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rink

정관 스님의 요리와 바텐더 5인의 논알코올 칵테일

2026.03.01.전희란

답을 구하려는 자들에게는 물음표로 끝나지 않는 문장도 질문이 되는구나. 정관 스님이 머무는 백양사 천진암에서 1박 2일 동안 실력자 바텐더 5인이 술 한 방울 없이 칵테일 만드는 과정을 보며 느낀 것.

{ 정답이 없는 물음들 }

정관 스님과 칵테일? 이 단어가 나란히 놓이는 건 금기임에 틀림 없었다. 그러나 논알코올이라면? 세계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늘면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논알코올 페어링’이라는 새로운 숙제를 받아 들었고, 바텐더들 역시 알코올을 멀리하는 ‘Cool’한 트렌드로 머리가 ‘Hot’해지고 있다. “스님의 음식으로부터 피어난 영감을 바텐더들이 논알코올 칵테일로 옮기면 어떨까요?” 뱉으면서도 우문인 줄 알았지만, 실은 현답을 기다렸다. 전통이 가야 할 멋진 모습을 파격이라는 새로운 틀로 실천하는 스님이니까. “재밌을 것 같네요.” 역시.

기획안을 받아 들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바텐더 5인이 잡혀 있던 일정을 기꺼이 바꿨다. 2024 디아지오 월드클래스 파이널 심사위원 김도형(제스트), 놀라운 스피드와 정교함을 겸비한 임병진(바 참), 10년간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 오른 김용주(앨리스), 2019 캄파리 레드핸즈 APAC 챔피언 이동환(기슭), 무서운 라이징 스타 조민석 (코듀로이 펠라즈)까지.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로 컴피티션의 결승전 같았다. “그래서 뭘 준비해야 하죠?” 날짜가 다가올수록 바텐더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지는 동안, 스님의 컨텐츠 담당자는 스님이 자주 사용하는 재료라며 힌트 몇 가지만 줄 뿐이었다. “참고만 하세요. 워낙 즉흥적이셔서 막상 오시면 다 바뀔 수도 있거든요.”

1월 27일, 마침내 천진암에서 만난 스님이 전날 장에서 사온 재료와 천진암에서 소장한 재료를 브리핑하는 동안, 바텐더들은 구겨진 뇌를 늘렸다 폈다 하며 머리로 축지법을 쓰고 있었다. 페어링할 주재료를 정하고, 바텐더들은 곧장 칵테일 레시피 구상에 들어갔다. 누군가는 이고 지고 온 가방을 샅샅이 뒤지고, 누군가는 프라이팬으로 액체를 끓이고, 누군가는 재료를 잔뜩 넣어 차를 우리고, 누군가는 믹서로 갈고, 누군가는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고…. 미지의 재료들이 천진암 공양간 안팎에서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시간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몇몇 바텐더는 늦은 새벽 잠에 들었고, 일찍 잠에 든 바텐더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내가 바로 바텐더예요.” 논알코올 칵테일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맛을 본 스님은 파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절에서는 예전부터 제철에 나는 열매를 가지고 주스나 청, 발효차 등을 만들어 다양하게 마셨거든요.” 그러고 보니 천진암에서 자연과 시간이라는 도구를 만나 벌어지는 일들이 요상한 실험실 기계로 가득 찬 바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리하여 완성된 칵테일과 스님의 음식은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칵테일을 감상하고 나면 바텐더들의 창작 과정에서 일어난 머릿속 축지법을 텍스트로 들여다볼 수 있다. 왜 칵테일을 마실까? 음료와 다른 점은? 칵테일의 본질은?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바의 역할은? 그 수많은 묵은 질문들에 답을 보내온 밤과 낮. 알코올 한 방울 없는 백양사 천진암에서 바의 미래를 목격한 것 같았다.

{ 정관 스님과의 Q&A }

이번 경험으로 ‘칵테일’이라는 장르에 대해 새롭게 열린 부분이 있나요?
‘칵테일’이라고 하면 서양 음식이라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절에서는 예전부터 제철에 나는 열매로 주스나 청, 그리고 발효차를 만들어 마셨죠. 여름에는 몸을 위해 된장차, 간장차도 마셔요. 우리가 예전부터 몸을 치유하는 약이자 음료로 마셔왔던 것들을, 현대의 젊은 친구들이 ‘칵테일’이라는 서양의 이름을 빌려 새로운 감각으로 브랜딩한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이 칵테일도 우리 고유의 전통 음료 문화와 맞닿아 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었지만 문화적으로 꽃피우지 못했던 것을 창의적으로 끄집어낸 것이죠.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는 식재료, 밭에서 나는 채소와 산나물로 음료를 만들어내는 시도는 시대에 맞는 아주 창의적인 발상이고, 그 점에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셰프들과는 어떤 점이 다른 것 같던가요?
확실히 다른 면이 있어요. 저는 바텐더들은 좀 더 세련되고 예민한 미각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음식은 씹으면서 맛을 느끼지만, 음료는 입안에 넣어 넘길 때 맛이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그 찰나의 미각을 찾아내야 하죠. 식재료를 활용해 반찬이 아닌 마시는 음료를 만들어내는 그 아이디어와 과정 자체가 기발했고, 서로의 식재료를 활용하는 방법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았어요.

논알코올 칵테일에 도전하는 바텐더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재료가 무엇이든 간에, 맛이 너무 밋밋해서는 안 돼요. 10가지 재료를 쓰든 하나를 쓰든 확실한 메시지를 줘야죠. 매운맛이면 알싸하게, 달콤하면 확실히 달콤하게, 혹은 된장이나 간장의 깊은 맛을 끄집어내어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해요. 재료들이 섞이되, 중심을 잡아주는 확실한 맛의 포인트가 있어야 진정한 융합이 이루어져요. 논알코올이라고 해서 맛이 순화되기만 하면 안 됩니다. 알코올이 없기 때문에 맛의 강약(Body)과 메시지가 더 강해야 해요. 코카콜라가 톡 쏘는 탄산과 특유의 향으로 기억에 남듯이, 칵테일도 그 한 잔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맛을 발견해야 하죠.

JEONG KWAN SNIM & JOJO

수삼 튀김과 ‘행자 탱자’ | 수삼을 살짝 쪄서 집간장, 들기름, 천일염 등으로 밑간한 후 멥쌀가루, 튀김가루로 만든 튀김 옷을 묻혀 수삼의 자태가 잘 살아나게 튀겼다. 칵테일 ‘행자 탱자’는 정관 스님의 탱자청, 산초간장, 감식초, 말린 감, 라임과 자몽 껍질 오일, 향신료로 완성했다.

JEONG KWAN SNIM & DARCY LEE

보길도 자갈마당 몽돌 미역 된장 제피 무침과 ‘No그로니’ | 청정 바다에서 자란, 꼬들꼬들한 식감의 물미역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절된장, 제피로 맛을 냈다. ‘No그로니’는 제피와 솔을 활용해 진의 뉘앙스를 내고, 대추와 연근으로 구수하고 달큰한 가향 와인의 터치를, 강황과 붉은 비트, 팔삭의 향긋함과 스님의 땡초로 마무리했다.

JEONG KWAN SNIM & DEMIE KIM

더덕 봉화 잣 꿀 무침과 ‘스님의 김치’ | 더덕을 정성껏 두들겨 편 후 곱게 찢어 소금, 간장, 꿀, 깨소금, 으깬 잣을 넣어 가볍게 버무렸다. ‘스님의 김치’ 레시피는 천진암 아로마틱 베이스 60밀리리터, 천진암 물김치 30밀리리터, 천진암 감식초 1스푼, 그리고 얼린 곶감을 얼음 대용으로 사용했다.

JEONG KWAN SNIM & TERRI KIM

야생 톳 간장 무침과 ‘팔싹팔싹’ | 싱싱한 톳을 살짝 데쳐 절간장, 식초, 청 등으로 맛을 내고 빻은 고추를 올렸다. 제주 팔삭의 향을 먹은 팔삭 올레 사카럼을 잔에 붓고 잔 림 부분에 소금과 글루코, 아몬드를 곱게 갈아 묻혀 팔삭의 알맹이를 한 알 한 알 붙였다.

JEONG KWAN SNIM & LIM BYUNG JIN

연근 호박씨 해바라기씨 간장 깨소금 무침과 ‘無題’ | 연근을 썰어 팬에 바삭하게 볶아 성글게 빻은 해바라기씨, 호박씨, 절간장과 조청, 깨소금 등으로 무쳤다. ‘無題’는 두유에 버섯, 각종 견과류, 김, 한국 뿌리류 재료를 담가 밤새 우려 감칠맛을 내고, 재료를 조화롭고 자연스럽게 칵테일 위에 장식했다.

{ 그리고 남겨진 것들 }

코듀로이 펠라즈 | 조민석

시선 논알코올 칵테일은 단순히 트렌드를 넘어 바문화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과거 주스와 시럽 중심의 단조로운 단맛에서 벗어나 논알코올 스피릿을 활용한 정교한 레시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나 역시 다양한 시도와 탐구를 이어왔는데, 알코올 베이스 칵테일과 비교할 때 맛의 깊이와 질감, 향의 복합성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협업을 통해 훌륭한 칵테일의 본질은 결국 ‘재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클래식 칵테일부터 시그너처까지, 뛰어난 음료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우리 곁에 늘 존재해온 양질의 재료 덕분이었다. 정관 스님께서 정성과 시간을 들여 빚어낸 전통 발효 재료들 청, 식초, 장을 활용해보니, 풍미와 맛의 층위가 상상 이상이었다. 비터, 베르무트, 증류주와 같이 바텐더들에게 익숙한 재료들처럼, 논알코올 칵테일 역시 훌륭한 베이스 재료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뒷받침된다면 표현의 스펙트럼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

태도 사찰 음식, 비건 음식 등의 키워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스님은 매일 천진암을 찾는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누구보다 바쁜 셰프이며, 한국의 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전도사다. 그럼에도 우리가 방문했을 때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다. 귀한 차를 정성스레 우려 주시고, 눈을 맞추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을 보며, ‘바쁜 가운데 참으로 고요한 분이시구나’라고 느꼈다. 스님의 태도는 바쁘다는 핑계로 곁에 둔 인연들에 소홀했던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고, 앞으로 우리를 찾아주시는 분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대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메시지와 풀린 실타래 제한적인 환경에서 어떻게 음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고, 많은 부재료들을 준비해 갔다. 하지만 막상 스님의 정성과 시간이 깃든 재료들을 사용해보니 가져간 재료들은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한계는 스스로 정해버리는 순간 비로소 생긴다는 것을. 스님께서 즉흥적으로 재료를 활용하시고 기존의 틀을 자유롭게 깨뜨리시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창작은 정답이 없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스님의 이야기와 작업 방식을 통해, 나 역시 음료 철학을 더욱 명확히 세우고 레시피 개발부터 맛의 완성, 플레이팅,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관되게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칵테일 이름하여 ‘행자 탱자’. 불교에서 ‘행자’는 수계를 받기 전의 출가 수행자를 의미하며, 동시에 어디론가 향하는 여행자를 뜻한다. 절과 바는 언뜻 상반된 공간처럼 보이지만, 모두 행자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다. 이곳을 오가는 많은 이들이 이 한 잔을 통해 편안함을 느끼고, 잠시나마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주 재료는 탱자청, 산초간장, 감식초(이상 정관 스님), 말린 감, 라임·자몽 껍질 오일, 향신료. 그리고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1 물에 향신료와 말린 감을 넣고 끓지 않는 온도에서 천천히 우려낸다. 2 산초간장을 팬에 태운 후 라임과 자몽 껍질로 만든 오일 시럽을 넣고 감식초를 첨가해 코디얼을 완성한다. 3 향신료와 말린 감으로 우려낸 물에 태운 산초간장과 감식초 코디얼을 비율에 맞게 섞고, 얼음과 함께 저어준다. 4 탱자청으로 젤리를 만들고, 천진암 앞마당에서 가져온 나뭇가지와 나뭇잎, 그리고 젤리로 마무리한다.

페어링 태운 산초간장에서 우러나는 은은한 훈연미와 짭조름한 풍미가 별도의 소스 없이도 수삼 튀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했다. 탱자청과 감식초가 주는 부드러운 단맛과 시트러스 계열의 상큼함은 튀김의 기름진 풍미를 가볍게 중화시키며 맛을 한층 끌어올린다. 여기에 향신료의 비터한 뉘앙스가 재료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주며 밸런스를 완성한다. 결과적으로 한 잔의 칵테일이 수삼 튀김의 풍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도, 계속해서 손이 가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기슭 | 이동환

시선 음료를 업으로 두고 있음에도 논알코올은 하는 수 없이 마시는 ‘대체품’이라고 은연 중에 생각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국내외 사례들을 공부하고 변화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간접 경험하며 논알코올 드링크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연장선에서 사찰 음식과의 협업은 논알코올 음료도 내가 주로 다루고 있는 술 못지않게 경험적으로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다고 느끼게 했다.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지만 영검한 사찰 특유의 분위기에 취해버렸다.

태도 공양간에서 셰프처럼 진두지휘하시고, 촬영에서는 미감을 발휘하시며 미술감독 역할까지, 매일 아침 입맛에 맞는 맛있는 커피로 시작하는 스님을 보며 스님도 수행자, 성직자이기 이전에 맛을 좋아하고 멋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나뵙기 전엔 나도 모르게 ‘스님은 이런 모습일 거야’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분야의 정점에 섰을 때는 직업적 타이틀이 그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이 드러날 때 더 멋스럽다고 느껴졌다. “바텐더는 이럴 거야, 이러해야 돼”라는 틀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의 모습으로 진심을 다하는 밤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메시지 음료를 구상하던 중 스님께 허브나 야생화를 쓰지 않으시냐고 물었는데, 말없이 사찰 구석으로 인도해주셨다. 자연의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듯한 그곳에는 하얗게 서리를 뒤집어쓴 작은 식물들이 있었고, 스님께서는 “이 엄동설한에 버티고 있는 이 친구들은 향이 참 강할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서리와 흙을 털어내고 조심스럽게 향을 맡아보니 도시의 로켓 배송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짜 자연의 향이 났고, 매료되어 실제로 음료에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칵테일 촬영 전 담당 에디터로부터 “클래식 칵테일도 논알코올로 만들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향과 맛을 따라 한 논알코올 유사 제품들을 조합한다는 해외 아티클이나 원서에서만 봤을 뿐 솔직히 해본 적이 없었다. 절에 당도하기도 전에 사찰 음식과 재료에서 영감을 받은 네그로니를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세웠고, 네그로니의 다채로운 허브와 약초의 뉘앙스를 낼 수 있는 재료들이 곳곳에 있어 수월하게 레시피를 짜 내려갈 수 있었다. 공양간을 가득 채우는 강한 향신료 제피와 솔을 활용한 진의 뉘앙스, 대추와 연근으로 구수하고 달큰한 가향 와인의 터치, 강황과 붉은 비트, 팔삭의 향긋함과 스님이 좋아하는 땡초로 마무리되는 사찰 아페르티보. 네그로니처럼 동량으로 휘휘 저어 만든 ‘No그로니’였다.

미역무침의 입안을 가득 채우는 강한 찰기와 그 끝에 남는 부드러운 식감, 과감한 향신료 터치에 매료되었고, 실제로 미역무침과 향신료, 허브의 개성이 강한 No그로니가 자연스럽게 합을 맞췄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고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부분이 많아서 끌렸다고 말하고 싶은 합이다.

제스트 | 김도형

시선 알코올 칵테일에 비해 재료와 방식에 분명한 제약이 있는 데다 천진암이라는 제한된 환경까지. 처음에는 큰 도전처럼 느껴졌고, 걱정도 많았다. (+ 스트레스 )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고민은 제스트가 늘 마주해온 질문과도 닮아 있다. 지속 가능성과 제로 웨이스트라는 메시지를 한 잔의 시그니처 칵테일 안에 담기 위해 선택과 제약 속에서 작업해왔기 때문이다. 제약처럼 보였던 조건들이 실제로는 본질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그 덕분에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같은 환경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동료들의 과정을 보며 큰 위안과 동시에 깊은 영감을 얻었다. 불가능은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메시지, 풀린 실타래 보통 일탈이라고 하면 여행이나 새로운 자극을 떠올리지만, 내게 가장 큰 일탈은 매일 반복되는 루틴에서 잠시 벗어나는 일이었다. 일상보다 훨씬 여유로운 시간과 환경, 주어진 과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일상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혼자만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그 자체로 귀중한 쉼이었다. 떠나기 전 티타임 때 정관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두려움, 게으름, 타인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음을 깊이 울렸고, 오래 남았다. 결국 이번 시간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본질에 다시 집중해보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칵테일 첫날, 천진암에 있는 재료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알코올처럼 바디감과 비터함을 지닌 베이스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천진암의 깨끗한 물을 바탕으로 비터한 결을 더해줄 더덕과 수삼, 은은한 시트러스 뉘앙스를 주는 탈각, 그리고 깊은 바디감과 농밀한 풍미를 더해줄 천진암의 명물인 곶감과 너티한 잣, 여기에 스님께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모아오신 향신료들을 더해 눈이 쌓인 겨울의 차가운 야외에서 24시간 동안 냉침한 뒤 걸러내고 약간의 설탕을 더해 하나의 베이스를 완성했다. ‘천진암 아로마틱 베이스’라 하겠다. 이후 추가 재료를 고민하던 중 스님의 말씀이 귀에 꽂혔다. “누가 김치로 칵테일 한번 만들어보지?” 천진암의 정성이 담긴 물김치였다. 물김치의 국물 안에는 발효에서 오는 깊은 풍미와 산과 당의 균형, 은은한 감칠맛까지 이미 훌륭한 구조가 담겨 있다. 겨울이라는 계절을 담아내기에도 더없이 좋은 재료였다. 여기에 스님께서 오랫동안 천장 아래에서 숙성해오신 감식초를 소량 더했다. 사실 이 식초와 탄산수만으로도 충분히 완성된 논알코올이 될 만큼 인상적인 맛이었다. 또한 바에서처럼 근사한 얼음을 구할 수 없었기에 꽁꽁 얼린 곶감을 얼음 대신 사용해 천천히 녹아들며 맛까지 더해지게 했다.

정성껏 손질한 더덕에 꿀과 식초, 배즙, 잣을 더해 완성한 더덕무침과 페어링했다. 살아 있는 더덕의 단단한 식감과 은은한 쓴맛, 그 위를 감싸는 잣의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가 어우러져 여운이 길었다. 이 맛의 결은 내가 만든 논알코올 칵테일의 재료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함께 마셨을 때의 인상은 마치 논알코올 깁슨이나 뱀부 칵테일을 떠올리게 하는 뉘앙스에 가까웠다. 마침 스님의 재료와 논알코올 베이스를 만들 때 사용한 재료들 사이에 교집합 요소가 있어 조화가 더 좋았다. 잣에서 오는 고소한 풍미 때문인지 이 칵테일은 너티한 셰리 와인을 연상시키는 깊이를 지녔다. 물김치의 국물 자체가 이미 너무 훌륭했기에, 다른 무언가가 더해지지 않아도 충분했을지도 모르겠다.

앨리스 | 김용주

시선 주재료로 사용한 팔삭의 향은 레몬처럼 산뜻하면서 오렌지처럼 달콤하고, 속 과즙은 자몽보다 씁쓸함이 감돌았다. 이 매력적인 향을 담고 싶어 껍질을 벗겨 껍질과 설탕을 스크랩한 팔삭 올레 사카럼을 만들었는데, 보통 껍질을 벗길 때 안쪽 백피 부분은 쓴맛이 나서 완전히 제거한다. 그런데 칵테일에서 바디를 담당하는 알코올은 대부분 쓴맛이기 때문에 팔삭의 백피 부분을 음료에 담가 쓴맛을 우려내 바디를 담당하게 하면 어떨까 하고 시도했다. 결과는 실패.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고, 백피가 음료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과연 앨리스였다면 내가 이러한 시도를 했을까? 재료의 필요한 부분을 극대화하기 위해 집중하고 매칭되는 재료를 찾는 데 공을 들였겠지? 사찰에는 재료가 없었고, 이것이 더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좋은 시도였다. 앞으로 칵테일 메이킹이 조금 달라질 것 같다. 스티븐 잡스의 명언처럼, “Stay foolish stay hungry”.

태도 평소에 너무나 존경하던 분이라서 만나면 인생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지, 하고 다소 무거운 발걸음으로 갔다. 그런데 스님은 전혀 무게를 잡지 않으셨다. 혹시 방송에 너무 익숙해지신 걸까? 그런데 스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무척 가벼워진 내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스님은 무게 잡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대하는 진정한 기쁨을 알려주셨다.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가벼워지고 싶어졌다.

풀린 실타래 두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매 순간 스스로를 가혹하게 코너로 몰았다. 그런데 숨차게 달리는 것만이 다가 아니구나, 이곳에서 느낀대로 평온해진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니 여유가 생겼다. 놓치고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칵테일 감이 유명하다더니 역시나 천진암에서 먹은 반시는 ‘와우’ 하고 탄성이 나올 정도로 당도와 텍스처가 완벽했다.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내어주신 스님께 보답하고 싶어 완성한 칵테일은 팔삭의 백피를 제거하고 얇게 벗겨 설탕과 함께 진공 포장해 팔삭의 향을 먹은 팔삭 올레 사카럼을 만들어 넣었다. 팔삭 맛을 그대로 느껴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한 알 한 알 알맹이를 따서 잔 주위에 붙여 불상을 표현해 장식했다. 오랜 여운을 위해 소금과 글루코, 아몬드를 곱게 갈아 잔에 묻혔다.

제철 감의 달콤함과 코코넛의 부드러움, 감식초의 묵직함, 아몬드의 ‘단짠’ 조합이 팔삭의 비터함과 어우러지며 다양한 느낌을 품었다. 스님의 된장으로 버무린, 샐러드처럼 산뜻한 나물 무침과 신선하게 어우러졌다.

참 | 임병진

시선 내려놓음, 자연스러움. 음료, 바텐딩을 하면서 늘 따라오는 고민이다. 우리는 알려야 하는 직업군이어서 잘 표현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화학적 지식, 창의력을 바탕으로 획기적이고 새로운 걸 선보인다. 하지만 백양사에서 느낀 건 꾸밈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절이 주는 절제는 갖추되 무게감은 덜어냈다. 스스로 절도 보수해가며 공간에 애정을 넣는 모습, 공양 때마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 영락없이 자연스레 사람 사는 모습이었다. 음식 또한 특별하게 신기한 기법이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주 특별하게 다가오는, 말 그대로 자연에 내려놓음에서 오는 경이였다.

메시지 알코올이 주는 채움을 다른 재료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바디를 채우는 데 대한 고민으로 재료 구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페어링이란 서로를 위해 자리를(바디를) 비워주는 비움의 미학이었다. 한데 스님의 음식을 먹고 느낀 건 원재료의 매력을 신선하게 표현해주신다는 거였다. 알고 있던 사람이 낯선 사람이 되어 인사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스님이 해주시는 원재료를 살리는 풀 내음, 신선함, 톡 쏘는 경쾌함을 감칠맛 있는 소스로 덮어내는 페어링을 시도하고 싶어졌다. 페어링을 디저트 느낌, 크리미한 느낌으로 구상한 건 처음이었다. 자리를 비우거나 일부러 바디를 낮추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배려를 받았다고 느꼈다. 디저트도 이렇게 해본 적은 없었다. 스님의 음식이 주는 신선함, 경쾌함을 감칠맛 있는 재료들이 큰 공정을 거치지 않고 소스처럼 덮어주는 페어링을 구상했고, 이건 나에게 큰 깨달음으로 남았다.

칵테일 마음껏 감칠맛 있는 재료들을 쓰되, 가급적 현대 도구를 쓰지 않는 방법으로 완성하고자 했다. 전날 밤 두유에 버섯, 각종 견과류, 김, 한국의 뿌리류 재료들을 담가 시간이 주는 자연스러운 감칠맛이 우러나게 넣었고, 그걸 바탕으로 조금씩 수정했다. 채소를 자연스레 조리하고 견과류 등으로 소스를 만들거나, 입체감을 주는 스님의 음식 스타일에서 영감 받아 머릿속에서 그린 후 만들었다. 장식도 미니멀하게 표현하기보단 들어간 재료를 조화롭고 은은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고민을 표현해내는 과정이 굉장히 즐거웠다. 디벨롭한다면, 이 감정과 순간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

연근이나 두릅, 더덕 같은 뿌리의 풍미가 있는 재료들과 매칭하는 걸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곁들이는 음료의 역할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풀어낸, 새로운 형태의 페어링에 도전하는 거라 떨리기도 설레기도 했다.

포토그래퍼
김진훈
푸드 스타일리스트
정관 스님
바텐더
이병진 at 바 참, 김도형 at 제스트, 김용주 at 앨리스 청담, 조민석 at 코듀로이 펠라즈, 이동환 at 기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