을 만들었고 산세리프체의 파나소닉 로고는 담백한 맛을 더했다. 파팽의 정교한 피니시와 유니폼의 섬세한 완성도는 그 당시 프랑스 축구 미학의 결정체. 프랑스 유니폼은 전술적 정제미와 미적 감각이 공존하는 완성형 스포츠웨어였고 2025년에 입어도 손색없을 정갈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1990s 세리에 A
유니폼 디자인의 르네상스를 연 1990년대 이탈리아 리그. 브랜드 스폰서십이 많아지면서 기술과 감성, 스타성과 전통이 교차한 비주얼 결정판의 시기라 할 수 있겠다. 고급스러운 광택 소재와 각 잡힌 스탠드업 칼라, 대담한 스폰서 로고가 돋보였다. 당시 세리에 A는 전 세계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리그로, 유니폼에도 이탈리아의 감각적이고 럭셔리한 감성이 녹아들어 1990년대 축구 스타일의 날개를 달았다. 유벤투스의 볼드한 흑백 스트라이프 셔츠의 델 피에로, 피오렌티나의 바이올렛 셔츠를 입은 바티스투타는 각각의 스타일로 황금기를 누렸다. 레트로한 타이트 핏은 날렵한 움직임의 두 선수와 찰떡같이 어울렸다. 퓨처리스틱한 소니, 픽셀 감성의 닌텐도 로고는 선수의 파괴력과 대비되는 반전미를 더했다.
1990s J리그
1993년 첫 시즌부터 대중적 성공을 거둔 J리그. 도시적이고 젊은 스포츠가 필요했던 일본 사회에 자국 축구 리그의 개막은 문화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유니폼은 형광, 금속성, 원색 컬러, 기하학 패턴, 거대한 스폰서 로고로 사이버틱한 감성을 완성했다. 테크 감성이 만개했던 당시, 정보량이 중요했던 일본의 시대 미감이 잘 드러난다. 도쿄, 오사카 등 도시의 문화적 특색이 유니폼에 반영되어, 클럽보다는 로컬리티가 중심이 되는 정체성이 자리 잡았다. 시각적 야심이 절정에 이르러 축구 유니폼은 하나의 캐릭터 디자인처럼 소비되었고, 베르디의 에메랄드 패턴 셔츠를 입은 킹 카즈는 일본 최초의 축구 아이콘이 되었다. 이 시기의 유니폼은 J팝과 오타쿠 문화의 시각 언어를 공유하며 그 자체로 하위문화가 된 사례다.
2000s EPL
2000년대 EPL은 전 세계로 팬층을 확장하며 군웅할거의 시대를 열었다.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등 빅 브랜드는 살아 숨 쉬는 마케팅 채널이 된 스타 플레이어를 선점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유니폼 디자인은 세기말 유행했던 루스 핏에서 타이트, 슬림, 테크 핏으로 변화하며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진화했다. 한편 하의는 무릎 위로 한참 짧아져서 다리 근육이 도드라지는 룩들을 볼 수 있다. 브랜드의 기술 실험도 활발했던 시기. 지금의 공격적인 이미지를 만든 맨유의 레드 & 골드 트리밍 셔츠, 홈구장 하이버리 스타디움 고별을 기념한 아스널의 스페셜 저지, 무리뉴 감독의 황금기를 블루로 물들인 첼시의 아디다스 킷, 고딕풍 타이포그래피의 리버풀 칼스버그 유니폼 등은 축구 팬들 사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상징이었다.
2010s 분데스리가
분데스리가는 기능적 미니멀리즘을 바탕으로 가장 진보된 킷을 선보이는 리그였다. 조직력을 앞세운 전술을 펼치는 독일답게 디자인에도 화려하기보단 절제된 미학을 보여준다. 삼선 디테일, 테크 핏, 심리스 봉제 기술 등이 가장 먼저 도입되었고, 아디다스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퍼포먼스를 극대화하는 디자인이 이어졌다. 아디다스의 본진이나, 라이선스 비용이 낮아 다양한 브랜드가 진입 가능한 환경이었다. 신흥 강자 도르트문트와 라이프치히는 각각 푸마, 나이키와 손을 잡고 차별화된 스타일을 추구했는데, 바이에른 뮌헨의 절대적 수문장 노이어의 청록색 셔츠, 2012/13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선보인 로이스의 꿀벌 군단 유니폼은 실용성과 위트를 동시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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