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까치와 호랑이만큼 사랑스럽고 용맹한 전통의 강호 4

2025.10.16.김은희

호랑이와 까치의 친구들.

고양이

기념품 구상 | 고양이 접등 
조선시대 어진을 그려 국수 國手로 불렸던 화가 변상벽의 또 다른 별명은 “변고양 卞古羊”이다. 고양이를 잘 그려서다. 희번뜩 참새를 보는 고양이, 나무 타는 고양이, 점박이 고양이, 까만 고양이, 온갖 고양이를 포실포실 잘도 그림으로 담았는데, 애묘의 시대적 이유로는 당시 고양이가 장수 축원의 대상이었던 배경이 짚인다. 고양이의 한자 ‘묘 猫’가 노인, 특히 머리가 하얗게 센 70세 노인을 가리키는 ‘모 ’ 자와 닮아 선조들은 언어 유희로 오랜 삶을 기원하며 고양이를 애정으로 품었다. 그림에서 꺼내온 고양이들로 박물관 기념품을 만든다면 접등이 어떠할까. 국화꽃 아래에선 한껏 웅크리고 있다가도 참새를 놀리려 온몸을 주욱 늘리는 액체 같은 유연성의 고양이를 디자인 삼아 아코디언마냥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전통 접등을 만든다면 살 사람, 일단 나. 

FACT SHEET 주름 잡아 늘렸다 줄였다, 필요시 옷 속에 보관할 수 있을 만큼도 접을 수 있는 등인 접등은 생김새상 굼벵이등이라고도 불렸다. 초를 넣으면 초롱, 등불을 넣으면 등롱이라 한다.

기념품 구상 |  삽살개 앞머리처럼 털실로 짠 발 
영화 <사도>에서 훗날 사도세자라 불리는 이선이 아주 해맑게 웃던 몇 안 되는 순간을 돌아보면 화선지에 먹으로 이 대상을 그리던 때가 있다. 개. 청나라에서 선물한 강아지라는 사실은 영화적 설정이지만, 고운 털북숭이 벗을 가까이 두고서 보고 또 보며 사도세자가 그렸으리라 추정하는 그림 ‘견도 犬圖’는 국립고궁박물관에 남아 있다. 1748년 <승정원일기>에는 궁궐에서 백구와 흑구를 키웠다는 기록도 있다. 예부터 개는 인간과 집을 지켜주는 친구였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지인 <동국세신기>는 새해가 오면 액운을 막는 의미로 개를 그려 집 안 곳곳에 붙이라 이른다. 무엇보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를 찾아온 개 ‘몽’이가 곁에서 낑낑대던 영화 신이 우악스럽지 않은 연유는, 개는 정말 그러하니까. 모든 시대에, 모든 상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알려주고 불행을 지워주는 대상. 

↳ FACT SHEET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실로 엮어 문에 드리우던 발은 뙤약볕을 가리거나 사생활 보호용으로 쓰였다. 여기에 기쁠 희 喜, 복 복 福 등을 수놓아 가정의 행복을 바라기도 했다. 백구, 흑구, 털북숭이 친구들의 윤기 나는 갈기에서 얻은 영감으로 털실을 가닥가닥 늘어뜨려 발을 만들고 입구에 걸어 액막이 겸 복을 불러보자.

해치

기념품 구상 | 거울 받침 
소의 머리. 휘날리듯 솟아난 뿔. 푸른 비늘이 돋은 몸. 날개를 숨긴 겨드랑이. 해태라고도 불리는 해치가 지닌 가장 널리 알려진 능력은 불을 잡아먹는 재능이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던 당시 궁을 수호하는 마음을 담아 광화문 앞 거리에 해치상을 세웠다. 해치상은 국회의사당과 서울 대검찰청 앞도 지킨다. 이는 해치가 지닌 또 다른 능력의 지표다. 바로 사악한 사람 뿔로 들이박기. <인조실록>은 해치를 “부정한 기운을 물리치는 동물”이라 기록했고, 지금으로 치면 법원인 조선시대 사헌부의 수장 관복에는 해치가 수놓여 있다. 과연 누가 지옥에 다녀온 것일까, 염라대왕이 망자의 죄를 비춰보는 거울이라 전해지는 업경의 받침대로 해치가 느긋이 앉아 있는 형상의 기물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해치의 원활한 쓰임새로 당장 거울 받침을 제안드릴 수밖에. 

↳ FACT SHEET 업경은 사람이 아닌, 정의로운 동물이 들어야 한다는 설화가 있다. 불교에서는 상상 동물인 해치의 요소 중 하나인 사자가 불법 수호의 동물로 꼽히고, 조선시대 작품으로 사자가 업경을 진 그림과 조각상도 전해온다.

괴석

기념품 구상 | 문진과 문 닫힘 방지 장치 
색채와 구도는 조금씩 다르나 궁중 거처 곳곳에 자리하던 장식화가 있다. 모란괴석도 혹은 괴석모란도라 불리는 그림이다. 부귀안락을 상징하는 모란이 탐스럽게 피어 시선을 빼앗는 아래 웬 토끼 같기도, 심해 산호초 같기도 한 형상들이 묵직하게 자리해 있다. 불변. 인내. 강인함. 변치 않음의 상징, 괴석이다. 비바람에도 꿈쩍하지 않는 돌은 그 태생적 무게감으로 고결한 군자의 정신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섬겨져 왔다. 다만 돌 石이면 돌이지 왜 꼭 괴석 怪石이라 칭했을까. 가만 들여다보면 세상 어느 돌 하나 기이하게 생기지 않은 것이 없다. 풍파에 저마다 다르게 깎이고 부서지며 내내 현재진행형이자 끝내 미완결로 남는 비정형의 암석들은, 그렇기에 가장 그리기 어려운 대상이라고 화론서 <개주화학편>을 지은 청나라 화가 심중건은 전했다. 또한 그렇기에 가장 처음으로 배워야 할 공부가 “돌을 관찰하여 그리는 일”이라고. 

↳ FACT SHEET 작은 크기로는 문진, 큰 크기로는 문에 괴는 닫힘 방지품으로 만들어본다. 제아무리 돌풍이 불어도 그 무엇도 날아가지 않도록.

    Courtesy Of
    천안박물관, 국립제주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