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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보는 경기는 질까? ‘승요’와 ‘패귀’의 과학적 이유

2025.10.27.김현유

개개인의 직관 여부는 각 팀의 승리 가능성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내가 직관을 가면 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승요’는 이제 연예인의 시구나 시축 관련 기사 타이틀에서 빼놓을 수 없는 표현이 됐다. 직관을 위해 경기장을 찾을 때마다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승리 요정’의 줄임말이다. 반대말도 있다. ‘패귀’ 즉 ‘패배 귀신’이라는 의미다. 두 단어 모두 ‘직관 징크스’를 가리키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개개인의 직관 여부는 각 팀의 승리 가능성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직관을 가면 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무슨 이유로 사람들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직관 징크스에 이렇게나 너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심리학적, 뇌과학적 이유가 있다.

통제의 환상

심리학자 앨렌 랭어에 따르면 사람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뇌의 착각 때문이다.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스포츠를 관전하고 있으면 책임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전두엽과 전대상피질 등의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즉, 우리 뇌는 ‘내가 경기 결과에 관여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판단과는 거리가 있는 착각이다. 하지만 이런 착각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경기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착각은 자신이 팀을 ‘돕고’ 있다고 믿게 만들고, 이런 믿음은 팬들 사이 유대감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확증 편향

승리의 기쁨 또는 패배의 비통함 모두 스포츠 팬들이 겪을 수 있는 감정이다. 문제는 우리 뇌에 있다. 스포츠 심리학자 애런 CT 스미스에 따르면, 우리는 감정적으로 충격이 더 큰 사건을 더욱 강하게 기억한다. 일반적으로 직관까지 갔는데 패배하는 경우는 승리할 때보다 더 뇌리에 깊게 남기 마련이고, 이는 ‘내가 보면 진다’는 확증 편향을 낳는다. 실제 승률과 상관없이, 이긴 경기보다 진 경기가 훨씬 많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기억은 믿음에 따라 선택적으로 회상되는 경향이 있어 한 번 형성된 신념이 바뀌기도 쉽지 않다. 직관을 자주 다니는 열혈 팬일수록 ‘패귀’를 자처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패턴 인식 본능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작위 속에서도 의미나 규칙, 반복을 찾는다. 생존 확률을 높이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간의 뇌는 미래 예측에 도움을 줄 만한 패턴을 파악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fMRI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패턴에서 더 활발한 신경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표본이 크지 않을 때에도 우리 뇌가 패턴을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경기 결과는 무작위로 벌어지는 사건이지만, 좋아하는 스포츠 팀을 직접 찾아 경기를 지켜본 행위가 승리 혹은 패배를 불러왔다는 패턴은 한 번 만들어지면 더욱 강하게 우리 뇌에 자리잡게 된다.

방어적 태도

에런 CT 스미스에 따르면 스포츠 팬들의 팀에 대한 굳건한 애정은 종교적 신앙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충성심이 깊어지면 합리적 분석을 거부할 정도의 신념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심리적 방어가 나타난다. 복잡한 맥락을 단순하게 만들어 결과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팀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 자신이 직관했기 때문에 졌다고 받아들이는 식이다. 비슷한 예로 시카고 컵스에 내려진 ‘염소의 저주’가 있다. 시카고 컵스가 108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데에는 퀄리티 낮은 선수단과 인프라 투자에 인색했던 구단주, 열악한 구장 등 여러 이유가 있었으나 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저주’에만 초점을 맞춘 팬들이 많았던 것처럼 말이다.

심리적 위안

스포츠 경기는 불확실의 결정체다. 선수의 컨디션, 날씨, 심판,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너무나 다양한 요인이 결과에 영향을 준다. 팬 입장에서 경기를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불확실성은 그 자체로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 하지만 인간은 그 가운데서도 어떠한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승요’, ‘패귀’ 같은 단어를 통해 예측 불가능한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그 예다. 뇌과학자 브루스 후드에 따르면, 불확실성을 ‘의미 있는 이야기’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의 불안 반응은 감소한다. 직관 징크스는 스포츠 팬이 됨으로써 불확실성의 불길에 뛰어든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