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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린가드 “행복해야 좋은 경기력이 나와요”

2025.05.25.임채원

제시 린가드의 일요 축구 하이라이트.

라인드 화이트 니트 슬리브리스, 브라운 부츠컷 팬츠, 모두 아미리. 축구화, 워치는 모두 제시 린가드의 것.

GQ 여느 일요일엔 뭐 해요?
JL 보통 토요일에 경기를 하니까 일요일은 쉬어요. ‘Day in life of the Jesse’ 영상을 찍거나 관리를 받아요. 필라테스, 피부 관리, 마사지···. 느긋하게 보내요.
GQ 한국에 온 지 1년이 넘었잖아요. 적응이 많이 됐어요?
JL 맨체스터에 한평생 살다가 완전히 다른 문화, 다른 언어 속에 들어왔으니 처음엔 쉽지 않았죠. 하지만 환경에 금방 적응하는 편이에요. 부상이 있었지만 멘털은 무너지지 않았어요. 경기에 출전해 팀에 보탬이 되어 기뻤어요.
GQ 음식은 처음부터 완벽히 적응했죠? 맘스터치 맥 앤 치즈 치킨 버거와 케이준 프라이, 아이스 마차 라테에 바닐라 시럽 두 펌프. 오늘 제가 촬영 간식을 고민하는데 옆에서 원하는 걸 말했잖아요.
JL 하하, 평소에 제일 많이 쓰는 앱이 쿠팡잇츠예요. 그대신 낯설었던 건 식사 예절인데, 어린 선수들과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때 음식이 나왔는데도 기다리는 거예요. 나이가 많은 제가 먼저 먹어야 한다더라고요. 젊은 세대가 윗세대에 보여주는 예의가 처음엔 익숙지 않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멋지다고 느껴요.
GQ 동생들이 ‘제시 형’을 잘 따르나요?
JL 형이라는 말 알아요. 하지만 그냥 제시라고 부르는 게 좋아요. 호칭이 어떻든 한국은 존중하는 문화가 굉장히 깊은 것 같아요. 한국 선수들의 첫인상은 조용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까워졌어요.

네이비 로브, 브릭 컬러 트렁크, 니트 양말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월요병’이라는 한국어도 알아요?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워서 일요일에 앓는 병이에요. 제시도 월요병이 있나요?
JL 그럴리가요! 저는 제 일을 정말 좋아해요. 축구는 일이자 취미이자 어릴 때부터 해온 루틴 같은 거라 아직도 축구하는 매일이 즐거워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90분 경기를 위해 훈련한다는 건 특별한 일이에요. 동료들과 추억을 쌓는 것도 소중하고요. 최선을 다해 준비해요.
GQ 축구를 맨 처음 접한 건 언제예요?
JL 엄마 말로는 14개월 때 처음 공을 찼다고 하던데요.
GQ 에이, 14개월이 걸을 수 있다고요?
JL 진짜예요! 맨유 모자를 쓰고 뒷마당에서 공을 차는 사진도 있어요. 처음엔 지역 팀인 펜실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는데, 일고 여덟 살 땐 리버풀, 맨시티, 에버튼 등 여러 팀에서 스카우트를 받았어요. 아홉 살에는 제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맨유행을 결정했죠. 열다섯 즈음엔 맨유 유소년 팀 선수로 이기는 기쁨과 지는 감정을 모두 경험했어요. ‘패배로부터 배운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프로 선수로서의 정신력을 다진 시기였어요.

블루 셔츠, 그린 카디건, 모두 프라다. 화이트 우븐 티셔츠, 아디다스. 골드 디테일 로퍼,아미리. 타탄체크 쇼츠, 화이트 양말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편안함을 느껴 맨유를 택했다는 말이 인상적인데, 한국 행을 결심한 것도 비슷한 이유인가요?
JL 너무 오래 같은 곳에 있었던 거죠. 경기에도 많이 나가지 못했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집에 도둑이 들어서 맨체스터는 집조차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어요. FC 서울은 다른 유럽 팀들보다 더 안정적인 계약 조건을 제시했어요. 제 행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저는 지금 더 행복해요. 그런데 다들 놀랐던 것 같아요. 그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 한국으로 이적한 선수는 거의 없으니까. 그리고 저는 아직 젊으니까요. 저는 ‘안정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에요. 이곳에 처음 와서 받은 사랑과 환영은 놀라웠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순간,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단 걸 확신하게 됐죠.
GQ 한국에서의 삶이 당신을 더 자유롭게 만들었나요? 혹은 더 제시답게 만들었나요?
JL 그렇다고 생각해요. 맨체스터엔 맨유와 맨시티, 두 빅 클럽이 함께 있잖아요. 커피를 마시러 나가도 항상 파파라치가 따라다니죠. 솔직히 프라이버시가 거의 없어요. 한국에선,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를 제외하면 훨씬 자유로워요. 사람들도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고요. 그라운드에서도 자유롭게 플레이하는 느낌이 들어요. 축구는 감정의 스포츠고 동시에 두뇌를 써야 하죠. 행복해야 좋은 경기력이 나와요.

네이비 후드 집업, 네온 옐로 쇼츠, 모두 오니츠카 타이거. 레드 링 스트라이프 양말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축구화, 워치는 모두 제시 린가드의 것.

GQ 제시의 지난 인터뷰를 보다 보니 이런 단어가 눈에 띄었어요. ‘위닝 멘털리티’.
JL 저에겐 모든 것을 의미해요. 경쟁심이 강한 가족들에게 유전자를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이기는 걸 좋아했어요. 맨유는 늘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팀이었고, 유소년 시절부터 계속 우승을 해왔으니 이기고 싶은 경쟁심은 제 안에 깊이 박혀 있어요. 사라지지 않아요.
GQ K리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얼마 전 2호 골을 터뜨렸는데, 리듬을 찾아가고 있나요?
JL 팀은 리그 2위고, 경기력도 분위기도 다 좋아요. 팀원들에게 매일 말해요. “집중력을 잃지 말고, 이기는 습관을 유지하자.” 꾸준히 이기고 있다는 감각이 바로 리듬이라는 거죠. 동시에 리듬을 탄다는 건, 스타디움 잔디 위에서 몸이 가볍고 모든 게 잘 풀리는 느낌이에요.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자신감. 그런데 모든 경기가 술술 풀리지는 않잖아요? 내 플레이가 잘 안 되면 팀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반대로 동료들이 자신감을 잃을 때, 에너지를 끌어올리려 노력해요. 다음 경기에서는 그들이 빛날 수 있다고 느끼도록.

나일론 체크 재킷, 버버리.

GQ 제시는 어떤 리더예요?
JL 저는 조용히 도와주는 스타일이에요. 최대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고 끊임없이 잘하고 있다고 북돋아줘요. 우리 팀은 정말 훌륭해요. 매 경기 이길 수 있을 만큼 좋은 전력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GQ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엔 어떤 감정을 느껴요?
JL 이긴 날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순수한 기쁨이 밀려오고 다 같이 춤을 춰요. 경기에 졌을 땐 그 감정은 꽤 우울하고 무겁죠. 최대한 빨리 분석하고 전략을 세워요. 축구는 빠르게 다시 일어서는 싸움이거든요.

허리에 두른 엘로 져지 집업, 아디다스. 화이트 셔츠, 깅엄 패턴 쇼츠, 네이비 양말, 실버 스니커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인생이 경기 같다고 느낄 때도 있나요? 연장전처럼 한방이 간절할 때, 승부차기처럼 실수를 용납하지 않을 때.
JL 제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았거든요. 축구도 그래요. 변수와 기복이 많은 스포츠에서 중요한 건 멘털 관리예요. 지금은 상승세예요. 하지만 시즌은 길고 방심하면 안 돼요. 마음은 차갑게, 집중력은 뜨겁게. 그리고 결국엔, 팬들을 위한 경기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하고요.
GQ 한국에 올 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다”고 얘기했죠? 요즘 느끼는 사랑의 형태를 표현해본다면요.
JL (볼하트, 손하트, 손가락하트를 순서대로 날리며) 사랑은 그냥 ‘사랑’ 그 자체죠. 따뜻하고, 안에서 포근한 느낌이 들어요. 제 몸에 새기고 싶을 만큼, 가족에게서 느끼는 사랑과 비슷한 감정이에요. 길에서 인사를 건네주는 사람들, 경기를 보러 온 팬들. 항상 미소 짓게 돼요. 최고의 퍼포먼스로 그 기대에 응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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