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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원 “믿는 수밖엔 달리 도리가 없었어요”

2025.06.24.신기호

준원 씨, 지금까지 어디 숨어 있었어요?

코트, 쇼츠, 모두 드리스 반 노튼. 부츠, 로에베.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이건 솔직히 대답해주세요. 요즘 얼마나 바빠요?
JW 에이, 그 정도 아녜요.
GQ 에이, 첫 팬미팅 준비도 있고요.
JW 그 얘긴 너무 부끄러워요.
GQ 매진도 굉장히 빠르게 됐다고 들었어요.
JW (고개를 들지 못한다.) 뭐 그렇다고는 하는데, 정말 너무 감사한 일인데 저는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어요. 제가 뭘 잘하는 게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내가 팬미팅을? 전혀 생각을 안 했던 장면이라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네.
GQ 많이 부끄러워하시니 그럼 이것만 마저 묻겠습니다. 팬미팅을 위해 뭘 가장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JW 코노를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괜한 기대를 하실까요? 아무튼, 네. 비밀이기도 하니 요 정도만.

재킷, 셔츠, 팬츠, 타이, 모두 보테가 베네타. 링, 스와로브스키. 선글라스, 잉크.

GQ ‘구도원’이라는 캐릭터가 이토록 사랑받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JW 전혀요. 레지던트 4명의 성장 이야기가 주고, 구도원은 주변 인물이니까요. 당연히 이렇게까지 관심받을 줄은 몰랐죠. 대본을 받았을 때도, 현장에서 연기를 하고 있을 때도 전혀요. 짐작조차 못 했어요.
GQ 구도원을 이토록 멋지게 만들어놓고 짐작조차 못 했다니요.
JW 그건 대본이, 감독님이 잘 만들어주신 거죠. 옆에서 다 도와주신 결과예요. 그래서 캐릭터의 이야기는 이미 잘 잡혀 있으니 저는 감정 표현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했어요. ‘나만 잘하면 돼’ 같은 마음으로.
GQ 나만 잘하면 되는 상황이면, 부담감들이 밀물처럼 몰려오지 않던가요?
JW 현장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이런 마음이었어요. 두 가지 정도 있는데, 먼저 ‘연기는 이래야 해’ 같은 신념, 관념 같은 걸 갖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적어도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이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저도 사람이니까 어렵죠.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가 어떻게 비칠지, 내 연기가 지금 어떤지 의식할 수밖에요. 근데 그럼에도 노력하는 거죠. 어려워요.
GQ 다른 하나는요?
JW 저를 믿는 거요. 어쨌든 허구잖아요. 작품의 이야기도, 인물도, 내가 표현하는 연기도요. 이걸 실사화시키는 게 저의 일인데, 이때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정말 없는 일이 돼버리니까요. 그럼 결국엔 누구도 설득시킬 수 없고요. 그래서 아까 주신 질문으로 돌아가면, ‘나만 잘하면 돼’ 같은 마음이 되레 부담감으로 다가왔다기보다는, 잘 해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욕심이랑은 또 다르고요.

재킷, 팬츠, 슈즈, 모두 에트로. 네크리스, 포트레이트 리포트. 링, 프로세스. 선글라스, 젠틀 몬스터.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지금, 가장 바람직한 ‘현실 남친’으로 릴스와 쇼츠를 도배 중인 준원 씨지만, 어느 날 번쩍 나타난 신인은 또 아니죠. 오히려 필모는 빼곡하고요.
JW 믿고 버티다 보니 쌓이는 게 있더라고요.
GQ 연기해야겠다, 처음 마음먹은 순간 기억해요?
JW 그럼요.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를 따라서 연극반에 들어갔어요. 큰 뜻이 있었던 건 절대 아니었고 정말 따라갔어요. 그렇게 어영부영하다 보니까 3학년이 됐는데, 그때까지도 제가 진로를 못 정했어요. 그러다 연극제를 하게 됐는데, 연출을 맡으신 선배님이 너 목소리도 저음이고 하니까 이거 해, 하면서 주인공 배역을 주시는 거예요.
GQ 오.
JW 그런데 저는 그때 연기나 배우보다 스태프 형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이는 거죠. 청바지에 단체 티셔츠 딱 입고, 여기 허리에 니퍼, 드라이버, 칼, 테이프 이런 거 주렁주렁 차고 있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그때 이런 생각들을 잠깐 해봤던 것 같아요. ‘아, 내가 연극하면 저런 멋진 순간 안에 있겠구나.’ 그러면서 관심이 조금씩 생겼던 것 같아요.
GQ 주인공 무대는 어떻게 됐고요?
JW 뭐 말도 안 되게 했죠.(웃음) 그런데 그 무대 딱 끝나고 나서 연기를 좀 더 진지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지금도 생생해요. 커튼콜 할 때. 그 생각이 싹 들었어요. 그때부터 어떻게 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네.
GQ (웃음)그런데 스스로 대답하는 습관이 있나 봐요. ‘네.’ 이런 거.
JW 아, 어색해서 그래요. 부끄럽고. 아직 이런 인터뷰가 익숙하지도 않고요. 네.

재킷, 셔츠, 팬츠, 모두 베르사체.

GQ 그럼 연기를 진지하게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턴 쭉 직진이었어요? 아니면 중간중간 멈칫하던 때도 있었을까요?
JW 멈칫하던 때는 정말 많았죠. 너무요. 그냥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면 될까요?
GQ 좋죠.
JW 제가 대학교를 좀 늦게 가서 군대 다녀오고 졸업할 때 되니까 스물 여섯살이더라고요. 졸업한 그해에 운이 좋게도 <동주> 각본 쓰신 신연식 감독님하고 연이 닿아서 <조류 인간>이라는 영화에 ‘낯선 2’라는 인물로 캐스팅이 됐어요. 이름도 없는 역할이었는데 행복했죠. 그런데 이 행복이 어느 순간 조금씩 불안으로 변하더라고요. 아르바이트하면서 작은 역할로 참여하고, 일이 없으면 불안하다가 다시 새 작품 들어가면 몰입하고. 촬영 들어가면 현실감이 좀 없어지거든요? 그런데 딱 끝나면 불안이 다시 훅 오고요. 반복이었죠.
GQ 그 지난한 궤도를 어떻게 벗어나려고 했던 것 같아요?
JW 믿는 수밖엔 달리 도리가 없었어요. 일단 믿고, 그다음엔 버티기.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돼,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야.’
GQ 그때 준원 씨 믿음의 기저는 무엇이었던 것 같아요?
JW 그땐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의심 사이를 오갔어요. 완전히 극과 극이죠. 그런데 항상 극단으로 힘들 때 일이 하나씩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버텼다, 이거 하나 믿었다, 이런 방법 같은 건 없었어요. 일이 들어왔고, 한동안 없고. 다시 일이 들어오고. 그때그때를 살아내다 정신 차려보니까 어떤 순간들을 맞게 된 거지, 제가 어떤 방법을 갖고 있어서, 믿는 구석이 있어서 언젠가를 기다려본 건 아니었어요. 근데 질문의 요지는 이거였죠? 그럼에도 그 시간을 통과할 수 있었던 내 안의 무엇은 무엇인가. 음. 뭐랄까. 잠시만요.
GQ 천천히 생각해도 돼요.
JW 제가 이때까지 이보다 재밌고 좋아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좋고, 또 좋으니까 더 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그런 마음일 텐데, 아. 그런데 이런 마음만큼 불안도 컸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불안하니까 더 못 놓지 않았나. 다 알면, 뻔하면 오히려 재미없어서 금방 놓아버리지 않았을까요.
GQ 비어 있던 곳이 다 차면 재미가 없어지기도 하죠.
JW 네. 그런데 아마 평생 불안하지 않을까 싶어요.

셔츠, 팬츠, 로퍼, 모두 돌체앤가바나.

GQ 준원 씨가 지나온 그 요동치던 시간들에서 길어 올린 배움은 뭐였어요?
JW ‘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순간이 있어요. 대부분의 배우들이 연기 자체보단 연기하는 과정을 즐거워하거든요.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함께하는 사람들끼리의 호흡, 소통 이런 과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이 부분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즐거워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또 이런 관계들, 과정들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좀 많았거든요. 제가 지금보다 더 후배의 입장이었을 때는 더더 소극적이고, 눈치 보고, 의사 표현도 제대로 못 했어요. 스스로도 참 바보 같다고 생각될 때가 많았어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저의 모습들이었고요. 그런데 나이도, 연차도 쌓이다 보니까 후배들이 조금씩 늘어나잖아요? 근데 제가 그러면 이 친구들은 또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그래서 조금 더 뻔뻔해지려고 노력을 하게 됐죠. 어떻게 보면 솔직한 제 모습은 아닐 수 있는데, 또 솔직한 제 모습을 누군가는 불편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변하는 게 맞았어요. 결과적으로도 너무 좋은 변화였고요. 전보다 현장 분위기가 훨씬 더 깊어지고, 즐거워졌거든요.
GQ 변하기 위해 마음먹는 것도 태도를 바꾸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은 아니죠.
JW 저는 뭐랄까, 환경 적응이 좀 빠른 편이에요. 이게 절대 제 자랑은 아니고요. 기본적으로 좀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자꾸 주변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엔 끌려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고요. 내 의견보다는 상대방의 반응, 주변의 분위기에 더 맞춰왔는데 그게 썩 유쾌하지 않았어요. 이젠 좀 바꾸고 싶더라고요. 저한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그런데 무슨 이야기하다 이렇게 길어졌죠?
GQ 따져보면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 따라서 연극반에 들어간 이야기하다가요.
JW (미소)그런데 저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 되게 신기하고 그래요. 저희 형이 <지큐>를 정기구독해서 저도 덩달아 고등학교 때부터 쭉 봐왔거든요. 군에서도 보고 전역해서도 보고요. 그런데 제가 지금 그 <지큐>에 화보 찍으러 와 있는 거잖아요.
GQ 남은 질문 중에는 정준원이 ‘배우 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을 묻는 내용도 있거든요.
JW 그럼 뭐, 지금이죠.(웃음)

포토그래퍼
김선혜
스타일리스트
정혜진 at Msg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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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 서울 이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