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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앤더슨 “어디로 가는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2025.11.01.김성지

 디올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 “이 그리는 디올과 남성복의 미래.

어느 무더운 여름 오후, 파리 앵발리드에 임시로 지은 박물관에 약 600명의 관객이 조나단 앤더슨의 크리스챤 디올 데뷔 쇼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로저 페더러와 사진을 찍고 있고, 셀러브리티와 패션계 유명 인사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앉은 가운데 1백만 명이 넘는 시청자는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청하고 있었다. 이 런웨이가 2026년 봄과 여름을 대표하는 ‘슈퍼볼’ 이벤트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디올의 수장으로 막 부임한 조나단 앤더슨이 매출 침체와 무기력한 컬렉션, 그리고 끊임없이 교체되는 디자이너들의 흐름을 깨고 과연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할지 모두가 주목한 것이다.

패션쇼 당일, 백스테이지에서 프리뷰를 위해 소규모 취재진과 만나는 자리에서 앤더슨이 눈을 비비며 인사를 건넸다. 마치 시험 기간에 벼락치기를 한 대학원생처럼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긴장감이 가득한 눈빛과 마치 소년처럼 헝클어진 머리칼, 선명한 푸른 눈동자는 유난히 빛났다. 치솟는 아드레날린과 연거푸 피우는 담배로 피로를 쫓는 듯 보였지만, “기분이 좋아요, 꽤 릴랙스된 상태예요”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디올은 신비로우면서도 알 수 없는 존재감을 갖고, 거물로 성장한 디자이너들(이브 생 로랑, 존 갈리아노, 에디 슬리먼 등)을 꾸준히 배출해왔다. 그들에 비하면 앤더슨은 평범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가 현대 퀴어 회화, 역사적인 의자, 일본의 장인 도자기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가진 애호가임이 드러나기 전까진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빈티지 데님 팬츠와 평범한 재킷을 좋아한다. 마치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스웨터나 셔츠 하나만 받는, 어떤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남동생 같은 차림이다. 앤더슨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동네 슈퍼마켓에서 달걀을 고르며 장을 보고 있는 그를 봐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앤더슨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유명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이고, 거대한 패션 하우스를 재편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물론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디올 역시 매출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디올은 평범한 브랜드가 아니다. LVMH 왕관의 보석이자 프렌치 패션의 상징이다. 디올의 창립자인 무슈 디올 이후 한 명의 디자이너가 브랜드 전체를 총괄한 적은 없다. 그렇기에 앤더슨의 디올이 남성복의 새로운 챕터를 열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프리뷰에서 그는 “디올을 해석하고 코딩해야 한다”고 했다. 약 5분에 걸쳐 캔디 달링, 장 시메옹 샤르댕, 브램 스토커, 18세기 프랑스 가구, 게르하르트 리히터, 피터 후자 그리고 ‘디올’ 그 자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용을 쏟아냈다. 그사이 앤더슨이 의상 디자이너로 참여한 영화 <챌린저스>와 <퀴어>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가 카메라맨을 대동한 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앤더슨은 이미 LVMH 그룹의 브랜드 로에베에서 10년간 활동하며 기발하고 매우 아름다운 의상들을 선보였다. 로에베와 자신의 브랜드 JW 앤더슨 사이에서 그는 독보적인 재능과 다작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 대한 명예와 향수보다는 곧 다가올 미래에 훨씬 호기심이 많다. 과거를 언급할 때조차 새로운 개념을 위한 도구로 삼을 뿐이다. “패션에서 소유권은 가장 파괴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 때문이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고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되죠.”

에이셉 라키와 리한나가 프런트 로에 앉아 쇼가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향기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공간은 앤더슨이 가장 좋아하는 베를린의 미술관 게말데갈레리를 재현하기 위해 공간 전체에 쪽모이 세공을 했다. 또한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과 루브르에서 대여한 샤르댕의 아름다운 정물화 두 점이 벽에 걸려 LVMH의 위엄을 자랑했다.

앤더슨은 놀랍고도 당당하게 화려하지 않은 의상들로 게스트를 열광시켰다. 그의 시그니처인 로에베의 초현실주의도, JW 앤더슨에서 선보였던 베개 같은 걸 가방으로 들거나 부서진 스케이트보드를 스웨터로 변형시키는 등의 독특한 변주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 남자들이 실제로 옷을 어떻게 입고 싶은가에 대한 환상을 담아낸, 남성복을 위한 신선한 선언문처럼 느껴졌다.

깔끔하고 단정한 포플린 셔츠, 스트라이프 실크 타이, 밝은 컬러의 케이블 스웨터, 앤더슨의 고향 아일랜드 도네갈에서 트위드로 제작한 부드러운 커브의 바 재킷을 선보였다. 슬리먼풍의 데님 팬츠에는 인디 슬리즈 스타일링의 흔적이, 다운 재킷과 무심하게 끈을 풀고 신은 하이킹 스니커즈에는 고프코어가 한 스푼 담겼다. 디올 쿠튀르 아틀리에가 재현한 화려한 베스트와 워킹 코트에는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우아함이 담기고, 카고 쇼츠에는 디올 하우스의 아카이브가 반영되었는데, 이는 드물게도 무슈 디올의 그 유명한 드레스 패턴을 그대로 재단한 아주 사치스러운 시도였다. 일부 모델들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나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같은 책 표지가 새겨진 디올의 북 토트백을 어깨에 무심하게 걸치고 있었다. 

앤더슨은 개념적인 것과 상업적인 것을 넘나드는 데 능숙하지만, 클래식한 남성복을 이렇게나 신선하고 흥미롭게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쇼 전에 설명한 바와 같이 그의 목표는 브랜드의 개인적인 스타일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캐릭터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각 컬렉션에서 구축하는 페르소나를 언급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왜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할까요? 전 사실 사람들이 어떤 물건 자체에 끌리고, 그 캐릭터에 끌리기 때문에 구매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은 일단 새로운 디올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앤더슨은 우렁찬 기립박수를 받았다. 대니얼 크레이그는 쇼의 피날레에 일어나 앤더슨에게 경의를 표했다.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앤더슨을 믿었고 해낼 거란 걸 알았어요.” 크레이그가 말했다.

쇼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앤더슨의 의상 디자인 작업이 캐릭터 구축에 미친 영향을 더욱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영화 <챌린저스>의 주인공들이 입은 전형적인 테니스 룩이나, 영화 <퀴어>에서 구현한 1950년대 테일러링의 매혹적인 현대성 등이 바로 그 포인트다.

몇 주 뒤, 샹젤리제 근처에 위치한 앤더슨의 사무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프란츠 웨스트 램프, 볼프강 틸만스의 정물화, 소형 앤티크 프랑스 옷장, 고가 미술품과 가구 컬렉션 등이 채워져 있었다. 틸만스 작품 앞 메탈 행거에 걸린 화려한 18세기 프랑스 베스트는 디올 쿠튀르 아틀리에가 정교한 자수를 재현하기 위해 고안한 원본 디자인으로, 복잡 미묘한 직물의 품질을 구현하기 위해 고대 직조기를 복원해야 했다. 이후 앤더슨과 그의 오랜 스타일리스트 벤자민 브루노는 이 궁중식 의상에 데님 팬츠와 스니커즈를 매치했다. 은근히 신성모독적인 행동은 고전주의를 순식간에 현대 패션의 언어로 전환시켰다.

“저는 제가 이런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 꽤 마음에 들어요. 개념적인 뭔가를 발견할 수 있거든요. 말하자면 남성복으로서는 급진적인 작품들이죠.” 그는 이 옷들이 “우리는 지금 급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이 떠오르게 해준다고 말했다.

디올의 데뷔로 앤더슨은 패션계에 영원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게 됐다. 1947년에 선보인 디올의 풍성한 플리츠스커트와 조각 같은 재킷은 유럽 전쟁 시기 여성복을 규정했던 엄격한 원단 배급 제도를 거스르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불과 18개월도 채 되지 않아 선보인 이 컬렉션은 대담한 재설정이었고, 여성성과 로망스, 그리고 패션이라는 즐거움으로의 복귀였다. 이는 디올 하우스의 DNA 속에는 변화의 시대에 의복 혁명을 주도하려는 노력이 깊이 새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앤더슨은 이 역사를 마음 한구석에 간직해왔다. “이상한 방식으로 이 브랜드는 너무 커졌어요. 갑자기 ‘넥타이가 돌아왔다’고 해버려도 될 정도죠.” 모두가 따를 수밖에 없는 거대한 선언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크리스챤 디올은 ‘우리가 스커트를 바꿀 거야’라고 했었잖아요. 그건 심플한 행동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좋아, 넥타이를 만드는 브랜드는 많겠지만, 우리는 그걸 주목받게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는 이제 연간 10개의 컬렉션을 책임지며, 그중에는 처음 해보는 오트 쿠튀르도 포함된다. 또한 캠페인, 마케팅, 그리고 디올 신발 상자에 들어가는 포장지 디자인까지도 컨펌해야 한다. 왜 지금까지 아무도 이 모든 것을 해내지 못했는지 우린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디올 CEO이자 LVMH 가문의 후계자인 델핀 아르노가 앤더슨에게 이 직책을 제안했을 때 그는 휴가 중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디올의 커다란 위상에 비해 앤더슨은 그곳에서 일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마침 앤더슨은 로에베에서의 여정이 끝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정말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어요. 로에베에서 내가 이제 뭘 더 해야 하지? 마치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말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죠.”

2013년 이 스페인의 가죽 제품 브랜드에 처음 합류했을 때만 해도 로에베는 LVMH 제국 내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한 변방 같은 존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브랜드를 어떻게 발음해야 되는지도 몰랐다. 앤더슨은 로에베를 본질적으로 완전히 해체하고 예술과 장인정신에 대한 취향을 바탕으로 새로이 재편했다. 그는 로에베를 ‘문화적인 브랜드’라 불렀는데, 이건 아카이브로부터 뭔가를 만들어내는 대신 예술품으로부터 전체 컬렉션을 디자인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결국 로에베는 대중문화적 브랜드에 가까워졌고, 그의 영향력은 어디에나 스며들었다. 추정치에 따르면 앤더슨은 로에베의 연간 매출을 2억 3천만 달러에서 거의 20억 달러까지 끌어올렸다. “저는 로에베를 사랑합니다. 저의 11년을 쏟아부은 작품이니까요.” 앤더슨이 회상했다.

하지만 디올은 로에베보다 10배는 큰 규모의 브랜드다. 단일 브랜드가 넥타이의 유행을 부활시킬 만큼 영향력 있고, 앤더슨의 하루가 디올의 모든 업무를 감당할 시간이 충분할지 의문이 들 정도로 방대하다. 디올에 집중하기 위해 책임을 내려놓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떠맡고 있다. 앤더슨은 하우스의 역사는 물론 패션계 자체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에서 디올에 합류했다. 앤더슨이 로에베에서 일하던 거의 마지막 무렵, 패션계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패션계 상류층을 정의하던 구식의 오만함과 엘리트주의 정신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품질은 수년간 서서히 저하되는 반면 가격은 통제 불능 상태로 치솟은 것에 반감을 느꼈다. 그들은 브랜드가 강압적인 마케팅 캠페인으로 가방을 팔려고 드는 걸 원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구매하고 싶어 할 만한 스타일과 삶의 방식에 대한 비전에 매료되길 원했다.

프랑스 럭셔리 패션의 대명사 디올이 LVMH 전체 매출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앤더슨은 상당한 도전에 직면했다. 앤더슨은 “패션계가 매우 이상한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해요. 브랜드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브랜드의 가치를 찾으려 하며, 그 안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한동안 상황이 상당히 평범해졌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앤더슨은 팬데믹이 패션계에서 새로운 시각을 가져올 수 있는 세대 교체를 지연시켰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여름까지 10개가 넘는 주요 패션 브랜드가 새 활력을 찾기 위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변혁를 준비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제가 변하지 않으면 시스템 전체가 변하지 않을 것 같았죠.” 앤더슨은 이 깨달음을 지난해 7월에 얻었다고 말했다. 디올 임명이 공식적으로 4월까지 비밀로 유지되었음을 감안해도, 그의 움직임이 도미노 효과를 촉발한 초기 사례 중 하나였음을 시사한다.

그는 점심 식사 내내 델핀 아르노의 제안을 고민했다. 디올에 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기회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새로움을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어요. 제게는 브랜드 이름과 상관없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열쇠예요. 무언가를 지나치게 좋아하게 되면 매우 위험한 일이죠. 왜냐하면 그 순간부터는 도전하지 않게 되니까요. 도전하는 척할 수는 있지만 결국 그 안에 빨려 들어가게 돼요. 그래서 너무 좋아해서 깨고 싶지 않은 브랜드들도 있어요. 그저 약간의 손질만 필요할 뿐이라고 느껴지거든요. 반면 디올은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곳이었어요. 괜찮은 것 같은데, 안 될 게 뭐 있어?”

디올의 핵심은 여성복이지만, 앤더슨이 남성복으로 시작했다는 점은 꽤나 적절했다. 그가 2008년 JW 앤더슨을 론칭하며 커리어를 시작한 분야가 바로 남성복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본인은 그 공로에 대해 어깨를 으쓱하고 넘어갈지 모르나, 앤더슨은 이미 현대 남성복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많은 디자이너가 특정한 남성성의 전형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돌체앤가바나의 태양에 그을린 건장한 남성상이나, 에디 슬리먼이 디올 옴므 초기에 선보인 유령 같은 낭만주의자 이미지가 그러하다. 반면 앤더슨의 비전은 훨씬 더 다면적이다.

패션계가 젠더 해체에 주목하기 훨씬 전인 2013년, 앤더슨은 런던 패션 위크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위해 남성 모델들에게 러플 장식이 달린 가죽 쇼츠를 선보이며 젠더 플루이드 남성복의 선구자가 되었다. 로에베에서는 남성적 고정관념을 뒤엎는 방식을 끊임없이 실험했다. 그의 런웨이 쇼는 종종 소년들이 형들의 옷을 입어보며 정체성을 탐색하는 모습처럼 연출됐다. 그가 그리는 남성복은 퀴어 아티스트부터 운동선수까지 포용하는 관대하고 포괄적인 비전이었다.

앤더슨은 오늘날 남성성이 ‘매우 모호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저는 사람들이 남성성 안에서 자신에게 새로운 것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남성복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좋아해요.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식으로요.” 로에베에서 그가 선보였던 가장 인상적인 작업 중 하나는 지난해 데이비드 심스가 촬영한 캠페인이다.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예술가 리처드 호킨스의 에로틱한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을 입고 섹시하게 흐트러진 모습의 대니얼 크레이그가 등장했다. 앤더슨이 이성애자의 표상인 할리우드 슈퍼스타에게 퀴어 코드가 담긴 남성복을 입힌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강인한 턱시도 차림의 007 이미지를 벗어던진 크레이그의 모습이 전 세계 광고판에 등장했다는 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남성성, 아니 어떤 성적 정체성이든 굉장히 복잡하잖아요.” 크레이그가 말한다. “그건 존재하는 것 중 가장 복잡한 거예요. 아름다운 방식으로요. 조나단은 자신의 작품에서 그 점을 찬양합니 다. 앤더슨의 작품은 ‘무언가’가 되려 하지 않아요. 지나치게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이려 하지 않죠. 그 점이 제게는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졌어요.” 

선셋 대로에 걸린 로에베 광고판 속 이기 팝을 연상시키듯 흐트러진 헤어의 크레이그와 디올 쇼에 등장한 크레이그의 모습을 비 교해보자. 트위드 블레이저에 줄무늬 셔츠, 리프 타이 차림의 그는 아이비리그 대학의 미술사 교수를 연상시켰다. 수년간 성별 해체와 동성애적 미학의 경계를 시험해온 앤더슨은 이제 고전적이고 귀족 적인 남성상을 제안할 기회를 확실히 포착했다. 지난해 로에베 캠페인을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크레이그와 함께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하지만 진화해야죠. 저는 정적인 미학에 항상 어려움을 느낍니다. 문화란 건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최근 앤더슨은 또 다른 현대 남성의 표준 복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실리콘 밸리의 캐주얼하고 테크 중심적 환경에서 퍼진 스키니하면서도 신축성 있는 실루엣이다. 앤더슨이 의상을 맡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영화 <아티피셜>은 오픈 AI의 CEO 샘 알트먼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 드라마다. 앤더슨은 이 영화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AI를 전혀 몰랐다고 고백한다. “사실 연구 해본 적도 없고, 아직도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그는 일주일 전에야 자신의 아이폰에 AI가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더 흥미로운 것은, 우리 세계의 미래 지배자들이 입는 평범한 옷장에서 어떻게 새로움을 찾아내느냐 하는 문제다. 앤더 슨은 말한다. “정말 흥미롭더군요. 옷보다 뇌가 중요하다니까요. 재미있는 접근이었어요. 어쩌면 특정 나이대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상한 얘기지만, 샘 알트먼 같은 사람은 수트를 입으면 아주 초현실적으로 보입니다. 그에게 그 모습은 이질적으로 보이죠.” 

변화는 디올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다. 다음 남성 쇼는 그의 데뷔 컬렉션과 많이 닮을 수도 있지만, 앤더슨답게 뜻밖의 방향으로 선보일 가능성도 크다. 그에게 남성복의 다음 방향에 대해 물었다. “1970년대 히피처럼 될 수도 있어요. 요즘 저는 그게 꽤 마음에 들거든요. 지금은 어디에서 현대적인 것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질문은 거의 도전 수준이라고도 생각해요.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는가? 우리가 4년쯤 후에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흐름 전체가 완전히 바뀌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덧붙인다. “어디로 가는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Samuel Hine
포토그래퍼
Nathanial Gold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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