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달리지 말고, ‘느린 달리기’—요즘 말로는 ‘섹시 페이스’를 유지할 것. 이게 전문가들의 핵심 메시지다. 부상을 무릅쓰지 말고, 제대로 달려보자.

달리기를 하다 보면 마주치는 당황스러운 순간. 나보다 몸이 좋지 않으며, 훨씬 나이가 많고, 겉으로 보기에 운동을 꾸준히 해온 것 같지 않은 사람이 큰 힘들이지 않고 나를 지나쳐 갈 때. 물론 이건 내 경험이다. 느리게 달리는 건 나에겐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기분이 드는 걸 막을 수 없다.
이 기사 작성을 위해 전문가와 얘기하면서 나의 페이스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자랑스럽게 느리게 달리는 사람임을 선언하고자 한다.
느린 달리기의 함정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달리기는 대개 공공장소에서 이뤄진다. 헬스장 러닝머신조차도 작지만 약간은 무대 같은 곳이고, 야외에서 뛰면 사람들의 시선에 완전히 노출된다. 둘째, 웨이트나 축구, 럭비와는 달리, 속도는 아주 공정한 비교 기준이다. 나, 드웨인 존슨, 해리 케인, 그리고 며칠 전 나를 추월한 노인까지—모두 같은 공간을 움직일 기회를 가진다. 벤치프레스나 프리킥처럼 타고난 체격이나 재능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엘리엇 자일스는 중거리 육상 선수로, 유럽 선수권에서 두 차례 메달을 땄고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한 바 있다. 그는 말 그대로 엄청나게 빠른 사람. 그런 사람과 얘기하는 건 오히려 놀랍도록 차분한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훈련 대부분이 느린 달리기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정말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시간, 거리 같은 데이터에 집착하지만, 느리게 달리는 데에도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는 GQ에 이렇게 말하며 ‘섹시 페이스’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오늘도 뛰었는데, 거의 걷는 수준이었어요. 엘리트 선수의 훈련에서도 느린 달리기는 아주 중요한 요소예요. 기초를 다지는 게 바로 여기서 이뤄지니까요.”
그의 일주일 훈련은 느린 달리기 80%, 고강도 훈련 20%로 구성된다. “그 20%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나머지는 반드시 느려야 하죠.” 국제대회에 나가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느린 페이스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오늘 아침엔 아예 시계도 안 찼어요. 지금 생모리츠에 있는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거든요. 그냥 주변 풍경을 즐기며 달렸어요. 느린 달리기는 제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이에요.”
섹시 페이스는 속도와 지구력을 높여준다
느리게 달리는 건 결국 더 빠르게 달리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엘리트 선수들이 최대 능력의 일부만 사용하면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훈련에 투자하는 것이다. “속도를 높일수록 부상의 위험도 커져요. 관절에 더 많은 부담이 걸리죠. 부상이 적으면 훈련의 일관성이 생기고, 일관성은 결국 속도를 높입니다. 느리게 달려야 빠르게 뛸 수 있어요.” 자일스가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달리기는 최고의 순간엔 움직이는 명상이 된다. 나무와 대화하는 사람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시골 풍경 속에서 편하게 10km를 달리는 것만큼 삶이 멋지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없다. 다만, 노인용 교통카드를 든 사람이 나를 추월하기 전까진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자일스는 어떻게 느낄까?
“제 자존심은 그 정도로 크지 않아요. 그저 ‘잘 달리시네’라고 생각하죠. 경쟁심은 트랙 위에서만 발동돼요. 스위치처럼요. 그 사람 그냥 보내요. 잘 가라고.”

느리게 달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국가대표 선수의 반대편에는 주말 러너나 이제 막 1마일을 도전하는 초보자가 있다. 게리 하우스는 온라인 코칭 서비스 ‘하우스 러닝 클럽’을 운영하며 팟캐스트 Runstrong을 진행하고 있다. 수백 명의 아마추어 러너를 도운 그는, 느리게 달리는 것에 대한 ‘수치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어느 남자 분은 동네 마트 주차장에서 1마일을 뛰기 위해 연습했는데, 밤 11시, 불이 다 꺼진 시간에만 나갔어요. 사람 눈을 피하려고요.” 하우스는 학교에서의 경험이 성인기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본다. “저는 크로스컨트리를 좋아했지만, 타고 나길 느린 아이들은 항상 소외됐어요. 많은 사람이 학창시절 달리기를 나쁜 기억으로 갖고 있어요. 운동 잘하는 애들이 뒤처진 친구들을 보고 비웃던 장면을 기억하죠.”
그리고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운동 데이터 역시 느린 달리기를 어렵게 만든다고 본다. “각종 기기에서 나오는 정보는 오히려 자기를 제한하게 만들어요. 러닝 기록을 SNS에 올리면, 그게 완전 지뢰밭이에요.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고, 느리게 달리는 게 두려워져요.” 느리게 달리는 기쁨을 받아들이고 싶은 초보자에게 하우스는 걷기와 달리기를 번갈아 하라고 조언한다. “매일 걷고, 격일로 달리기를 추가해 보세요. 달리는 날엔 한 시간 동안 걷고, 중간에 5분 달리기를 섞어 넣는 식이에요. 그 시간 안에서 달리기 비중을 점차 늘려가면 됩니다. 럭비 선수들도 많이 지도하는데, 처음엔 전혀 못 달리던 사람들도 금방 45분 정도는 뛸 수 있게 돼요.”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막 달리러 나갈 참이다. 심박수도, 랩 타임도 보지 않을 거다. SNS에 업로드도 하지 않을 거다. 여든 넘은 어르신이 나를 경쾌하게 추월한다면,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 것이다. 자, 해보자. 내 몸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그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