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블랙 포레스트는 오래된 뻐꾸기시계같이 예스러운 이미지로 알려졌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2천 년 전, 로마인들이 알프스를 넘어 독일과 스위스의 남쪽 국경에 있는 뢰라흐 Lörrach와 북쪽의 포르츠하임 Pforzheim 사이 지역으로 쳐들어왔을 때, 낙엽수와 전나무가 뒤섞여 우중충하게 드리워진 숲을 보고 ‘실바 니그라 Silva Nigra’, 블랙 포레스트 Black Forest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이 슈바르츠발트 Schwarzwald라 부르는 이 숲은 실제로 그리 어둡지 않다. 블랙 포레스트 남부에 자리한 슈필베크 호텔 테라스에 있는 손님들은 누보 레알리슴의 창시자인 프랑스 화가 이브 클라인의 작품이 될 수 있을 만큼 선명하고 강렬한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의 희뿌연 비행운과,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브란덴산맥의 초록빛 능선이 하늘에 맞닿아 유려하게 일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독일 남서부 끝 60만 제곱킬로미터의 블랙 포레스트는 3분의 2 이상이 순수 자연림인데,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대로 아름답지만 음침한 분위기의 동화에서 볼 법한 모습이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이곳을 촌스러운 시골로 여기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휴가 때 가서 트래킹 코스를 따라 걷는 장소 정도로 여긴다. 트레킹 코스 중 가장 오래된 코스는 베스트베크 Westweg다. 포르츠하임에서 바젤 Basel까지 이어지며 올해로 1백25주년을 맞이할 만큼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그다음 코스인 게니세어르프파데 Geniesserpfade는 바덴 Baden 지방의 와인 생산지와 오래된 여관 사이를 구불구불 통과한다. 이곳이 사랑받는 건 멋진 코스도 있지만 그곳 사람들의 친절함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블랙 포레스트에서는 ‘초인종을 누르세요’라는 캠페인 덕분에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현지인들의 집 문을 두드리고 길을 물어보거나 조언을 구할 수 있다. 멘첸슈반트 마을의 한 주민인 엘리자베스 카이저 Elisabeth Kaiser는 4백50년 된 자신의 농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초대해 커피 한잔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 지역을 방문한 한 여성이 남편을 잃어버렸는데, 수소문 끝에 남편을 찾아주는 데도 성공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블랙 포레스트는 이런 이미지였다. 독일에서 가장 높은 폭포가 있는 트리베르크 Triberg의 시장 갈루스 스트뢰벨 Gallus Strobel 은 2010년 인터뷰에서 블랙 포레스트가 관광업에 뒤처져 있으며, 마을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관광객 수가 급감했고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떠났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블랙 포레스트가 사람들을 다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곳을 떠났던 요리사, 요식업자, 창업가, 호텔리어, 작가 등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블랙 포레스트는 현재 대대적인 재정비의 한가운데 있다.

블랙 포레스트는 오래전부터 독일 최고의 미식 문화로 이름난 곳이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13개의 고급 레스토랑과 40개의 미쉐린 레스토랑이 있다. 이곳의 미식에 대한 놀라움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지만, 최근에는 전통적인 메뉴 위에 새로운 감각들이 조금씩 더해지고 있다. 블랙 포레스트 남쪽의 뮌스터탈 Münstertal 계곡에서는 온화한 기후와 그림 같은 농장,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은 아직 서른다섯 살에 불과하지만 이미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빅토리아 푹스 Viktoria Fuchs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녀는 잘츠부르크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인 히르쉔 Hirschen의 두스 슈타이너 Douce Steiner 밑에서 일한 뒤 함부르크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룩셈부르크 인근 바이에른 알프스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도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그녀는 향수병을 느껴 1861년부터 가족이 운영하는 슈필베크 호텔로 돌아왔다. 몇 년 전부터 그녀의 언니가 호텔 운영을 맡기 시작했고 그녀는 남편인 요하네스 슈나이더 Johannes Schneider와 함께 주방을 맡았다. 나머지는 아마 다 예상하는 이야기일 거다. 그들은 이후 미쉐린 스타를 받으며 이 지역을 대표하는 미식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푹스와 슈나이더는 블랙 포레스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감자튀김 요리인 블랙 푸딩 브레겔레와 마리네이드한 고기를 천천히 익힌 자우어브라텐 같은 요리를 기본으로 선보인다. 이 외에도 멧돼지 딤섬과 송아지 대신 사슴 고기를 사용한 비텔로같이 이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요리를 내놓기도 한다. “저희는 전통과 너무 멀어지고 싶지도 않지만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 있기도 해요.” 짙은 회색 재킷을 거친 푹스가 오래된 목조 벽과 천장이 있는 거실에 앉아 말했다.
푹스 말고도 다른 젊은 창업가들은 이곳의 전통 식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1970년대 영국 레스토랑의 푸딩 메뉴로 주를 이뤘던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티티제노이슈티트 Titisee-Neustadt라는 작은 마을의 쇼콜라테리 리사에서는 제빵사 리사 뤼디거 Lisa Rudiger가 1915년부터 이어온 클래식 케이크의 전통 방식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고 있다. 뤼디거가 만든 케이크는 현대 미술의 축소판에 가깝다. 케이크 위에 작은 숲이 자리 잡고 있는데, 초콜릿을 섬세하고 귀여운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으로 만들고 잘게 자른 초콜릿 조각을 나무껍질로 꾸몄다.

뻐꾸기시계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특히 쇠나흐 Schonach라는 마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뻐꾸기시계가 있다. 블랙 포레스트의 전통 가옥을 본뜬 이 시계는 지름이 3미터 정도다. 1백 년 전만 해도 이 마을에는 1천 명이 넘는 시계 장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2015년 들어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10분의 1 가격에 판매되는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으로 뻐꾸기시계 산업은 침체기에 빠졌다. 1894년부터 가업으로 시계를 만들어온 롬바스&하스 Rombach&Haas는 이러한 상황에 품격 있게 대응해왔다. 그들은 여전히 1일 또는 8일 태엽 방식으로 작동하며 에델바이스와 같은 멜로디에 맞춰 뻐꾸기 울음소리를 내는 시계를 정교하게 제작하고 있다. 동시에 가문의 딸인 셀리나 크라이어 Selina Kreyer가 ‘셀리나 하스 디자인’이라는 독자 브랜드를 만들어 새로움을 더했다. 크라이어는 현대 미술 작품, 캔버스 페인팅, 오브제와 뻐꾸기시계를 자유롭게 결합한다. 시계 앞면을 라임색으로 칠하거나 만화의 한 장면을 넣기도 한다. “기계 구조는 250년 전과 똑같아요.” 조각난 시계 부품, 작은 발레리나 인형, 붉은 뻐꾸기 장식들이 가득 쌓인 작업실에서 그녀는 말한다.
하이 블랙 포레스트는 이 지역 관광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다. 티티제 Titisee, 펠트베르크 Feldberg, 벨헨 Belchen 주변을 차로 달리다 보면 블랙 포레스트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땅에 닿을 듯 처마가 깊게 내려앉은 외딴 산장, 블라지엔 성과 같이 중세 시대에 멈춰버린 듯한 마을, 거울처럼 맑은 슐루흐제 호수,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양들의 울음소리까지. 메르겐 Märgen 지역과 페터 Peter 지역을 잇는 도로에서는 맑은 날이면 프랑스 보주산맥까지 내다볼 수 있다. 평평하게 펼쳐진 산 정상들은 다양한 초록빛으로 물결친다. 이곳은 1950년대 전후 독일인들이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 제작한 향토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들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는 1922년 하이 블랙 포레스트를 찾았을 때 단 이틀만 머물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1백 년이 지난 지금도 방문객의 평균 체류 기간은 2.5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스타일의 숙소들이 요즘 여행하는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그 기간을 늘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투브 Stuub다. 혁신적인 건축가 닐스 드빌레 Nils Deville가 티티제 주변, 폐업한 호텔과 낡은 펜션, 방치된 주택들을 사들여 완전히 새롭게 바꿔놓은 프로젝트다. 그들은 이곳을 모던하고 미니멀한 디자인과 회색 및 흙색 톤의 휴양지로 재탄생시켰다. 한때 블랙 포레스트를 지배했던 베이지와 갈색은 철저히 배제됐다. 스투브는 홈페이지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체리 케이크도, 레이스 냅킨도, 블랙 포레스트의 특산물인 빨간 방울이 달린 모자도 없습니다.”
한편 블랙 포레스트 북쪽에서는 이 지역에서 가장 화려한 온천 도시가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고 있다. 웅장한 아르누보와 바로크 양식, 파스텔 빛 외관, 세련된 온천 시설,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바덴바덴 Baden-Baden은 2천 년 동안 독일 최고의 온천 명소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리히텐탈러 알레 Lichtentaler Allee 공원과 수목원 옆에 세워진 벨에포크 스타일의 브레너스 파트 호텔&스파가 있다. 이 호텔은 1834년에 문을 열었지만 최근에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계단과 문틀 창문은 그대로 두고 외관과 발코니 바닥, 97개의 객실과 스위트룸 내부는 현대적으로 손봤다.

장년층들의 블랙 포레스트는 이제 새로운 세대의 섬세한 감각 속에서 생기가 돌고 있다. 블랙 포레스트 국립공원도 2014년에 문을 열었다. 공원 관리인 나딘 베어거 Nadine Berger는 이렇게 말한다. “숲이 다시 야생화되고 있어요. 우리는 자연이 그 자체로 있을 수 있도록 내버려둡니다.” 그래서인지 공원 개설 이후 숲의 생태는 눈에 띄게 다양해졌다. 가문비나무, 전나무, 너도밤나무가 서로 섞여 자라고, 쓰러진 나무들은 토양과 생태계를 살리는 영양분으로 남을 수 있게 그대로 둔다. 멸종 위기에 처했던 동물들이 돌아왔고 희귀 버섯들도 다시 발견되고 있다. 짙은 이끼가 나무줄기를 감싸고 있어 순간 열대림에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숲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위험하다. 그림 형제가 경고한 마녀 때문이 아니다. 이 소중한 야생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결정하고 생물 다양성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라고 베이거가 설명한다. 블랙 포레스트의 미래는 이제 안정적인 단계로 다가가고 있다. 현대적인 요소들이 동화적 풍경을 해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SLOW-PACED STAYS
웰니스 리조트 프라이부르크 Freiburg 근처에 있는 웰니스 리조트에선 프랑스 보주산맥까지 볼 수 있다. 이곳은 오래된 요양 호텔을 개조해 만든 공간으로, 통유리와 목재가 어우러진 밝은 로비와 슬로 푸드 콘셉트의 바, 오픈 키친 레스토랑, 5개의 사우나, 25미터짜리 야외 온수풀, 피트니스 및 요가 룸을 갖추고 있다.
스투브 스마트한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한 스투브는 블랙 포레스트 남부 곳곳에 흩어진 옛 호텔과 오래된 주택을 사들여 감각적으로 리노베이션한 숙소 브랜드다. 예를 들어 프로이덴슈타트 Freudenstadt의 한 호텔은 1896년에 지은 본관에 현대적인 신관을 추가했으며, 이 신관은 2020 독일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브레너스 호텔&스파 바덴바덴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 중 하나인 브레너스 호텔&스파는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프랑크 푸르터 호프 이 도시의 또 다른 상징적인 호텔, 슈타이겐베르거 아이콘 프랑크 푸르터 호프 Steigenberger Icon Europäischer Hof 역시 스파와 스위트룸을 추가하고 웰니스 공간을 확장, 로비를 새롭게 리뉴얼했다.
TOP SPOTS TO EAT AND DRINK
바라이스와 슈바르츠발트슈테우베 블랙 포레스트 북부의 작은 마을 바이어스브론 Baiersbronn은 무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8개나 보유하고 있다. 그중 바라이스 Bareis와 슈바르츠발트슈테우베 Schwarzwaldstub 레스토랑은 독일 전체에서 단 12곳뿐인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다. “바이어스브론은 독일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마을 중 하나예요. 영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선 손님을 만족시키는 것만 생각해야 하죠. 손님이 귀하거든요.” 바라이스 호텔을 경영하는 하네스 바라이스 Hannes Bareiss가 농담처럼 말한다.
포니호프 슈탐하우스 셰프 토비아스 우슬러 Tobias Wussler는 목제 골조 건축물로 유명한 스타라스부르 Strasbourg 근교의 겐겐바흐 Gengenbach 숲과 포도밭 사이에 자리한 가족 운영 레스토랑 포니호프 슈탐하우스에서 주방을 맡고 있다. 대표 메뉴는 발효 감자튀김, 민물 생선 요리, 트러플을 겉들인 푼타렐레 등이 있다. 1백여 종의 자체 생산 식품도 판매하는데, 여기에는 쇠고기 룰라드와 맥주를 넣어 반죽한 빵 등이다.
보어 디스틸러리 렌히탈 Renchtal 계곡에는 1천1백 개가 넘는 증류소가 있는데 주로 과일 브랜디에서 진을 만들고 있다. 그중 보어 디스틸러리는 가장 많은 수상 경력을 자랑하며, 블랙 포레스트에서 나온 트러플을 진의 향료로 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쿠르츠&코르크 야외 카페가 가득한 프라이부르크의 한복판에 있는 와인 바 쿠르츠&코르크에서는 소규모 유기농 포도밭에서 나온 와인만 선별해 내놓는다. 소믈리에인 린다 쿠르츠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쇼콜라테리 리사 티티제노이슈탈라의 리사 뤼디거 Lisa Rudiger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요리책 저자로 TV 요리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공간인 쇼콜라테리 리사에서 초콜릿과 방울이 달린 블랙 포레스트의 전통 모자, 뻐꾸기시계 등을 판매하고 있다.
프란츠 켈러 와이너리와 슈바처 아들러 레스토랑 프란츠 켈러 와이너리와 슈바처 아들러 레스토랑은 피노 누아가 잘 자라는 독일에서 가장 따뜻한 기후의 산악 지역 보그츠부르크-오베르베르겐 Vogtsburg- Oberbergen 숲 바깥에 자리 잡고 있다. 이르마 켈러 Irma Keler는 1969년 이곳에서 독일 최초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셰프가 되었다. 현재는 그의 아들인 프리츠 Fritz와 손자 프리드리히 Friedrich가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