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나 자신이어야죠.” UFC 직행한 MMA 선수 유주상.
“ZFN이든 AFC든, 제게 소중하지 않은 시합은 없었어요. UFC도 물론 대단하지만, 이것 또한 많은 무대 중 하나라고 받아들이려고 해요.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더 잘 안 되더라고요, 무엇이든.”

GQ 타투의 의미를 물어봐도 될까요?
JS 팔 앞쪽 타투는 챔피언이 된 제 뒷모습, 강인함을 상징하는 호랑이예요. 팔 위쪽은 이순신의 학익진, 태극기로 애국심을 표현했고, 팔 안쪽은 어릴 적 꿈이던 축구 선수를 거울로 비출 때 UFC 챔피언이 된 제 모습이에요.
GQ 원래는 축구선수가 꿈이었어요?
JS 축구 선수를 꿈꾸다 중학교에 가서는 태권도를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발목을 심하게 다쳐서 고민 끝에 복싱을 시작하게 됐고요. 발목을 안 쓰는 스포츠인 줄 알았는데 스텝이 엄청 많더라고요.(웃음) 복싱을 그만두고 한동안 떠났다가 MMA를 시작한 때가 스물일곱 살. 막상 해보니, MMA가 제게 잘 맞더라고요.
GQ 복싱 처음한 날 기억나요?
JS 기억나요. 저는 뭐든 하면 열심히 하고, 중간이 없어요. 끝을 보는 성격이죠. 복싱장에 처음 간 날부터 제겐 스포츠 스타,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는 꿈과 욕망이 있었어요. 무식할 정도로 팔굽혀펴기를 해서 다음 날 전신에 알이 배겨 아무 것도 못 할 정도였죠. 관장님도 엄격하셨고요. “더 해야 돼, 참아내야 돼”라는 마인드를 주입시켜 주셨고, 그것이 지금까지 제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빨리 강해지고 싶었어요.
GQ 평소 승부욕이 엄청나다고 들었어요.
JS 맞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어요. 하루는 비비탄 총으로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데, 팀에서 저 혼자 살아남은 거예요. 팀을 구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네다섯 명이 저한테 집중적으로 쏘아대는 비비탄을 다 맞으면서도 뚫고 나가 애들을 구출해줬어요.
GQ UFC에 직행하게 된 ZFN 02 시합 전 영상에선 순진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죠. “그냥 계속 패려고요.” 엄청난 멘털을 지닌 것 같았어요.
JS 제가 저를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운동할 때 제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그래요. “너 돌아이 같아.” 남들은 힘들어서 처질 때 저는 악 소리 지르면서 더 빡세게 하거든요. 어쩌면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해요. “힘들 때 웃어야 일류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 말을 혼잣말처럼 내뱉기도 하고, 같이 운동하는 동생들에게 본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요.

GQ 시합에 스파링하는 마음으로 올라간다는 말도 했죠.
JS 한번은 해외에서 드미트리우스 존슨 시합을 보는데, 다른 선수들하고 완전히 다르게 움직이더라고요. 스파링하듯이 가볍게. 저런 게 진짜 잘하는 거구나, 저게 일류구나, 그때 느꼈어요. 그러곤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어떻게든 이기려고 세게 하기보다는, ‘스파링이다’ 생각하면 마음도 편해지더라고요. 스파링은 상대를 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니 간결함을 바탕으로 임팩트만 주죠. 그처럼 간결하게 하되, 임팩트를 더 세게 주려고 해요.
GQ 연구를 많이 하는군요.
JS 누워 있다가, UFC 보다가, 멍때리고 있다가도 ‘내 스타일에 이런 걸 입혀보면 어떨까?’ 같은 생각을 계속해요. 0.1씩만이라도 업그레이드가 되면, 10개가 쌓여 1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차츰 발전해온 것 같아요.
GQ 지금 유주상의 스타일을 정의한다면요?
JS 틀에 박혀 있지 않아서 예측할 수 없고, 스타일리시함.
GQ 유주상의 힘은 어디서 와요?
JS 시합 준비를 엄청 혹독하게 해요. 지더라도 과정에서 후회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힘들 때 멘털 잡기가 어려운데, 그때마다 계속 생각해요. ‘이럴 때 더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힘이 빚어지는 것 같아요.
GQ MMA의 어떤 면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JS 사람들이 자주 물어봐요. “레슬링 최강자와 주짓수 최강자가 싸우면 누가 더 센가요?” 그런데 여러 종목이 섞여 있는 MMA는 단일 종목 최강자라고 해서 승리가 보장되는 스포츠가 아니예요. 예측할 수 없죠. 엘리트 레슬러 선수가 와서 스파링을 해도 아무 힘도 못 쓸 때도 있어요. 그런 예측할 수 없음이 재밌는 것 같아요.
GQ ‘예측할 수 없음’은 유주상의 장기이기도 하고요.
JS 맞아요. 상대가 예측할 수 없게 스텝도 많이 뛰고 헷갈리게 까불까불거리기도 하고요. 스피드나 타이밍으로 농락하는 재미도 있어요.

GQ 경기를 보면서 확실히 스타성이 있다고 느꼈어요.
JS 평소에는 별로 재미없는 사람이지만 경기 스타일에 있어서만큼은 스타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창의력, EQ가 중요하다고 느껴서 평소 생각을 독특하게 하려고 해요. 로킥을 차더라도 다른 기술을 섞어서 차고, 때리는 방식을 살짝 비틀어보고요. 어떻게 하면 틀을 깰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해요.
GQ MMA 밖에서 MMA의 영감을 얻기도 해요?
JS 코미디를 많이 봐요. 탁재훈, 양세형 같은 코미디 스타일을 좋아해요. 와,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저런 멘트, 저런 센스가 나올까? 거기서 발견한 창의력을 제 성격에 대입하면 더 열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GQ 코미디와 MMA라. 흥미로운데요? 얼마 전 아쉽게 예정된 첫 UFC 경기가 결국 취소되었죠?
JS 경기 6주 전에 갑작스럽게 오퍼를 받았는데(8주 전 오퍼가 일반적이다), 상대가 누군지 몰랐지만 일단 한다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 찾아보니 페더급인데 키가 186에 리치도 190이 넘더라고요. 그래도 괜찮다, 싸우자고 마음먹었는데 그 선수가 하루 만에 번복을 했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다음 경기가 결국 성사가 안됐어요. 5월이나 6월쯤 다시 잡힐 것 같아요.
GQ ZFN 02 경기는 그야말로 날아다녔죠.
JS ZFN 01 경기에 아쉬움이 너무 많았는데, 두 번째 시합 준비할 때는 부상도 없고 컨디션도 너무 좋았어요. 그때 UFC 회장 데이나 화이트가 직접 온다는 소문이 돌아서 다들 들떠 있었는데 저는 전혀 신경이 안 쓰였어요. 빨리 들어가서 싸우고 싶다, 관중분들께 내가 누군지 알려주고 싶다, 그런 생각뿐이었어요.
GQ 긴장도 안 했어요?
JS 원래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평소? 평소는 다르죠. 운전면허 시험 볼 때도 심장 터질 것 같았는데, 시합만큼은 긴장을 잘 안 해요. 그만큼 너무 열심히 준비하거든요. 엄청나게 혹독한 준비가 바탕이 되니까 시합 직전에는 얼른 뛰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GQ 데이나 화이트가 UFC 직행 소식을 들려주었을 때 눈물에다 코피까지 쏟았죠. 당시 어떤 마음이었어요?
JS 됐다! 아···,(반짝이는 동공) 정말 말로 표현 못 하겠어요.
GQ 코너 맥그리거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맥그리거 포에버>에서 기자가 코너에게 이렇게 질문해요. “시합에서 신체와 정신 중에 무엇이 중요한 것 같나요?”
JS 기억나요. 코너 맥그리거의 대답도요. 정신 100퍼센트. 저도 동의해요. MMA는 상대를 해하는 스포츠이니 신체적 실력은 시합 준비 과정에서 다 만들어놓고, 막상 시합에 올라가면 마인드로 겨뤄요. 내가 최고이고, 세계 챔피언이 될 사람이다라는 마음을 먹어야 상대가 작아 보이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GQ 상대가 작게 보인다?
JS 네. 그럴 땐 ‘나, 쟤는 무조건 이긴다’, 이런 생각이 들죠.

GQ 라스베이거스에 입성하면 어떤 기분일 것 같아요?
JS 특별하겠지만, 지금껏 저에게 ZFN이든 AFC든, 소중하지 않은 시합은 없었어요. UFC도 물론 대단하지만 많은 무대 중 하나라고,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더 잘 안되더라고요, 무엇이든.
GQ 생각이 많아요?
JS 엄청 많아요.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밤샌 적도 있어요. 고민해봐야 달라지는 게 별로 없어서 요즘엔 좀 내려놨어요.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지만, 또 너무 좋지는 않게,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자고 생각해요.
GQ 어떤 선수로 평가받고 싶어요?
JS 이렇게 말씀 드리면 재수 없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를 하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 한때는 저도 누군가의 평가에 신경을 엄청 쓸 때도 있었지만, 그러다 보니 제 삶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GQ 자신이 평가하는 유주상이 중요하다는 말로 들리네요. 그러면 유주상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었으면 해요?
JS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힘을 받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
GQ 코너 맥그리거가 다큐에서 그러더라고요. “MMA는 정신 나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동의해요?
JS 맞아요. 제정신이면 못 할 것 같아요. 단기간에 수 킬로그램을 감량해 시합을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거든요. 가끔 이걸 왜 하고 있지? 싶을 때도 있고요. 그런데 시합에서 이기면 전부 보상받는 느낌이에요. 어떤 느낌이냐고요? 뭐랄까···. 건식 사우나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냉탕에 빠질 때 느끼는 ‘냉파민’ 있죠? 그 100배쯤의 쾌감? 지금 제 코에 금이 여섯 군데 가 있거든요? 여기저기 부러지는 고통을 느껴도 이 중독되는 재미에 빠져들면, 참게 돼요.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왜 재밌는 거지?
GQ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My Own Hero’인 데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나요?
JS 앤디 그래머의 ’My Own Hero’라는 노래가 있어요. 가사 내용이 결국 내가 내 자신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거든요. 제 삶의 가치관과 잘 맞는 것 같았어요.
GQ 유주상에게 유주상은 영웅인가요?
JS 그런 것 같아요. 힘들 땐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잖아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요. 그러니까 제 자신을 구하는 영웅은 바로 저이지 않을까요?