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렁하고 펄럭이는 바지의 시대는 길고 오래 번영했다. 하지만 모든 제국은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 올해 당신의 바지와 티셔츠, 재킷은 다시 몸에 맞기 시작할 것이다.
패션에서 내가 도저히 못 견디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양말 없이 신은 로퍼, 끔찍한 짜임 벨트,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크라운 볼캡, 그리고 칼라 없는 모든 셔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리스트에 남자 스키니 진이 포함돼 있었다. 진 뿐 아니라 전반적인 팬츠 모두. 나 역시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수년간 오버사이즈라는 편안하고 구속 없는 세계에 푹 빠져 있었다. 종아리의 한쪽 면만 겨우 스칠 정도로 넉넉한 오버사이즈 팬츠에 드레이프와 흐름이 살아 있는 오버사이즈 셔츠, 축 늘어진 오버사이즈 재킷까지 즐겼다. 오랫동안 이 스타일은 내가 뭘 입는지를 정의해왔다. 편하고 멋있었으며, 무엇보다 유행이었다.
1990년대풍으로 질질 끌리는 수트를 밀어붙인 생 로랑 런웨이부터, 와이드 레그 만능주의를 외치는 하이스트리트 브랜드, 핏을 늘어뜨린 채 등장하는 젊은 할리우드 남자 배우들까지. 오버사이즈는 너무 오래 자리 잡아서, 이제는 트렌드라기보다 그냥 현실에 가까웠다. 2026년에도 그럴까? 듣고 싶지 않겠지만, 아마 아닐 것이다.
배우 조 키어리가 <기묘한 이야기> 시사회에 뉴 시즌 구찌로 예상되는 재킷을 입고 나타났을 때 난 정말 놀랐다. 금발로 끝을 살린 페이크 모히칸도 그랬지만, 그의 재킷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일 년 전만 해도 그는 느슨한 재킷을 입었다. “헬스장에 같이 다니는 친구 덕에 편집숍에서 직원 할인가로 샀어요” 의 뉘앙스가 풍기는 그런 옷을 걸쳐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타이트하다. 아주 타이트하다. 이두근 위에서 재킷이 물결치고 가슴을 가로질러 팽팽하게 당겨지는 그런 타이트함이다. 그 안에 입은 울트라 핏 티셔츠까지 그렇다. 엉덩이에 달라붙는 바지까지 더해지니 숨을 참게 된다. 다행이도 2003년식 스키니 핏은 아니다. 그땐 정말 몸 위에 스프레이로 옷을 뿌린 듯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래도 거의 거기까지 갔다.
물론 조 키어리만 보고 스키니 핏이 돌아온다고 말할 수는 없다. 스타일리스트가 옷을 건조기에 너무 오래 돌렸다거나, 조 키어리가 데드리프트를 너무 열심히 했을 수도 있다. 우연이나 예외라고 말할 수도 있다. 레드카펫 반대편을 보니, 그의 동료 핀 울프하드가 있다. 맥퀸을 입은 그는 진공 포장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 슬림했다. 조시 오코너와 티모시 샬라메의 날씬한 바지, 키트 코너의 가슴에 팽팽히 당겨진 발망 티셔츠, 심지어 오버사이즈의 수호자 같은 제이콥 엘로디조차 핏을 미묘하게 줄여나가고 있다.
이쯤 되자, 스타일링 조언을 캐내기 위해 스타일리스트 단톡방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답을 구했다. “몸에 달라붙는 ‘핏한 옷’이 확실히 돌아오고 있어요. 심지어 스키니 진까지요.” 그들은 런웨이를 보라고 유도했다.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 노골적인 트렌드는 아니여도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프라다에서는 커다란 카 코트 아래에 숨겨진 슬림 레그 트랙 팬츠, 아크네 스튜디오 부츠 안으로 집어넣은 데님, 버버리 하이웨이스트에 얇은 슬랙스까지. 물론 디올에는 볼가운만 한 반바지와 거대한 재킷도 있었지만, 동시에 스트레이트 레그 가죽 바지와 핏된 에비에이터 재킷도 있었다. 그리고 조너선 앤더슨의 프리폴 컬렉션에서는, 다리 라인을 따라 끝까지 밀착되는 청바지가 등장했다.
올해는 우리가 바지라고 불러왔던 그 부풀어 오른 천 덩어리들이 우아한 스토브파이프 실루엣으로 대체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불안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내가 말하는 건 꼭 ‘스키니’는 아니다. 핏한 것과 스키니는 엄연히 다르다. 스키니는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불편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맞는’ 옷이다. 블레이저의 어깨선이 다시 뼈 위에 정확히 걸리는 것, 바지가 부풀지 않고 곧게 떨어지는 것.

나는 아직 이 유행이 돌아오는 것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넓은 바지의 터무니없는 밑단이 뒤꿈치에 걸려 넘어지기 전까지. 아, 어쩌면 이미 준비가 된 걸지도 모른다. 다만 인정할 준비가 안 됐을 뿐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겠지? 그래도 우리는 함께 겪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몸에 꼭 맞는 옷을 입게 될 것이다. 행운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