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 스테이블스가 새 마스터 디스틸러가 된 이후, 더 글렌그란트는 여전히 신선하며 조금 더 흥미롭다.

지난번 홍콩에서 와인을 홀짝이는 당신을 지켜보았습니다.
계속 위스키만 마시다 딱 한 번이었는데, 그걸 들켰네요.
와인을 즐기는 위스키 마스터 디스틸러는 처음이라, 흥미로웠어요. 와인에서 위스키 메이킹의 영감을 받는다고도 말했죠.
와인과 위스키가 닮아 있는 지점은 바로 질감과 피니시예요. 저는 한 모금 삼킨 뒤 입안에 남는 여운을 음미하는 걸 좋아해요. 더 글렌그란트가 주는 매력 중 하나도 바로 피니시인데, 굉장히 부드럽고 크리미하죠. 와인에서도 크리미한 피니시를 좋아해요. 단순히 계속 마시게 되는 와인이 아니라 한 모금 후에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그런 와인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맛의 균형을 찾는 동시에 아름다운 피니시와 크리미한 마무리를 추구해요.
제 주변에는 강렬한 셰리, 버번, 피트를 지나 궁극적으로 맑고 순수한 위스키로 정착하는 애호가들이 꽤 있습니다. 그들에게 더 글렌그란트가 데일리 위스키로 좋은 답이 되고는 하죠. 실제로 더 글렌그란트 증류소에 근무하는 이들은 어떤 위스키를 데일리로 즐기나요?
좋은 질문이에요! 저희가 즐기는 위스키는 요일이나 시간대에 따라 달라요. 주중의 ‘데일리 드램(매일 한 잔씩 즐기는 위스키)’이라면 더 글렌그란트 12년이 가장 적합하죠. 금요일부터 주말이 끝나갈 무렵까지는 편안히 앉아 21년을 즐기는 편이고요.
‘시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시간대와 매치하는 글라스하우스 컬렉션이 아주 흥미롭게 느껴져요. 글라스하우스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래요?
글라스하우스 컬렉션은 증류소 창립자의 아들이자 ‘메이저’라 불리던 인물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요. 메이저는 1900년대 초 인도와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가져온 과일과 이국적인 식물을 유리 온실 Glasshouse에서 길러냈어요. 그가 즐겨 사용하던 셰리 캐스크가 이번 컬렉션의 출발점이었죠. 우리는 그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셰리 캐스크를 다시 선택했고, 온실 속 빛과 그림자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에서 또 다른 영감을 얻었어요. 21년, 25년, 30년에 이를수록 셰리의 존재감은 점점 짙어지고, 마침내 30년에 다다르면 하루가 저물어가는 순간처럼 깊고 농밀한 위스키가 돼요. 해가 지는 황혼의 시간에 즐기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술이죠.

바로 어제는 익스플로레이션 넘버 원이 출시되었죠. 최초의 럼 캐스크 피니시 제품이고요. 왜 하필 럼 캐스크였나요?
세 가지 에디션 중 첫 번째 에디션이에요. 넘버 2, 3는 앞으로 선보일 예정이고요. 증류소 창고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캐스크가 존재하고, 어떤 것이 더 글렌그란트와 가장 잘 어울리는지 실험 중이에요. 그중 럼 캐스크는 처음부터 제가 가장 마음에 든 것 중 하나였어요. 개인적으로 애플턴 럼에 대한 애정도 크고요. 애플턴 럼은 너무 무겁거나 강하지 않고 은은하면서도 균형 잡힌 개성이 있어요. 그래서 더 글렌그란트 고유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아주 잘 어우러졌죠. 이번 제품은 자메이카 애플턴 에스테이트의 데이비드 모리슨과 협업한 제품이에요. 직접 선별해 보내준 캐스크가 도착하자마자 위스키를 채워 넣은 뒤, 매주 샘플링을 하면서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지켜봤어요. 원하는 수준에 도달한 순간, 숙성을 멈췄고요.
11월에는 셰리 피니시 제품이 나온다고요?
맞아요. 정말 기대되는 프로젝트예요. 아시아 시장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제품이고, 원액 자체가 훌륭해요. 복합성을 더하기 위해 12년 숙성에는 퍼스트 필, 세컨드 필 버번 캐스크뿐 아니라 호그스헤드와 일부 셰리 캐스크도 사용했어요. 여기에 기존 12년 블렌드를 섞어 복합미를 살리고, 셰리 캐스크 피니시로 마무리했죠. 모든 캐스크를 직접 선별해 채웠고, 품질이 제대로 유지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시음을 반복했어요. 그 결과 셰리의 영향이 분명히 느껴지면서도 더 글렌그란트 본연의 개성을 가리지 않는 아름다운 짙은 색을 띤 균형 잡힌 녀석이 완성되었어요.
더 글렌그란트는 화사하고 맑은 DNA가 확실하죠. 새로운 캐스크 실험 속에서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나름의 방법, 비전이 있을까요?
결국 우리는 더 글렌그란트의 DNA로 돌아가야 해요. 높은 원통형 증류기와 정류 장치에서 완성되는 맛이죠. 그래서 새로운 원액 역시 배럴 속에서 과일 향과 맑은 특성을 지니게 돼요. 전 제품군을 아우르면서 제가 맡아야 할 역할은 브랜드의 수호자이자 관리인이고, 그 DNA를 지켜내는 것이 제 길입니다. ‘이게 글렌그란트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 술은 결코 만들지 않을 거예요. 셰리 캐스크를 활용하거나 특정 시장을 위한 새로운 피니시를 시도할 수는 있지만, 언제나 DNA는 유지되어야 하고, 더 글렌그란트라는 것을 단번에 가늠할 수 있어야 하죠. DNA를 가리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테니까요. 바로 그 DNA야말로 더 글렌그란트를 더욱더 글렌그란트답게 만드는 본질입니다.
한국에서는 위스키가 푸드 페어링의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전문가로서 조언을 해준다면요?
더 글렌그란트는 요리와 아주 유연한 페어링이 가능해요. 섬세하고 부드러운 12년은 생선 요리, 훨씬 더 라운드하고 풍성한 21년은 고기 요리와 궁합이 좋아요. 디저트 스타일에 따라 25년과 30년이 발휘하는 매력이 또 다르죠. 25년은 다크 초콜릿처럼 약간 씁쓸한 뉘앙스가 있어서 밀크 초콜릿 혹은 넥타린, 오렌지와 함께하면 단맛과 쓴맛이 어우러져 아름답게 둥글며, 과일 향이 풍성한 30년은 케이크 같은 디저트와 잘 어울려요.
앞선 인터뷰에서 선대 마스터 디스틸러인 데니스 말콤으로부터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이 ‘사람이 우선’이라고 했죠.
맞아요. 정말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에요. 더 글렌그란트 증류소에서는 위스키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숙성과 병입까지 모든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진행해요. 병이 들어왔다 나가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되는 시스템인 거죠. 우리 팀은 단 22명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두가 기술적으로 유연한 사람들이에요. 이들이 힘을 모아야 비로소 한 병의 위스키가 탄생해요. 사람 없이는 위스키도 없고, 더 글렌그란트는 훌륭한 팀을 가진 덕분에 큰 행운을 누리고 있어요. 저 역시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위스키 브랜드에서 일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다른 증류소와 비교할 때 더 글렌그란트에서 ‘사람’을 중시하는 문화를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활동이 있나요?
우리만의 차별점은 바로 ‘개인적인 터치’예요. 팀 모두를 잘 알고 있고, 정기적으로 가족 모임을 가져요. 단순히 직원만이 아니라 파트너도 초대해 밤에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아이들을 동반하는 패밀리 데이를 열기도 해요. 이렇게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결국 증류소에서 일하는 건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일이기도 해요. 그래서 집에서 이해해주는 파트너가 있다는 건 큰 의미가 있죠. 그 가치를 팀 차원에서도 함께 나누고 인정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증류소에 비해 직원들의 근속 연수가 긴 편인가요?
네. 실제로 그래요.(웃음)

더 글렌그란트는 예술과의 협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어요. 그러한 활동이 당신의 위스키 메이킹에 어떤 영감을 주고 있나요?
저는 아쉽게도 예술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영감을 얻는 곳은 분명히 있어요. 바로 증류소의 주변 환경과 자연이죠. 저는 스페이사이드에서 태어나 자랐고, 무척 시골인 곳에서 자란 시간이 제게 큰 의미가 있어요. 그것이 저를 끊임없이 자극해왔어요. 특히 증류소를 거닐다 보면 빅토리아 시대에 조성된 아름다운 정원이 나오는데, 커다란 원형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요. 머리를 식히거나 영감을 얻고 싶을 때면 점심시간에 그 정원을 조용히 걷곤 해요. 바로 그곳이 제가 영감을 얻는 장소예요.
제가 아는 한 더 글렌그란트 애호가는 마일스 데이비스 음악을 들으며 아보랄리스를 마신다고 한 적이 있어요. 새로 나온 더 글렌그란트 아보랄리스 CS를 어떤 음악과 매치하고 싶나요?
더 글렌그란트를 음악과 비유한다면 제겐 ‘활기찬 음악’이에요. ‘Vibrant’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겠네요. 술 자체가 생기 있고 활력이 넘치니까요. 이 술을 마시면서는 잔잔한 음악보다는 훨씬 익사이팅한 음악을 듣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마스터 디스틸러로서 당신의 시간대는 어디쯤 와 있나요?
처음 마스터 디스틸러를 맡은 2년 전부터 지금까지는 다소 복잡한 국면 속에 있었어요. 증류소에 몸담은 10년간은 표현을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해왔고, 지금은 정오를 향해 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요. 앞으로 최소 15년은 더 일하고 싶으니까요. 2006년부터 캄파리가 증류소를 소유해왔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어요. 그동안 축적해온 다양한 원액 덕분에 21년, 25년, 30년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고, 창고에는 여전히 수많은 원액이 남아 있죠. 그래서 지금은 무척 흥미로운 시기이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부디 아직 황혼은 아니길 바라요.(웃음)
*경고 |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