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렌그란트 65년 런칭 현장에서 삼킨 시간.

더 글렌그란트 65년의 아시아 론칭이 아트 바젤 홍콩과 시기가 맞물린 건 우연이 아닌 치밀한 필연이었다. 스튜디오 ‘존 갈빈 디자인’이 뫼비우스의 띠를 형상화해 만든 이 미끈한 보틀을, 감상 그 자체로 안주가 될 피스를 어찌 ‘예술’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홍콩의 멋쟁이들이 모이는 어퍼 하우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집단 ‘랜덤 인터내셔널’이 라이브 드로잉을 펼치는 동안 65살 노장의 뉴 스타는 데뷔 준비를 마쳤고,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정원에선 더 글렌그란트 12년 칵테일이 쉴 새 없이 소비되었다. 게스트들 내면에 달콤하게 불을 지피는 칵테일 군단이 마치 무언가가 임박했다는 신호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좋은 위스키는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든 위스키”. 오크통에서 65년 동안 산 위스키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상상하며 언젠가 멋진 노장이 내게 들려주었던 말을 떠올린다. 위스키는 오크통 안에서 단지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정성 들여 원액을 응축시키고, 고귀하게 응집된 액체는 입안에서 마침내 꽃처럼 활짝 핀다. 자연이라는 캔버스 위에서 시간이라는 물감으로 완성한 작품처럼.

런칭 현장에서는 감상으로 입맛만 다시고 말았지만, 어쩌면 더 좋았다. 더 글렌그란트의 전설적인 마스터 디스틸러 데니스 말콤의 더 글렌그란트 60년을 마신 3년 전 그날을 기분 좋게 음미할 수 있었으니까. 영화 <더 메뉴>에 나올 것만 같은 홍콩 라마섬의 레스토랑 ‘OOAK(One of a kind)’에서 펼쳐진 디너에서 마침내 더 글렌그란트 65년의 속살을 마주했을 때 누군가는 한 시대를 마시는 느낌이라 했고, 누군가는 시간을 멈추고 싶다고 했다. 나는 3년 전 기억을 3초 만에 소환해왔다. 첫 한 모금에서 전 마스터 디스틸러 데니스 말콤과 현 마스터 디스틸러 그렉 스테이블스가 따뜻하게 손을 맞잡은 풍경이 절로 그려졌다. 그렉 스테이블스는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정성껏 이어나가는 데 공을 들인다더니, 과연 그랬다.

스페이 사이드 지역의 더 글렌그란트는 버번 캐스크 숙성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더 글렌그란트 65년은 65년 동안 셰리 캐스크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마호가니의 깊고 그윽한 색에선 네바다 사막의 찬란한 석양이 떠올랐고, 잘 익은 블랙베리와 백단향의 뉘앙스는 고요한 명상을 불러왔다. 블랙 체리, 과일 케이크, 끈적한 대추와 신선한 오렌지 향과 맛, 섬세한 오크, 시트러스, 스모크 향은 긴 그림자를 남기고 떠났다. 언뜻 비치는 고목, 오래된 한옥, 장농 향은 외할머니의 품처럼 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날 내가 마신 건 위스키가 아니라, 시간과 그리움이었다.
더 글렌그란트의 마스터 디스틸러, 그렉 스테이블스와의 인터뷰

GQ 3년 전, 감사하게도 한국에서 더 글렌그란트 60년을 맛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도 미디어 아트와 결합한 상당히 인상적인 페어링을 경험했죠. 더 글렌그란트에게 ‘아트’란 어떤 의미인가요?
GS 예술은 더 글렌그란트에게 단순히 아름다운 것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녀요. 강력한 스토리 전달의 수단이자, 감정적 연결의 형태로 기능하죠. 홍콩에서 더 글렌그란트 65년을 출시하면서 위스키 여정에 보다 몰입할 수 있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아티스트 집단 랜덤 인터내셔널과의 협업을 통한 ‘사계 Seasons’ 공연에서 디지털 데이터를 손으로 그린 작품으로 변환하는 라이브 페인팅 경험이 그 예죠. 더 글렌그란트 증류소의 상징이자 위스키를 형성해 온 리듬이기도 한 빅토리안 가든의 자연 주기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이에요.
GQ 아트 바젤 홍콩 시기에 런칭한 것도 우연은 아닐 테고요.
GS 그럼요. 다이내믹한 도시 홍콩이 문화적으로 가장 활기찬 순간에 공개한다는 건, 더 글렌그란트 65년 위스키처럼 희귀하고 의미 있는 작품을 기리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어요.
GQ 더 글렌그란트 60년 제품은 글렌캐런 크리스탈 전문가들과 함께 100퍼센트 수공예 위스키 디캔터를 제작했었죠. 이번 65년 존 갈빈 & 글래스 스톰 디자인의 디캔터 또한 가히 하나의 아트 피스처럼 느껴졌어요.
GS 느끼셨군요! 이번 패키지 역시 의심의 여지 없는 예술 작품이죠. 저 역시 처음 디캔터를 마주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얼마나 신중한 고민이 담긴 피스인지 단번에 느껴졌으니까요. 디자인에는 자연스러운 자신감이 배어 있었고, 디자인을 완성한 모든 선택은 의도적이었어요. 위스키와 디캔터가 함께 존재할 때 더 큰 무언가를 표현한다고 느꼈어요. 마치 위스키와 디캔터가 서로 대화하는 느낌이랄까?
GQ 현재 더 글렌그란트는 한국 작가와의 협업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위스키 외적인 브랜드의 활동이 위스키의 내용물을 만드는 마스터 디스틸러인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나요?
GS 제 창작 공간은 늘 스페이사이드의 더 글렌그란트 증류소예요. 하지만 랜덤 인터내셔널과 같은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우리의 위스키를 새로운 장소로 데려가 주죠. 증류소의 화려한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계절의 리듬과 식물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변형시키는 아티스트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홍콩을 배경으로 목격했어요. 이런 협업은 장인 정신을 다른 시각으로 보도록 해요. 제가 위스키를 만드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더 확장하게 하죠.

GQ 더 글렌그란트는 당신에게 너무 익숙한 술이지만, 그럼에도 ‘아, 이 술 좀 예술이네’라고 느낄 때가 있나요?
GS 어떤 극적인 하나의 순간보다는, 위스키를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의 축적이 저에게는 중요해요. 위스키를 따르고, 색이 빛을 받는 것을 감상하고,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향을 들이마실 때 수년 간의 작업이 모두 드러나죠. 특히 더 글렌그란트 65년 위스키에는 그 모든 것을 빚은 이들과 형성한 장소에 관한 깊은 연결이 내재해 있어요.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느끼죠. 아, 예술이다.
GQ ‘위스키 메이킹의 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GS 저는 ‘전통과 혁신의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쌓은 기술을 기반으로 제조하고 있지만 자연이 주는 미묘한 차이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캐스크 유형, 과정에서의 미묘한 변화, 주변 환경에 대응하는 방법을 통해 언제 진화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해요.
GQ 흔한 질문이지만 늘 궁금합니다. 좋은 위스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당신이 정의하는 ‘훌륭한 마스터 디스틸러’는요?
GS 저에게 좋은 위스키란, 증류소에서 탄생한 최고의 스피릿에서 비롯된 풍부한 개성을 지닌 위스키예요. 최고의 캐스크를 사용해 숙성하고, 그 원액을 최상의 상태에서 취할 때 품질이 보장되죠. 또 훌륭한 마스터 디스틸러란, 최고의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GQ 선대 마스터 디스틸러 데니스 말콤으로부터 배운 가르침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GS 위스키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 데니스 말콤의 63년 경력 중 저는 18년 이상 그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인본 중심 철학이었어요. 아무리 복잡하고 희귀한 위스키를 만든다 한들, 그는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에서 언제나 위스키를 함께 만든 사람들을 잊지 않았어요. 그 사고방식은 오늘날 제가 이끄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죠. 더 글렌그란트 스플렌더 컬렉션을 통해 더 글렌그란트 위스키를 새로운 장으로 이끌면서, 데니스에게 배운 존경과 겸손의 감각을 모든 일의 핵심에 두고 있습니다.
GQ 무한함, 영원성을 드러내는 이번 더 글렌그란트 65년의 디캔터처럼, 마스터 디스틸러인 당신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GS 우리의 근본인 땅, 더 글렌그란트 증류소와의 깊이 있는 연결이 지속되기를 바라요. 땅은 모든 단계에서 위스키를 형성하며, 우리는 그 땅을 보호할 책임이 있죠. 이는 더 글렌그란트 증류소에서 맡은 저의 가장 중요한 임무예요. 미래 세대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품질, 개성, 자연에의 존경을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창조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