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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훈 “제게 오는 파도를 성실히 타보려고 해요”

2026.01.29.전희란

EASY PEASY BUSY. 김원훈의 눈코 뜰 새.

레오퍼드 재킷, 올세인츠. 셔츠, 아워레가시. 데님 팬츠, 리바이스. 안경, 발렌시아가. 반지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핸드메이드 니트, 맥마혼 니팅 밀스. 티셔츠, 존바바토스. 데님 팬츠, 리바이스. 볼 캡, 네크리스, 반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요즘 거울 보면서 무슨 생각해요?
WH 머리가 좀 많이 빠졌네? 흰머리가 생겼네?
GQ 슬퍼요?
WH 늙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나이 들면 할 수 있는 코미디의 바운더리가 좁아지니까, 그 점이 좀. <숏박스>에서 하는 ‘장기 연애’나 고등학생 역할인 ‘이진’ 같은 컨텐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슬프긴 한데, 얼굴이 늙는 건 슬프지 않아요.
GQ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김원훈의 청춘 같다고 느끼는걸요. 아까 2020년 <개그콘서트> 마지막 무대를 다시 봐서 그런가?
WH 그때는 제 인생의 최고 암흑기였어요. 여기저기에서 치이다 보면 시야도 좁아지고 사람이 좀 볼품없어지잖아요. 요즘은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도 많고, 마음이 행복해서 얼굴에 드러나나 봐요.
GQ 요즘 마음은 편한가요?
WH 엄청나게 편하지는 않아요. 너무 행복한데, 불안한 마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행복해질수록 불안한 마음도 같이 커지는 느낌이랄까? 다른 코미디언들에 비해 역량이 뛰어나지 않으니 조금씩 한계가 보이는 것 같아서 저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려고 시도 중이에요. 벌써 밑바닥을 보이면 안 되니까.

MA1 점퍼, 마틴로즈 by 아데쿠베, 싱글 브레스트 재킷, MM6 by 아데쿠베. 타이, 제이프레스. 장갑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얼마 전 데뷔 10년 만에 신인상을 받았어요. 수상 소감에서 “잘 버텨줘서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잘 버텨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죠.
WH 잘해서 주는 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정말로. SBS <마이턴>은 저보다 고생하시는 분들, 제게 도움 주신 분들이 더 많거든요. <직장인들>이나 <SNL>이었으면 아, 나 정말 잘해서 받았구나 했을 텐데. 그래서 나를 뽐내기보다는 그전에 계속해온 과정들이 쭉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입시 학원부터 대학교 입학, 공연하던 시절, 개그맨 시험 준비하던 때, 개그맨이 되었을 때, 무명 시절을 거칠 때, <개그콘서트>가 끝나고 유튜브를 할 때···. 단계가 너무 많은 거예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을 때도 한 스텝 한 스텝 잘 버텨왔구나, 잘 버텨준 내 자신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GQ 버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WH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GQ 가장?
WH 신동엽 선배님, 유재석 선배님, 문세윤 선배님 등등 너무 대단하신 분이 많은데, 그분들에 비하면 저는 발톱의 때만큼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냥 조금씩 버티다 보니까 버티는 가운데 내공이 생겨난 것 같아요. 저는 능력이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았어요. 그렇다고 일찍 포기했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됐겠죠. 버티면서 쌓아온 것들이 조금씩 ‘포텐’으로 팡팡 터지게 된 것 같아요. 드디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는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코미디를 하게 되었구나,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길이 내 길이 맞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꼭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정 기간을 정해두고 버틸만큼은 버텨보셨으면 좋겠다고.
GQ 버티면 언젠가는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WH 저는, 있었던 것 같아요.
GQ 그래서 버틸 수 있었군요.
WH 맞아요. 처음엔 제가 뭘 잘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게 잘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콩트를 좋아해주시면 콩트를 열심히 하고, 또 다른 걸 좋아해주시면 그걸 열심히 하고. 그냥 닥치는 대로 열심히 했어요.

데님 셔츠, 리바이스. 타이, 비앙카 손더스. 레더 팬츠, 벨트, 앵클부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어떤 강연에서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해지고 있는 중”이라는 주제로 연사를 했죠. 그다음 말에 밑줄을 긋고 싶었어요. “특별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되는 것 같다”. 특별하지 않음을 인정하고도 자존감을 지키기는 쉽지 않잖아요.
WH 저는 평범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주변에 날아다니는 사람들 천지였으니까요. 생각해보세요. 제가 이수지 선배를 어떻게 따라가요? 문세윤 선배, 황재성 선배는요? 그렇지만 평범함 속에서 재능을 표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 믿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다짐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숏박스>에서 ‘하이퍼 리얼리즘’ 연기를 하게 되었죠. 목소리나 표정, 몸 쓰는 능력이 특출나지 않으니 디테일한 연기를 해보기로 한 거예요. 그러면서 생활 연기가 제 필살기가 되었어요. 세상에 특출난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평범한 사람이라도 자기만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은 있는 것 같아요.
GQ 마음가짐은 원래 단단했어요?
WH 잘되고 나서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개그콘서트> 때는 아예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고, 코미디를 그만둔 적도 있었어요. <숏박스>로 잘된 시기가 2022년 초인데, 그때부터 단단해진 마음이니까 사실 얼마 안 되었죠.
GQ 유튜브 유행 수명을 고려한다면 <숏박스>는 굉장히 장수 중이죠.
WH 저희도 신기해요. 저희는 소위 말해 ‘뻘짓’을 안 해요. <숏박스>는 같은 퀄리티, 화면 구도, 대본 등 한 가지 결을 두고 그 방향성으로만 계속해왔어요. 우리가 하던 것을 일관성 있게 밀어붙였어요. 정말 ‘일’하듯이, ‘업’처럼요. 저는 일처럼 해야 더 책임감이 생기는 사람인 것 같아요.

데님 셔츠, 리바이스. 타이, 비앙카 손더스. 레더 팬츠, 벨트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사람들이 잘 모르는 김원훈의 면모가 있어요?
WH 의외로 부지런하다. 은근히 마음이 여리다? 상처도 쉽게 받고 걱정이 많아요. 쫄보 스타일이에요.
GQ <직장인들> 할 때는 어금니 꽉 깨물어야겠네요?
WH <직장인들>의 김원훈과 저는 되게 다른 사람이에요. 거기서는 제가 해야 하는 일이고, 저 말곤 놀릴 수 있는 포지션이 별로 없으니까 자처해서 하는 거죠. 뻔뻔하게. 실제로 재밌기도 하고요. 제가 그런 분들 언제 놀려보겠어요? 프로그램을 빌미 삼아 마음껏 놀아보는 거죠.
GQ 불편함의 밸런스는 어떻게 맞춰요?
WH 거기서는 대놓고 불쾌하게 하려고 해요.
GQ 아픈 곳에 정확히 화살이 날아가 박히죠, 탁월한 킬러처럼. 인물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죠?
WH 인물에 대한 조사를 많이 해요. 출신 학교, 나이, 사는 곳 등 기본적인 프로필은 다 외우고, 특히 인터뷰를 많이 봐요. 이 사람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쑥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구나? 그런 예민한 포인트를 낚아채 놀리는 편이에요. 일단 첫 농담을 세게 던지고 나서 상대의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감이 와요.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 상대에게는 더 세게 가기도 해요. 그런데 받아들일 마음이 있든 없든 사실 똑같이 세게 놀려요.(웃음) 그래도 방송에 나갈 정도의 수위는 맞추려고 하죠.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포인트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댓글에 “이거는 선 넘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 계속 맞춰가는 과정이에요. 저는 코미디가 굉장히 주관적이라고 보는 편이에요. 누구에겐 재밌는 것이 누가 볼 땐 재미없기도 하잖아요. 모두를 웃기고 싶지만 그건 굉장히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모두를 포용하기 어렵다면, 나를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소수를 위한 마니악한 코미디를 하자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턱시도 재킷, 코치. 패턴 셔츠, 히스테릭 글래머. 코튼 팬츠, 르메르. 선글라스, 발렌시아가.

GQ “불쾌하지 않은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김원훈이 빛나는 순간은 분명 그런 뾰족한 순간이죠.
WH 지상파 예능은 아직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왠지 착해야 할 것 같고, 말도 곱게 포장해야 할 것 같고. 물론 제게 그런 모습도 있기는 하지만, 제가 진짜 빛을 발하는 순간은 B급 감성 코미디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장막이 걷히고 수위를 넘나들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할 때 더 좋은 것이 나오는 것 같아요.
GQ 얼마 전 합류한 <영업중>을 보고 좋은 리스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WH 주로 콩트 기반의 코미디에서 캐릭터를 갖고 연기하지만, 캐릭터를 벗은 저는 꽤 ‘F(MBTI)’ 유형이에요. 공감을 잘하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어루만져주고 싶어 하는 편이죠. <영업중>을 하고 나서 ‘김원훈에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 생각해주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GQ 캐릭터를 벗고 사람 김원훈을 보여준다는 것이 두렵지는 않나요?
WH 긁는 역할을 많이 해와서 그런지 제 원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에 늘 목말라 왔어요. 평소에 친구들이랑 밸런스 게임하는 거나 토크하는 걸 좋아해서 <영업중>을 즐겨 보기도 했고요. <영업중>을 통해서 앞으로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기회죠.
GQ 항상 목표가 ‘지금 이 순간’이라고 했었죠? 여전해요?
WH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목표는 바로 지금 이 순간!’ 그런 오글거리는 느낌은 아니고, ‘그냥 지금처럼’이라는 의미에 가까워요. 내일도 오늘처럼 순탄했으면, 아무 일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요. 잔잔한 파도를 타고 가다가 큰 파도를 만나 예상치 못하게 그곳에 올라탔을 뿐, 일부러 큰 파도를 찾아간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같은 마음, 같은 자세로 제게 오는 파도를 성실히 타보려고 해요. 그냥 지금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옐로 데님 팬츠, 오니츠카 타이거. 퍼 머플러, 오웬 베리. 스니커즈, 컨버스. 티셔츠, 팔찌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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