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삼키고 트랙을 접어 달리는 존재들.

GQ 오늘 이야기를 나누려면 레이스 카의 개념부터 알아야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양산형 모델도 레이스 카로 운용하잖아요? 이를테면 아이오닉 N, 아반떼 N처럼요. “그렇다면 어떤 차종이든 레이스 카가 될 수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TY 있어요.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그 기준이 레이스 카에 적용되는 건 아니에요. 명확한 기준은 ‘대회’에 있어요.
GQ 체급이 나뉘어 있는 복싱 경기처럼 레이스 대회마다 참가 자격이 다를 테니까.
TY 맞아요. 말씀하신 양산형 모델이 레이스 카로 출전할 수 있는 대회는 따로 있어요. ‘현대 N 페스티벌’의 원메이크 레이스인데, 여기서 ‘원메이크’는 단일 차종을 의미해요. 즉, 아이오닉 N끼리, 아반떼 N끼리 승부를 겨루는 식이죠. 결국 내 차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모든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건 아니고, 대회 조건에 맞아야 출전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GQ 그럼 “어떤 차종이든 레이스 카가 될 수 있는 걸까?”라는 좀 전의 질문을 다시 하면.
TY YES, 될 수 있다. 레이스 카의 개념은 ‘트랙을 달리는 경주용 차’니까요. 결국 어떤 형태의 대회든 참가해서 다른 차들과 경쟁한다면 그 차는 레이스 카예요.
GQ 슈퍼카를 포함한 양산형 모델과 레이스 카로 불리는 차들, 결국 이들을 결정짓는 건 ‘대회’네요.
TY 네. 그리고 떠올려보면 성능이 월등한 몇몇 양산형 모델의 이름에서도 레이스 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요.
GQ 포르쉐의 특정 모델에 붙은 ‘GT3’ 같은?
TY 그렇죠. 잘 알겠지만 포르쉐 911 GT3 모델을 예로 들면, 이 차는 GT3 클래스의 규정에 맞춘 차라는 뜻이에요. GT3 규정에 맞춘 세팅값을 그대로 적용해 양산형으로 만든 차. 다시 말해 이 차는 지금 공도를 달리는 양산형 모델이지만 당장 GT3 클래스에도 거뜬히 출전할 수 있는 차인 거죠.
GQ 그런데 반대로, 레이스 카가 공도를 달릴 수 없는 경우는 또 대부분이고요.
TY 단순해요. 공도를 달릴 수 없다는 건 이 차에는 번호판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고, 그건 결국 도로교통법상의 요건들, 그중에서도 안전성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얘기거든요. 레이스 카는 레이스에 불필요한 기능을 전부 탈락시킨 형태니까. 그러니 레이스 이외의 목적, 트랙 이외의 장소에선 ‘적합하지 않은 차’일 수 밖에요. 그런데 일부 국가에서는 레이스 카에 번호판을 내어주기도 해요. 실제로 영국에선 오늘 촬영한 이 SR1 모델에 번호판을 내주고 있고요.
GQ SR1이 공도를 달린다, 상상만 해도 멋진 모습이긴 합니다. 물론 드라이버는···.
TY 맞아요. 드라이버 입장에선 공도를 달리는 게 멋지기만 한 일은 아닐 거예요. 에어컨도 안 되고, 차체가 굉장히 낮으니 도로의 진동들이 전부 올라오죠. 역시 낮은 포지션에서 운전을 하니까 매연과 먼지도 다 맞고요. 그러니 번호판을 받았다 하더라도 뭐, 굳이 공도에선 안 타겠죠.(웃음)
GQ SR1 얘기가 나온 김에 이 모델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들어볼까 봐요.
TY SR1은 영국에서 수제로 만드는 프로토타입 모델이에요. 동시에 SR1끼리 달리는 래디컬 컵 ‘원메이크 클래스’에 출전할 수 있는 레이스 카고요.
GQ 저는 생각보다 차가 작아서 흥미롭더라고요.
TY 레이스 카는 무게가 중요하죠. 가벼워야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니까. SR1은 처음부터 레이스 카를 목적으로 제작한 모델답게 불필요한 건 전부 제외했어요. 그래서 굉장히 가볍고요.
GQ 어느 정도 되나요?
TY 이 차의 경우는 4백90킬로그램 정도 나가요. 스즈키의 하야부사 모델에 들어가는 1천3백40시시 바이크 엔진이 들어가 있고요. 출력은 1백82마력. 변속기는 클러치 조작 없이 공기 압력을 이용해 기어를 올리고 내리는 시퀀셜 변속기 Sequential Manual Transmission를 사용해요.
GQ 방금 이야기해준 수치들로만 짐작해보면 빠를까, 싶은 솔직한 생각도 들어요.
TY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레이스 카는 ‘무게 대비 출력비’라는 스펙이 중요한 기준이 되고요.
GQ 차의 무게와 출력의 비율로 성능을 계산하는 거죠?
TY 맞아요. 보통 슈퍼카로 불리는 모델들의 무게가 1천5백 킬로그램 정도 되거든요? 출력은 6백 마력 전후고요. 그러니까 맥라렌,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모델들. 이 차들을 기준으로 해서 제 차의 무게 대비 출력비를 비교해본다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출력은 1백82마력 정도지만 슈퍼카들에 비해 무게는 1/3 수준이니까. 실제 레이스에서는 약 5백 마력의 성능이 발휘되는 셈이죠.
GQ 그럼 이쯤에서 질문 하나. 4백90킬로그램 이면 아무래도 달리는 중에 차가 붕붕 뜰 수밖에 없겠어요. 가벼우니까. 그럼 이를 막아줄 공기역학 기술이 중요할 텐데, 다운 포스의 무게는 어느 정도 나오는지 궁금해요.
TY 이 차는 래디컬 카 중에서 SR1 레벨이에요. 아까 설명한 기준을 연결하면 이보다 상위 모델인 SR3의 출력은 7백~8백 마력, SR10은 9백 마력 가까이 되거든요? 무게 대비 출력비를 따지면요. 그래서 모든 레이스 카의 고민은 이 높은 출력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 첫 번째 방법이 다운 포스, 공기역학 기술이에요. 차를 넘는 공기가 붕붕 뜨는 차체를 눌러주는 거죠.
GQ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그럼 레이스 카는 모두 가볍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TY 충분히요. 그런데 레이스는 극초를 다투는 경기라, 여기에는 치밀한 계산이 바탕에 있어요. 차는 가벼울수록 좋지만 타이어의 접지력을 생각하면 또 어느 정도의 무게는 필요하거든요. 접지력은 곧 고속주행에서의 안정성으로 연결되니 결국 이건 드라이버와 감독의 전략에 달려 있어요. 어느 정도의 무게 대비 출력비를 실현해 출전하느냐의 결정인 거죠.

GQ F1의 경우는 어때요?
TY 같은 맥락이에요. 자세히 살피면 전부 다르겠지만, F1 카의 무게가 보통 6백~7백 킬로그램쯤 돼요. 이 차가 시속 2백 킬로미터로 달린다고 하면 다운 포스의 무게는 약 1천 킬로그램쯤 될 거예요. 그럼 이 차가 달리고 있는 중에 만들어지는 차체의 무게는 1천6백~1천7백 킬로그램이 되는 거죠.
GQ 이럴 때 흔히 “바닥에 붙어 달린다”라는 표현을 쓰고요.
TY 맞아요. 그래서 이론적으로 보면 이 정도 다운 포스에서 속도를 좀 더 높여 달린다고 하면, 터널 지붕도 빙글빙글 돌며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거죠. 그럴 수 있는 충분한 접지력이 생기니까.
GQ 다운 포스가 높아질수록 차는 바닥에 붙으니까. 그렇죠.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F1 경기를 보면 왜 아주 작은 파손에도 차가 휘청하잖아요? 심한 경우엔 리타이어하기도 하고.
GQ 특히 고속에서요.
TY 아까 레이스에는 치밀한 계산이 바탕에 있다고 했잖아요? F1 같은 대회는 말도 못 하겠죠. 차의 작은 파손에도 저 커다란 머신이 이리저리 휘청이는 건 수백 분의 1까지 짜놓은 그 치밀한 계산이 깨져서 그래요. 이를테면 애초에 타이어 그립을 1천7백 킬로그램에 맞춰서 설계하고 레이스에 출전했는데, 이 다운 포스가 깨지면서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달리는 차가 순간 붕붕 뜨는 거죠. 타이어가 그립을 잡지 못해서요.
GQ 공기역학 기술이 뛰어날수록 다운 포스는 예상 가능하고, 예상 가능하니까 레이스는 안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게 깨지면 그만큼 위험한 거군요.
TY 네, 방금 레이스 카에서 가장 중요한 세 포인트를 지나왔어요. 무게 대비 출력비, 공기역학, 타이어. 순식간에 지나오긴 했지만, 이 세가지를 이해하고 모터스포츠를 보면 경기가 몇 배는 더 재밌을 거예요.
GQ 그럼 묵직한 내용들을 지나왔으니, 이쯤에서 단순한 질문 하나요. 스티어링 휠에 있는 이 알록달록한 버튼은 다 뭐예요? 스티어링 휠도 좀 다르고요.
TY 모양 먼저 설명하면 타각(회전각)이 한정적이라서 그래요. 그러니까 양산차를 예로 들면, 두 바퀴 반 정도 돌리면 다 돌아가잖아요? 레이스 카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각도를 한정해둔 거죠. 그만큼 돌릴 수도 없고요. 엄청 커다란 타이어를 끼고 있으니까. 한 예로 F1 카가 사고로 차체가 돌아가면 드리프트처럼 순간 회전시켜서 돌리거든요? 스티어링 휠 타각이 좁아서 그렇게 밖에 바꿀 수가 없어요. 유턴? 못 하죠.(웃음)
GQ 그럼 드리프트를 해야 한다거나, 트랙의 회전 구간이 깊다면 스티어링 휠은 원형이 맞겠네요.
TY 네, 일반적으론요. 또 많은 버튼은 레이스에 최적화된 세팅값을 콕콕 심어뒀다고 이해하면 쉬워요. 수백, 수천 분의 일 초를 다투는 레이스에서 드라이버가 많은 조작을 할 순 없으니까요. 버튼으로 차의 세팅을 휙휙 바꾸는 거죠. 예를 들면 이 구간에선 시속 1백20킬로미터로 속도를 낮춰야 해, 그럼 그 구간에 맞게 세팅해놓은 버튼을 누르는 식이에요. 이건 엔진의 힘을 분배하는 설정, 이건 브레이크의 힘을 앞바퀴와 뒷바퀴에 나눠주는 설정, 이건 윙의 각도, 이건 통신 버튼이에요. 그러니까 실시간으로 제어해야 하는 수십 가지의 경우를 이 버튼들에 하나씩 정리해둔 거죠. 툴처럼요. 아, 그리고 재밌는 버튼도 하나 있어요. 물 나오는 버튼. 레이스 중에는 드라이버의 주변이 굉장히 뜨거워요. 박스 카의 경우엔 섭씨 60도가 넘기도 할 정도니까, 그래서 레이스 중에 물을 마실 수 있는 버튼도 있어요. 레이스가 끝난 직후를 한번 눈여겨보세요. 드라이버가 일어서면 수많은 배선이 혈관처럼 연결된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장치들과 드라이버를 연결해둔 거예요.
GQ 워터 라인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눈 크게 뜨고 찾아봐야겠네요. 저는 또 레이스 엔지니어와 드라이버 간의 호흡을 보는 재미도 크더라고요.
TY 굉장하죠. 그게 어떻게 보면 팀을 보는 재미이기도 해요. 잠시 팀 구성을 설명하자면, 레이스 팀엔 감독이 있고 그 아래로 치프 엔지니어와 레이스 엔지니어가 있어요. 그리고 드라이버가 있고요. 말씀대로 이들의 호흡을 보는 재미는 각자가 양보 없는(?) 주장을 해서 그래요. 이를테면 경기 중에 엔지니어는 드라이버를 데이터로 계속 푸시하죠. “8초 차이야! 이제 단 두 번의 코너밖에 기회가 없어!”, “타이어 좀 더 써. 더 달리라고!” 그러면 드라이버는 이렇게 답해요. “지금 타이어가 굉장히 미끄러운데, 정말 더 달려? Fxxx, 계산 정확해?” 그럼 엔지니어는 또 이렇게 말해요. “나는 데이터만 전달할 뿐이야. 결정은 네 몫이고.”
GQ 결국 드라이버는 그 많은 데이터를 흡수해서 최선의 선택들을 하는 거죠.
TY 모터스포츠가 팀으로 운영되는 종목이긴 하지만 결국 드라이버의 대회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팀으로 운용되고 각자의 역할도 분명하지만, 결국 수많은 선택을 하며 완주하고 기록을 실현하는 건 드라이버니까요.
GQ 경기 중에 이들이 내리는 순간의 판단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해요.
TY 어디까지나 제 의견이긴 합니다만, F1 드라이버의 실력은 99.9퍼센트 수준이 같다고 봐요. 나머지 0.1퍼센트의 차이가
0.1초, 0.01초의 기록 차이를 만드는 거죠. 그래서 이들의 역량이 감히 상상이 안 돼요. F1 레이서가 전세계 20명 남짓밖에 없는 이유도, 연봉이 9백억 가까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봐요 저는.
GQ 이들의 연습량은 어때요?
TY 말도 못 하죠. F1의 경우 예선전에만 5킬로미터 트랙을 1백 바퀴씩 돌아요. 1백 바퀴면 5백 킬로미터, 피트인까지 더하면 6백~7백 킬로미터 되는 거리를 최고속도로 반복해서 달리는 거죠. 중요한 건 모든 드라이버가 그렇게 똑같이 한다는 거. 그러니까 실력 차이는 정말 미세할 수밖에 없어요. 대부분의 스포츠는 신체적 이점이 있지만, 모터스포츠는 좀 달라요. 현시점에서 머신, 통신, 분석의 기술력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그럼 결국 드라이버들이 가진 대부분의 조건은 같다는 건데, 그럼에도 이 팽팽한 싸움에서 어쨌든 차이를 벌리는 이들이잖아요. 이런 상황들을 짐작해보면 결국 F1 드라이버들의 세계에서 작은 차이는 실력보단 순간의 판단, 집중력의 차이가 아니겠나 싶은 거죠.
GQ 그 차이를 보는 재미가 결국 모터스포츠의 매력이겠고요.
TY 모든 치열한 승부가 매력적이지만, 모터스포츠는 여기에 하나가 더 있어요. 숭고함. 드라이버는 이 레이스에 길게는 인생, 짧게는 목숨을 걸어요. 0.1초를 위한 이들의 무모함을 몇 시간이고 보고 있으면 왕왕 울려대는 엔진 소리가 어느 순간엔 아름답게 들리기도 해요.
RADICAL SR1 (2022)

출력 182HP
엔진 I4
자연흡기 1,340cc
구동 MR
변속 S/T6
가격 1억~ 1억 5천만원
EXPERT
김태영 : 자동차 저널리스트
∙ 2025년 슈퍼레이스 래디컬컵 코리아 SR1 클래스 드라이버
∙ 2024년 래디컬컵 코리아 SR1 클래스 시즌 챔피언
- 포토그래퍼
- 김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