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GQ KOREA HEROES – JEON MIN CHUL
전민철의 피루엣은 멈추지 않고.

MC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이것만 할게요.(급히 메시지를 보낸다.)
GQ 괜찮아요. 끝나고 친구들 만나나요?
MC 아뇨, 수업이 있어서. 선생님과 연락 나누느라고요.
GQ 지금 밤 9시인데 이 시간에 수업이 있어요?
MC 네, 정규 수업은 아니고 그냥 제가 따로 연습하는···. 선생님도 바쁘셔서, 저녁밖에 시간이 안 나셔서 이따 10시에 뵙기로 했어요.
GQ 오늘은 무엇을 배워요?
MC 현대무용요. 다다음 주에 미국에서 발레와 현대무용 겸하는 작품으로 공연해서. 그거 준비하는 게 급해서 늦게라도 연습실 가려고요.
GQ 그렇잖아도 평소 이 시간에는 무엇을 할까 궁금했는데, 끝없이 연습이군요.
MC 네, 헤헤. 대부분, 아, 일요일에는 쉬고 놀 때도 있는데 거의 학교에 있어요.

GQ 첫 질문을 무엇으로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민철 씨의 발레 무대를 보고 나면 이 말만 나오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가볍게 뛰지?
MC 하하하하하. 그런데 저는 점프에 강한 무용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미지적으로 부드럽고 가벼워서 체공 시간이 길어 보이지 않을까 싶긴 한데, 점프는 항상 더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GQ 어쩌면 ‘뛰다’가 아니라 ‘날다’라고 해야 한다 싶게 실상 점프만이 아니라 부드러운 움직임이 인상 깊은 건데, 스스로도 가벼운 움직임을 잘하는 무용수라고 생각은 하는군요. 대신 점프는 보다 키워야 하는 영역이고.
MC 네. 몸의 재질을 표현할 때 가볍고 어쩌면 아름답고 우아한 성격의 캐릭터는 자신도 있고 강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면에 무겁고 진중한 이미지를 연기할 때는 어려워서 그걸 빨리 채우고 싶어요. 그걸 어떻게 채우느냐가 앞으로 몇 년의 저에게 달려 있지 않을까···. 무용수에게 좋은 능력이라는 것은 기술적인 면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어떤 캐릭터도 자기 옷처럼 입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모든 캐릭터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은 게 지금 제게는 가장 커요.

GQ 오늘 화보 촬영 때 민철 씨의 타이츠와 발레 슈즈를 활용했죠. 그들을 처음 신던 순간을 기억하나요?
MC 그 순간이라기보다 발레 슈즈 하면 기억나는 일화가 있는데, 어릴 때 너무 잘하고 싶고 너무 좋다 보니까, 그냥 이 존재가 너무 좋으니까 신고 잔 적이 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GQ 열두 살 때. 한창 <빌리 엘리어트> 공개 오디션 볼 때네요.
MC 맞아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귀여운데, 그때는 진짜 이걸 신고 자면 내일 발레 실력이 늘어 있을 것 같고 그랬어요.
GQ 그런 마음으로 요즘도 신고 잔 적이 있어요?
MC 피가 안 통해서.(웃음) 그때도 자고 일어나면 자국이 엄청 남아 있었어요.

GQ 듣기로는 당시 이것저것 시켜봐도 흥미를 붙이지 못하던 전민철 어린이가 발레를 할 때만은 재미있어했다죠?
MC 친구가 피아노 학원 다닌다고 하면 저도 하고 싶어 했어요. 축구, 태권도, 그때그때 하고 싶다는 건 부모님이 항상 시켜주셨는데 그 흥미가 길면 6개월 정도 갔나? 그런데 춤은 흥미가 떨어진 적이 없었어요. 처음 간 곳은 한국무용 학원이었는데 그때 원장님이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 포스터를 보고 나가보라고 하신 거예요. 그전까진 빌리 엘리어트가 뭔지도 몰랐는데. 그때는 제가 저를 보여주는 일들을 되게 즐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디션에 가서도, 정말 재능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빌리 엘리어트>는 한국무용은 전혀 보지 않고 발레, 노래, 연기, 힙합 이런 걸 봤고 저는 그중 하나도 전문적으로 해본 게 없는데도 그냥 깡으로, 자신감으로 했어요. 눈치껏 따라 하면서. 저를 보여줘야 하니까 막 미소 지으면서 했던 기억이 나요. 되게 재밌게 했는데, 그 모습을 좋게 보셨는지 계속 합격해서 트레이닝 받다가 최종 오디션 때 탈락했죠.
GQ 그 과정이 대중도 잘 아는 2017년 <영재발굴단>에 나온 이야기죠. 그때 발레 천재라 불렸는데 춤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는 게 우선 놀랍네요.
MC 맞아요. 그래서 탈락하고 무용을 그만뒀는데, 당시 안무 감독님이 “넌 무조건 발레를 해야 한다”라고 말씀해주셔서 자신감을 갖고 다시 할 수 있었어요.

GQ 당시 심사 기준보다 키가 자꾸 자라던 열두 살 전민철은 울었죠. “솔직히 말하면 전 빌리가 안 될 것 같아요” 하고.
MC 기억나요.(웃음)
GQ 지금의 전민철이 가장 최근에 눈물을 흘린 건 언제예요?
MC 지지난주?
GQ 정말 울었어요? 왜요?
MC 어···, 제가 조금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요. 완벽이 아니라 완벽주의적인 사고만 있어요. 모든 것에 욕심이 많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이 정말 큰데, 요즘 뭐 하나에 포커싱을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게 맞나’···. 일이 많다는 것은 감사한 일인데, 어느 하나에 포커싱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큰일들을 품을 수 없는 그릇인가 보다, 나는 큰 그릇이 아닌 사람인가 보다 생각되면서 그냥 눈물이 났어요.

GQ 어디에서 울었어요?
MC 집 앞에서.
GQ 집에서도 아니고 집 앞에서.(웃음) 눈물 닦고 들어갔군요.
MC 네. 그리고 저는 생각이 깊어지면 그걸 절대 다음 날까지 끌고 가지 않아요. 끌고 가면 헤어나오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하루 쏟아붓고 떨쳐내요.
GQ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나요?
MC 인생은 계속되니까. 그리고 선생님이신 조주현 교수님이 항상 말씀하셨거든요. “땅을 밟아라. 어떤 무수한 것들이 네게 풍선을 들게 하더라도 너는 그것을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왕관을 쓰면 무겁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왕관은 본인이 쓰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누가 씌워주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그 왕관을 쓰려고 하지 말라고, 너는 인간 전민철인데 왕관을 쓰면 피곤하기만 하다고, 그냥 네 삶을 살라고 항상 말씀해주시거든요. 그 말씀을 되새겨요.

GQ 그런데 그거 알아요? 키가 커서 탈락할까 봐 울던 전민철은 그사이 30센티미터는 더 자랐고, 그 시간은 10년도 지나지 않았어요.
MC 맞아요. 2017년이었으니까 8년 전이네요. 생각해보면 제가 마린스키에 가고 싶다는 꿈을 중학교 3학년 때 꿨어요. 그전에도 허황된 꿈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중 3, 고 1쯤부터는 좀 계획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왜 꿈만 꾸고 있지? 왜 실천할 생각을 안 하지? 왜 해보지도 않고 나한테는 없을 일이라고 생각할까? 해보자’ 하고. 그때부터 계획대로 살았어요.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갈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고 1이면 5년 전이거든요? 그 5년의 시간이 저한테도 굉장히 빠르게 다가와요.
GQ 그 꿈은 이전 인터뷰들에서도 말한 세계적인 발레리노가 되는 것인가요?
MC 네···.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왜냐하면 ‘세계적인 발레리노’라는 것이 좀···. 그러니까, 그것들은 다 남이 봤을 때 이야기잖아요. 사실 제 인생은 굉장히 평범하잖아요. 연예인이 유명해도 각자의 삶이 있듯이 만약 누구나 다 아는, 세계적으로 다 아는 무용수가 된다 하더라도 저는 제 인생을 살아갈 텐데 ‘꿈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나는 그걸 알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제가 예술가로서 어떤 예술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찾는 게 저의 숙제 같아요.

GQ 중요한 지점이네요. 민철 씨가 말해온 세계적이란 게 뭘까, 모호했거든요.
MC 맞아요. 이전까지 저의 꿈은 마린스키 발레단이었어요. 그리고 관객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으로 여태까지 달려왔어요. 그런데 몇 달 전쯤 발레를 하는데 굉장히 무기력하고 힘이 빠지더라고요. 평소와 다르게 그런 감정을 받았어요. 요즘 내가 왜 이럴까 싶어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친구들이 그러는 거예요. “너 꿈을 이뤄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꿈을 이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어요.
GQ 마린스키에 솔리스트로 입단했는데도요?
MC 그러니까요. ‘그렇네. 난 여태 내가 꿈을 이룬 것도 몰랐구나. 남에게 보여지는 꿈이었구나. 남의 생각이구나. 내 꿈을 내가 모르게끔 하면 안 되겠다. 나는 정말 좋은 영향력을 주는 무용수가 됐을까?’ 그러면서 나만의 꿈, 내가 명확하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꿈을 찾아봐야겠다 싶었어요. 아직 찾는 중이에요. 정말 잘 모르겠어요.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야에서 바라보고 싶어요.

GQ 6월에 러시아로 가죠? 떨려요?
MC 떨리기도 한데 ‘설렌다’가 더 맞는 것 같아요. 새로운 환경에서 발레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냥 설레요. 저한테 마린스키 발레단과 러시아는 발레의 지식, 역사가 담긴 곳이니까. 그런 곳에서 춤을 춘다면 색다를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거기에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요. 왜냐하면 그냥 저의 일상이 될 테니까. 너무 기대하고 ‘나의 꿈이다! 꿈의 공간이다!’ 하고 가면 돌아오는 회의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린스키 발레단도 똑같은 사람들일 거고, 똑같이 발레를 하는 곳일 테고, 그러니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으려고 최대한 제 자신을 릴랙스 시키고 있죠.
GQ 그럼에도 분명 만 스무 살, 아시아인, 군무단이 아닌 바로 솔리스트로 데뷔.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이례적인 일이죠.
MC 솔직히 저도 남이 그렇게 된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제 인생이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그냥 감사할 뿐이에요. 너무 기쁘고 너무 감사한데,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기쁜 건 하루더라고요.
GQ 찰나군요.
MC 네. 그다음은 가서 잘하는 것.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 것. 인생은 계속되니까. 저의 다음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더 다듬을지,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어떤 좋은 일이 생겨도 거기에 너무 현혹되지 않으려고 해요.

GQ 그것도 선생님이 알려주신 거예요?
MC 네, 헤헤.
GQ 선생님이 아무리 알려줘도 납득되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민철 씨에게도 통하는 가치관인가 보네요.
MC 맞아요. 그리고 제 성격 자체가 ‘해본 사람의 말을 따라야 한다’여서. 겪어본 사람이 다 알고, 그렇기에 그 말을 믿는 게 저한테는 좀 중요한 것 같긴 해요. 발레를 배울 때도, 이게 무용수로서 장점인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학생 때 예를 들어 팔을 이렇게 하라고 하면 (허수아비처럼 벌리고) 이렇게 하고 춤을 췄어요. 1백 가지를 지적하시면 그 1백 가지를 최대한 지키려고 하는 학생이었어요. 지금도 학생이고. 저만의 것을 만들어나가는 건 저 혼자 있을 때 하는 몫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의 단계는 스승님이 계시니까 스승님한테 배우는 게 제 역할이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무엇이든 하시는 얘기를 최대한 다 수용하고 받아들이려고 해요.

GQ 예술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요?
MC 예술에 관심만 가진다면요. 그러니까, 예술을 바라볼 때 내 삶에 대한 막막함을 느낄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찰나 행복하고 위로가 될 수 있겠지만, 뭐가 됐든 다시 내 인생으로 돌아와야 하니까. 그런데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럼에도 예술에 관심을 갖고 자기만의 위로를 얻거나 마음을 환기시킨다면 그것이 행복이지 않을까요?
GQ ‘구한다’는 건 뭘까요? 전민철에게 구원이란 뭐예요?
MC 삶의 원동력을 가지게 해주는 것. 사실 하루를 돌이켜볼 때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늘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쓰려고 하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날 때도 있어요. 오늘 내가 뭘 했을까, 너무 반복적인 삶이어서 하나하나 의미를 두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도 했어요. 그런데 발레를 예로 들면 무대를 보면서 ‘와···, 저 순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는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그리고 저는 발레 공연을 보면 그냥 그 순간을 즐기고 설레는, 마음이 막 ‘부웅’ 뜨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걸 느끼면 그날 하루가 되게 행복하고 좋아요. 일주일을 살아간다 쳤을 때, 그 하루가 제게는 큰 영향을 줘요.
GQ 그렇다면 예술이 전민철을 구하고는 있나요?
MC 네. 저를. 그렇습니다. 예술이 막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지금 제 나이에 생각하기에 예술은 그냥 행복, 즐길 수 있는 것이에요. 저는 지금 행복하다고 느껴요. 불행할 때도 물론 있지만 행복합니다. 워낙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는 성격이 아니에요. 슬프면 슬프고 말고, 행복하면 행복하고 말고. 그냥 다 웃어넘기는데, 그런데 발레를 보면, 예술을 보면, 그 시간만큼은 내 감정이 흘러가지 않고 어딘가 고이는 것 같아요. 새겨지는 것 같아요. ‘아, 살고 있다.’ 이걸 느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