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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기술력을 뽐내려고 만든 시계, 지라르 페리고

2026.03.19.조서형, Oren Hartov

새로운 지라르 페리고 미닛 리피터 플라잉 브리지스. 전설적인 워치메이커가 선보인 미래의 클래식이다.

Courtesy of Girard-Perregaux

맨해튼의 번화한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세계 최고의 시계 브랜드를 몇 개만 말해보라고 하면, 거의 비슷한 이름들이 반복될 것이다. 롤렉스, 오메가, 태그호이어, 브라이틀링, 그리고 조금 더 아는 사람이라면 파텍 필립 정도다. 하지만 시계 산업의 규모와 역사만 봐도, 이런 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하는 중요한 브랜드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풍부한 역사와 혁신을 갖고 있음에도 마케팅 방식이나 생산 규모 등의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브랜드들 말이다. 지라르 페리고가 대표적인 예다.

18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지닌 지라르 페리고는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 브랜드 중 하나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세 개의 금 브리지 투르비용’으로 유명하며, 이후 세계 최초 수준의 5헤르츠 고주파 손목시계와 로레아토 스포츠 워치를 선보이기도 했다. 로레아토는 종종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나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와 비교되지만, 실제로는 시대를 앞선 모델이었다. 지라르 페리고는 여기에 자체 개발한 칼리버 705를 탑재했는데, 이는 32,768헤르츠로 작동하는 크로노미터 인증 쿼츠 무브먼트로 이후 업계 표준이 된 사양이다.

Courtesy of Girard-Perregaux

이 ‘세 개의 금 브리지’ 디자인과 로레아토는 지금도 브랜드의 핵심 라인으로 남아 있지만, 최근 몇십 년 동안 지라르 페리고의 상황은 부침을 겪었다. 1988년 소윈드 그룹이 설립돼 지라르 페리고와 율리스 나르당을 함께 관리했고, 2011년에는 보테가 베네타, 생 로랑, 구찌, 발렌시아가 등을 보유한 케어링 그룹이 지분을 확보했다. 그러나 케어링 산하에서 매출은 크게 감소했고, 결국 2022년 경영진 인수 방식으로 다시 독립하게 됐다.

현재 분위기는 다시 좋아지고 있다. 최근 6개월 사이 지라르 페리고는 두 개의 새로운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선보였다. 하나는 가변 관성 밸런스와 실리콘 이스케이프먼트, 55~60시간 파워리저브를 갖춘 자동 무브먼트 GP4800이고, 다른 하나는 마이크로 로터와 투르비용, 그리고 브랜드의 상징인 ‘세 개의 금 브리지’ 디자인을 적용한 스켈레톤 자동 무브먼트 GP9620이다. 이 두 무브먼트만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했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총 475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자동 스켈레톤 미닛 리피터 무브먼트 GP9530을 공개했다. 이 놀라운 엔진은 46mm 핑크 골드 케이스의 미닛 리피터 플라잉 브리지스에 탑재되며, 지라르 페리고의 기술력을 극대화한 초고난도 모델이다.

Courtesy of Girard-Perregaux

무브먼트 자체도 압도적이다. 내부 각도의 마감, 폴리싱, 그리고 진동 전달을 고려해 선택된 티타늄 플레이트와 브리지 구조가 곧 이 시계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미닛 리피터는 버튼 조작으로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기능을 갖춘 시계다. 게다가 대부분 수동 방식인 미닛 리피터와 달리 이 모델은 자동 무브먼트를 사용하며, 소형 마이크로 로터를 통해 약 60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제공한다.

여기에 전후면 사파이어 크리스탈이 적용돼 소리를 더욱 증폭시키고, 오픈워크 디자인은 메커니즘을 그대로 드러낸다. 핑크 골드 ‘세 개의 브리지’ 구조는 투르비용과 타종 장치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효과를 준다. 자세히 보면 리라 형태의 투르비용 케이지에 작은 초침이 통합돼 있는 디테일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시계는 대중을 위한 제품이 아니다. 연간 극소량만 생산되며 가격은 한화로 약 7억 8천만 원 수준이다. 수영장에서 회의실까지 매일 착용하는 시계가 아니라, 브랜드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작품에 가깝다. 동시에 지라르 페리고를 다시 스포트라이트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결정적인 모델이기도 하다.

Oren Hartov
출처
www.gq.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