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비꼬는 인터뷰는 아니다

2008.10.20GQ

중학교 때 한 아파트 이름 공모전에 ‘은빛, 달빛, 별빛 아파트’란 이름으로 당선한 적 있는,작명 센스 있는 남자 유세윤은 이 인터뷰의 제목에 대해 ‘꿈을 모르는 남자’라고 지어줬다. 그 제목을 꼭 쓴다는 말은 아니었다.

셔츠는 DKNY, 브이넥 니트와 스니커즈는 모두 프레드 페리, 데님 팬츠는 서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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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소에 오면서 ‘<GQ>니까 이런 질문 하겠구나’라고 예상한 거 있었나?
‘무릎팍 도사’에서 ‘건방진 도사’로 나오니까 건방진 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까 싶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건방졌나?(웃음)
어, 오해 말라. 건방진 건 나랑 정반대의 성격이다. 하하.

그 동안 보여줬던 개그 중에 유독 조롱하거나 비꼬는 스타일이 많았다. 좋아하는 개그 취향은 어쨌든 성격대로 나오는 거 아닐까?
아! 성격은 비꼬는 게 확실히 맞는데 시건방진 건 아니다. 시건방진 거랑 비꼬는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비꼬는 건 정말 친한 친구, 장동민과 유상무 둘만 안다. 상대방은 잘 모른다. 그들 모르게 비꼰다.

그럼 혹시 나도 비꼬았나? 나 지금 모르고 있는 건가?
아니다. 아까 사진 찍을 때 찍으시는 분들은 좀 비꼬았다. 하하.

<황금어장>에서도 보니까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르게 말해서 MC 포함 패널들이 모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당황해하더라. 그거, 은근 즐기는 것 같던데.
맞다. 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과는 좀 맞지 않는단 생각 든다. 안 친한데 친한 척해야 하고 안 친하면 친해져야 하고. 그런 게 너무 안 맞는다. 친한 척 해보려고 해도 어우, 낯간지럽고 어색하고 이상하다. 그냥 내버려두려고 한다. 어차피 안 친한 거 친한 척해서 뭐해.

친해지는 시간의 속도라는 건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 속도 차를 무시하고 일부러 친해지려고 하면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좋아하는 개그 스타일도 작위적으로 뭔가를 만들기보단 일상에 숨겨진 단서들을 가지고 유머의 포인트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맞다. ‘장난하냐’라는 코너도 그랬고 ‘봉숭아학당’의 ‘복학생’캐릭터도 비꼬는 것에서 시작한 거다. 세상 물정 모르는 복학생들을 비꼰 거다. 그들이 하는 모습 그대로. 그들은 “이거 멋있지 않냐? 최신 유행 아냐?”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웃는다. 재밌는 건, 그런 모습 하고 있는 복학생도 TV 볼 거란 거다. 그게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얼마나 재밌나.

요즘엔 ‘착한 녀석들’코너에서 자기 자신을 비꼬는 것 같다. “연초에 잘해도 소용없다, 연말에 잘해야 상 받는다”는 멘트도 그렇고.
맞다. 완전 비아냥이다. 내가 이렇게 직접 그 의미를 얘기하는 건 좀 낯뜨겁긴 한데, 개그 프로그램의 시스템을 비아냥하는 거다. 우리 재밌는데 왜 편집하냐, 솔직히 연초에 잘했는데 연말에 잘한 ‘마빡이’한테 상주냐, 그런 것들을 솔직하게 얘기해버린다. 그 아이디어 어떻게 짜냐면, 되게 재밌는데, 감독님이 제작 회의 때 우리에게 하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 다. 감독님이 “너네는 그 상태로 오래 가겠냐?”그러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감독님이 오래 갈 수 있을까 물어보는 착한 녀석들입니다”그러는 거다.

그러면 감독이 제작 회의할 때 눈치 볼 것 같다.
엊그저께 이런 일도 있었다. 오지헌 씨가 감독님이 먹던 초콜릿을 먹으려고 하니까 감독님이 농담으로 “오지헌 너 미쳤냐”그랬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거다. “초콜릿 하나 먹으려다 감독님한테 미쳤냐는 소리 들은 착한 녀석들입니다.” 개그맨과 감독님의 관계, 개그 프로그램과 개그맨의 관계들을 다 반영한다. 코너가 재미없으면 편집한다거나 폐지하는 것들까지 다 반영하는 거다. 에이, 솔직히, 말은 이런데, 그냥 대충 한 거다. 하하.

간혹 위험 수위를 넘나든다. ‘골목대장 마빡이’는 “금방 폐지될 거다”라고 말하고 ‘개그 두뇌 트레이닝’에 대해서는 “5분 전에 이미 무슨 말 할지 예측할 수 있는 코너”라고 하고. 다른 개그맨이 뭐라고 안 하나?
사실이니까. 아무도 뭐라고 안 하더라.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 부분을 우리가 건드리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것을 건드리는 거니까. 어차피 다 알고 있는 거다. 우리 코너가 지적한 부분을 아마 그 코너들이 피해가야 할 거다. <개그콘서트>에서 가장 짧고 하찮은 코너가 지적하는 거니깐(웃음).

이경규 덕분에 <그랑프리쇼 여러분-불량아빠 클럽>에 게스트로 들어갔다가 금방 나온 걸 두고 사람들이 “이경규 라인에 들었다가 퇴출됐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그걸 ‘무릎팍 도사’에서 이경규에게 “저를 버리셨잖아요”라는 식으로 비꼬더라. 이러다가 “그 이후 유세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란 자막이 나오는 거 아닌가?
(이경규에게) 그런 마음은 하나도 없다. 쇼 프로그램은 50의 진실을 80,90으로 끌어올리는거다. 그 가공된 것을 걷어내보고 싶었다.

진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오마이 뉴스>와 <도깨비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진실에 좀 더 근접한 매체가 되세요”라고 말했다. 왜 그랬나?
그것도 비꼰 건데…. 하하.

정말? 뉴스나 신문이 진실된 매체가 아니라는 건가?
인터뷰할 때 이런다. “와, 이번 제목은 뭐가 나올지 궁금해요, 가만 있어봐 내가 무슨 얘길했지? 어, 유미 얘기 했나? 아, 유세윤은 강유미랑 사귀기 싫어요, 이게 제목이려나?” 인터넷 뉴스는 소위 네티즌들을 ‘낚기’위해 제목을 그렇게 쓰니까. 물론 그게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한다. 나라도 그렇게 썼을 거다. 다만, 오목 거울이나 볼록 거울이 되면 안된다는 거다. 제목은 그렇게 나가도, 그 안의 기사는 정직하게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해명에 나서나? ‘BOA’코너 할 때는 한 A형 시청자가 <개그콘서트> 게시판에 그 코너로 상처받는다고 쓰자 진지하고도 긴 글을 남겼던데.
내가 연예인이란 생각을 별로 안 해서 그렇다. 연예인들 보면 정말 연예인 같다. 난 네티즌으로 글을 남겼지 연예인이란 생각으로 남긴 게 아니다. 강유미 기사에 장난 치려고 “강유미 실제로 보니 구리던데”라는 댓글 남긴 것도 그런 이유다. 근데 내가 남긴 댓글이 ‘연예인, 이런 댓글로 남긴다’ 라는 식으로 기사화 될 줄은 몰랐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하고 있다. 싸이월드에 남긴 댓글도 기사화됐다. 이제는 뭘 쓰더라도 신경 쓰일 것 같다. 웃겨야 할 것 같고.
어떤 분들은 내가 댓글을 처음 남긴 시각 02:30분에서 마지막 댓글이 끝나는 시각 03:10분을 분석하며 그 몇 십 분 동안 내가 얼마나 고민하며 글을 썼을까, 라고 추리까지 한다.

그런데, 연예인이 아니라면, 뭐라고 생각하나? ‘막무가내 중창단’코너 할 때 보니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당신 알아보고 ‘꺄악’소리지르던데 뭘. 그게 연예인 아닌가?
연예인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조금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요즘 가장 즐거운 방송이 ‘막무가내 중창단’이다. 나랑 상무랑 동민이랑 셋이 대학교 때 같이 살고 그럴 때, 길거리에서 생뚱맞은 개그하고 놀았다. 강남역 한복판에서 갑자기 막 싸우는 척을 하는 거다. ‘싸대기’도 진짜 때리면서 연기 제대로 하는 거다. 나름 시나리오 짜가지고 “네가 그렇게 내 여자를 뺏어가면 안되지!”라고 소리지른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어느 정도 모이면 이렇게 말한다. “ 자, 남자답게 팔씨름으로 하자.” 큭큭. 그렇게 사람들을 속이는 데 희열을 느꼈다. ‘막무가내 중창단’이 그렇다. 다른 프로그램 나가면 규칙이 있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말도 많다. 근데 이건 우리 마음대로 미친 짓 하면 된다.

대본 없이 즉흥성에 기대니까 돌발상황도 많을 것 같다. 이상하게도 그걸 볼 때마다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타잔 옷을 입고 길거릴 나갔는데 옛날에 좋아했던 사람이나 옛 여자친구를 만나면 어떡할까라는.
정말 아는 사람 많이 만났다. 다행히 옛날 여자친구는 안 만났다. 하하. 만나도 상관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서 괜찮다. 헤어졌던 여자친구가 내가 즐기는 모습 본다면 나도 즐거울 것 같다. 그것보다는 <개그콘서트>에서 안 웃기는 개그를 하는데 옛날 여자친구가 보러 오는 것, 그게 더 싫을 것 같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얘기는 아니고, 사실 당신이 하는 개그의 아이디어가 재기발랄하고….
아! 나 뭔지 안다. 내가 방송 극작과를 나와서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의 마음을 여는 방법’ 같은 것 배웠다. 그래서 지금 나 살살 긁는 거 아닌가?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겠다. 근데 그 얘기를 꺼낸 건 이런 질문을 하기 위해서다. ‘솔직히 내가 재능 좀 있지, 남들보다 좀 잘하긴 하지’그런 생각 하지 않나?
재능 있는진 모르겠고 ‘난 왜 이럴까’라고 자꾸 걱정하면 더 안 된다는 것은 안다. 난 내가 잘하는 부분만 본다. (강)유미는 나보고 나르시시즘이라고 그런다. 그러면 난 유미한테 이런다. “난 뭐가 되도 되지 않을까?” 꿈은 코미디 배우인데 그냥 지금처럼 해보라는 것 다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그럼 나중에 코미디 배우를 여유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코미디 배우가 안되면 절대 안돼’그게 아니고 ‘코미디 배우를 언젠간 할 거야’그런 거다.

주성치나 짐 캐리가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 국내 여건상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 들지 않나?
그래서 더 설렌다. 아무도 밟지 않은 자리니까. 내가 빨리 처음으로 밟고 싶다.

정말 낙관적이다.
네?

아, 비꼬는 거 아니다.
분명 비꼬았다(웃음). 낙관적이라고 말하면서 비관적인 사람 아나? 작가들도 만날 “인생 뭐 있어?”라고 말하면서 정작 전화해서는 이런다. “누가 나 씹어”. 나도 그런 적 있었지만 내 자신에 대해 알고 나서부턴 ‘잘되면 좋고 안돼도 상관없다’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괜찮은 생각이다. 그래도 남들한테 듣기 싫은 얘기는 있을 텐데.
있다. 유세윤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MC로 진출해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턱없이 모자라다, 라는 말은 듣기 싫다. 꿈이 MC가 아니기 때문이다. 열심히는 해보겠지만 꿈은 아니다. 사람들은 방송에 나가는 순간 유재석, 강호동 수준을 원한다. 하지만 난 자신감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MC들이다. 내가 그들보다 못한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꿈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로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꿈이 있는 사람들은, 멋있다. ‘무릎팍 도사’에 박진영 씨가 나와서 이 나이에 이제야 자기 꿈을 알았다고 그랬다. 무대에 서는 거라고. 그 얘기를 듣고 창피했다. 만날 코미디 배우가 꿈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절실함은 없기 때문이다. 꿈을 정해놓고 달려가는 사람도 멋있지만 꿈이 뭔지 찾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 말 좀 멋있게 한다?
정말인가?

아, 이번에도 비꼰 거 아니다. 이상하게 왜 자꾸 뉘앙스가 그렇게 들리지?
또 비꼬았다. 분명히 내가 들었다.

아까 낚시 기사 언급해서 말인데, 그럼 당신이라면 이 인터뷰의 제목을 어떻게 짓겠나? 쓸지 안 쓸진 모르겠지만. 뭐, 일단 들어나 보자.
꿈을 모르는 남자 유세윤? 꿈이 뭐냐고 묻거든 유세윤은 그냥 웃지요.

정말 이건 웃을 수밖에, 달리 대꾸할 말이 없다.

    에디터
    나지언
    포토그래퍼
    레스
    스탭
    스타일리스트/이윤경, 헤어&메이크업/염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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