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아 미안해 이제는 지켜줄게

한 시즌을 지배하는 트렌드는 화려하다. 런웨이와 SNS를 통해 폭발적으로 소비되고, 순식간에 옷장을 채운다. 그러나 그만큼 빠르게 사라진다. Y2K, 블록코어, 긱시크, 올드머니 룩 등 다음 시즌이면 이미 낡은 감각이 되어, 옷장 깊숙이 밀려난다. 매년 반복되는 이 순환 속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 입게 되는 옷, 다시 손이 가는 아이템들이다.
그 옷들은 유행과는 무관하다. 디자인은 단순하고, 실루엣은 절제되어 있다. 장인 정신과 브랜드의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접 입어온 시간과 이야기를 품을 수 있기에 오래 살아남는다. 단순히 ‘클래식’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패션의 지속성과 개성의 균형이 맞아 떨어진 결과물. 옷장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옷장을 지탱하는 자산 같은 아이템들로 내 곁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을 옷을 소개한다.
아우터
잘 산 아우터는 손자, 손녀에게도 물려준다
패션에서 아우터는 가장 즉각적으로 계절을 보여준다. 그래서 유행의 흐름을 가장 크게 반영하는 동시에, 가장 빨리 낡아 보일 위험도 안고 있다. 하지만 몇몇 아우터는 그런 속도를 초월한다. 실루엣의 힘, 소재의 밀도, 브랜드의 철학이 결합되면 계절과 상관없이, 세월을 견디며 옷장 속에 남는다.
로에베
조나단 앤더슨이 만든 로에베의 봄버 재킷는 단순한 블루종이 아니다. 구조적인 라인과 입체적인 실루엣은 흔한 캐주얼 아이템을 세련된 조형물로 끌어올린다.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럽지만, 매해 꺼내 입을 때마다 다른 스타일링을 완성해 준다.
버버리
트렌치 코트는 시대를 초월한 아이템이지만, 버버리는 그 안에서도 본질에 집중한다. 변형된 디테일보다는 클래식한 라펠과 단정한 길이감, 묵직한 원단이 특징이다. 몇 년이 지나 주름이 잡히고, 원단이 몸에 맞게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멋이 더해진다. 긴 기장감의 코트도 좋지만 언제나 꺼내 입을 수 있는 꼭 맞는 기장감의 재킷도 추천한다.
데님 & 팬츠
매일 입지만 결코 질리지 않을
진짜 옷장은 결국 기본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기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데님과 팬츠다. 매일 입는 옷일수록,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좋은 데님과 팬츠는 스타일링의 기반이 되고, 세월과 함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매일 같은 팬츠를 입어도 짱구 소리 듣지 않을 팬츠. 언제나 기본에 충실하자.
더 로우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더 로우의 팬츠는 단순히 ‘기본’이라는 말로 부족하다. 직선적인 실루엣, 절제된 디테일, 완벽한 비율 덕분에 언제 입어도 군더더기 없는 룩이 완성된다. 매 시즌마다 다른 상의와도 무난하게 어울리고, 어떤 슈즈와도 충돌하지 않는다. ‘10년 팬츠’라는 말이 괜히 붙는 게 아니다.
오라리
일본 브랜드 오라리는 원단에 진심이다. 견고하고 깊이 있는 인디고 컬러,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워싱과 주름은 개인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데님은 원래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진짜가 되는데, 오라리 데님은 그 과정이 가장 아름답다. 입을수록 더 ‘내 것’이 된다.
톱
기본을 지키면 반은 간다
아우터를 제외한 톱, 셔츠와 티셔츠는 단순하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유행하는 패턴이나 과한 디테일 대신, 원단과 핏 자체로 승부하는 아이템일수록 시간이 흘러도 손이 간다. 질 좋은 셔츠 하나면 10년은 거뜬하다.
제냐
고급스러운 울·실크 블렌드 셔츠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터치감부터 다르다. 몸에 닿는 감촉은 편안하고, 눈으로 보는 광택은 우아하다. 한 벌의 셔츠가 룩 전체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아이템. 계절과 무관하게 늘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블알엘
랄프 로렌의 캐주얼 남성복 라인인 더블알엘 티셔츠는 계속 입고 싶은 터치감이 특징이다. 시간이 지나도 결코 낡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철학 자체가 유행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워크웨어 디테일에 웨스턴 무드 한스푼이라면 10년, 20년이 지나도 함께할 수 있다.
백
한 번 살 때 제대로 된 아이를 데려오자
가방은 하루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다. 좋은 가방은 해가 바뀌어도, 계절이 달라져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 남아 있다. 손떼가 타고 주름이 진다 하더라도 세월의 흔적이 더해진다면 멋있는 나의 파트너가 될 거다. 그래서 잘 만든 가방은 단순히 옷을 완성하는 액세서리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자.
더 로우
장식 없는 구조적 실루엣은 브랜드의 미니멀리즘을 상징한다. 화려함 대신 절제된 디자인을 선택했기에, 어떤 스타일에도 과하지 않게 스며든다.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진짜 ‘롱 런 아이템’의 조건이다.
보테가 베네타
손으로 한 올 한 올 엮어낸 인트레치아토는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장인정신의 상징이다. 가방의 형태가 변해도, 시즌이 바뀌어도, 이 위빙 패턴은 보테가 베네타의 정체성으로 남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 곧 매력이다.
신발
스타일링의 완성은 발 끝
룩의 마지막 디테일은 언제나 신발이 담당한다. 그러나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카테고리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살아남는 신발은 결국 편안함과 품격을 동시에 갖춘 것들이다. 매일의 발걸음을 지탱해줄 수 있는 신발,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더 가치가 생긴다.
처치스
부드러운 스웨이드와 가벼운 착화감, 그리고 절묘한 세련됨이 어우러진 신발. 격식을 차린 자리에서도, 일상의 산책에서도 잘 어울린다. ‘럭셔리한 일상화’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로퍼. 구두의 명가라 불리는 처치스의 로퍼 하나면 어떤 TPO에도 맞출 수 있을거다.
토즈
잘 산 로퍼 하나는 옷장의 필수품. 토즈의 드라이빙 슈즈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군더더기 없는 라인과 매끈한 가죽, 그리고 단정하면서도 강렬한 실루엣. 어떤 자리에서도 빛을 발하는 힘은 결국 클래식에서 온다. 로퍼 위 팬츠의 길이에 따라 완성되는 다양한 스타일링에 집중해 보자.
패션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욕망하지만, 진짜 스타일은 오래된 옷장에서 나온다. 10년 후에도 여전히 꺼내 입을 수 있는 옷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장인정신, 그리고 시간을 견딘 미니멀한 디자인에서 비롯된다. 옷장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옷장을 지탱하는 아이템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템은 단순히 소비의 결과가 아니라, 세월과 함께 가치를 더하는 ‘옷장의 자산’이 된다. 그리고 오늘 마이테레사에서 발견한 이 아이템들은, 10년 뒤에도 여전히 당신의 옷장에서 빛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