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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찾아가고 싶은 해외 한식당 7

2025.06.24.전희란

해외에서 굳이 찾아가고 싶은 한식당이 부쩍 늘었다.

홍콩 ‘HANSIK GOO’

“왜 해외까지 가서 한식을 먹어?”라고 외치던 나에게 최근 어느 도시에 여행 가든 한식당의 변주를 살피는 일이 즐거움이 되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식당은 한국의 맛이 그리운 한국인들을 위한 식당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새로운 미식 목적지, 심지어는 그 도시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레스토랑으로 꼽히기도 하죠. 아는 맛을 단지 재현하는 공간이 아닌, 뉴욕,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라는 ‘도시의 언어’로 다시 쓰이고, 번역되고, 창조되는 한식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했어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한국 의장 최정윤은 귀띔했다. 한식의 철학과 스토리를 품고 각 도시의 문법을 근사하게 입은, 새 미식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레스토랑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식구는 <미쉐린 가이드 홍콩 & 마카 오>에 ‘한식’ 카테고리를 신설하게 한 주인공으로, 현재 홍콩에서 한식 유일의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이다. 현지 미식가들 사이에서 ‘서울보다 더 서울 같은 한식’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한식적 미감의 본질이 다이내믹한 도시의 미학과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홍콩은 유럽 다이닝 문법과 광둥 문화를 중심으로 한 중국 음식 문화의 현재와 과거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에 까다로운 홍콩 푸디를 만족시키기 쉽지 않아요. 한식구가 그것을 해냈고요.” 최정윤 의장은 말한다. 한식적 플레이버를 구조화시킨 뒤 절제된 플레이팅과 계절감을 층층이 쌓는 밍글스 강민구 요리의 세계 위에 박승훈 헤드 셰프의 감각을 더한 공간은 이곳이 왜 ‘밍글스 홍콩’이 아닌 ‘한식구’인지 새삼 일깨운다.

싱가포르 ‘NAOH’

‘안에서 밖으로’라는 뜻을 지닌 나오는 장인들과 합심해 빚은 디테일로 채운 한식, 공예, 디자인이 공존하는 문화 공간이다. 4코스 메뉴는 계절 메뉴를 바탕으로 일 년 내내 바뀌는데, 변치 않는 본질은 한국 전통 진지상이라는 점. 스마트팜, 지속 가능성, 전통 발효 기반의 한식이 결합된 실험 공간이다. “코리 리 셰프가 샌프란시스코 베누에서 보여왔던 정교한 요리를 넘어 베누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한식에 대한 기억, 감정, 시간 등 셰프의 가슴에서 나온, 전통 한식에 헌정하는 음식을 선보여요. 한식의 본질을 현대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미래 지향적인 글로벌 미식으로 진화하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죠”. 싱가포르란 도시에서 스마트팜 농업과 전통 한식을 결합한 나오가 풀어나갈 이야기는 무궁하며, 이곳은 레스토랑 그 이상이다.

상하이 ‘NABI’

요즘 푸디들이 만나면 화두는 늘 중국, 그중에서도 상하이를 빼놓을 수 없다. 나비를 이끄는 류태혁이라는 젊고 패기 있는 셰프 역시 그렇다. 코리안이란 장르를 넘어 현재 상하이에서 가장 예약이 어려운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나비는 한국의 발효, 장, 제철 식재료를 기반으로 한식의 깊이를 현대적인 태도로 재구성한다. 대한민국 전역을 돌며 제철 식자재를 살피고 명인들과 깊이 소통해온 셰프의 노력은 이 도시의 감각적 언어로 치환되어 상하이에서 맛 좀 아는 멋쟁이들의 고고한 취향에 깊은 ‘한방’을 날렸다. 작은 연극 무대 같은 공간, 막 공연이 시작될 것만 같은 조도, 무용수 같은 셰프와 서버들의 움직임, 차분하되 힘있게 이어지는 플레이팅, 탄탄한 실력으로 쌓아올린 맛이 긴장과 이완을 반복시켜 질릴 틈이 없다.

워싱턴 D.C. ‘SHIA’

<흑백요리사>의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 셰프의 새로운 레스토랑. ‘씨앗’의 발음에서 착안한 이름 시아는 업계의 새로운 변화를 빚는 씨앗이 되겠다는 포부를 지닌다. “워싱턴 디시라는 단순한 행정 도시가 아닌 정치, 문화 담론의 상징적인 공간에 에드워드 리 셰프가 설립한, 여성 셰프들을 지원하고 환경 문제와 지속 가능성을 지지하는 재단에서 운영한다는 점이 흥미롭죠. 이민자 정체성과 식문화, 지속 가능성, 윤리적 소비를 모두 다루는 가장 ‘철학’적인 한식 레스토랑이라는 점, 이것이 다른 모던 코리안 레스토랑과 확실히 구분되는 지점이에요.” 최정윤은 조언한다. 음식이 서사를 담고, 테이블이 시대의 의제를 나누는 공간이 되는 이곳에서 한식은 더이상 민족 음식이 아닌 문화적 제안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LA ‘BAROO’

“장을 담근 뒤 장 맛을 결정하는 것은 자연과 돌봄이라고 배웠어요.” 정관 스님의 제자인 어광 셰프는 스승으로부터 배운 지혜와 경험에 따라 바루 오픈 전부터 직접 두부장을 담그고, 한식의 오랜 철학을 LA 아트 디스트릭트에서 스타일리시하게 풀어낸다. “바루는 한국 채식 문화와 발효, 제철 식재료, 기억과 회복, 감정과 기술을 동시에 담아내요. 가장 예술적이며 철학적인, 작가주의적 한식당이라고 말할 수 있죠.” 한식과 셰프의 철학을 LA 로컬의 정체성인 유기농, 팜투테이블, 지속 가능성과 연결해 더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바루. 한식이 맛의 언어를 넘어 음식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한식의 철학을 ‘미식적 언어’로 기능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진정성 있게 증명한 프로젝트다.

뉴욕 ‘COTE’

“코트는 단순히 하나의 식당이라기보다는 K-바비큐를 ‘장르’로서 전 세계에 정착시킨 최초의 사례예요. 정밀한 고기 품질 관리, 불판 설계, 소스 테크닉, 와인 페어링까지 철저한 시스템을 통해 한식의 불 문화를 세계 스테이크 문화와 병렬에 세운 멋들어진 공간이죠.” 2017년부터 2024년까지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제임스 비어드 후보에 오른, 여러 모로 새 역사를 쓴 코트. 코트를 더욱 팬시하게 만드는 바 ‘언더 코트’는 흔히 보아왔던 레스토랑의 서브 바나 대기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곳. 올해 여름, 라스베이거스의 콧대 높은 호텔 베네시 안에도 한식 레스토랑으로는 최초로 코트가 들어선다. 라스베이거스의 도박판에 얼마간 한국식 고기 냄새가 진동할지도 모르겠다.

타이베이 ‘GOLD PIG’

타이베이에서 오픈 전날부터 별안간 밤샘 줄을 세운 기묘한 고깃집이 있으니, 금돼지식당 타이베이 중산점이다. 신당동 본점의 정통 복제판이라 할 정도로 동일한 운영 팀이 디렉팅했고, 삼겹살, 눈꽃목살, 등목살 모두 숙성 후 직접 손질, 직원이 테이블에서 라이브로 정성껏 구워준다. 김치, 장류, 국물 베이스 등도 전부 한국에서 공수했다. 이토록 똑같은데 왜 여기서 먹느냐고? 한국에 서도 예약하기 어려운 곳이니까, 그리고 어디서 먹어도 맛있으니까. 최정윤은 이렇게 덧붙인다. “순종 듀록 품종, 불판, 열원, 돼지 기름 활용 등 10년 넘게 설계한 시스템을 통해 ‘불판과 기름의 정밀도’가 미쉐린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죠. 단순히 삼겹살 구이를 넘어 다양한 문화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 코드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도움말
최정윤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한국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