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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멈칫하게 되는 비혼의 순간들 8

2025.10.09.주현욱

비혼도 가끔 멈칫할 때가 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한 집에서 뒤섞이는 명절이 끝난 후엔 더더욱.

명절마다 결혼 잔소리 들을 때

명절이면 밥상머리에서 듣게 되는 첫 질문은 안부가 아니라 “너는 언제 결혼하니?”다. 비혼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해도 ‘결혼은 해야 사람 구실한다’, ‘늦으면 힘들다’ 같은 말이 되돌아온다. 한두 번은 웃어넘길 수 있지만, 매년 명절마다 반복되는 대화는 마치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명절이 가족과의 따뜻한 시간이라기보다 방어전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신혼부부 혜택을 받지 못할 때

정부나 지자체의 주거 지원, 대출 우대, 세금 감면 혜택은 신혼부부에게 집중되어 있다. 비혼주의자나 1인 가구는 동일한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음에도 혜택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집을 마련하거나 생활 기반을 다질 때 겪는 이 불평등은 결혼 여부가 아닌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어 하는 비혼자에게 큰 좌절감을 준다.

병원 동의서에 서명할 보호자가 없을 때

큰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보호자 서명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을 때에도 비혼주의자들은 가슴이 철렁한다. 건강이 나빠지거나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가장 가까운 보호자가 없다는 현실은 문득 외로움을 실감하게 한다. 비혼주의자는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지만, 의료 제도 안에서는 여전히 가족 단위를 기본으로 설계되어 있어 사소한 순간에도 소외감을 느낀다.

부부 동반 모임에 초대받지 못할 때

직장 동료의 홈 파티, 동창 모임, 지인의 결혼기념일 파티 등 많은 사교 모임이 부부 동반을 전제로 한다. 혼자 참여하면 어색하거나 초대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결혼이라는 울타리가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가벼운 연애조차 편견의 시선을 받을 때

비혼이라고 하면 연애도 하지 않을 거라는 오해가 따라붙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교제한다고 하면 “결혼할 것도 아닌데 왜 사귀어?”라는 말을 듣기 쉽다. 사랑과 결혼은 별개의 선택이라는 점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피곤하다. 사회가 여전히 결혼 중심으로 관계를 규정짓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서글픔이 밀려온다.

가족 행사에서 미묘한 거리감을 느낄 때

동생이나 사촌이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가족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가정으로 옮겨간다. 명절이나 생일 모임에서도 대화 주제가 육아, 집 장만, 학교 문제 등으로 흘러가면 자신이 낄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 가족의 일원임에도 어느새 변두리에 서 있는 듯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연달아 들릴 때

주말마다 청첩장을 건네는 친구들을 축하하며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고립감이 찾아온다.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생의 중요한 단계를 건너뛴 사람처럼 취급받을 때 특히 서럽다. 축의금과 시간, 마음을 기꺼이 나누지만 정작 자신의 삶의 방식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쓸쓸하다.

아플 때 챙겨줄 사람이 없을 때

감기에 걸려 고열로 누워 있거나, 이사 날 무거운 짐을 옮길 때처럼 일상 속 작은 어려움이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함께 살며 챙겨줄 가족이 없다는 현실도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과 서러움을 드러낸다. 줄곧 ‘혼자서도 괜찮다’라고 생각해 왔지만, 몸과 마음이 지칠 때는 비혼의 고립감이 더욱 선명해진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