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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과 잘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 3

2023.11.27김창규

만화 <신의 물방울>이 한국 와인 업계에 미친 큰 영향 중 하나는 사람들이 굴에 샤블리 와인을 곁들여 먹는 것이다. 세상에는 샤블리 외에도 굴과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이 너무나도 많다.

미켈레 끼아를로
가비 ‘레마르네’

마트에서 석화를 한 판 사고 와인 코너로 이동한 당신에게 ‘샤블리’라는 명칭보다 먼저 권하고 싶은 와인이 있다. ‘가비(Gavi)’다. 일반적인 빌라주급의 샤블리가 아닌 1급밭 샤블리나 그랑 크뤼는 오히려 석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가비는 그게 뭐든 석화와 최상의 궁합을 선사한다.

미켈레 끼아를로 가비 ‘레 마르네’는 실제로 비릿한 해산물과의 궁합을 위해 내 와인바에서 가장 오래 리스트업해뒀던 와인이었다. 그리고 이 와인이 마트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가비 와인 중 특별히 품질이 좋은 편에 속한다. 가비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서 코르테제 품종으로 만드는 화이트 와인을 일컫는 명칭이다.

🍷 짜릿한 시트러스 캐릭터와 미네랄, 멜론의 시원함과 흰 꽃의 섬세함이 어우러져 1~2만 원 더 비싼 샤블리보다 오히려 밸런스가 뛰어나다. 최근 한국에 자주 방문한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진정한 가비”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와인이다. 솔직히 이 와인과 석화를 맛보고 나면 당분간 샤블리를 찾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다. 내 와인 바에서는 샤블리의 인기에 밀려 리스트에서 뺐지만.

샤또 스미스 오 라피트
레 오 드 스미스 블랑

샤블리는 부르고뉴에서도 뫼르소, 퓔리니 몽라셰, 샤샤뉴 몽라셰, 알록스 꼬르통 등의 마을과 비교하면 대중적인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마을이다. 그러나 뫼르소 등의 마을에서 생산한 고급 부르고뉴 블랑은 버터나 치즈와 함께 익힌 굴 요리와는 어울릴지언정, 생굴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보르도 최고의 화이트 와인 생산지인 페삭 레오냥의 2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고급 와인들은 생굴과 근사하게 어울린다. 샤또 스미스 오 라피트는 2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최상급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샤또다. 게다가 보르도 블랑 최고의 생산자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메인 라벨의 1/3 가격으로 판매하는 세컨드 와인 레 오 드 스미스 블랑은 같은 가격의 부르고뉴 와인에 비해 와인 품질 자체가 더 뛰어나면서도 생굴과의 궁합까지 좋다. 생굴과 어울리는 대부분의 화이트 와인은 오크 숙성을 거치지 않는다. 오크 숙성을 통해 더해지는 복잡하고 묵직한 풍미들이 생굴과 어울림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 레 오드 스미스 블랑의 재료인 소비뇽 블랑과 소비뇽 그리는 오크 숙성을 더해도 여전히 생굴과 훌륭한 마리아주를 선사하는 품종이다. 심지어 이 와인의 뉴 오크 사용 비율은 50%에 달한다. 그만큼 와인만 마셔도 탁월한 품질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기갈
꽁드리유 ‘라도리안’

석화로 시작해 킹크랩까지 쪄 먹을 작정이라면 이보다 완벽한 와인은 없을 거다. 꽁드리유는 ‘론의 몽라셰’라 불릴 만큼 최상급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는 프랑스 론 지방의 명산지다. 꽁드리유의 화이트 와인이 부르고뉴의 상징적 그랑 크뤼인 몽라셰 비견되는 이유는 극도로 섬세한 아로마와 엄청난 스케일의 보디감이 합쳐진 진정한 풀보디 타입의 화이트 와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라 도리안’은 이 기갈의 플래그십 화이트 와인으로 다섯 개 밭의 비오니에를 수확해 블렌딩한 특징을 지녔다. 새 오크통 100%를 사용해 12개월 숙성했으며, 100% 말로락틱 발효했다. 1년에 약 6천병 가량만 생산하는 이 와인은 가격도 20만 원대로 품질을 생각한다면 저렴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 흰 꽃의 아로마가 두드러지며, 즙이 최고로 차오른 복숭아를 게걸스럽게 맛보는 듯한 풍미는 살집이 없는 샤블리와 차원이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산미도 샤블리처럼 찌르지 않고 부드럽지만 강하며, 미네랄도 뒤지지 않는다. 생굴부터 킹크랩 내장의 녹진한 맛까지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다. 이렇게 잘 아는 이유는 매년 겨울이면 내가 이 와인을 그렇게 먹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